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은 비극적 화해
제목 : 그을린 사랑 (INCENDIES : 원제 앵쌩디는 불어로 동란, 반란, 격분한 감정의 폭발,
전쟁의 참화, 불에 그을린 것 등을 위미)
연도 : 2010
제작 : 캐나다
감독 : 드니 빌뇌브
배우 : 루브나 아자발 (엄마 나왈 마르완 역), 멜리사 데소르모 풀랭(딸 잔느 역),
막심 고데트 (아들 시몬 역), 압델가포르 엘라지즈(아버지 아부 타렉 역)
영화는 과거 70년대 레바논의 삭막한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에 라디오헤드Radiohead의 You & whose army라는 나른하고 몽롱한 노래가 깔린다. 노래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봐, 이봐
당신이 날 미치게 할 수 있다고 생가하나 본데
이봐, 이봐
당신과 그 누구의 군대가
당신과 당신의 동맹군이
해봐, 해봐
로마제국의 영광이여
해봐, 그렇게 생각한다면
해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넌 우리를 짓밟을 수 있잖아?
넌 우리를 짓밟을 수 있잖아?
당신과 그 누구의 군대가
당신과 그 누구의 동맹군이
너희는 너무 쉽게 잊는단 말이야
너희는 알아야해
너희는 알아야해
내가 너희가 그렇게 쉽게 잊는 걸 안타까워 한다는 것을
난 너무 안타까워
너희는 알아야해
너희는 알아야해
난 너희가 정말 안타깝다는 것을
난 너무 슬퍼
난 너무 슬퍼
그리고 노래에 맞춰 천천히 흐르는 장면은 한 무리의 소년들이 무슬림 반정부군에게 삭발당하는 장면이다. 그 중 오른다리 발뒤꿈치에 점을 3개 문신한 소년이 분노에 찬 눈초리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영화의 초반부터 흡입력과 집중력이 대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년이 2009년 영화 속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인물이다. 바로 생면부지인 자신의 엄마 나왈을 마지못해 강간한 고문 시술자 아부 타렉이자, 나왈의 쌍둥이 남매가 찾는 그의 생부이자 형인 니하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그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왈 조차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사실이고, 수영장에서 한 남자의 발뒤꿈치 문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녀 조차도 모랐던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관객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가족의 비참한 역사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결말이 다가올 때쯤 혹시나 하는데 역시나 하면서 뒷통수가 뜨끔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역시나 하는 짐작 때문에 충격파가 덜할 수도 있겠지만 시종일관 긴장되게 영화를 점층적으로 끌고가는 감독의 연출력 때문에 그 데미지는 결코 작지 않다.
영화는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기도 하고 때론 한 에피소드 안에서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점프 컷과 교차편집을 사용한다. 그래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개를 끝까지 긴장감 있게 끌고 간다.
에피소드 1 : 쌍둥이
영화는 다시 현재 2009년의 캐나다 퀘백으로 돌아온다. 나왈이 18년 동안 일한 변호사 쟝 레벨의 사무소. 쟝은 나왈의 유언대로 쌍둥이 남매 시몬과 잔느에게 편지를 하나씩 나눠준다. 잔느의 편지에는 <너희 아버지를 찾아 이 편지를 전하라>라고 적혀 있고 시몬의 편지에는 <너희 형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하라>라는 황당한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자신들이 때어나기 전에 죽은 걸로 알고 있고, 형이라는 존재는 듣도보고 못한 일이라 두 쌍둥이 남매는 당혹스럽기만하다. 시몬은 터무니 없는 유언에 반발하지만 잔느는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레바논으로 떠난다. (참고로 이 영화에배경 국가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와즈디 무아와드'의 극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영화에서 기독교 민병대와 난민 저항군 PLO의 내전 상황이라든가, 비록 지명이 가상이지만 지도상으로 레바논의 남부와 그 난민 지역이 이스라엘 접경지라는지, 무슬림이 절대적으로 많은 국가 안에서 국가권력은 기독교도인들이 쥐고 있는 당시의 상황은 과거 70년대 레바논 상황과 일치한다.)
에피소드 2 : 나왈
기독교 집안의 처녀 나왈은 남부(레바논 남부지역으로 이스라엘에서 쫒겨난 난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살면서 무슬림 난민인 와합과 사랑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 가족은 와합을 총살하지만 그의 씨는 나왈의 뱃속에서 자란다. 가문에 먹칠을 한 나왈은 결국 아이를 낳자마자(아이를 받아준 할머니가 나중에 아들을 찾으라고 오른발 뒤꿈치에 3개의 점을 문신한다.) 생이별을 하고 친척이 있는 다레쉬로 떠난다.
에피소드 3 : 다레쉬
다레쉬의 친척집에 머물던 나왈은 국민당 정부가 난민과 무슬림에 대한 대대적인 유혈극을 벌이자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남부지방의 고향집과 아들이 살던 고아원은 이미 샴세딘과 그의 무슬림 난민군들에 의해 폐허가 된 상태이고 아들은 찾을 길이 없다. 나왈은 지역주민의 알려준대로 다시 아들이 있는 남부 데르사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목격하게 되는 것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독교 민병대들의 무차별한 학살과 방화이다.
에피고드 4 : 남부
잔느는 남아있는 기록과 사람들의 수소문을 쫒아서 엄마의 흔적을 더듬으며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엄마에 대한 사실을 알아야만 아버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고 친척마저 멀리서 날아온 그녀를 홀대한다.
에피소드 5 : 데르사
남부 끝 데르사에서 기독교도들 만행의 끝을 본 나왈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분노를 느끼고결국 기독교 세력을 적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거사를 위해 기독교 민병대장의 집에 가정교사로 위장취업해 들어간다. 나왈은 권총으로 대장을 사살하고 현장에서 붙잡힌다. 그리고 크파리얏에 있는 정치법 수용소에 15년 동안 갖힌다.
에피소드 6 : 크파리얏
딸 잔느는 엄마가 수용됐던 곳을 찾고 그곳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있던 노인을 만나고 엄마가 15년 동안 굴복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노래를 하는 여자였으며, 수인번호가 72번이었으며, 고문 기술자 아부 타렉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애들이 나왈을 돌보던 간호사에게 넘겨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에피소드 7 : 노래하는 여자
잔느와의 통화로 사실을 알게 된 시몬은 더 이상 엄마의 유언을 무시만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쟝과 함께 엄마의 흔적을 찾으러 레바논으로 향한다.
에피소드 8 : 사르완, 잔나
괴물로 변한 아부 타렉은 나왈을 강간하고 나왈은 쌍둥이를 출산한다. 수용소 관계자는 관례대로 핏덩이들을 강에 버릴려고 하지만 다행이 간호원이 키우겠다며 데리고 간다.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잔느와 시몬은 노쇠한 간호원을 만나고 그들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듣는다. 그들의 원래 이름은 사르완과 잔나라고. 엄마를 너무나 잘 안다고. 엄마가 석방되자 너희들을 돌려줬다고. 그리고 엄마는 캐나다로 강제출국 당했다고.
에피소드 9 : 니하드
남매는 쟝과 현지인의 도움으로 니하드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는 고아원에 입양되었고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난민군 지도자인 샴세딘에게 잡혀갔다는 것이다. 시몬과 쟝은 샴세딘을 찾기 위해 다시 난민지역을 찾는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다.
에피소드 10 : 샴세딘
다음날 호텔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시몬은 그들과 함께 한때 반군지도자 였던 샴세딘을 비밀리에 만나다. 그리고 그로부터 니하드에 대해서 듣게 된다. 샴세딘은 보복으로 크파르 콧이란 지역을 폭격했고 그곳에 있던 고아원의 아이들 중에 니하드가 있었으며 아이들을 무슬림 전사로 키었다는. 니하드는 출중한 전사였으며 점점 전쟁광으로, 살인기계로 변해갔다는. 그러다 적군이 쳐들왔고 니하드는 체포돼 크파리얏 감옥으로 보내졌다는.
호텔로 돌아온 시몬은 1+1이 2가 아니고 1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품고 결국 그들이 찾는 두 인물이 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기도 했던 <그을린 사랑>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나선 쌍둥이 남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을 통해 종교전쟁이, 원리주의라는 편협한 종교관과 사고가 인간을 어떻게 훼손하고 병들게 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 촬영지였던 요르단은 아직까지 그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어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20대부터 50대까지 참혹한 전쟁의 상처와 영혼의 파괴를 온몸으로 보여준 루브나 아잘라의 연기는 가히 처절하기까지 하다.
진실과 윤리 사이에서 인간의 선택은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죄와 벌이 공정하지 못할 때 인간은 더욱 좌절하고 무가치해지며 희망을 잃게 된다. 더구나 침묵을 하고 있으면 진실을 묻히게 되고 상처를 입은 개인과 그 가족, 더 나아가 그 민족과 국민은 더욱 비참해 진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랬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교훈도 있다. 사실에 상식적 처분없이, 진실에 대한 규명없이 윤리적, 도적적인 문제로 초점을 옮겨가면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감독은 그 둘 간의 경계를 잘 타고 있다. 그래서 양비론자 같고 회색적으로도 보인다. 사실 역사적으로 자행된 이스라엘의 비인간적 만행과 암묵적인 미국의 비호로부터 이 비극은 시작되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거기에 대항하는 약자의 항거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살기위한 발버둥이다. 그 발버둥이 너무 도에 지나쳤고, 악의 축이 됐고, 테러리스트가 됐다면 그것을 잉태한 악의 씨앗부터 찾아내고 용서를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강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문제이다. 강자는 덕이 있어야 할진대. 용기가 있어야 할진대. 나왈처럼. 종교적 교조주의를 벗고, 근친상간의 치욕을 벗기 위해 진실을 토해내는 그녀처럼.
나왈의 말처럼 목에 칼이 박힌듯한 시간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우선은 목에 박힌 칼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칼을 꽂은 자는 사죄와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나왈의 유언처럼
'함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되고 함께 화해의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힐링 포인트
1. 나왈이 버스를 타고 아들을 찾으러 가는 도중 기독교 민병대가 무슬림 민간인과 어린 소녀를 무차별 학살, 방화하는 장면을 보고 넋이 나간 채 앉아있는 장면
2. 전쟁으로 폐허가 된 괴물같은 도시 풍경들
3. 쌍둥이 남매가 출생의 비밀과 엄마의 과거를 알고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하고 서로를 위 로하기위해 포옹하는 장면
4. 시몬이 1+1이 2가 아니라 1일지도 모른다며 충격적 사실을 예고하는 장면
5. 편지를 전해 받은 아부 타렉이 나왈의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장면
6. 나왈의 묘 앞에 서있는 아부 타렉의 장면
* 덤으로 볼 추천 영화
천국의 나날들, 소년은 울지 않는다, 쉰들러 리스트, 브로크백 마운틴, 체, 인 어 베러 월드, 127 시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혜화, 동, 숨, 고지전, 부러진 화살, 피에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