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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고 동창 여섯명 친구들은 터키여행을 계획하고 2018년 4월 6일 떠나기로 했다.
그 곳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고의 폭을 넓힐거라는 생각에 동감하고,
한없이 투명한 지중해 바다와 세월이 빚어낸 장엄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바람을 가르며,
이번 여행이 우리 인생에서 더 할 수 없는 추억의 길이 되길 바라면서 KAL 기에 올랐다.
역사 이래로 수많은 왕국이 등장하고 사라졌던 터키, 동서양의 접점으로 수천 년간 왕조가 명멸했던 터키는
그 곳곳에 그리스 로마시대, 오스만 투르크, 이슬람 문명으로 인류가 이룩한 역사의 흔적이 산재해 있는 나라이다.
터키는 우리나라의 3.5 배의 면적을 갖고 있으며,
아시아 대륙의 서부에 위치하고
유럽 대륙의 동남부와 연결되어 있다.
지도의 노란 부분인 터키는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 의해
유럽에 속하는 트레이스 반도와 아시아에 속하는 아나톨리아 반도로 구분된다.
실제로는 유럽쪽 3% 아시아쪽 면적이 97%이다.
또한 터키의 북쪽은 흑해, 동쪽은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란과 맛닿아 있으며, 남쪽은 이락 시리아 및 지중해,
서쪽 유럽 부분은 그리스 그리고 불가리아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이번 여행의 긴 코스는 장장 3300 km로 연결되어 있다.
이스탄불로부터 앙카라를 지나 안탈리아를 거쳐 에페소를 돌아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 오기로 했다.
이곳에서 사프란블루 대신 베이파자르를 다녀왔다.
우리가 도착한 그 주일은
마침 터키에서 일년에 한번 튤립 축제가 일주일간 열리는 특별한 주간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튤립 꽃이 화단 전체에 가득 차,
거리 전체가 통채로 꽃바구니가 된 듯하다.
튤립 꽃들이 동양에서 온 우리들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호기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 ?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아침식사를 우아하게 마치고 우리는 첫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터키에서 묵은 호텔 수준은 대체로 특급 수준이었고 식사도 좋은 편이었다.
터키의 음식이 대단히 맛있다는데 전통음식을 기대해 본다.
go go!!!!
아침에 일어나 처음 간 곳은 터키의 대형 재래시장.
이곳은 '그랜드바자르' 라 하는데 지붕이 덮여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지붕이 아치형 돔으로 되어 있는 실내 시장이다.
터키의 전통 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5000여개 이상의 점포가 있고,
15세기에 술탄(왕) 메메드 2세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한다. 60 여개의 미로가 있고 20 여개의 입구가 있다.
시장에는 금, 은, 세공품을 포함한 각종 보석류, 피혁류, 카페트, 향신료, 도자기, 공예품, 특산품 각종 먹거리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꼭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비슷했다.
이곳에서는 가방을 특히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설명으로 우리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
일행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였다.
이것은 그랜드바자르 후문이다.
정문에서 후문까지 직선으로 백 미터쯤?
그러나 그 속에는 거미줄같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한번 옆길로 빠지면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잰 걸음으로 지나가며 터키 상점 주인들과 눈 인사만 했다.
빠져 나오고 보니 직선으로 오면서 왼쪽 오른쪽 고개만 돌리고 나온 모습이 시골 놈 서울 구경 온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우리들인데 ~ 핫핫핫
건물마다 꼭대기에 터키 국기가 꽂혀있다.
빵을 파는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먹이를 꺼내 길거리 고양이에게 편안하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다.
이곳 터키에서는 곳곳에서 개와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보는 사람들도 자기네 애완 동물 대하듯 하는게 정겹게 느껴졌다.
후문 주변에 늘어져 있는 식품가판대 모습이다.
물가는 비교적 싼 편이다.
우리나라 호떡집 같이 ~
터키의 관광지나 길에서 쉽게 볼수 있다. 맛은 그저 그런 빵 ㅋㅋ
관광객이 많아서 주변이 축제와 잔치 분위기다.
다음 코스는 마스코트 같이 당근으로 유명하며 오스만 터키 가옥들이 밀집된 지역 중 한 마을인 베이파자르 마을이다.
사프란블루가 더 유명하다는데 우리는 여기로 !!!
이 곳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약 100km 서쪽에 있고 해발고도 675m, 인구 13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프리지아 고대 로마 비잔틴제국, 셀주크 투르크를 거쳐 오스만제국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던 도시였다.
이 도시는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목조 건축물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터키의 화장실은 저기 보이는 저런 간판이 어디에도 볼 수 있었다.
와싱톤 칼리지의 WC ㅎㅎ
얼마쯤 버스로 달렸을까 카파도키아에 있는 데린쿠유 지하도시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에는 200개에 달하는 지하도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데린쿠유 지하 도시이다.
데린쿠유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인 1세기경 로마의 박해를 피해 피난처를 찾아온 그리스도 교인들이
이곳에 피난처를 만들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에서 안티키아와 카이세리를 거쳐 이곳에 정착 하게 되었다.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깊이 85m 의 지하 도시로 수용인원이 2만 명에 달하는 이곳에는,
땅속 깊이 구멍을 파서 우물을 만들고 구멍을 통해서 각 층에 물을 공급했다. 그리고 이 구멍이 환기구의 역할도 담당했다.
긴급 할 경우 타 지하도시로 피신 할 수 있는 지하 터널도 만들어져 있다.
내부에는 교회를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부엌, 식량 저장소, 포도주 창고, 동물사육장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다른 지하 도시와의 차이점은 이곳에는 성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 부근을 지나가다 보면 가끔 소금 호수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우기에는 호수로 있다가 점점 건기가 되면서 소금이 바닥으로 노출되어 거대한 소금 평야를 이루게 된다.
이 곳이 겨울에는 호수로 있다가 차차 날씨가 더워지게 되면,
주변이 질척거리게 되면서 가장자리부터 소금이 석출되는데 이것을 긁어서 채집, 정제하여 식용으로 쓰는 소금을 만든다고 한다.
마치 드넓은 바다를 보는 기분이나 천연자원적인 것이 이 부근 곳곳에 있으며 터키의 주요한 소금 산업이 된다니 정말 놀랍다.
또 다시 넓은 평원을 몇 시간이고 달려갔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로즈밸리 계곡이다.
지프 선택 관광의 첫 코스였다
분홍 빛이 감도는 바위가 아름다워서 로즈밸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투어를 통해 가이드와 함께 걷는 코스로 인기가 많다.
석양에 물든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며 일몰 시간에는 분홍 빛의 바위 표면에 붉은 빛이 더해져 매우 환상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보고 떠날 수 밖에~
카파도키아의 멋진 전망을 보기에 손꼽히는 우치히사르다.
이것은 뾰족한 바위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성채는 커다란 바위 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바위 산이 모여 있으며,
로마시대에는 종교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 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성채 주변에 비둘기를 키워서 그 배설물을 모아 포도밭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동굴마다 새들이 친구를 몰고와서 한바탕 잔치를 벌여 놀고 가면 사람들은 그 배설물을 반가워한 것 같다.
성채 정상에서는 괴뢰메 마을은 물론 멀리 에르지예스 화산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저렇게 즐거워하는 아줌마들 올해 몇이신가?
사진 찍느라고 정신없다.
다시 지프를 타고 다음 마을로 갔다. 이곳은
공원에서 내려다 본 오르타 히사르 마을로
오르타는 중앙이란 뜻이다.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은 괴레매와 위르귑 사이에 있는 성채인데 내부는 10개층으로 나뉘어 있다.
우치히사르 마을에 우뚝 솟아 있는 성채가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
괴레메에서 남서쪽으로 3 km 떨어져 있는 우치히사르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한장 찰칵.
곳곳 바위 속에 동굴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사파리 지프 관광으로 보게 된 수도사들의 교회와 병원이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동굴을 파서 교회를 만들고 주민들을 위한 의료 행위를 하고,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이웃에게 전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가 상당히 넓찍해서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 생각된다.
사파리 다음 코스로 요리조리 거친 길을 지프를 타고 가서 판잘륵 동굴 교회로 갔다.
터키는 어디를 가나 터키 국기를 볼 수 있는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내부에 들어가보니 아주 조그만 본당이 있다.
천장과 벽에 그려진 벽화는 프레스코화로
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회반죽이 마르기 전 안료를 칠해 그리는 기법으로 건물 천장에 그려져 있었다.
성화의 눈들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는데 이슬람교도들의 소행으로 보이나 확실한 것은 알수 없다고 한다.
이 프레스코 화법은 벽이 마를수록 색깔도 옅어지며, 색의 농담을 이용한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아주 작은 교회이며 한쪽 벽에는 수도사들이 사용한 허름한 부엌과 작고 소박한 침상 공간이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 있는 화가 이중섭의 시골 방과 견줄만하다.
카파도키아의 상징인 버섯 모양의 기암 괴석을 만날 수 있는 파샤바로 갔다.
일명 수도사의 골짜기로 불리며 그것은 세상과 동떨어져 신앙생활을 할 것을 주장했던 성 시메온이 이 곳에 거처했기 때문이다.
파샤바는 장군의 포도밭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버섯 바위들 안에는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 교인들이 살았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조용준 오스카 가이드가 터키 아이스크림을 모두에게 사주었는데 터키 아이스크림이 정말 소문대로 맛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열정과 성의를 다해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오스카에게 감사한다.
신기한 모습의 거대한 바위는 아래는 흰색이고 버섯 모양의 머리는 검은 색인데
이는 화산 활동으로 굳은 용암이 풍상에 깎이면서 차별 침식을 받아 형성되어서 그런 모양이 생긴 것이라 한다.
특이하게 버섯 모양의 윗 부분이 모여서 뱀이나 용같은 모양의 형상을 나타낸 것이 정말 신기했다.
저 위의 구멍들이 전부 동굴로 오래 전 종교의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지키려고 숱한 고난을 겪은 모습을 상상하니 다시 한번 숙연해진다.
우리의 친구 황옥화가 보통 청년들이 달려 올라가는 저 45도 경사가 더 되는 높은 동굴로 도전, 올라가서 승리의 두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젊은 청년들이 아래 쪽으로 미끄러져 절절매며 내려오고 있다.
자 어찌 내려올 것인가? 올라갈 때는 탄럭을 받아 달려 가고 위에서 젊은이들이 도와주었는데 난감하다. 그러나 겁먹을 쏘냐 ? 어림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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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황옥화!!!!!!
으랏차차 조심해서 내려오려고 해도 경사가 심해 가속이 붙어 달려 내려올 수 밖에 없는 황 선수를 아래에서 젊은이 둘이서 받아 준다.
터키 총각들 멋져부러!!
가이드 오스카가 계속 좋은 벤츠 버스라고 자랑하는 저 버스를 타고 3300 km 를 달려 완주한댄다.
이 날은 저녁에 밸리 댄스를 포함한 터키 민속공연을 보기로 하고 저녁 먹고 동굴 공연장에 갔는데,
다음 날 열기구를 타려면 새벽 네시에 기상해야 하므로 실례를 무릅쓰고 공연 도중에 나왔다. 오스카에게 말도 못하고 정말 미안했다.
불행히도 다음 날은 바람이 불어 열기구도 못 탔다. 전날 공연 배우들이 '쌤통' 하는 소리가 뒤통수에 따라온다.
바람에 떠밀려 가는 버스도 연실 휘청거린다.
으이구 얄미운 바람이여 !!
너는 누가 그리 미워 우리를 못타게 하는가?
자 훌훌 털고 다음 코스로 떠난다. 길 양 옆에는 유채꽃이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우리를 환영하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없이 맑은 날씨로 우리의 여행을 받쳐주고 있다.
안탈리아로 가기 위해 저 앞에 가로막고 있는 토러스 산맥을 넘고 또 넘어가야 한다.
드디어 유서 깊은 도시 안탈리아에 도착하였다.
안탈리아는 고대의 팜필리아라고 불리던 곳에
기원전 159년 페르가몬의 왕 아카타로스 2세가 이탈리아를 건설하면서 처음 자리를 잡게 된 도시다.
비잔틴과 셀주크 투르크를 거쳐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저 뒤에 있는 탑 같은 건축물은 안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38m에 달하는 붉은 미나래 이불리 라고 하며 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미나래 외벽에 붉은 벽돌로 8줄의 새로 홈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3세기 룸 셀주크의 술탄(왕)이었던 알라딘 케이쿠버드 1세가 세웠다.
저기 광장에 무슨 동상이 있었는데 에고 이름을 잊어먹었네.
안탈리아 구시가지의 칼레이치 입구 시계탑에서 트램 길을 따라 도보로 15분 정도 가면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문이 나온다.
AD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탈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건립한 문이다.
저 문은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메인 게이트로 사용되었는데 지금까지도 본연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이오니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3개의 멋진 아치가 인상적이며 이것 때문에 위츠카플라르 (세 개 문이라는 뜻) 라고도 불린다.
아치 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가족의 석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분은 지난 분 것을 때려 부수고,
다음 분은 그 전 분 것을 때려 부수고
또 짓고, 또 부수고, ~ ~
자알 한다.
안탈리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저 커다란 개들은 예전에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 개였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귀에 표시를 하고 거리에 풀어 주었다고 한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서 이곳 시가지를 방문 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안내견 비슷하게 다니는데, 성격은 온순하며 사람을 잘 따랐다.
정부에서 아침마다 식사를 주고 있댄다.
멋진 나라!!
너희가 평화의 상징, 최고다. 때려 부수고 살지는 않으니 ~
관광객과 사진도 잘 찍으며 우리가 멈추면 개들도 멈추고 우리가 버스를 타고 떠날 때까지 따라다녔다.
안탈리아 구시가지 에 있는 칼레이치 구역이다
남쪽 끝 바닷가에 있는 공원인 카라알리오울루 공원으로 가기 위하여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눈여겨 보며 지나가고 있다.
가는 도중에 따라다니던 목동 개들이 큰 길 쪽으로 가서 따라가 보니 이렇게 도심 길 한가운데 물이 흐르는 수로같은 구조물이 있었다.
주 용도는 모르겠으나 지나가는 개들이나 고양이들 혹은 새들이 물을 먹을 수 있는 장소로 생각하고 싶다.
저 멀리 보이는 지중해와 그 너머 맞은 편에 우뚝 솟은 산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곳에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경관 쥑인다.
오래된 흐드를륵 탑이 있어 한결 정취를 더해준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이제 나는 갑니다' 하고 사라지려고 하는 저 석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이제 곧 닥아올 황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각자 감회가 깊어진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뒷 모습도 저렇게 아름답길 바라며 !!
이 경치 한 장면으로도 우리가 터키를 방문한 보상을 충분히 다 하고도 남으리라.
으흠 ~ 우리는 이것으로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도 괜찮다.
너희들 회상 잔치도 이것으로 충분하겠지?
이제 뉘엿뉘엿 붉어지는 해를 등 뒤에 두고, 지중해 바다의 환상적인 장면을 가슴에 새기고,
감사기도로 잠시 묵상을 하고 내일을 위해 숙소로 향했다.
내일은 유람선에서 와인 파티를 한다는데 기대가 크다
2018, 4, 17, 金 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