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사후의 경험을 말하다
일주일 뒤에 캐서린이 다시 최면치료를 받기 위해 진찰실을 찾아왔다. 다행스럽게도 표정이 전에 없이 밝았다. 캐서린은 기쁜 얼굴로 평생 자신을 괴롭혀오던 물에 대한 공포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질식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고 했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꿈으로 잠을 설치는 일도 없어졌다. 캐서린은 전생의 사건들을 상세하게 기억해내기는 했지만 아직 그것을 삶 속에 자연스럽게 동화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전생이나 환생은 캐서린의 세계관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들이 너무도 뚜렷하고 그 풍경과 소리와 냄새가 너무도 생생했으며 자신이 그 일을 겪었다는 느낌이 너무도 강렬하고 직접적이었기에, 캐서린은 자신이 틀림없이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고 믿었고,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경험은 캐서린을 압도했던 것이다. 캐서린은 이 사실이 자신이 받아온 교육과 길러온 신앙에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전 일주일 동안 나는 컬럼비아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수강했던 비교종교학의 교과서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원래의 구약과 신약에는 분명히 환생에 대한 언급이 실려 있었다. 서기 325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어머니는 신약에 실려 있던 환생에 대한 언급을 삭제해버렸다. 서기 553년 큰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 2차 공의회는 이 조치를 승인하고 환생의 개념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 개념이 인간에게 구원의 기회를 여러 번 부여함으로써 성장하는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킬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분명히 환생에 대한 언급이 실린 성경 원본이 있었다. 초기의 교회 지도자들은 환생의 개념을 인정했었다. 초기 그노시스주의자들 Gnustics(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성 히에로니무스,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생이 있었으며 후생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그노시스 주의는 신의 세계와 물질세계의 이원론에 입각해 인간과 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계시에 의해 인식함으로써 신과의 합일, 곧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학으로 1,2세기 경 지중해 연안에 널리 펴졌던 사조이다.)
그러나 나는 환생을 결코 믿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릴 때 받은 종교적 훈련은 사후 ‘영혼’의 존재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가르쳐주었지만,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나는 모두가 세 살 터울인 네 형제 가운데 장남이었다. 우리는 뉴저지 해안에서 가까운 레드 뱅크라는 작은 마을의 유태교회당을 다녔다. 나는 식구들 사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우리 식구 가운데 종교에 가장 열심이었다. 아버지는 종교를 매우 중요시했고, 인생을 종교에 거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또 공부 잘하는 자식들 보는 것을 최대의 낙으로 삼으셨다. 집안에 불화가 생기면 쉽게 달아올랐다가도 한발 물러서서 나에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기시곤 했다. 결국 이러한 경험이 뒷날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한 훌륭한 준비단계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나에게는 스스로 바랐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이 주어져 있었다. 이런 생활을 통해 나는 과중한 책임을 짊어지는 데 익숙한 매우 진지한 성격의 젊은이로 자라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애정을 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분이었다. 그분의 애정 표현 방식에는 한계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단순해서 깊은 생각 없이 자식들에게 자책, 희생, 극단적 당혹감, 대리 수난 등의 방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 어머니는 항상 밝게 사셨고,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사랑과 보호에 의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산업사진기사라는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집은 먹는 일에 구애를 받지는 않았지만 돈에는 매우 쪼들렸다. 내가 아홉 살 때 막내 피터가 태어났고, 우리 식구는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비비적대며 살아야 했다.
좁은 아파트 생활은 답답하고 소란스러웠고, 나는 책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나는 야구나 농구를 할 때만 빼고는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동생들은 야구와 농구에 빠져 있었다. 나는 독서가 나를 작은 촌구석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흡족해 했고, 그 결과 반에서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진지하고 학구적인 젊은이가 되었고, 마침내 컬럼비아 대학교에 전액 장학금 수혜 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학문적인 성공이 어렵지 않게 뒤따랐다. 나는 화학을 전공했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나의 관심과 정신의 작용에 대한 호기심을 함께 만족시키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기에는, 의사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연민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캐츠킬 마운틴 호텔에서 여름방학 동안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곳에 손님으로 온 캐롤을 만났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 끌렸고, 친숙함과 위안의 감정을 느꼈다. 편지를 나누고, 데이트를 하고, 사랑에 빠졌다.
내가 컬럼비아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약혼을 했다. 캐롤은 밝고 아름다웠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죽음이나 죽음 이후에 대해 걱정하는 일이란 거의 없으며, 특히나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갈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과학자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논리적이고 냉철하며 실증적인 사고방식을 체득해가고 있었다.
예일 대학교에서 보낸 학부 생활과 레지던트 과정은 나의 이러한 과학적 사고를 더욱 굳혀주었다. 나의 연구 주제는 뇌화학과 신경전달물질이었다.
나는 전통적인 정신분석학 이론과 기술을 뇌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접목시킨 생체정신의학이라는 신흥 학문에 몰두했다. 많은 논문을 썼고, 전국 규모와 지방 단위의 수많은 학술회의에서 강연을 했으며, 꽤 인정받는 학자가 되었다. 나는 조금은 강박스럽고 열정적이며 경직되기는 했지만, 이러한 성격은 의사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어떤 환자라도 치료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캐서린이 기원전 1863년에 살았던 아론다라는 소녀가 되었다. 내가 모르는 다른 길이 있었단 말인가?
캐서린이 다시 나타났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 나는 캐서린이 최면을 거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다시 들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오히려 최면치료를 기다리고 있었고, 급속히 최면 상태에 빠져들었다.
“제가 꽃다발을 물속으로 던지고 있어요. 지금 의식을 진행하고 있어요. 제 머리는 금발인데, 곱게 땋았어요. 금이 박힌 드레스를 입고 샌들을 신었어요. 누가 죽었어요, 왕궁에서 누가····왕의 어머니예요. 저는 왕궁의 하년데, 음식 만드는 게 제 일이에요. 시체는 소금물에 30일 동안 담가두어요. 다 마르면 내장을 꺼내요. 냄새가 나요. 시체 냄새가요.”
캐서린은 내 지시가 없었는데도 아론다의 생애로 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과는 다른 시기였으며, 지금의 임무는 시신을 염하는 일이었다.
“외따로 떨어진 건물에 시체들이 보여요. 우리는 시체를 싸고 있어요. 영혼이 떠나가요. 다음에 올 더 고귀한 삶을 준비하려고 쓰던 물건들을 가져가요.”
캐서린은 우리의 믿음과는 다른, 죽음과 사후에 대해 이집트인들이 지녔던 개념과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 체계에서는 죽으면서 자신이 쓰던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이 가능했다. 캐서린은 생애를 떠나 휴식에 들어갔다. 그렇게 7,8분을 쉬다가, 캐서린은 훨씬 먼 시대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 얼음이 달려 있어요········ 바위······.”
캐서린은 어둡고 초라한 장소에 대해 흐릿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몹시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나중에 캐서린은 그때 본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추하고,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어요.”
캐서린은 다른 시대로 건너갔다.
“건물들이 있고 돌바퀴가 달린 마차가 보여요. 내 머리는 갈색인데 천을 둘렀어요. 마차에는 짚단이 실려 있어요. 나는 행복해요. 아빠가 와요·····. 나를 꼭 껴안아줘요. 그건······ 그건 에드워드예요(에드워드는 캐서린에게 나를 찾아가보라고 권유한 소아과 의사였다). 에드워드가 우리 아빠예요. 우리는 나무가 많은 골짜기에 살아요. 마당에 올리브나무하고 무화가 나무가 있어요. 사람들이 종이에 뭘 적어요. 글자 같은데, 재미있게 생겼어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쓰면서 도서관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은 기원전 1536년이에요. 아빠 이름은 페르세우스예요.”
연대는 조금 달랐지만, 나는 캐서린이 지난주에 이야기했던 그 생애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캐서린에게 그 생에의 좀 더 뒷부분으로 가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박사님을 알아요. 아버지가 박사님하고 농사, 법, 정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아버지는 박사님이 아주 명석하신 분이기 때문에 저한테 박사님 말씀을 귀담아 들으라고 하세요.”
나는 캐서린을 좀 더 뒤의 시간으로 데려갔다.
“아버지가 어두운 방에 누워 계세요. 연로하신 데다가 병까지 얻으셨어요. 추워요·····. 너무 허전해요.”
캐서린은 죽음의 순간으로 넘어 갔다.
“전 이제 늙어서 기력을 잃었어요. 딸이 제가 누운 침대 곁에 와 있어요. 남편은 벌써 죽었어요. 사위도 와 있고, 외손주들도 있어요.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캐서린은 떠다니고 있었다. 떠다닌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사례를 연구한 레이먼드무디Raymond Moody 박사의 책이 생각났다. 몇 년 전에 읽은 그 책에도 영혼이 떠다니다가 다시 몸속으로 빨려들어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캐서린이 사후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좀 더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으나 캐서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떠다니고 있어요.”
나는 캐서린을 깨우고 치료를 마쳤다.
나는 의학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며 환생에 대한 논문들을 미친 듯이 찾아 읽었다. 우선 버지니아 대학교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이안 스티븐슨 Ian Stevenson 박사의 방대한 저술을 탐독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환생과 관련된 기억이나 경험을 가진 어린이들의 사례를 2천 건도 넘게 수집해 놓고 있었다.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보인 어린이들도 많았다. 그의 사례 연구는 빈틈없고 정확했으며, 진실로 탁월한 것이었다.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의 뛰어난 개괄서도 읽어보았다. 듀크 대학교에서 수집한 ESP(extra-sensory perception:초감각적 지각) 자료들은 대단히 흥미로웠으며, 마틴 에번Martin Ebon, 헬렌 왐바크Helen Wambach, 거트루드 슈마이들러Gertrude Schmeidler, 프레드릭 렌츠Frederick Lenz, 에디스 피오르Edith Fiore 등의 연구서들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읽을수록 더 알고 싶어졌다. 나는 스스로 정신의 모든 측면에 대해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했었으나, 내가 받은 교육이 매우 한정적이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서관마다 이러한 분야에 관련된 연구와 저술이 서가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연구의 대부분은 명망 있는 임상의학자와 과학자들이 수행하고 검증한 것들이었다. 이들이 모두 실수를 했거나 속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회의하고 있었지만, 증거는 압도적으로 강력했다. 압도적이었든 어쨌든, 나는 믿기가 어려웠다.
캐서린과 나는 이미 이러한 경험에 나름대로 깊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 캐서린은 정서적으로 호전되고 있었으며, 나는 내정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었다. 여러 해를 공포증에 시달려왔던 캐서린은 마침내 어느 정도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실제의 기억을 통한 것이었든 아니면 생생한 환상을 통한 것이었든 나는 캐서린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며, 거기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다음번 치료가 시작되면서 캐서린이 최면 상태로 빠져드는 동안 내 머릿속을 흘러간 생각들이었다.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캐서린은 꿈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낡은 돌계단에 앉아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장기판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고 했다. 나는 캐서린에게, 정상적인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과거로 돌아가서 그 꿈이 전생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여요······. 탑 꼭대기에서는 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여요. 나는 남자아이예요·····. 머리는 금발인데····· 좀 이상한 머리예요. 짤막한 옷을 입었는데, 갈색하고 흰 색이 섞여 있고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탑 꼭대기에서 사람들이 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보초들이에요. 지저분해요. 그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어요. 장기 같은데, 아니에요. 판이 네모나지가 않고 둥글어요. 단검처럼 뾰족하게 생긴 말들을 구멍에 꽂아서 게임을 해요. 말 꼭대기에는 동물들의 머리모양이 새겨져 있어요. 키루스탄 주(州)?(Kirustan Territory,소리나는 대로 적었다) 네덜란드 땅이고, 1473년쯤 됐어요.”
마지막 부분은 내가 장소와 연도를 알 수 있겠느냐고 물은데 대한 대답이었다.
“저는 항구에 살아요. 바다가 보여요. 요새가 있어요·····. 물도 있구요. 오두막집이 보여요. 어머니가 도기 그릇에다 음식을 만들고 계세요. 제 이름은 요한이에요.”
캐서린은 죽음의 순간으로 갔다. 여전히 나는 캐서린의 증상을 발생시킨 유일하고도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을 찾고 있었다. 지금 캐서린이 너무도 생생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모든 것이 내가 의심하고 있듯이 설사 환상이라 해도, 캐서린이 믿고 생각한 내용은 증상의 원인이 될 수가 있었다. 실제로 나는 꿈으로 인해 정서에 손상을 받은 사람들을 보아왔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었는지 아니면 꿈속의 일이었는지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사건이 현재의 삶을 괴롭히는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부모의 호된 꾸지람과 같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상의 침식적인 영향이 단 한 번의 충격적 사건보다 더 심각한 정신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영향은 일상생활의 배경 속으로 섞여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기억으로 끌어올려서 퇴치하기가 매우 어렵다.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으며 자란 어린이는 단 한 번의 굴욕적인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람과 똑같이 자신감과 자존심을 잃게 된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은, 어린 시절 우연한 사고로 아사(餓死) 직전까지 가보았던 사람과 똑같은 정신적 장애를 나타낸다. 나는 일회의 충격적 사건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부정적인 영향의 축적 또한 찾아내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캐서린이 기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누처럼 생기고, 밝은 색을 칠한 배들이 있어요. 프로비던스(미국 로드아릴랜드 동북부의 해안) 지역이에요. 우리는 무기, 창, 투석기, 그리고 활과 화살을 갖고 있는데, 굉장히 커요. 배에 크고 이상하게 생긴 노가 달려 있어요·····. 모두 노를 저어야 돼요. 길을 잃을지도 몰라요. 어두워요. 불빛이라곤 없어요. 무서워요. 옆에 다른 배들도 있어요.(함께 공격에 나선 듯하다) 저는 짐승을 무서워해요. 우리는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짐승 가죽을 깔고 자요. 우리는 지금 정창중이에요. 제 신발 재미있게 생겼어요. 주머니처럼 생겼는데····· 발목을 묶었어요····. 가죽으로 만든거예요.(오랫동안 말을 끊었다가) 불기운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요. 우리 편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저는 안 그래요. 저는 사람을 죽이기 싫어요. 제가 손에 칼을 쥐고 있어요.”
캐서린은 갑가지 목이 눌린 것처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로록거렸다. 적의 팔이 뒤에서 목을 감쌌고, 칼이 캐서린의 목을 그었다고 했다. 캐서린은 죽어가면서 적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스튜어트였다. 모습은 달랐지만, 캐서린은 그 얼굴이 스튜어트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요한은 스물한 살에 죽었다.
캐서린은 자신의 시신 위에 떠서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황과 혼란 속에서 구름 위로 끌려올라갔다. 캐서린은 곧 자신이 ‘좁고 따뜻한’ 공간으로 이끌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막 태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캐서린이 꿈꾸듯 천천히 속삭였다.
“누가 나를 잡고 있어요. 내가 나오는 것을 돕고 있어요. 하얀 앞자락을 댄 녹색드레스를 입었어요. 하얀 모자를 썼는데, 끝을 모두 접었어요. 방에는 재미있게 생긴·····조각조각 칸을 나눠놓은 유리창들이 있어요. 건물은 돌로 지었어요. 엄마는 머리가 길고 까매요. 나를 안고 싶어하세요. 재미있게 생긴····· 올이 거친 옷을 입고 계세요. 잠옷에 닿으면 따가워요. 다시 햇빛을 보고 따뜻해져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분은···· 지금 엄마하고 똑같은 분이예요!”
전번 치료 과정에서 나는 전생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현재의 캐서린에게 중요한 인물이 있는지 잘 살펴보라고 했었다. 영혼들이 집단을 이루어 그들의 카르마karma(다른 이들과 자신에 대한 빚, 깨달아야 할 가르침)에 따라 여러 대에 걸쳐 반복해서 환생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조용한 진찰실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이상하면서도 장대한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캐서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히 비일상적인 내용들을 평가하기 위해, 내가 15년 동안 줄기차게 사용해온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치료가 거듭되면서 캐서린은 더욱더 영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캐서린이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보인 직관은 모두 사실로 증명되었다. 캐서린은 이미 최면 상태에서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 질문을 예상해내기 시작했었다. 캐서린이 꾸는 많은 꿈에 예지적이고 예언적인 능력이 있었다.
한번은 캐서린의 아버지가 아내와 함께 캐서린을 보러 왔다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강한 의구심을 보인 일이 있었다. 캐서린은 자신의 예지력을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를 경마장으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모든 경주의 우승마를 알아맞히었다. 아버지는 경악했다. 목적을 이룬 캐서린은 돌아오다가 처음으로 만난 걸인에게 그날 딴 돈을 모두 주어버렸다. 캐서린은 자신에게 생긴 영적 능력을 경제적인 보상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캐서린에게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의미를 지미고 있었던 것이다. 캐서린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지만 자신이 이룩한 진전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으며 과거를 향한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나 또한 캐서린의 영적인 능력, 특히 경마장의 일에 충격을 받고 큰 흥미를 느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캐서린은 모든 경주의 우승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매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내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캐서린의 영적인 능력을 부인할 수 없었다. 캐서린이 이러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 사실이고 구체적인 증거들까지 뒷받침되고 있다면, 캐서린이 말하는 전생의 사건들 또한 진실이란 말인가?
캐서린은 조금 전 막 태어나고 있었다던 인생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번 생애는 비교적 최근의 일로 보였는데, 캐서린은 연도는 알아내지 못했다. 캐서린의 이름은 에리자베스였다.
“지금은 나이를 더 먹었고, 오빠 하나하고 언니 둘이 있어요. 저녁 식탁이 보여요·····. 아빠가 앉아 있어요······. 에드워드예요(앞서 말한 소아과 의사. 아버지 역할로 앙코르 무대에 섰다) 엄마 아빠가 또 싸워요. 감자하고 콩을 먹고 있는데, 아빠가 음식이 식었다고 화를 내요. 엄마 아빠는 맨날 싸워요. 아빠는 맨날 술만 마셔요·····. 아빠가 엄마를 때려요(캐서린의 목소리가 겁에 질려 있었고, 몸을 떨고 있었다). 아빠가 애들을 밀었어요. 아빠가 옛날하고 달라요. 다른 사람이 됐어요. 나는 아빠가 싫어요. 아빠가 가버렸으면 좋겠어요.”
캐서린은 어린아이처럼 말하고 있었다.
내가 캐서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던진 질문들은 이전의 통상적인 정신채교 때 했던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질문들이었다. 나는 마치 안내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한두 시간에 걸쳐 한 생애를 죽 흝어보면서 캐서린이 현재 겪고 있는 증상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충격적 사건이나 어두운 기억을 찾아내려고 했다. 통상적인 치료에서는 한 사건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하고 들어가게 되며, 진행속도도 현저히 느리다. 환자가 뱉은 모든 단어를 철저히 분석해서 그 뉘앙스와 숨은 의미를 파악하고 모든 표정, 모든 몸짓, 모든 어조를 하나하나 음미하고 평가하고, 모든 정서적 반응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조각난 행동양태들을 조심스럽게 짜맞춘다. 그러나 캐서린에게는, 수십년의 세월이 단 몇분사이에 흘러갔다. 캐서린의 치료 과정은, 마치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경주차 안에 앉아 바깥의 군중 속에서 아는 얼굴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주의를 다시 캐서린에게 돌리며 좀더 뒤의 시간으로 가보라고 했다.
“전 이제 결혼을 했어요. 우리 집에는 큰 방이 하나 있어요. 남편은 머리가 금발이예요. 모르는 사람이에요(캐서린의 현재생애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우린 아직 애가 없어요····. 남편은 저한테 아주 잘해줘요. 우린 서로 사랑해요. 우린 아주 행복해요.”
이제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느꼈던 억압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듯했다. 나는 지금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캐서린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브레닝턴Brennington? 낡은 책들이 보여요. 표지가 재미있게 생겼어요. 큰 책에는 끈이 달려 있어요. 그건 성경이에요. 큰 장식문자들이 씌어 있는데····· 게일어(고대 아일랜드 언어와, 그에서 파생한 여러 방언)예요.”
캐서린은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을 몇 마디 중얼거렸는데, 그것이 게일어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바다가 먼 뭍에 살아요. 무슨 지방인지····· 브레닝턴? 돼지하고 양을 키우는 목장이 보여요. 우리 목장이에요.”
캐서린은 시간을 건너 뛰었다.
“우린 아들 둘이 있어요······. 큰아이가 결혼을 해요. 교회 뾰족탑이 보여요······. 아주 오래된 석조건물이에요.”
갑자기 캐서린이 머리에 통증을 느꼈고, 왼쪽 관자놀이 부근을 감싸쥐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캐서린은 자신이 돌계단에서 굴러떨어졌으며, 결국 회복되었다고 했다. 캐서린은 늙어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두었다.
캐서린은 다시 죽은 뒤에 몸을 떠나 떠다니는 상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밝은 빛이 느껴져요. 굉장해요. 이 빛에서 에너지를 얻는 거예요.”
캐서린은 생애와 생애의 중간에서 쉬고 있었다. 침묵 속에 몇 분이 흘러갔다. 갑자기 캐서린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의 그 느린 속삭임이 아니었다. 캐서린은 크고 껄껄한 목소리로 주저함 없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지식knowledge을 통해 신과 같이 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적습니다. 저는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 신에게 다가가고, 그리고 나서야 쉴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돕기 위해 다시 오게 됩니다.”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것은 캐서린이 죽은 뒤, 생애와 생애의 중간 상태에서 들려오는 가르침이었다. 이 내용의 출처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것은 결단코 캐서린의 말이 아니었다. 캐서린은 결코 이런 식으로, 이러한 낱말들을 써가며, 이러한 수사법을 구사한 적이 없었다. 목소리도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그 순간, 나는 비록 캐서린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것이 캐서린의 생각들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렸다. 뒤에 캐서린은 그 출처가 스승Master이라는, 고도로 진화한 영혼이면서 지금은 육체에 머물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밝혀주었다. 그들은 캐서린을 통해 나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캐서린은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피안에서 오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지식이었다. 나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차원이 개입되었다. 캐서린은 사후의 경험에 대해 기술한 에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e박사나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박사의 서적을 결코 읽은 적이 없었다. 캐서린은[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 Tivetan Book of the Death]라는 책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이러한 책들이 기술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증명이었다. 여기에 몇 가지 사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만 추가된다면, 나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의하는 마음이 요동치면서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캐서린이 잡지 기사에서 사후에 대한 내용을 읽었을지도 몰랐고,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을 보았을지도 몰랐다. 캐서린 자신은 그런 기억을 부정했다 하더라도, 잠재의식이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캐서린은 기존의 저술들을 뛰어넘어 생과 생의 중간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아, 사례만 더 있다면.
캐서린은 늘 그랬던 것처럼 최면에서 깨어난 뒤에도 전생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였던 캐서린이 죽고 난 다음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캐서린은 이후에도 생과 생 사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로지 살아 있는 동안만을 기억했던 것이다.
‘지식을 통해 신에게 다가간다.’ 우리는 그 길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