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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사이펀 신인상 - 최재원
가장 아름다운 소년 외 8편
버스기사 카아드으 맨 날 안가지고 타시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꺼?
버스 출발하고 비닐에 든 것이 쾅 넘어진다 지팡이 탁 떨어진다
앉으시소 출발합니더 일어나면 안됩니더 앉으시소
아니이 맨날 카드 안 보여 주시잖아예 그래서 오늘 물어봅니다 그거 보여주셔야됩니더 예 알겠습니다 앉으셔야 됩니다
아기가 버스라도 깨끗이 반을 갈라 두 동강 낼 듯 운다
한손으로 아기를 들고 있다 한손으로 들기엔 너무 무거워보이는데 아기는 짐승처럼 운다
예? 예? 만촌네거리예? 지났습니다—여기 내려서 반대로 걸어가셔야 됩니다—버스는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온 참이었다
아이가 운다 신생아는 한 시간 삼십 분 마다 먹여야 된다고 했다
황금네거리를 지나 가구거리 웨딩거리 한복거리 문화의 거리 청춘의 거리를 지나 벨라케즈 드 소라 (Sora De Velázquez)를 보러 가는 길에 향수 냄새가 길 밖까지 나는 갤러리를 들렀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게 돌아오는 길에는 거제도 냄새가 났다
그때는 왜 모든 것이 쉬웠을까 대구 바다도 아닌데 바다 냄새가 났다 새우 비릿한, 여름 저녁의 된장찌개 냄새 언니들은 왜 구두를 신을까 왜 공중전화에 매달려 살까 집에도 다 전화기가 있는데 아빠는 나에게 걸려온 장우혁을 닮은 사람의 전화를 끊었다
잘 들으세요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는 성인은
야 진짜 존나 크리피 하지 않냐?
그 때 그 애 열 다섯 살이었잖아 내가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나의 완전한 로맨스였다
그런 냄새가 났다
처음 맡는 유리 눈알의 냄새 고귀한 얼굴을 한 가장 아름다운 소년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아들 아들 아들
이런 게 0이다
걔넨 그냥 서 있어도 숫자가 쓰인 사람 같았다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오직 나만 느끼는 거였다 그들은 지코 같은 표정 발라드 가수 같은 표정 혹은 그 오빠 인천 하우스에서 도박하던 그런 건 너네 전유물이 아냐 그 오빠의 눈빛은 무서워서 다 무너질까봐 공사를 시작도 못했다 나는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영진에게 매달렸다 과거를 계속 돌아보는 것은 좋지 않아 그러나 그래야만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다
냉장고에는 물개의 목을 조르는 것들이 가득하다 단테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강인한 새가슴을 움켜잡고 마리아여 마리아
영광과 평화가 그대에게 아베 성경이라도 좀 읽어 그는 말하였다 보라색 불빛을 지나쳐간다 짓이겨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파편들로 짠 제의 컵에는 일렁인다 영혼들이 춤을 추고 촛불이 깟깟한 카라 희멀건 희리멍텅한 눈에 비친 깊은 신비 내가 나눈 피 꾸벅 꾸벅 졸다 어느 날 일어난다 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닌 어느 날 깨어 사과를 먹는다
그러나 그자들의 각색은 무늬만 그랬다 그들은 허물을 벗고도 그 더미를 먼지가 되도록 쓰고 다녔다 파렴치한 파김치가 되도록 그들은 먹기만 한다 그건 영혼에 좋을 리가 없다 영진이의 뱃속은 깨끗하다 꺼내본 적이 없어도 알 수 있다 알콜로 소독되어 있다 아무리 빨아도 마르면서 냄새가 난다 더운 지방에서는 아무리 빨아도 말리면서 냄새가 난다 그래서 회전초밥 같은 걸 주어질 때, 웰치스처럼, 초밥을 먹는다 우리의 뱃속은 알콜로 소독되어 별 느낌이 없다
우리는 하루에 한번 가끔 항문에 손을 넣어 씻을 때 오직 그것만 생각한다 주름과 주름 같은 털 손가락 사이의 비누, 최대한 빨리 손을 씻자, 이런 게 영이다
그 순간만이 존재하는 가장 배타적이며 완전하게 포괄적이고 규칙적인 망각 이런 게 영이다
삭는 육각형
시간을 보았다 그것은 육각형이었다 탑처럼 쌓았다 64개의 땅이 둘로 갈라졌을 때 나는 양 쪽에 발을 딛고 있었다 한 쪽 땅에는 온갖 것들이 자라고 다른 쪽 땅에는 다온갖 것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 갈라지는 땅을 찢어지도록 밟고 있었다
모래를 그린다 그것은 삼각형의 반대 반죽의 한 쪽 끝을 잡고 접어 모서리를 만든다 기사가 먹는 것은 뭘까 김치고구마 냄새가 난다 모서리를 까뒤집은 곳의 냄새가 제일 심하다 다 같이 묵던 홀리데이 여관에서 나던 계면활성제 과탄산수소 같은 것들의 냄새 태어나면서부터 삭기 시작한다
육각형 오래되어 본 바탕이 변하여 썩은 것처럼 되다 육각형 걸쭉하고 빡빡하던 것이 묽어지다 육각형 맛이 들다 육각형 소화되다 육각형 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다 육각형 사위다 육각형 생기를 잃다 육각형 잠잠해지거나 가라앉다 경계의 눈빛 —복의 참맛
겹겹이 쌓여 가는 너의 기억도 나의 기억도 아닌 네온 마젠타 조명이 켜진 밤 짓누르는 부서지는 짓물러지는 퍼슬 퍼슬 기름 때 모든 것이 빛으로 된 밤 나의 기억은 발과 마젠타 베일에 가려진 어둠 속 발광하는 주사기를 든 늙은 할머니 빛처럼 부서진다 나의 기억은 아닌데 지하철역에서 속삭이던 13살
무거운 가방을 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들 숨이 배를 쿡쿡 주사바늘처럼 찌른다 도망갈 수 없는 약은커녕 복에 겨운 방파제 위의 대원외고 가는 길 테트라포드 사이의 토플 학원가는 길 기어간다, 그 순간의 나는 나를 경계하며
바다도 부처도 아닌 여인도 노인도 아닌 벌레도 해변도 아닌 도리안도 데미안도 아닌
살랑살랑 헤엄치는 인어 메스scalpel를 대어 갈라낸 밑이 코키토스에 쑥 빠져버릴 것 같다
선 위에는 자기가 얼마나 가득한지 소년이여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 아가의 얼굴 팔다리 손가락 나 없이 나 혼자 갈 수 있는 길
까만 까페 달빛 아무도 없었다 일층 이층의 구분도 없었다 메자닌의 낮은 천장도 없고 웨어하우스처럼 의자가 여기 저기 널려 있고
그/녀 태어났을 때 눈을 뜰 필요가 없었다 세상은 깜깜했다 세상은 앞발이 닫는 곳까지였다 그녀는 앞발이 닫는 곳을 자꾸자꾸 밀어냈다 묵사발이 될 줄 알아
야, 그거 내가 참내 어이없네 내가 슬기 준건데 그거 왜 니가 (어이없네) 참나 (참나) (코러스) (노려본다) 왜 니가 가지고 있냐?
아, 이거 나 마시라고 준 거 아니고 달리기 하고 있을 동안 좀 들고 있으라고 했
너 먹으라고 2% 부족할 때 준 거 아니야?
(야 쟤 너한테 관심있는 거 아니야?)
아무도 보지 않고 앞을 보는 척 하자.
야 니네 뭐하는데 그거 내가 준거야 어? 니가 준거야? 어? 아무것도 아니야 저런 건 어디서 배우는 건가? 초점을 반쯤 맞추고 바라본다.
말없이 알림을 받는다. 너 그거 먹으면 묵사발이야. 사우나
쓰고 찢어진 말들이 수증기보다 빡빡하게 차 있다 뜨겁고, 습하고, 땀이 나고 다 벗고 있으면 그런 말들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얼굴이라도 가려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온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증발하는 말들 납이 달린 민들레 씨앗처럼 숨을 쉴 때마다 뿌우 뿌우 흩뱉어져 나와 사우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너무 가득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요즘은 어? 그런다잖아? 유모차 끌고 와서 애 데리고 그 밑에 어유 신발을 넣고 가면 씨씨티브이 그거 안 걸리지 요즘은 신고 나가면 다 걸려~ 이상하게 사우나에서는 한국말도 성조가 생긴다 수증기는 요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부풀어 오르는 복처럼 잔뜩 터지게 들어와, 훅, 하고 수증기를 마시면 초짜 자객들처럼 사방으로 가시를 뱉어놓고 그렇게 쌓인 비늘이 반짝 반짝 빛나는 지옥 사우나
숨을 쉬면 폐까지 비늘로 반짝거리는 사우나
사우나에는 나무와 밑의 비늘의 냄새가 난다 발가벗고 있는 것이 땀구멍이 열리고, 엉덩이나 등 같은 것이 열기로 축축한 나무에 닿는 것이 혓바닥에 비늘을 자라게 하나보다 그래서 거기서 듣는 이야기들은 주제는 다양한데, 입안에 비늘이 도돌도돌 돋아나는 것은 다 똑같다. 사우나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비늘 돋이 라고 분류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비늘 돋은 말들이 숙주를 찾아 이 사우나에서 다음 사우나로, 사우나에서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비늘 돋이에서 나와 재빨리 몸을 씻고 탈출한다 적자상속 (嫡子相續)
눈부신 누군가의 행차 앞에서 야광봉을 흔들며 예! 예! 예! 예! 하고 리듬에 맞춰 소리치라고 했지만 그 무리들은 너무 자신이 부끄러워 무리 중 하나가 그래도 애를 쓰며 예! 예! 예! 예! 하고 한번 외쳤지만 따라하던 소리들은 금방 잦아들었다.
왜 제자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채 하루 빨리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재주를 넘었다 기도하고, 춤을 추고, 달의 얼굴을 쓰고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를 듣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이 다섯 채나 있고, 다리가 열개나 있고,
마치 영의 찰과상 입어 말에서 떨어지듯 잘못된 환호를 제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트윗을 할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씨케이다 쏘나타
가슴 속에서 울리는 쇠의 트라이앵글 (둥)땡 (둥)땡 (둥)땡 미꾸라지 같은 심장 박동 꿈틀꿈틀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마냥 불툭 씨케이다 다 죽고 없는 혼자 마냥 둥 둥 둥 둥 둥
땅에서 나는 소리에는 무조건 13층 창문 밖에 조오크 같은 새우 눈알 이 양짝으로 달라붙은 아무리 엥(앵)엥(앵)엥(앵)해 봤자 꼼짝 하지 않는 사타구니
눈코입이 자꾸 자꾸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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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사이펀 신인상 당선소감 - 최재원
전자기력과 중력이 깊이 명명
물구나무를 서서 반대로 쏟아지는 피에 별안간 피의 무게를 느낍니다. 천천히 다리를 내리노라면 두 개의 덩어리가 죽은 무게로 나를 짓눌러 당깁니다. 뒤집어진 피로 비로소 전자기력과 중력이 저 깊이 명명됩니다. 마디마디 새겨집니다. 대기압에 맞닿아 자라난, 알맞게 팽창하는 피의 힘과 그 어느 쪽으로도 터지지 않는 수많은 막들을 새삼 기억합니다. 압력도 인력(引力)도 미력도 얼기설기 평형을 이루기까지 구멍구멍 피를 쏟는 유년의, 성년의, 중년의, 노년의 나와 그의 타인들에게 그건 가끔 침대 뒤집듯 뒤집어 봐, 말해주고 싶습니다.
느껴지지 않는 떨림을 느끼고, 들리지 않는 술렁임을 듣고, 거꾸로 뒤돌아 비추어 그제서야 아는, 새까맣고 새하얗게 숨은 숨소리에 눈길을 기울이는, 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 최재원(서울) -1988년 경남 창원 출생. -Princeton University -Rutgers University -화가 -Hyperallergic 기고 -jaewonch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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