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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여느 날처럼 큐대를 쥔 이영석씨. 8년 전 팀 동료들이 ‘깍두기’로 끼워준 첫 대회에서 덜컥 우승을 거머쥐었던 그는 “당구는 집중력이 중요해서 정신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안 들어간다. 그래서 치매 예방에도 좋다더라”며 웃었다. /최기웅 기자
서울 송파구 한 노인종합복지관 당구실. 큐대를 손에 쥔 이영석(90)씨 눈빛이 공의 미세한 각도를 살피며 매섭게 빛났다. 아흔 나이에도 가지런한 치아와 또렷한 목소리가 남달랐다. 이씨는 지난해와 올해 4월 두 해 연속 ‘전국생활체육대축전’ 당구 75세 이상 부문(포켓볼 종목) 서울시 대표로 출전해 최고령 선수상을 받았다.
“당구는 1㎜만 틀어져도 공이 안 들어가는 예민한 운동이라 엄청난 몰입과 집중력이 필요해요. 치매 예방에도 좋고요.”
당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일흔을 훌쩍 넘긴 뒤였다. 서울 중구 흥인동에서 자란 그는 아홉 살이던 1945년 아버지를 여의었다. 6·25전쟁 때는 어머니, 여동생과 강원도 원주 문막으로 피란해 피란민 분교에 다니며 소년 축구단 선수로 뛰었다.
1961년 서울시 공무원이 돼 수도사업소와 여러 구청에서 33년 9개월간 일했다. 퇴직 뒤에는 큰 시련이 닥쳤다. 2002년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고 7년 뒤 마흔일곱 살 큰아들마저 세상을 떠났다. 상심한 그는 술에 의지하다 간이 크게 상했다. 이후 12년간 술을 완전히 끊고 혼자 차를 몰아 전국을 다니며 몸과 마음을 추스렀다.
그를 다시 사람들 속으로 끌어낸 곳은 2010년 무렵 찾기 시작한 송파노인종합복지관이었다. 컴퓨터와 탁구를 배우다 당구에 빠졌다. 정식 레슨도 없었다.
“그냥 옆에서 보고 더듬더듬 배웠어요.”
그렇게 연마한 실력으로 서울시 대표가 됐고 전국 대회 우승과 두 차례 최고령 선수상까지 받았다. 이제는 그만둘까 싶다가도 경기장에 서면 승부욕이 살아난다.
“물론 이 순간을 ‘엔조이하자’, 즐기자는 마음이 깔려 있어요. 처음엔 지면 기분 나빴는데 지금은 태평해요. 우승도 해봤고 2등도 해봤고 단체전도 해봤고 여기서 회장 노릇도 해봤고, 할 건 다 해봤으니까 아쉬울 것도 없어요. 그저 당구가 재밌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우니까요.”
이씨의 하루는 오전 4시 30분에서 5시 사이 시작된다.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뒤 0.5㎏ 아령을 양손에 들고 상체 운동을 100회씩 한다. 몸 상태에 따라 제자리 뛰기도 500~1000회 한다.
“남들은 100% 한계까지 치닫지만 나는 내 몸에 맞춰 항상 30~50% 강도만 유지해요. 매일 꾸준히 하는 게 상책입니다.”
아침은 직접 끓인 순두부나 두부찌개에 달걀 두 알, 밥 두세 숟갈과 나물 반찬으로 싱겁게 먹는다. 오전 8시 전후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당구장을 찾는다. 귀가는 대개 오후 8시 30분, 늦으면 밤 10시를 넘긴다. 평소에는 밤 9시쯤 잠들어 하루 6~7시간 잔다.
당구만 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매일 신문 사설을 읽고, 집 근처 산책과 등산을 한다. 남한산성이나 계곡을 찾아 사자성어 책이나 헌법 필사 책을 읽기도 한다.
“오래 산다는 건 특별한 비법이 없습니다. 자기가 정한 틀 안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계획성 있게 살아가는 신념이 곧 건강이지요.”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나이까지 살아 있으니 두 분이 못다 사신 목숨을 제게 나누어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막차를 탔다고 생각하면 겁날 게 없거든요. 팔순 잔치, 구순 잔치도 저는 관심 없어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주어진 하루를 내 힘으로 건강하게 살아내면서 당구를 치고 시합에 나가는 게 매일의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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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 기자
2006년 조선일보 입사. 제45회 GC녹십자언론문화상(2023), 제12회 삼성언론상(2008), 제204회 이달의기자상(2007)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