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과 함께한 유럽 여행기
6월 어느 날 아들이 내게 “아버지 유럽 여행 안 가시겠어요?” 하고 물어 왔다. 난 생각도 안하고 “그래 가자.” 하고 즉석에서 대답을 하고는 “너희 가족 다 같이.” 그러니 “아뇨, 저하고 둘이 만 가시죠” 해서 “좋다. 그러렴” 하고 며칠 생각하니 며느리에게 미안해서 전화로 “아범에게 예기 들었지” 했더니 “네, 처음에는 저도 휴가를 내서 같이 간다고 했더니 그이가 당황하더라고요. 현실은 그렇게 길게 휴가를 낼 수가 없어서 갈 수는 없고 추석 연휴 때 코타키나발루나 가자고 했어요. 두 분이 잘 다녀 오세요.” 그렇게 며느리 허가도 받았다.
그 때부터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여 8월 1일 떠나 아들은 12일에 돌아오고 나는 간 김에 더 있다 24일 돌아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는 마일레지로 가기로 하고 알아보니 제약이 많았다. 어찌 어찌하여 가는 것은 암스텔담으로 들어가 아들과는 Eurail Pass를 사 기차로 다니기로 하였다. 호텔은 기차역 근처로 호텔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여 예약을 하기 시작하여 며칠을 여행 일정을 바꿨다 원위치를 했다 해서 결국은 암스텔담(1박) – 프랑크푸르트(1박) – 뮌헨(2박) – 스위스 루체른(1박) – 인터라켄(1박) – 체르마트(2박) – 로잔(1박) – 파리(2박)으로 정했고 호텔비는 스위스만 제외하고 거의 미리 선불로 처리 했다. 이제는 일정도 바꾸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13일부터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1박)에서 rent car를 해서 22일 반납하기로 하고 퓌르스펠트부르크 근처 에머링(1박) 오스트리아의 티롤(2박) 인스부르크(1박) 잘스부르크(2박) 다시 독일의 레겐스부르크(1박) 뷔르츠부르크 근처(1박) 하이델베르크(1박) 다시 파리(2박) 거기서 서울로 돌아 오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드디어 8월1일 전날 딸들이 환송회 한다고 큰딸아이 집에서 조촐하게 저녁을 준비해서 사위들과 같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며느리가 서현 역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주어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정말 오래 만에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었다. 거의 10년 만인가? 준형이 박사학위 받을 때 피츠버그에 간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9년 만 인가 보다.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거의 13시간 비행 끝에 암스텔담의 스키폴 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제1일 암스텔담에서
공항에 도착하니 준형이의 유럽 주재 보스가 네델란드 사람인데 휴가로 본가에 와 있어 그 상사가 공항에 마중하여 호텔까지 가 첵크인 한 후에 저녁을 초대하여 저녁을 근사하게 접대를 받았다. 그 때 청어 조림을 처음 맛 보았다.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다. 역시 역 근처고 주말이라 밤 늦게까지 젊은이 들이 시끄럽게 굴어 그렇지 않아도 시차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설쳤다.
(Amsteldam 중앙역 과 운하)
이튿날 짐은 역에 Locker에 맡겨 두고 관광에 나섰다. 암스텔담은 운하로 이루어진 도시고 해면 보다 낮은 국토가 거의 다라지 않던가. 마침 그 날이 토요일 일 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Gay들의 축제가 운하에서 열린단다. 조그만 배 위에 많은 인원의 남녀가 섞여 또는 각각 요란스러운 복장으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며 운하를 점령하였다.
(요란한 분장으로 축제에 참가한 게이 들)
우리는 운하가 내려다 보이는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구경을 하였다. 그 날부터 얼마나 많은 맥주를 마시고 돌아 갈 것인지 둘 다 몰랐다. 유럽의 맥주와 와인이 남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인지 마셔대기 시작하였다. 이 번 여행은 “꽃보다 음주”로 생각하고 대낮부터 음주로 시작하였다. 아들도 나와 같이 애주가가 되어 또한 두 사위도 술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터라 넷이 만나면 술병이 몇 병이 비워지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니 이 번에 유럽에서 맥주와 와인을 얼마나 축 낼지 모르겠다.
그리고 Rembrandt Museum을 관람했다. Netherland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가 Rembrandt(1606-1669)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네델란드가 개신교의 나라로 태어났을 때 활약한 화가
이다.
우리나라에는 그의 작품이 한 점도 없다던가?
오후 4시경 역으로 돌아와 짐을 찾아 4시30분 기차로 Frankfurt로 향했다.기차 안에서도 와인을 사서 마시며 4시간의 여정을 즐겼다. Frankfurt는 회사 재직 시에 10여 차례 온 일이 있지만 관광은 한 번도 즐길 여유가 없었다. Hotel은 그 유명한 환락가 Kaiser Strasse에 있는 작은 Business Hotel이다. Check In을 한 후에 다시 나와 맥주와 Sandwich로 저녁을 때웠다.
제2일 Frankfurt에서
아침에는 Frankfurt HBF(중앙역)에 가 보니 여행객을 위한 여러 가지 메뉴가 보이는데 반갑게 Schweinhaxe가 있어 그 것 한 개와 Hot Dog로 아침을 하고
Goethe House로 갔더니 10시에 개장한다 하여 Frankfurt Dom(대성당)으로 갔다. 규모가 글쎄 명동 성당의 두 배 되는 것 같다. 나는 개신교도이지만 성당에 가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데에 거부감은 없어 여러 가지 사안을 들어 기도를 드렸다.
이 성당은 16세기에서 18세기 후반까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열렸다하여 Kaiser Dom이라 고도 한다.
발 길을 괴테하우스로 돌렸다. 괴테(1749-1832)가 태어나서 산 집으로 4층 건물이며 들어가 보니 살던 당시의 가구 집기 들이 지금은 엔틱 가구로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책상, 책장, 괴테가 읽었다는 서적 들이며 시계도 층마다 전시되어 있는 것 들이 눈 길을 끌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있다. 그를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확립 시킨 작가로 사상가로 추앙하고 있다.
그의 집에는 또한 많은 회화 작품 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발길을 아름다운 건물로 둘러 쌓여 있는 Roemer Platz로 돌려 거기서 아펠바인(사과 와인)과 소시지로 점심을 먹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과거와 현대의 복합 도시로 2차 대전을 겪은 중부유럽은 폭격을 맞은 자리는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지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런 도시 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과거의 모습을 되살리는 작업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Frankfurt Dom)
제3일 뮌헨에서
우리는 다시 짐을 싸 뮌헨으로 향했다. ICE(독일의 KTX)로 약 3시간30분 정도 걸려 뮌헨의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저녁은 역에서 간단히 때웠고 첵크인 한 후에 맥주와 간단한 안주로 호텔 안에서 뮌헨 입성을 축하하였다.
뮌헨에서 유명한 것은 10월에 열리는 October Fest 맥주 축제이다. 아직 10월이 안 된 처지라 축제에는 참가하기 어려웠지만 그 축제의 장소를 찾아 나섰다. HOFBRAEUHAUS와 학센 Hous이다. 우리는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맥주와 소시지를 시켜 먹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 들이 몰려드는데 그 중에도 중국 관광 여행객 들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니 더욱 시끄럽게 느껴질 수 밖에. 예전에 방송한 드라마에서 김희애가 중앙 무대에 올라 건배를 제의 하던 그 넓은 홀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학센 하우스에 가서는 다시 맥주와 그 유명한 Schweinhaxn를 시켰는데 학센의 껍질이 어떻게 단단한 지 껍질은 먹을 수가 없었다. 17-8년 전에 Hanover Messe(유럽에서 제일 크게 열리는 전자제품 전시회)에 갔을 때 현지 주재원이 안내해서 간 식당에서 먹은 학센과 양파를 잘게 썰어 약간 조린 듯 한 이름은 잊어 버렸지만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뮌헨 신 시청사의 첨탑)
(호프브로이하우스)
우리는 차도 없지 음주운전의 스트레스도 없으니 걷다 다리 아프면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군상을 감상하는 맛 이거야 말로 처음 겪는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와! 중국인 정말 많네” “그런데 일본 사람은 잘 안 보이네”
“우리 나라 사람 들은 전부 쌍쌍이네, 신혼 여행 온 건가?”
(학센하우스)
이튿날 아침에 우리는 님펜부르크성으로 향했다. 님펜부르크성은 바이에른완국의 통치가문 비텔스바흐의 여름 별궁으로 지어졌다. 일직선으로 쭉 펼쳐 진 궁의 Layout가 일품이었다. 앞으로 다가 갈수록 점점 웅장하게 우리에게 다가 온다. 아들은 20년 전에 대학 입학 후에 온 배낭 여행 때에 이 곳에 왔었단다. 후면의 넓은 정원 잘 조경된 정원, 분수, 그리고 조각 예술이다.
(Nymphenburg Schloss의 일부)
내부에 들어 가 보니 수 많은 회화 들, 독일의 여러 성의 그림 들, 갖은 장식품, 가구 들 그리고 샹들리에 이 모든 것 들이 모두 보물로 여겨 질 정도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Nymphenburg Schloss의 Garten)
(성 내부의 샹들리에)
(성 내부의 천정 화)
발 길을 돌려 뮌헨 시내로 돌아와 뮌헨 대성당으로 갔다. 성당의 규모가 Frankfurt 대성당보다 더 크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탑이 두개인데 한쪽은 수리 중이다.
(시 청사 전망대에서 본 뮌헨 대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그라스,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조각품 들 회화 작품등, 건축술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압도하는 것 같다.
회전초밥 집이 보여 들어 갔다. 들어가 보니 중국인이 경영하는 회전초밥 집으로 스시는 연어가 위주고 흰 살 스시는 눈을 비비고 찾아도 안 보인다. 연어, 그리고 김밥, 계란 등을 위주로 맥주와 함께 배를 채웠다. 돈이 아까웠다.
다음에 Residenz로 향했다. 바이에른왕가와 비텔스바흐왕가의 궁전으로 사용한 Residenz궁은 현재 공개된 곳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궁전 내에는 왕가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보석이 박힌 술잔이라 던지 보기에도 화려한 장신구, 가구, 식기등을 전시하고 있다.
(뮌헨의 레지덴츠 궁)
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맥주와 소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제5일 Luzern에서
2014년 8월5일 아침 7시 17분 우리는 ICE를 타고 Luzern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남부 독일의 산하와 스위스라는 말만 들어도 청량감이 드는 스위스의 산하를 감상하며 우리는 기차 여행을 즐겼다. 우리는 스위스의 베른에서 스위스열차로 갈아 타고 오후 12시 49분 스위스의 루체른에 도착하였다. 20년 전에 집 사람과 함께 유럽 여행시에 온 적이 있는 곳이라 추억에 잠시 잠긴다. 우리는 루체른 호수 가에서 또 맥주와 Hot Dog등을 시켜 점심을 하고 호수를 둘러보는 크루즈를 탔다. 그 때도 이 배를 탔는데… 약3시간에 걸친 코스였는데 호수 가의 아름다운 리조트 들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 들 간간이 보이는 폭포, 이 모든 것들이 대자연의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루즈 위에서도 맥주를 마시며 약간은 쌀쌀하다고 느끼는 바람을 맞으며 항해를 즐겼다.
(차창 밖으로 본 남부 독일의 농촌 풍경)
(배 위에서 본 루체른 시가지)
(배 위에서 잡은 호수가의 리조트 리조트를 건설하고 있는 크레인도 보인다.)
배에서 하선을 하고 보니 오후 6시경 우리는 이름난 사자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사자상은 스위스의 용병이 마리 앙트와네트 프랑스왕비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을 기려 이 사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자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드시…
아담한 루체른 성당을 둘러 보았다. Frankfurt나 뮌헨의 대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들어가서 보니 경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체른 성당의 내부)
다음에 카를교로 갔다 아름다운 목조 교량으로 이름 난 카를교는 항상 사람으로 붐볐다.
(카를 교)
저녁에는 Schnizel이라는 스위스의 돈까스로 Butter로 범벅을 하여 우리나라 전
같이 부쳐내는 스위스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퐁듀가 있는데 빵을 치즈에 찍어 먹는 요리로 인터라켄에 가서 먹기로 하고 여기서는 슈니첼과 뢰스티로 끝냈다.
(스위스의 전통 요리 슈니첼)
제6일 Interlaken에서
아침 8시5분 루체른에서 기차를 타고 Visp에서 갈아타고 1시간50분 걸려 인터라켄에 도착하였다. 전에 스위스 여행에서도 같은 루트로 여행을 했지만 그 때는 자동차를 렌트해서 자동차로 다녔다. 그 때는 Navigation도 없었는데 망설임도 없이 어떻게 다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그 때 Jung Frau Yoch 역까지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갔던 기억이 아련히 떠 올라 아들보고 “올라 갈래”하고 물었더니 “그러시죠” 그 때는 Grandenwald 쪽으로 가지 않아 이 번에는 그리 가자고 표를 사러 갔더니 “Today’s ticket is sold out.” 간단했다. 몇 한국인 아가씨가 VIP Ticket은 있느냐는 물음을 들으면서 자리를 물러나와서 우리는 First전망대(2,168m)로 기차와 Cable Car를 타고 올라갔다.
(우리 앞에 자태를 드러낸 Jung Frau 4,158m)
정말 아름다운 Alps의 만년설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Eiger(3,970m) Jung Frau(4,158m) Breithorn(3,782m)등의 Alps 연봉이 눈 앞에
한 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다시 Cable Car를 타고 내려 오다 Schreckfeld에서 키이블카에서 내려 걸어 내려 오기 시작하였다. Jung Frau Trail을 걸어 내려오는 것은 내게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소똥 냄새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약1시간 반 만에 Waldepits까지 내려와 다시 케이블카와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음식 퐁듀와 라클렛으로 시켜 먺었다.
유럽 어디를 가나 맥주가 너무 맛이 있는데 좀 느끼한 퐁듀와 잘 어울려 Alps 연봉이 펼쳐지는 풍경과 함께 나를 healing 하게 만든다.
물가가 스위스가 비싸지만 호텔 값 관광열차 대금 등은 생각보다 비쌌다.
제7일 Zermatt에서
아침 8시 우리는 기차로 Brig를 거쳐 약2시간 걸려 Zermatt로 갔다. 아주 아름다운 산 Matterhorn Town으로 유명한 Zermatt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마을이다. 어김없이 중국인 단체관광객, 한국인 일본인의 가족관광객 들로 어우러져 마치 동양의 어느 마을에 온 것 같은 풍경이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Matterhorn은 약간 구름에 가려져 있는데 화창한 날씨 그리고 약18도 정도의 기온은 돌아다니기 너무 좋았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Gornergrat(3,089m)전망대로 올라 갔다.
(구름에 살짝 숨은 Matterhorn)
(만년 빙하와 마테호른 연봉)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 천지는 하얀 만년설 그리고 깊은 계곡 파란 초원과 가끔 보이는 소 들, 저 및 길에는 Tracking 하는 사람 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 들이 보일 뿐이다.
길 가 광장에는 노인 들로 구성된 악단이 요들송과 빗자루 무용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오후에는 Matterhorn Glacier Paradise(3,883m) 전망대로 올라 갔다. Alps에서 올라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란다. 호텔에서 10분정도 걸어가면 거기 Cable Car 정류장이 있어 타고 올라 갔다. 여기서는 아직도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온통 스키를 메고 타는 사람 들로 붐볐다. 어린아이 들도 단체로 스키 연습을 하러 올라간단다. 오후에는 날씨가 화창해 지고 마테호른 주위의 구름도 걷혀 똑똑하게 우리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구름 위의 알프스 연봉 멀리 높이 보이는 산이 몽블랑(Mont Blanc) 이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여기서부터 자전거로 하산하는 것도 묘미라 하겠다. 맥주를 마시려다 머리가 약간 어지러운 것 같아 생수를 마셨다. 스키어 들도 부럽고…
하산 할 때 우리는 다음역인 Schwarsee에서 내려 거기서부터 소위 Matterhorn Trail 중의 한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약 두 시간 동안 우리는 걸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이 번 여행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도중에 사 가지고 올라온 맥주와 빵으로 요기도 하며 내려 왔다. 유심히 관찰 했으나 Tracking하는 사람 중
에 동양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려 오면서 여러 각도에서 Matterhorn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걸어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찍으며 마음이 놓이는 것은 나도 나이가 먹은 탓일까
하며 훌쩍 커 있는 아들을 본다.
이 번 유럽 여행하며 이 Tracking이 하이라이트로 여겨 잘 만큼 내게는 가슴 깊이 새겨진다. 저녁에는 스위스식당에 가서 퐁듀와 돼지고기 샤브샤브 같은 요리와 뢰스티 등 스위스식 요리로 스위스와인과 함께 근사하게 만찬을 즐기고 다시 맥주를 사 들고 호텔로 갔다. 호텔이름은 Adonis로 대우그룹 시절 골프장 이름과 같아 예약한 호텔인데 아주 아담하고 객실도 예쁘고 아침식사도 만족하였다.
로잔으로 떠나는 아침부터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하여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같은 호텔에 머물던 어느 영국 주재원 부인이 속상해요 날씨가 나빠져서 하는데 속으로 우리는 좋았는데 하며
(저녁 식사 한 아담한 식당)
(우리가 묶었던 객실)
제9일 Lausanne에서
2014년 8월9일 아침 우리는 다시 Brig를 거쳐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Lausanne으로 갔다. Lehman 호수 가의 도시로 올림픽 위원회의 본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레만호에 지다” 라는 드라마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호텔에 첵크인 한 후에 나오며 보아둔 중국 음식점에서 몇 가지를 시켜 점심을 한 후 로잔대성당으로 갔다.
(로잔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로잔의 번화가)
호텔에 첵크인 할 때 공중 교통 pass를 주어 트램 버스를 마음대로 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그 패스를 이용하여 로잔의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레만호반으로 내려갔다. 호반광장에서는 여러 곳에서 온 라인 댄스팀이 경연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구경하며 빼 놓을 수 없는 맥주를 사 마시면서 여유를 부렸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레만호반에서 보냈다.
제10일 파리에서
아침 8시42분 TGV를 타고 Lyon에 내려 Lyon 대성당 등을 보고 파리로 갈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 번 기차를 타니 내렸다 다시 타는 번거로움으로 우리는 파리로 직행하기로 하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정을 바꾼 것이다. 그 동안은 한 번도 기차 좌석을 예약해 본 적이 없었는데 파리행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예약이 필요했다. 기차 안에서 차장에게 부탁해 예약을 20유로씩을 주고 바꿔 파리로 직행했다. 12시 40분경 도착하여 Gare de Nord(파리 북역) 근처의 호텔에 첵크인 한 후에 일일 pass로 버스 트램 그리고 지하철을 같이 쓸 수 있어 편리 했다. 그리고는 Notredam 사원으로 갔다. 그 동안 파리는 20번 정도 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Louvre 박물관에는 두 번 정도 관람 했는데 Notredam 사원은 한 번도 들어간 일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규모가 엄청 난 것에 놀랐다. 그 동안 본 성당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생각된다.
(석양에 물 들어 가는 레만 호)
이 Notredam 사원이 1100년경부터 1900년경까지 근 800년에 걸처 건축되었다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파리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이 도시계획이 너무나 잘 되어 있고 각각의 건물이 너무 아름답고 높지 않은 스카이라인이 정말로 예술적이지 않는가? 가끔 튀어 나온 성당의 첨탑이 골목 골목에서 우리를 반겨 준다.
우리는 무작정 걸었다. 루브르 박물관 주변 등을 걷다가 퐁피두센타로 갔다.
(Hotel de Ville, 시 청사)
퐁피두센타에 가서는 큰 손녀가 부탁한 폴 세잔느의 화첩을 사려 했더니 거기에는 없어 못 사고 개선문 샹제리제거리로 왔다. 노천카페가 늘어저 있어 다리도 쉬게 할 겸 우리는 다시 맥주 1664를 시켜 마셨더니 꿀 맛이었더라.
제11일 Paris에서
아침부터 일찍 호텔에서 나와 다시 거리를 누비며 일단은 오르셰 미술관으로 갔다. 역사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은 파리에서도 유명한 미술관이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긴 행 열이 늘어 서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도 동양인이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들어가 일단은 폴 세잔느의 화첩을 찾아 사고 관람에 들어 갔다. 인상파 화가인 고흐 고갱 모네등의 작품도 있었다. 촬영은 금지 되어 있는데도 사람 들은 휴대폰으로 사진기로 촬영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통제가 되지 않았다. 나폴레온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는 앵발리드(Invalide)의 앞 조각 앞에서 젊은 여성이 누드조각상의 거시기를 만지며 장난하는 장면을 찍었다.
오후에는 세느강의 유람선을 탔다. 세느강 주변의 퐁네프다리를 비롯한 다리 들, 노트르담 사원을 비롯해 오르셰미술관등 아름다운 건물 들이 있었다. 조상 잘 둔 탓에 잘 살고 있지 않는가? 루브르, 오르셰미술관, 등 입장료 수입만 해도 대단하다. 일자리는 몇 개나 늘어 났는지, 오늘이 아들과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으로 아들이 한국음식점에 가기를 제안했다. 우리는 “순이”라는 한국 식당에 가서 파전과 맥주를 시켜 먹고 저녁으로는 대구탕 등을 시켜 먹고 나서는 나보고 끓이라 해도 이보다는 낳겠다 하고 웃었다. 전에 다닐 때는 우정이라는 집이 있는데 물어 보니 지금도 있단다. 그 집은 고급이라며. 호텔에 다시 와인과 맥주를 사 들고 들어가 늦도록 마셨다. 이렇게 마지막 밤이 흘러 갔다. 한마디로 아쉽다.
(세느강의 유람선에서 본 오르셰미술관 Paris-Orleans이라는 표지가 있다)
제12일 파리에서
아침 일찍 에펠탑으로 갔다. 그러나 아침 이른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는 에펠탑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지하철 루즈벨트역으로 가서 샹제리제거리로 다시 나왔다. 거기 르노 자동차 전시장이 있고 바로 앞의 카페에 앉아 맥주로 목을 추겼다. 이 번 여행은 맥주 마시기 아니었던가?
점심은 Last lunch in Paris라 근사한 식당을 찾아 나는 생선으로 그리고 white wine을 아들은 Beef와 Red wine으로 점심을 늦게 까지 먹었다. 아침에 짐은 Gare de Ost(파리 동역)의 보관함에 넣어 놓아 4시반경 그 곳으로 가서 짐을 찾아 나는 5시 다음 행선지인 Strasbourg로 가려고 작별인사를 했다. 아들은 저녁 9시 샤르르드골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라 나를 바래 주고 북역에 가서 기차로 비행장으로 갈 예정인 것이다. 그 동안의 여행은 내게 남겨 주는 추억 들이 많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며 그 동안은 아들이 길찾기, 호텔찾기 등을 전부 인터넷 휴대폰으로 찾아 다녔는데 많이 의지했나 보다. 그런 데는 전혀 신경을 안 썼으니, 그러나 이제부터는 나 혼자다. 은근히 겁이 난다. 세계를 누비고 다녔는데도 은근히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어떻게 되겠지. 아들과의 여행은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은 “횡성노인 유럽방랑기”로 다시 계속하기로 한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