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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문경새재-경주-동해안, 2016.05.05~05.08
대게 먹은 걸 후회한다. 아니, 좀 더 약삭빠르게 계산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여행 삼일째, 동해안을 따라 강릉으로 향 하던 중 영덕대게를 맛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산지가 더 비싸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 우리 가족이 언제 영덕대게의 원산지에 와서 먹어 보겠는가? 예상했던 경비보다 저렴하게 떠나온 코스이니 먹는 데는 아끼지 말자.
인터넷을 뒤져 영덕 강구항의 동광어시장 방문 후기를 읽고 찾아왔다. 인산인해. 포구 입구부터 차량으로 장사진이다. 족히 수 백 군데는 넘을 법한 대게집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호객한다. 동광어시장까지 가기 전 그만 포기하고 근처 대게집에 주차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주차공간 없음. ㅋㅋ.
식구들을 내려주고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한 후 털레털레 걸어오니 딸과 아내가 대게를 구경하며 주인과 흥정하고 있다. 주인이 권유한대로 국산 대게 네 마리를 십만원에 구매한 후 2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간다. 쟁반에 쪄낸 대게 네 마리가 한없이 작아보인다. 우리 다섯 식구가 먹기에는. 옆 테이블 중년 부부의 상에는 우리보다 두 배는 큼직한 대게 두 마리가 펼쳐져 있다. 다리 사이즈만 따져도 장난이 아니다.
좀 더 약삭빠르게 계산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미끼상품으로 던지는 열 마리에 오만원 홍게와 비록 물렁물렁한 겉껍질을 지녔더라도 킹사이즈의 러시아산 대게까지 한꺼번에 구매해서 먹었더라면 남들이 뭐라해도 세 종류를 모두 먹었으니 각각의 맛과 품질, 배부름의 차이를 얘기할 수 있었을텐데. 왜, 대게집을 나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또 한가지. 인터넷 블러거가 말한 영남수산 초장집을 찾아갔어야 했다. 거기서는 대게라면도 끓여 판매한다고 했는데...쩝
여행은 왜 떠날까? 사전적 의미로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는 일상에 지쳐서라는 간단한 대답으로 설명되지 않을까?
집사람이 아이 셋과 돈벌이 시원찮은 남편과 복작이며 사는 것에 지쳤었나 보다. 5월 황금연휴에 어디라도 가자고 한참 전부터 졸랐다. 제주도를 제일 첫번째 목적지로 정해봤지만 이미 비행기표며 숙박지는 품절. 차순위가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막내가 수학여행 장소로 다녀온 경주였다.
경주, 나도 집사람도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곳. 한 35년 됐을려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차량으로 이동할테니 뭐 표 걱정은 필요없고, 숙박이 문제인데, 콘도는 모두가 예약불가. 나름 머리를 굴려보니 단체수학여행객들이 머무는 유스호스텔이 떠오른다. 인터넷 검색 후 전화한다. 오호, 저렴하다. 예약도 필요 없다. 고등학생 딸아이는 청결문제를 이유로 반대했지만 슬그머니 대답을 회피하고 일단 떠난다. 그래, 가장인 나도 지쳤으니까 가는 거야.
몇 해 전 중부고속도로를 가던 길에 문경새재 표지판을 본 적이 있다.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곳이었는데...생각만 하다가 이번에도 우연치 않게 중부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 경주를 목적지로 가는데 문경새재 표지판이 눈에 띈다. 저기 들렀다 가자!
문경새재는 제1관문인 주흘관(KBS 드라마 세트장), 제2관문인 조곡관, 제3관문인 조령관을 차례로 통과해야 하는데, 갈 길이 멀어 조곡관까지만 다녀왔다. 풍광이 너무 좋다. 아내와 꼭 다음에 다시 한 번 오기로 약속은 했지만, 약속한 다음이 언제가 될지...
황금연휴가 맞긴 맞나 보다. 보문호수를 중심으로 모인 콘도타운에 빈방이 없다. 일주일 전 예약을 시도했으나 모두 만실이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화콘도와 맞은편 켄싱턴리조트 프런트를 찾아가 혹시 취소된 손님이 없는지 알아봤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다 였다. 몇 군데 펜션에 전화해보니 부르는 게 값.
불국사 인근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유스호스텔촌이 형성되어 있다는 걸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았고, 직접 전화를 해보니 예약도 필요 없었다. 저렴한 숙박비는 덤.
그런데 고등학생 딸 아이가 그곳에서 묵었나 보다. 거기서 잘거면 이번 여행에 따라 나서지 않겠단다. 그래서 한화콘도와 켄싱턴리조트를 한 번 다녀오는 수고를 거쳐 결국 불국사 앞 유스호스텔에 숙소를 잡았다. 엄청 큰 방으로. 우리와 같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꽤 많다. 딸 아이도 숙소에 대한 불만이 조금은 수그러든 모양새다. 경주 시내에 나가 맛있는 고기로 저녁을 먹기로 하자 좋아들 한다. 그래 먹는 게 남는 거다.
그리고 여행 둘째날. 비 소식이 있다. 불안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석굴암에서 일출을 보자고 했는데.
왼쪽의 사진이 발굴 후 정비한 석굴암 모습이고, 오른쪽 그림이 현재의 석굴암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석굴암에 전각을 씌워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확실히 예전의 모습이 신비롭고 장엄하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그곳에서 일출을 보려던 각오는 장거리 운전과 문경새재까지 유람하는 일정으로 지친 몸이 포기선언을 함으로써 일단 접자. 천우신조, 하늘이 돕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날이 몹시 흐리다. 안개비도 흩뿌린다. 석굴암에서 일출을 보자던 굳센 각오는 무너졌지만 상쾌한 기분이다. 렛츠 고, 석굴암.
그런데 급실망이다. 예전 기억이 아니다. 전각이 세워져 너무 좁아 보인다. 신비감도 반감됐다. 어둡다. 웅장미는 어디 갔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주차장에 있는 종을 타종하는 것으로 위로 삼으려 하는데, 그마저도 일인당 천원 씩을 내라는 지키미와 실랑이를 하게 되어 있는 힘껏 종을 울리는 것으로 분풀이는 한다. 아이들은 꽤나 재미있어 했다. 그럼 됐지 뭐.
아무튼 국보 제 24호이자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석굴암과는 작별을 하고 불국사로 향한다.
많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불국사 경내, 우리 가족만 황금연휴를 즐기러, 이 먼 경주까지 온 것은 아닌가 보다. "댓돌에서 내려오세요." " 자, 이리로 모여주세요." 관리인은 관람객들에게 손나팔을 해가며 주의를 주고, 중국관광객들인듯한 수십 명의 일행들을 인솔하는 가이드는 소형확성기를 옆구리에 끼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5일장 같은 풍경을 예상했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에 떠밀려 다보탑 앞에서 찰칵, 석가탑 앞에서 찰칵, 그걸로 불국사 관광을 마치려 한다. 얼마 전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다녀간 막내가 말한다. "황금돼지를 찾아야 해요." 이 녀석이 뜬금 없이 뭔 소리람. 신성한 천년고찰 불국사에 어울리지 않게 황금돼지가 어디 있어? 생뚱 맞은 소리한다고 일갈했는데 "찾았다"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는 황금맷돼지다. 얼마나 사람들이 만졌는지 쬐끄만 조각상이 맨질맨질하다. 아, 조상님들께 괜히 미안해진다.
"얘들아, 가자." 첨성대로 행선지를 옮긴다.
신문왕.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의 창간인이 아니다. 문무왕의 장자. 요즘 말로는 금수저다. 이정표에 <신문왕릉> 표지를 보고 아주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도로 바로 옆이어서 접근성이 대단히 좋다. 백만년 전에 이용했을 법한 간이화장실, 안내소도 없고, 딸랑 안내문 하나 서 있다. 한바퀴 휘 둘러보면 끝. 세월의 무상함, 부귀영화도 시간이 이리 흐르니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구나.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살자.
* 교촌 한옥마을, 계림, 오릉, 첨성대, 천마총, 대릉원, 석빙고(동궁터), 안압지, 경주국립박물관, 황룡사지, 분황사지
비록 로마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들은 풍월로는 온 도시가 유적이고 유물 천지라고 한다. 그래서 도로공사도 함부로 못하고, 낡은 주택도 수리보수 하는데 아주 까다롭다고 한다. 그런 로마에 경주를 비견한다면 무리일까?
경주 역시 온 도시에 유물이 가득하고, 발길 닿은 곳마다 유적지가 즐비하다.
위에 나열한 사진들의 장소를 모두 도보로 둘러볼 수 있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모두 차량을 이용해야 할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줄줄이 꼬리를 물고 '나 여기 있어요', 손짓하고 있었다.
교촌 한옥마을은 우리가 익히 들어보거나 가본 남산 한옥마을, 진주 한옥마을과 별다른 차이점은 못느꼈다. 다만 이름에서 연상되는 치킨과 땡볕에 1시간을 넘게 서서 맛본 교리김밥 정도랄까? 1인 당 두 줄로 제한한 김밥, 그것도 온가족이 얼굴을 들이밀어야 준다는 사장님의 호령에 잽싸게 몰려가 받아온 10줄의 김밥을 먹고 숲에 들어서자 바로 그곳이 계림이다.
'계림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라고 배웠던 그곳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신화가 깃들인 곳이다. 신화의 배경 치고는 왠지 허전하다.
계림 끝으로 둥그스름한 능이 보인다. 오릉이다.
오릉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거서관과 그의 왕비 알영, 2대 남해 차차웅, 3대 유리 이사금, 4대 파사 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에 '미추 이사금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라는 구절에서 추측하는 모양이다.
역사 시간에 열심히 외웠던 분들의 무덤이 여기 모여 있었네. 후회된다. 왜 그리 점수에 연연해했는지. 이렇게 한번 와서 보면 평생을 기억할 것을. 그래서 역사교육은 현장답사를 동반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이 굳어진다.
오릉을 하나씩 손꼽아 세어보다보니 저멀리 첨성대가 눈에 들어온다.
국보 제 31호이자 동양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로 향한다.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석조건축물이 이렇게 온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경주 시민들이 부럽다. 계림에서 나와 첨성대로 향하는 길목에 넓다란 초지가 펼쳐져 있다. 그곳에 삼삼오오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뛰놀고, 연을 날리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며 논다. 그 모습이 부럽다. 그 부러운 경주시민들을 지나쳐 천마총으로 향한다.
예전 기억의 천마총은 어두컴컴한 무덤이었다. 그곳에 줄지어 들어가 말안장에 그려졌다는 천마도를 보고 나왔던 기억이 흐릿하다. 위의 사진은 인터넷 포털에서 찾아 올렸기에 한산하지만 막상 가보니 개미떼 같은 줄이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해설사를 동반한 단체관람객들이 많아서 불국사에서 보았던 조그만 확성기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늘 없는 땡볕에 서있자니 자연스레 짜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줄은 줄어든다.
천마총 입구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눈에 띈다. 왕릉 위로 아이들이 뛰어올라간 것이다. 어느 한녀석이 앞장을 섰을 터이고, 다른 녀석들은 이게 웬 놀이터냐 싶어 뒤를 따랐을 것이다. 결국 안내원의 고함소리에 아이들이 멈칫거리지만 정작 아이들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천마를 그린 말다래'가 국보 제 207호이자 황남동 제 155호분으로 불리는 천마총에서 이뤄진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 정도는 애교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봉분 위 뗏장이야 벗겨지면 또 씌우면 되는 일인데. 그리고 예전의 경주라면 이곳이야말로 토박이 아이들의 놀이터였을 테니까.
천마총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 뒷사람에게 밀려 왼쪽 출구로 나오는 관람. 그나마 바깥보다 서늘한 기온이 기분을 좋게 한다. 예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무덤의 구조에 눈길이 간다. 대충 흙무덤 정도로 생각했는데 상당히 견고하다. 커다란 몽돌을 봉분 밑에 깔아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도굴꾼들이 약탈을 하다니.
천마총 아니, 황남동 제 155호분이 포함된 대릉원을 휘 둘러보고, 대릉원 직원인듯한 청솔모(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질 않는다)의 배웅을 받으며 석빙고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릉원 입구에 즐비한 커피전문점을 거쳐서.
경주에 있는 대부분의 유적지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유적지가 생겼다. 바로 <동궁과 월지>라는 유적지인데, 동궁은 석빙고를 포함한 성터 일대를 지칭하는 듯하다. 낮은 흙무더기 성터를 오르니 특별한 유물은 없이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그 한편에 석빙고가 자리하고 있다.
월지는 '안압지'를 일컫는 새로운 명칭인 듯하다. 신라왕궁의 후원인 안압지는 수려한 정원미가 아름다운 곳이다. 밤에 더욱 아름답다는데 우리가족은 불행히도 안압지의 야경은 놓치고 말았다.
가족들이 안압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보이는 경주국립박물관 관람을 위해 이동하는동안 교촌마을 입구에 주차해놓은 차를 가지러 아비는 땡볕 아래를 부지런히 걷는다. 생각 보다 멀다. 헉헉. 그래도 이 고생을 통해 내 가족이 편안할 수 있다면. 예전에 모셨던 상사분의 말씀이 기억난다. "가장이 밖에서 찬바람을 맞아야 가족들이 따뜻히 지낼 수 있다."
내가 일 하는 곳 인근에 대형 교회 두 곳이 서로 마주보고 서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폭 3미터의 도로를 마주하고 이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비단 현재의 기독교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닌 듯하다. 황룡사지와 분황사를 둘러보면서 천년 전에도 똑같은 현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난다.
축구장 몇 개는 들어설 만한 넓은 터만 남은 황룡사지와 국보 제 30호 모전석탑으로 교과서에 등장하는 분황사는 채 3미터도 안되는 좁은 길을 마주하고 서있다. 아, 포교활동의 변함없음이여. 무심히 자리를 지키는 당간지주에서 한컷 촬영 후 보문호수로 이동.
보문호수 도착. 와, 넓다. 끝.
여행 이틀째 정말이지 많은 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닌 듯하다. 어제 저녁은 아주 저렴한 한우고기집을 찾아 배불리 먹었다. 교촌한옥마을 교리김밥이 아직 뱃속에 남아있는 듯한데 저녁을 해결해야지. 어제 저녁 켄싱턴리조트 1층에 있는 애슐리를 찾았다가 음식이 떨어져 손님을 받지않는다는 말에 아이들이 몹시 섭섭해해서 다시 가볼까 하다가 서울 가면 꼭 애슐리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서 보았던 순두부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결론은 실망이다. 경주 하면 황남빵 이외에 딱히 떠오르는 먹거리가 없는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여행 후 지인으로부터 경주는 쌈밥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는 여행 전 사전준비가 소홀했음을 느낀다.
보문호수의 봄 사진이다. 사진 속의 봄에 찾아왔다면 정말이지 멋진 풍경을 감상했을 것이다. 보문호수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호수는 아닌 듯하다.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 치고는 상당히 넓다. 호수 둘레를 한바퀴 둘러보려던 애초의 계획이 무리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문호수 주변의 리조트에서 숙박을 계획하는 여행객이라면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서 산책코스로 남겨놓아도 좋을 듯하다.
이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느낌을 받았던 감은사지로 떠나려한다.
여행 3일째이자 마지막 날, 여행안내도에서 동해 바닷가 문무대왕릉으로 향하는 길에 감은사지 3층 석탑을 보았다. 익히 들어온 유적이라 찾아보기로 마음 먹었던 곳인데 너무도 쉽게 눈에 띈다. 사진에서 보이는 석탑 두 기가 운전자의 눈에 바로 들어온다.
세월의 무상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황량하기 그지 없는 빈 절터에 너무나 웅장한 석탑 두 기만이 천 년 전의 영화로움을 보여준다. 동탑과 서탑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두 기의 탑은 사진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거대하다.
감은사지로 올라가는 층계참에 위치한 안내소는 굳게 잠겨 있고, 낡은 간판의 시골 점방이 바람에 덜컹거리고 있고, 텅빈 주차장에 우리 차량을 필두로 몇 대가 들어오자 시골 아낙들이 분주히 광주리를 이고 나선다. 이러한 사람살이와 웅장한 석탑과 빈 절터가 묘한 느낌을 준다. 이런 것인가? 세월이 흐른다는 것이.
집사람이 많이 기대한 동해로 빠진다. 첫 기착지인 문무대왕릉에 도착한다. 감은사지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한적하다. 마치 피서철이 끝나 파장한 바닷가 같다. 이곳도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한 것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681년에 왕이 승하했다 하니 약 1,400년 전 일이다. 그 때는 무척이나 영화로운 모습이었을테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소개 안내판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치성(致誠) 드리는 아낙이 있어 묘한 느낌을 받고 돌아선다. 다른 블로거의 글을 읽으니 문무대왕릉 앞 바닷가는 여러 무속인들이 찾아와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피서철에는 단속하기도 한다니 죽은 문무왕의 영험함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블로거들의 글을 통해 7번 국도를 따라 강릉까지 올라가는 길이 절경이라는 정보를 얻어 네비게이션에 특별한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고 이정표만 참조하여 운전한다. 구불구불 길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아뿔싸. 7번 국도는 왼편 멀리 있다. 우리는 지방도를 따라 가고 있었다. 오른쪽 차창에 동해바다가 계속 따라붙는다. 덕분에 눈은 더욱 호강한다.
호미곶으로 향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바닷가 손 조각상을 꼭 한번 보고 싶었던 터였다.
막상 도착해보니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 한반도가 토끼모양이라고 배웠던 시절, 이곳은 앙증맞은 꼬리 부분에 해당되던 곳이었다. 한반도의 최동단이라고 한다. 거대한 솥단지가 있고, 새천년을 기념하는 건축물이 솟구쳐 있다.
뭔가 장엄할 듯했던 거인의 손 조각상은 바닷가와 뭍에 각각 한 쌍이 짝을 이루는데 마치 물에 빠진 거인의 구조 신호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바닷가의 조각상은 갈매기들의 좋은 쉼터가 됐는지 허옇게 배설물들로 덮여 있었다. 치우기 꽤나 어렵다는데... 자, 가자. 대게 먹으러.
그리고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강구항에서 대게 먹은 걸, 좀 더 약삭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다 보면 무슨무슨 부문에서 최고의 휴게소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을 게시해놓은 인쇄물을 접하게 된다. 음식이니, 화장실이니, 서비스 등등. 이번 여행에서 망양휴게소를 접하고는 내 기억의 최고의 휴게소라 저장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이번 여행지 중 한 곳을 추천하라 한다면, 일부러라도 꼭 한번 찾아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제 이번 여행에서 우리 아이들이 최고의 재미를 만끽한 정동진으로 향한다.
정동진 하면 기차역, 일출, 드라마 <모래시계>, 모래시계 조형물, 고현정 소나무가 떠오른다. 가족들과 함께 찾아간 정동진은 관광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저분해 보이는 해변과 즐비한 가게와 상인들, 백사장을 휘젓고 다니는 4륜 오토바이들. 그 장삿속에 우리가족도 발을 담궜다. 모터보트 한 번 탈까? 20분 이냐, 30분 이냐에 따라 달라진 4만원, 6만원의 가격대 중 대게 먹을 때 공연히 돈 아꼈다는 생각이 들어 6만원 짜리 코스를 택했다. 출발~. 이리 신날 수가. 온 가족이 소리 지르며 웃는다. 보람된다. 그런 가족들 덕분에 나 역시 너무너무 즐겁다. 어둑어둑 해가 진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기사에서 접한 안목해변 카페거리와 초당 순두부로 저녁 만찬을 즐기는 코스만 남아있다.
강릉 안목해변 카페거리를 외국의 어느 유명 해변 관광지를 떠올리며 방문한 것이 잘못이었나 보다. 그저 바닷가에 인접한 카페 10여 곳(눈대중으로 대충 세어보니)이 들어서 있고, 몇 군데는 내부 인테리어 중이어서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경주에서 저녁으로 순두부 전골을 먹었다. 너무 실망스러웠다. 식구들에게 강릉에 도착하면 초당순두부 먹자고, 진짜 순두부는 그곳에서 맛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순두부 정식을 시켜 먹었다. 역시나 다르다.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고. 가장으로써 뿌듯하다.
이로써 예정된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엄청나게 막힐 걸 예상하고 영동고속도로에 올라서야 한다. 배도 부르고 피곤하지만 갈 길이 멀기에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강릉 솔향온천>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온천욕 하고 갈까?" 예정에 없던 온천욕을 즐기기로 한다.
서울에서 다니는 찜질방 입장료 보다 저렴하다. 2시간 가량의 온천욕에 피로가 확 풀린다. 다들 벌게진 얼굴로 1층 로비에서 재회한다. 우습다. 저마다 핑크색 때수건을 들고 있다. 이태리에는 없다는 이태리 타올. 역시 한국사람은 몸 푹 불리고 때수건으로 쓱쓱 문질러 줘야 목욕의 완성이다.
어째 거창했던 여행의 마무리가 소소하게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좋다.
자정이 넘은 시각. 영동고속도로는 한산해졌다. 가족들이 타고 있기에 규정속도를 지키며 운전한다. 여행 삼일째 되던 날도 감은사지 - 문무대왕릉 - 호미곶 - 영덕 강구항 - 망양휴게소 - 정동진 - 강릉의 강행군 여정을 소화했다. 피곤할 만도 하다. 뒷자리에 서로 포개어 잠든 삼남매와 조수석에서 어떻게든 깨어 있으려다 결국 가늘게 코 고는 소리를 내는 마누라. 이들이 내 행복의 원천이자 살아가는 이유임을 새삼 느낀다.
큰아들은 마이스터교에 진학했기에 올 7,8월 경이면 취업 실습을 나간다. 남들 말대로 다컸다. 아직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부모 품을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큰딸네미가 히스테리컬 하다. 본인이 희망한대로 특성화고에 진학했지만 먼 거리의 통학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보니 기초실력이 없음에 나름 스트레스를 받나 보다.
막내아들이 대견하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씩씩하게 잘 커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모 욕심이 조금씩 커지고는 있지만 그또한 녀석이 우리에게 온 숙명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마누라. 참, 고생한다. 1년에 어쩌다 한번 사랑한다 표현하지만, 예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 싯귀절 대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아내가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고 나니 참, 고마운 사람으로 남는다. 시원치 않은 벌이에, 그렇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살림을 묵묵히 꾸려나가며 아이들 키우는 아내. 앞으로 20년은 더 고마워해야 겠지만......
식구(食口)라는 말을 좋아한다. 끼니를 함께 하는 사이. 많으면 많은대로 나누고, 적으면 적은대로 쪼개어 먹는 사이. 맛있건 맛없건 한자리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어야 하는 사이. 그래서 밉건 곱건 얼굴 마주쳐야 하고, 싫건 좋건 말을 섞어야 하는 사이. 나와 아내, 세명의 자녀. 우리는 식구다.
우리 식구가 언제 또다시 모두 모여 여행을 하게될지 모르겠다. 정말 기약 없다. 짧은 2박3일의 여행. 남들은 해외로 가지만 돈 아까워서 국내로 잡은 여행지. 콘도나 펜션이 아니라 유스호스텔이라서 안가겠다고 고집 피우던 딸네미. 얼마전 수학여행으로 다녀왔으니 이번 여행에 가이드 역할을 맡겼는데 전혀 기억을 못하는 막내아들. 무덤덤히 애초부터 기대라곤 안가진 듯한 큰아들. 진심인지 반진심인지 몰라도 싱긋벙긋한 아내. 그리고 계속된 운전으로 어깨도 결리지만 제일 투덜대면서 이끌고 다니는 나.
이번 여행은 이런 식구들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과 감정과 말들이 난무한 여행이었다. 즐거웠냐고? 그건 세월이 좀 흐른 다음에 어떤 추억으로 기억될지에 맡기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