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전화가 울리자 우리 복실이 갑자기 짖으면서 나를 전화기 앞으로 이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조금 지났다.
"여보세요!"
"그래 나다 . 아침밥은 먹었니?"
변함없이 오전 11시 전후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이다.
"엄마! 나야. 오늘은 춥지 않아요?"
한결같은 목소리로 매일 전화를 하시는 어머니...
서울에 사시는데도 자주 뵙지를 못하고 그저 매일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주로 어머니께서 항상 비슷한 시간에 전화를 하신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연로하신 연세에도 항상 부지런하시다.
팔순이 지나신지도 몇해가 지나갔으니...
섬세하고 여리셔서 가끔씩 소녀같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어머니...
지난해 가을이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단풍나무가 꽤 색깔이 곱다.
분리 수거하러 함께 내려 가셨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업드려서 무엇인가를 주우신다.
비 내린 다음날이라 바닥에는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낙엽이 색깔이 곱다며 주으려고 업드리셔서
일어나실 줄을 모르신다.
가까이 가보니 곱게 물든 단풍잎이다.
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떼기가 쉽지 않았다.
양손에 하나 가득 집어 드시고서는 함박웃음을 띄우시며 하시는 말씀..
"단풍색깔이 너무 고와서,,,,"
쑥스러우셨던것 같다.
하지만 속내를 드러내 보이시지는 않으셨지만 아마 이 잎을 어느 책갈피엔가
끼워두고 가실것을 나는 안다.
가끔 오랫동안 보지 않던 책들 특히 습기 흡수가 잘되는 오래된 책 갈피에는
나도 모르는 꽃잎이나 나뭇잎이 쏫아져 나올때가 있다.
그것들은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오실때마다 산책길에서 주워오신 잎들이라는 것을..
그것도 모자라 어떤때는 집에서 모아오신 꽃잎들도 가져오시니...
어릴적 문풍지를 바를때 단풍잎이나 꽃잎들을 창호지문 손잡이 부분에 이쁘게
무늬를 놓아서 창호지를 두겹,세겹으로 바른후 방 안쪽에서 보면 밖의 밝은
빛때문에 이쁜 꽃들이 모양을 드러내는 것이 신기해서 자꾸 쓰다듬으면서
엄마의 손은 요술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머니의 감성지수는 아직 10대 후반이신것 같다.
봄이 오고 있으니 어머니의 손은 무척이나 분주하실꺼다.
일반 주택에 사시는 어머니께서는 이층까지 올라가는 계단 끝까지 온갖 꽃들을
키우신다.
특히 군자란이나 아마릴리스처럼 화려한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군자란 씨를 받아다 주신다거나, 문주란 화분을 귀찮다 생각하시지 않고 들고
오실때는 반가움에 앞서 짜증을 부리기도 했었다.
혼자 오시는것도 쉽지 않으실텐데 내가 갈때 주시면 될텐데...
애써 들고 오시느라 힘을 쓰신다.
꽃이 필때 봐야 한다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라는 것을 나는 안다.
향기가 좋아서 갖다주고 싶고, 꽃 색깔이 이뻐서 갖다주고 싶고, 귀한꽃이라서
갖다주고 싶으시다며 그렇게 마음을 나누어 주시는 어머니이신데....
오늘 전화는 어미니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았다.
지난 추위에 꽃들이 조금 상했나보다.
화분을 살펴보시다가 마음까지 상하셔서 전화를 하신거다.
꽃이 피고 지는것으로 세월을 세고 계시는 어머니의 일상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이 찡~ 했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친구가 아닌가?
희망을 드려야지...
우리 집에는 엄마가 좋아 하시는 나무가 있다.
꼬마 인도 고무나무이다.
작은 화분에 심어 놓은것이어서 엄마의 방 창가에 갖다 놓아도 될듯 싶어
"엄마... 이미 상한 화분에서 미련을 버리세요... 제가 엄마 좋아하시는
애기 인도 고무나무 갖다 드릴께요?"
이렇게 말씀은 드렸지만 마음이 짠하다.
인생 후반기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 가야 아름다운 삶인가를 다시한번 어머니의
모습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고, 기쁨을 느끼고, 반가움과 서운함을
느끼시며 크고 작은 마음 흐름을 전하시는 어머니의 삶에서 ....
언젠가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두고 가셨던 일기장을 읽으면서 흘렸던 눈물이
생각난다.
내리 사랑이라 했던가?
자식들을 위한 기도가 끊임없이 글로 이어지던 그 내용들을 읽고 다시한번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것인가를 생각했었다.
인생을 마무리 지으셔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는 어머니의 시간들...
요즈음은 어머니의 마음을 서서히 단순하게 생각하시고 정리하셔야 함을 간접적으로
말씀 드리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그런 말씀을 듣고 계시는 어머님!
나는 안다... 어머니도 알고 계심을....
하지만 온갖 사랑을 그저 바라보면서 눈으로 이야기 하셔야 할 나이가 되어가심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봄이 산뜻하게 어머니의 마음을 화사한 빛으로 물들여 준다면 좋겠다.
그래도 내 수다로 맘이 풀어지신 어머니!
꽃을 가꾸면서도 이쁜꽃이 향기로 색깔로 그리고 모양으로 기쁨을 준다고
감동하시는 어머니....
맘이 편해지셨으면 좋을텐데...
오늘 저녁에는 부지런한 걸음으로 오늘은 친정엘 다녀와야 할까보다...
이쁜 후리지아를 사 놓았으니 그 향기로 위로를 해 드려야겠다.
엄마의 봄도 따뜻한 색깔로 다가간다면,,,,,,
풍경 온실에서 봄소식을 알려준 "노루귀"
첫댓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마냥 사랑스런 딸이지요..어머니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언젠가 어머니를 안아들였을때 너무 가벼우셨습니다..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이제 조금씩 어머니의 심정을 알것만 같습니다..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오래오래 곁에 살아계셨으면 좋겟습니다..
모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는 파란콩 님을 뵈오며 어머님을 지금도 뵈올 수 있으신 님이 부러워집니다.영원한 나라로 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