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 남 응
RBS 철도방송 ( Railroad. 1997. 2 )
외국에서 장기적으로 살다보면 이것저것 그리운 것이 많다. 물이 질퍽질퍽 나는 배일 수도 있고, 고향집 장독대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중국 본토에서도 없다는 자장면일 수도 있겠다. 사람에 따라 종류도 많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공통적으로 매우 그리워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따뜻한 우리의 방바닥이 아닌가 한다. 올해처럼 눈이 많고 추운 날씨면, 더욱이 감기 몸살기라도 느껴지는 날이면 따끈따끈한, 이제는 한국에서조차 얼마 남지 않은 옛날집의 아랫목, 따끈따끈하다 못해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듯 절절 끓는 아랫목으로 구체화된다.
구들과 온돌 바닥난방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바닥난방은 병원이나 부유한 집의 거실에서나 가끔 만날 수 있는, 아직은 일종의 고급난방법에 속하고 그런 반면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바닥난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도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집에도, 주인이 사는 방에도 머슴이 자는 방에도, 15층의 아파트에도 단독주택에도, 함경북도에도 제주도에도 .... 이 바닥난방을 온돌(溫突)이라 한다. 그러나 구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단순히 토속적인 어감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온돌이란 이름보다 더 오래된 순수한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아궁이, 부뚜막, 고래, 불목, 부넘기, 개자리등 구들을 이루는 여러 세부명칭이 모두 우리말로 전해 내려왔는데 굳이 총체적인 이름을 온돌이라 할 필요가 있을까? 구들이란 말은 구운 돌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널리 대중적으로 쓰이던 말이다. 이를테면 방이 어지러우면 '구들 좀 치워라' 했고, 일자리를 잃고 놀고 있는 사람은 '구들방만 지키고 있다'거나 '매일 구들장만 지고 있는 신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반면 온돌(溫突)이란 말은 우리 문자가 아직 없을 때 식자(識者)들이 구들을 기술하기 위해 만든 한자이름으로, 특히 한자를 즐겨 쓰던 초기 학문적 연구에서 그대로 사용된 영향으로 보여진다. 구들은 우리의 옛날 집에서의 바닥난방시설 그 자체를 말하거나 그런 난방으로 된 방바닥 또는 방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구들장은 고래를 덮으며 방바닥을 이루는 판판한 판석(板石)을 말하니 하릴없이 늘 누어 있는 사람은 구들장을 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구들의 구조 구들의 구조는 크게 불이 타는 아궁이, 연기가 지나가는 고래, 굴뚝으로 나뉘어 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수 천년동안 궁리하고 발전 시켜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구석구석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아궁이와 고래사이는 턱을 두고 불이 넘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로 '부넘기' 또는 '불목'이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연기의 역류를 방지하고 열기가 고래 속으로 잘 빨려들도록 하는 기능을 하였다. 또한 고래가 끝나는 부분에는 고래의 끝 부분 보다 우묵하게 낮춘 '개자리'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여러 줄의 고래로부터 연기를 하나로 모아 굴뚝으로 배출함과 동시에 연기의 역류를 막으며 또한 경우에 따라 있을 수 있는 빗물 같은 것의 고래 속으로의 유입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직접 구들을 만들었으나 흔히 동네마다 구들쟁이라 해서 구들을 잘 놓는, 즉 설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비법에 따라 난방성능에 많은 차이가 났다.
구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닥난방
구들은 언제부터 쓰여졌을까?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구들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물어 본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그놈 별것 다 물어보네. 언제 긴 뭐 언제야,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지'라고 대답했다. 우리네 어른들은 아주 오래된 일을, 특히 사안에 대하여 잘 모를 때, 흔히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그렇다. 구들의 역사는 아주 길다. 그러나 구들은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보다도, 만약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면, 훨씬 더 오래되었다. 왜냐하면 담배는 콜럼부스가 1492년 쿠바에 상륙했을 때 처음으로 원주민들이 담배잎을 말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590년경에 일본에, 그리고 한국에는 1620년경에 일본에서 전해졌다고 문화사에 기록하고 있으니까 오래되긴 했지만 380년 정도밖에 안되고 구들은 늦어도 기원전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들의 발전과정추적은 수경주(水經注), 구당서(舊唐書)등 중국쪽에서 기록한 몇몇 고문헌과 한국 쪽 문헌,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자료가 근거가 된다. 이들 제 자료들을 분석, 종합해보면 구들은 한반도 북부나 과거 한동안 역시 우리조상들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일대에서 기원전 3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늦어도 약 10세기경에는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되어 민족의 난방법이 된, 한민족(韓民族)문화요소인 것으로 믿게 한다.
구들이 우수한 7가지 이유 구들의 발전과정, 그리고 그 구조 및 작용원리를 살펴보면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얼마나 우수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는가를 알게 된다. 그 우수성은 특히 서양에서의 주거문화와 난방방법의 발전과정을 개관하고 비교해서 볼 때 더욱 돋보인다. 그리고 많은 특징들은 우리 한국인들이 특히 쓰기 좋아하는 '세계최초, 최고(最古, 最高), 가장'등의 접두어를 과장 없이 붙여도 좋은 것들이다.
1) 구들은 인류최초의 바닥난방 서양의 경우 로마시대에 하이퍼코스트(Hypocaustum;Hypocaust)란 구들의 원리와 비슷한 난방방법이 있었으나 기원전 약 100년경부터 생겨났고 주로 공중목욕탕(Thermae)의 난방으로 사용되었으며, 로마의 멸망과 함께 잊혀졌다가 근대에 이르러 재 발굴되어 현대 서양의 바닥 난방의 기초가 된다. 또한 서양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누구나 쓰는 난방방법의 주류가 아니다.
2) 구들은 인류최초의 연기 없는 난방법 서양의 경우 10세기경까지는 모닥불의 형태로 취사와 난방을 하였다. 우리가 무드 있게 보는 벽난로도 약 10세기경부터 등장하였는데 모닥불의 형태이건 벽난로의 형태이건 그런 난방법 에서는 힘들게 얻은 열기가 80% 이상 굴뚝이나 깔대기 형으로 되어 있는 지붕의 개구부로 빠져나갔다. 서양의 불 쓰는 형태에서는 사
람들이 항상 연기 속에 시달려야 했으며, 연기를 내쫓으려면 대부분의 열기도 모두 사라지고, 열기를 집 속에 붙들어 두려 하면 연기에 시달려야만 했다. 연기는 열기와 오랫동안 불가분(不可分)의 것이었고 열을 취 함에 있어서 필요악(必要惡)적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 면서도 그러한 난방방법들은 난방효과면에서 얼굴은 '불고기'가 되어도 등은 항상 시리고, 얼굴은 벌겋케 달아올라도 무릎 이하는 항상 시리게 된다. 실제로 중 세 깊숙이 까지는 연기로 인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의 집 에서는 연기가 그냥 집 속에 두기는 고충스러운, 그렇지 만 내쫓을 수도 없는 악동(惡童)이었다면, 우리 조상들 은 바로 그 악동을 충실한 충복(忠僕)으로 지배했으며, 바로 그 연기를 없어서는 안될 난방의 본질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불에서 연기는 배제시키고 열기만을 획 득하는, 즉 필터링(filtering)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였으 며, 연기가 방밑을 기어서 지나가는 형상이나 사람이 궁둥이 밑에 깔고 앉는 형상은 불을 말 그대로 지배하고, 길들이고 복종시켰던 형상이어서 흥미롭다.
3) 구들은 최초의 축열난방(蓄熱煖房) 에너지를 저장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계획경제의 기반이요 오랫동안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예를 들면 벽난로나 모닥불에서는 불이 타고 있는 동안은 따뜻할 수 있으나 불이 꺼지고 나면 곧 열기도 사라진다. 그러나 구들난방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열이 구들장에 저장되어 장시간 방을 따뜻하게 해주고 방이 식을 때가 되면 다시 취사를 하면서 구들장이 다시 가열되고 열을 저장하는 것이다. 또한 서양의 벽난로는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 한정된 일시난방방식(一時 煖房方式)이라면 우리의 구들은 지속난방법(持續煖房法)인 것이다.
4) 인류역사상 최초의 중앙난방식(中央煖房式) 서양에서 집을 빌려주는 광고를 낼 때는 난방방식이 중앙난방식이라는 것을 꼭 표시한다. 그것은 벽난로와 같은, 방마다 관리를 요하는 개별난방방식이 아닌, 편리한 현대시설로 난방 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집세도 비싸게 받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중앙난방식의 핵심은 보일러와 라디에이터를 통하여 한 곳에서 불을 때서 여러 방을 데우는 것인데 구들은 이미 한 아궁이의 불로 두 칸, 심지어 세 칸의 방까지 데우고 있었으니 비록 오늘날의 중앙난방식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선조들은 일찍이 중앙난방을 실현했던 것이다.
5) 구들은 난방과 취사를 이상적으로 겸한 세계 유일의 지혜
우리의 구들은 기본적으로 취사와 난방을 겸했다. 물론 아궁이만 있어서 난방만을 한 경우도 없지 안 지만 대개는 부뚜막을 두고 취사를 함과 동시에 잉여 열기를 활용하여 난방까지 되게 하는 것이 구들의 또 하나의 우수성이다. 앞에서 언급한 로마시대의 하이 퍼코스트방식에서는 취사를 겸한 예는 없었고, 모닥 불 형식이나 벽난로형태에서도 취사가 겸해지기는 하였으나 우리의 구들에서와 같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동시에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6) 가장 이상적인 실내온도 구들은 바닥난방이다. 그리고 모든 바닥난방은 실내온도형성측면에서는 인간에게 가 장 유리한 결과를 보여주는 난방방식으로 판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벽난로는 하체부위에서는 차고 불기 에 면하지 않는 부분이 늘 춥게 마련이지만 바닥난방은 그런 것이 없다. 특히 바닥에서부터 열 기가 상승하므로 바닥과 바닥 근처의 온도는 몇도 더 높아 서양의 난방방법의 고질적 문제인 인체하체부위가 시리지 않아 정상인은 물론 노약자들에게도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7) 구들은 자연법칙에 가장 충실한 난방법 찬 공기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고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것은 경험으로도 아는 자연현 상이다. 자연현상을 무시하면 항상 무리가 따르고 추가적인 해법이 있어야 한다. 구들은 이 자연법칙을 그대로 이용하여 공기순환을 이루는 대류방식으로 되어있고 고른 실내온도분포를 이루는 원리의 하나이기도 하다. 벽난로나 라디에이터 난방에서 무릎이 시린 것도 결국은 이 자연법칙의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들은 한민족 문화의 바탕
구들의 우수성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전통구들에서의 많은 부분의 신비는 아직까지 제대로 연구도 되지 못한 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구들을 잘 이해하면 한국의 주거문화의 여러 특징들을 한꺼번에 많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많은 문화요소는 구들이 생겨난 이후에 발전된 것이며 구들은 말 그대로 우리 문화의 바탕이며 삶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문화체육부에서는 한국문화의 상징물 10가지를 선정 발표했다. 한복, 김치, 태권도 등 여러 가지가 선정되었지만 구들은 후보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구들은 상징화하기가 어려워 그런 것이 아니냐고 모 신문사 기자는 말했다. 하기야 구들은 보이지 않는 난방이니 그럴 법도하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설문을 돌려 선정했다고도 했는데 구들에서 살아보지 않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불의 성능과 정취를 알리 만무하다.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현대형으로 다시 지어지고, 고층아파트가 도시를 메우면서, 아름답다는 지붕의 처마곡선도, 정취 있는 장독대도, 마당도, 대청도 보기 드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구들만은 오늘날에도 고층아파트 속에서, 단독주택에서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민족의 숨결처럼 우리 문화의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비록 아궁이는 보일러로, 고래는 온수파이프로 바뀌고 구들이란 이름도, 그 세부명칭도, 대대로 노하우를 물려받은 장인들도 함께 사라져 가지만. 구들은 가장 한국적인 특징, 가장 세계적인 것, 무엇보다도 우수하므로 ....
*구들을 아끼는 단체가 있다. 구들학회라 한다.(02-709-2537, 238-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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