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방문기
드디어 오빠의 교수님이 미국에서 오시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충권 박사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전화를 받고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가 남원까지 가다가 급한 용무로 다시 되돌아와 진료소와 가까운 곳에 나가서 교수님과 충권 박사님을 뵙고 교수님이 타신 차를 리드하며 대웅재로 향했습니다.
대웅재에는 이미, 정박사님 정근이 금숙와 사돈(새언니 막내 동생)이 와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집에 오시자마자 신기한 시골풍경에 호기심을 갖고는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시래기도 관심 있게 보시고 묻습니다.
소를 쳐다보시며 또한 신기해 하십니다. 외양간에 있는 소 앞에서 사진도 찍고 아버지가 마당을 쭉 둘러보시면서 설명을 하십니다.
나와 금숙이와 엄마는 부지런히 점심준비를 하였습니다.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밤과 고구마도 엄마는 미리 쪄놓고, 반찬을 많이 준비를 해놓으셨습니다.
교수님과 손님들과 아버지는 술상을 놓고 이야기를 하시다가 차려놓은 점심을 드셨습니다.
교수님은 짱구 아버님이 보고 싶다고 짱구아버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정근이가 짱구 아버지를 모시러 갔는데 안 계신다고 그냥 왔습니다.
점심을 드시면서 교수님은 시골음식이 신기한지 또 이것저것을 물어보십니다.
여기서 농사지은 것이 아닌 음식이 무엇인지, 다슬기국을 보시더니 다슬기를 어떻게 잡는지, 주로 많이 재배하는 작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시고 맛있다고 하시면서 많이 드셨습니다.
“ 요새는 식당에 가도 고기나 먹을까 이런 음식 못 먹는데, 채소를 위주로 하는 이런 음식은 웰빙 음식이네요” 사돈이 말씀을 하십니다. 모두들 맛있게 잘 드셨습니다.
모두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교수님이 미국에서 가져온 것을 꺼내어 보여 주십니다.
미국에서 보내온 그레이스 백일 사진과 가족사진이 들어 있는 사진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 인근이가 논문을 마치지 못해서 제가 인근이가 써 놓은 자료들을 모아서 뺄 것은 빼고 첨가 할 것은 첨가해서 논문을 마무리를 해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 개로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서 보니 논문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논문 심사 위원회에서 통과를 해야 되겠지만 아마 통과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논문이 통과가 되면 12월에 인근이가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시면서 부모님께 오빠의 완성 논문을 드렸습니다.
부모님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교수님이 수여한 논문을 받았습니다.
옆에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쳤습니다.
“ 교수님, 참말로 너무나 고마워서 목이 메어 할말이 없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헐까요?”
“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는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논문을 제가 완성을 해서 부모님 소원도 풀어드리고, 인근이 자식들에게도 아빠의 박사 논문을 보면서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것도 같아서 했습니다.”
“ 제 원을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텍사스에서 나와서 한국인교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더니 원을 풀었네요이, 참말로 고맙습니다. 미국놈들 생각만 히도 치가 떨리네요” 아버지도 울고 엄마도 울고 나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왔습니다.
“ 앞장에 보면 인근이 인사말이 있는데, 내가 인근이라면 인근이가 어떻게 썼을까를 생각하면서 인근이 대신, 제가 인사말을 적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감격해서 말을 못하고 계십니다.
식사를 마치고 교수님은 동네 구경할 데를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교수님은 외양간 옆에 묶어놓은 개를 풀어서 개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개가 무서운지 쭈뼛거리면서 안 따라 가려고 버티면서 힘을 줍니다. 교수님이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흔들며 따라 나섭니다.
같이 걸어가면서 참깨, 들깨, 버섯밭, 도라지 등을 보여 드리면서 까끔너머로 갔습니다.
까끔너머에는 고추밭에는 고추들이 빨갛게 익어 빨간 빛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 흉년이라더니 아주 고추가 아주 잘된 것 같네요 ”
교수님은 너른 밭에 고추를 신기한 듯 보시면서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꼬추밭을 둘러보시고는 또 다른 데가 있는지 물어 보십니다.
“ 주로 여기서 일을 많이 하니까, 보여줄게 여기 밖에는 없네요”
교수님은 아쉬운 듯하셨지만 다시 까끔을 내려와 회관이 있는 마을 광장으로 오는데 아버지가 짱구 아버지와 함께 회관마당으로 걸어 내려 오셨습니다.
짱구 아버지를 교수님께 인사를 시키니 짱구 아버지 쑥스러운 듯 웃으십니다.
회관 앞에서 모두 서서 사진을 찍고 짱구 아버지와 함께 다시 집으로 가서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서러운 듯 우십니다.
“ 교수님, 제 딴에는 봉사허고 산다고 힜는디도, 이렇게 죄를 받아서 아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 형님도 참, 죄를 받긴 먼 죄를 받어요!, 그럼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모다 죽고 없어 부리라고요?, 고렇게 될랑게 어찌다가 그렇게 됐제 ”
“ 교수님 제가 사는디, 아무 낙이 없습니다, 그리서 이렇게 술이라도 먹여야제, 술 없이는 못살겄그만요, 그리서 날마동 술로 삽니다, 술로 살다가 그냥 죽어부리야 겄습니다.”
“ 형님, 아,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날까정은 건강허게 살아야제, 술많이 잡솨갖고 병걸리면 어쪄겄어요오, 인자 건강 생각히서 쪼깨씩만 좀 잡솨요, 저는 아파도 그냥 안 누워 있어요, 멋이라도 히야 몸이 건강허제, 아프다고 가만히 누워 있으먼 더 쳐져서 안되야요.”
“ 맞아요, 짱구 아버님이 철학이 있으시네요” 교수님이 맞장구를 치십니다.
아버지는 교수님을 앞에 놓고, 젊었을 적 이장일 볼 때 신작로에서 들어오는 동네길 넓혔던 이야기, 산림녹화 때 나무 심던 이야기, 왜정때 왜놈들과 싸우다 돌아가신 동넷분들 이야기, 왜놈과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추모비를 세운 이야기를 한참이나 하셨습니다.
모두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모두들 서있는데 아버지는 외양간 옆에서 우시면서 소용없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를 뺀 모두가 사진을 찍고, 이별을 할 시간이 왔습니다.
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못하고 “교수님, 우리 메느리 잘 좀 부탁 허겄습니다. 교수님만 믿겄습니다.” 엄마가 울먹이시며 교수님에게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가을 어느 날 , 가을 햇살에 곡식들이 잘 여문 날, 산과 들의 푸르렀던 기상들이 노란빛으로 젊음을 잃어가는 대신, 알곡의 선물을 베풀고 있던 날 , 아버지는 슬픔이 뼛속까지 스며 고통의 몸부림을 여전히 쳤던 날, 교수님은 박사 논문이라는 오빠의 마지막 선물을 우리에게 그날의 날씨처럼 따뜻하게 안겨주시고, 꿈결처럼 대웅재를 떠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헤어짐의 아쉬운 몸짓을 포옹으로 대신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