‘조조의 두 배는 됨직한 떡 벌어진 체격에 구레나룻이 거뭇거뭇한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 한 눈에 힘꼴 깨나 쓰는 장사.’ 이문열이 평역한 삼국지에서, 하후돈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관우와 장비 없는 유비를 상상할 수 없듯이 하후돈 없는 조조도 상상하기 힘들다. 하후돈은 조조의 분신 같은 존재다. 조조가 삼국지에 처음 등장할 때 함께 나와서, 평생 동안 조조와 함께 전장을 누비다가, 조조가 죽자 얼마 안 있어 그도 숨을 거둔다.
하후돈(夏侯惇), 자는 원양(元壤). 패국 초현 사람으로 14살 때 그의 스승을 모독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여 단번에 유명해졌다. 힘이 세고 성품이 거칠었으나 웬일인지 집안의 형(조조의 원래 성씨는 ‘하후’)인 조조 에게만은 양처럼 순했다. 조조가 젊은 시절 유협집단과 어울려 다닐 때부터 하후돈은 그 밑에서 주먹대장 노릇 을 했다. 조조가 효렴에 뽑혀 낙양으로 오자 그도 함께 따라 올라왔다.
독재자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도망 다니던 조조가 의군(義軍)을 모집했을 때, 하후돈이 맨 먼저 천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왔다. 조조의 친족 중에는 하후연과 조홍 조인이, 그리고 유협시절의 패거리인 이전과 악진이 차례로 합류했다. 이들이 조조진영의 창립 멤버들 이었는데, 이들 중에서 맏형이 하후돈이다. 동탁이 죽고 그의 잔당인 이각과 곽사에게 쫓기던 황제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을 때, 조조가 군사 5만 명을 주고 맨 먼저 달려가게 했던 장수가 바로 하후돈이 아니던가.
조조가 서주로 원정을 떠난 틈에 여포가 쳐들어오자, 하후돈은 순욱 정욱 등과 함께 연주의 거점을 사수하고 견성에 있는 조조의 가족을 지켜낸다. 서주에서 돌아온 조조는 여포 토벌에 나서는데, 이 전투에 참가한 하후돈 은 아주 엽기적인 에피소드를 남긴다. 여포군과 맹렬하게 싸우고 있는 중에, 적장 조성이 쏜 화살이 하후돈의 왼쪽 눈에 꽂혔다. 하후돈이 화살을 빼내자 왼쪽 눈알이 함께 뽑혀져 나왔다. 장병들이 놀라서 우르르 모여들자 하후돈은 이렇게 말했다.
“이 눈알은 내 아버지의 정기요 어머니의 혈액이다. 이런 전쟁터에 버릴 수는 없다.”
하후돈은 자신의 눈알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다시 창 을 꼬나 잡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여 자기를 쏜 적장 조성을 끝까지 쫓아가 그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 이때부터 군사들은 하후돈을 하후연과 구별하여 ‘맹(盲) 하후’ 즉, ‘애꾸눈 하후’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 별명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울화를 참지 못하고 거울을 땅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하후돈의 이력에는 승전과 패전이 골고루 어우러져 있다.
먼저 승전을 보자. 조조를 제거하는 모임에 가담한 유비 를 공격하여 패퇴시키고 관우를 사로잡는 데 기여를 했다. 조조가 서주의 도겸을 칠 때, 하후돈은 복양에 머무르며 수비를 맡았다. 조조의 하북 평정 때는 후방 부대를 맡았다. 관도전투에서는 조조가 오소를 습격할 때 본진을 지키며 원소군을 격퇴시키는 데도 공을 세운다. 만년에는 경기와 위황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다음으로 패전을 보자. 제갈량이 유비의 참모로서 첫 출전하는 박망파 전투에서 조조군의 대장으로 출전한 하후돈은 용감하게 싸우지만 완패한다. 또 그가 앞장선 적벽대전에서는 월등한 병력수에도 불구하고 손권과 유비의 소수연합군에게 무참하게 패퇴한다. 또, 양양을 수비할 때에는 제갈량의 계책에 걸려 성을 그저 내주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전에, 조조가 청주에서 생포한 황건적을 훈련시켜 청주병이라는 외인부대를 만들고 이의 통솔 및 관리를 하후돈에게 맡겼는데, 그 청주병들이 민간인을 약탈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조조에게 크게 질책을 듣기도 했다.
하후돈은 틈이 나면 책을 읽었고 문관들과 토론하는 것 을 좋아했다. 또 입도 걸고 유머감각도 뛰어나서 병사들 과 잘 어울렸다. 그가 흥이 나서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조조마저도 그와 떨어져 있으면 그의 입담이 그립다고 할 정도였으니. 조조는 말년에 하후돈에게 큰 식읍을 주어 관할케 했다. 하후돈은 아주 청렴하여 축재를 하지 않았다. 또 남은 재화가 있으면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므로 조조는 그의 영지에서는 법령에 구애되지 않고 스스로 정무를 처결할 수 있도록 그에게 전권을 주었다.
또, 그는 조조와 함께 마차에 탔고, 조조의 침실에도 출입 할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의심 많은 조조가 이런 파격적인 예우를 한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조조의 신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위왕이 되자, 하후돈은 대장군에 오르지만 얼마 안 있어 병이 들어 조조의 뒤를 따라가고 만다. 조비는 스스로 상복을 입고 장례를 집전 하여 아버지의 충복에 대한 최상의 예우를 표한다.
하후돈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조진영의 영원한 2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투를 진두지휘하여 완승을 거둔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군웅들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조조진영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장수인데도 왜 뚜렷한 승전기록이 없었던 걸까? 혹자는 그가 한쪽 눈을 잃은 충격과 그 후유증으로 용맹 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주로 후방에 남아 수비를 맡게 된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설명이 아닌 것 같다.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하후돈은 타 장수들을 압도 하는 지략과 무용(武勇)을 지닌 장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문무를 겸비한 장수라고는 하나 지략 면에서는 동료장수 인 서황이나 장료 등에게 미치지 못했고, 무용 면에서도 창술에는 능했으나 무예 전반에서 허저나 전위보다 뛰어 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하후돈은 약간 뛰어난 장수가 될 뿐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적당히 가지고 있으면서 기복 없는 충성심까지 갖춘 장수를 찾는다면 조조진영에서 하후돈 외에 달리 떠오르는 장수 가 없다. 삼국지를 통틀어, 이보다 더 성실하게 초지일관 주군에게 충성을 다한 장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용두팔에 '돈'자가 들어가는 인물이 있다. 이승돈, 박돈. 삼국지 읽을 때 하후돈에서 생각났던 용두팔이다. 돈도로돈돈도...ㅎ
ㄲ ㅡㅇ...
박 돈 화장중이가?ㅎ
세계여성의 날이라...
삼국지가 여성들, 아마조네스의 싸움이었으면 금방 끝냈을겨..통박굴리고 이리저리 안 재고 바로 붙어서 끝냈을겨..어차피 지고 이기는건 한가징께.ㅎ
박 돈 이동훈 큰거 보는 모냥이여.
김용범 낸 끝냈어..뒤처리까정 학씨리.ㅎ
이동훈 뒷물꺼정?
김용범 완죠니..ㅎ
이동훈 매운 아구찜에 콩나물 대가리는 안넣고 묵은거제?
김용범 아녀...고노메 콩나물.부추..ㅎ
이동훈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 회사 여직원들과 점심 먹고... 장미꽃 한 송이씩 증정했슴.
김상규 굿잡! 좋은 상관이셩..ㅎ
김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