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11절 ~13절
11. 고린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였고 우리 마음을 여러분에게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12. 우리가 마음을 여러분에게 닫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신들의 마음을 닫아 놓은 것입니다
13. 내가 여러분을 나의 친자식이라 생각하고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한 것처럼 여러분도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주의 지경이 확장된다는 것은 고난과 궁핍, 매 맞음, 수고로움,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깨끗함, 자비 오래 참음,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내는 데만 사용하였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들의 세상 속에서 이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는 삶은 세상의 방해를 만나게 됩니다.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에 넘어지고 실수합니다.
성령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나 사단의 목적은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실수하거나 넘어질 때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복음과 사명 앞에 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의 소망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롱과 비방 거짓 사도에 넘어가 바울의 권면을 거부하였습니다. 바울은 오해한 이들을 향해 우리의 입이 열리고 즉 잠겨진 것을 여는 것처럼 말하지 못한 오해로 말하지 못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마음이 넓어진 것은 오해한 이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꼬이면 풀리지 않을 것이나 바울은 자신의 삶을 다해 고린도교회를 사랑하였고 배신당했으나 용서와 용납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주역으로 살게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포기하지 않고 용서하였습니다. '아페소'는 탕감하다 떠나보낸다는 말입니다. 실수와 잘못이 우리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선 것을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용서해 주고 어떤 것은 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일관적으로 뒤돌아보지 않는 용서인 것입니다. 쌓아두는 용서가 아닌 우리에게 상관하지 않는 용서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 가운데 사는 바울은 나는 죽었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사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용서의 마음이 없이는 갈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나가기 전에 교회 안에서 싸우고 있고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다툼이 끊임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성도의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다툼이 있고 내것만 주장한다면 성령님이 어떻게 일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신앙생활 30년 40년 이상의 모습이 아니라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삶입니다.
내 삶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말씀과 다르면 내 경험이 말씀과 다르면 내 계획이 말씀과 다르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용서의 마음과 용서할 수 없는 마음 중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살아 있구나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성령님이 일할 수 없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한 주님을 기억하니 허물과 죄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고 용납하면 그들에게 축복을 하기 바랍니다. 바울을 거부한 교인들이 바울이 많이 화가 났겠지 보고 싶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사랑한다고 기대하는 마음을 열고 있으니 그들도 열어 주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고린도성도는 사과하고 더 좋은 관계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령도 이 은혜 안에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반드시 이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사탄에게 나를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용서받은 자이기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