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2월27일자 기사입니다.
발걸음마다 천년역사의 향기가… |
[충청의 혼]국내最古 돌다리 … 충북 진천 농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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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27일 (월) |
전진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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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우희철 기자 |
| 충북 진천에 있는 '농다리'(충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돌다리다.
TV 드라마 등의 배경으로 종종 등장, 뭇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이 다리는 진천군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금천을 가르지르고 있는 데, 1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온갖 풍파에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충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상산지(常山誌)' 등 옛 기록에 따르면 농다리는 고려 고종때의 권신인 임연 장군이 전성기 때 고향인 이 곳에 만들었다. 임연은 매일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는데, 어느날 세수를 하다 건너편에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만들게 됐다는 것.
물론 당대의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임연 축조설에 대한 이설(異說)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학자들 사이 진천 출신인 신라 김유신 장군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최근까지 논란을 빚는가 하면, 임연의 선조인 고려초 호족 임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어느 주장이든 그 근거가 미약하고, 농다리가 설치되기 이전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은 듯하다.
이 때문에 일찌기 세금천 양편에 펼쳐진 농경지 경작을 위한 교통로인 다리가 존재했고, 현재의 농다리는 임희나 임연 등 상산 임씨 일족이 축조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확해 보인다.
특히 임연은 중앙으로 진출한 뒤 자신의 고향인 진천을 두차례나 승격시키고 이 일대 광대한 농장을 구축, 임연이 그의 세거지인 구곡리에서 세금천 건너편 농장을 경작키 위한 목적으로 기존 다리를 더욱 크고 견고히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다리는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는 돌이 있어 농다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자연석으로 엉성하게 쌓아 올린 듯한 교각과 그 위에 걸쳐 놓은 1m 안팎의 상판돌의 모양 때문에 얽다는 뜻의 농(籠)자가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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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우희철 기자 |
| 본래는 권력과 기복을 상징하는 숫자인 28을 응용, 28개 교각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4개의 교각이 유실돼 24개의 교각만 남아있다.
다리 길이는 100m를 약간 미치지 못하고 교각의 높이는 1.5∼1.7m 가량이며, 교각과 교각 사이는 1.2∼1.5m 정도이다.
교각은 자석(磁石)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렸으며, 석회로 보강하지 않아 교각으로도 물이 통하고 있다.
농다리는 이처럼 교각 높낮이가 다를 뿐만 아니라 교각의 간격 상판 크기 등이 일정치 않아 얼핏 보면 돌을 대충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백억을 들여 만든 다리가 힘없이 무너지는 오늘날에 비춰 봤을 때, 1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물난리에도 농다리가 원형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충청인의 자연에 대한 이해와 놀라운 기술력을 가졌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중앙문화재구원이 지난해 제출한 '진천 농다리 전시관 신축부지 문화재 시굴조사 보고서'는 이같은 이같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연구원은 농다리가 "물의 흐름과 물살에 대한 저항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으로 사료된다"면서 "교각의 형태도 유선형으로 해 강의 물살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 했으며, 유선형 교각은 앞뒤 좌우가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교각이 받는 수압도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이루고 세굴현상도 적게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구원은 또 "안정적인 구조로 물의 흐름과 교량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만든 걸작으로서 당시의 발달된 건설기술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면서 "농교의 구조는 우리나라 고대 교량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덧붙였다.
삼국시대 충북지역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었다.
이 때문에 충북에는 온달산성과 삼년산성, 상당산성 등 삼국이 만들고 후대가 사용하며 증·개축한 유명한 석성들이 산재해 있다.
당대의 성은 국가 방위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시설이었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최고 기술자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성을 쌓았다.
그런데 무수한 돌을 쌓아 만든 성이 수백년이 지난 후에도 견고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반을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연현상을 규명하는 기초과학, 즉 역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바닥이 자갈과 모래인 데다 항상 거센 물살에 노출돼 있고 매년 큰 물이 닥치는 다리는 비록 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물살이 교각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단 몇개월을 버티기 어렵다.
이렇게 볼 때 농다리는 수많은 성을 견고히 쌓았던 충청인들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축성술과 자연순응적인 심성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장마철만 되면 일부 구간이 훼손된다고 하니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농다리는 1000년의 세월을 충청인과 함께 한 만큼 다양한 이름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 당기는 돌이 있고, 얽다는 뜻의 한자가 사용된 농다리 외에도 장마 때마다 물이 다리 위를 넘어간다 해서 붙여진 '수월교'(水越橋)가 있다.
또 상공에서 보면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네다리'와 겨울철 농다리의 설경이 빼어난 것에서 붙여진 '농암모설', 진천에 위치해 있어 붙여진 '진천 농교', 농암다리 등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농다리를 건너면 아낙네가 아들을 낳게되고, 노인은 무병장수한다고 믿는 한편, 재앙을 예고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장마에 다리 상판이 뜨면 나라에 큰 재앙이 일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사망하거나 기상이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농다리 지킴이' 임영은 씨는 "1000년을 버텨온 농다리는 우리에게 자연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극복하고 개조하던 옛 사람의 슬기를 말하고 있다"면서 "농다리는 다가오는 1000년은 물론 수 만년 후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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