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어서 말씀을 이어갑니다.
⑧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원어와 영어 번역을 보더라도 지팡이와 막대기를 막대기와 지팡이로 반대로 번역함이 더 가까운 번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도 막대기와 지팡이로 번역을 했습니다. (rod and staff)
여기서 지팡이로 번역된 막대기는 실제 다윗이 골리앗을 잡을 때 가지고 간 막대기와 원어가 같습니다.
아마 그가 양을 칠 때에 사자와 곰을 내쫓고 잡을 때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막대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압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번역된 지팡이도 자신이 힘이 들 때 의지하는 물건이며 양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꺼집어 내주는 도구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 높이 들었던 지팡이와 같습니다.
이 도구를 여호와께서 가지시고 자신을 안위하신다는 것입니다.
▶ 먼저 안위한다는 뜻은 원어적으로 “나함”인데 위로하다, 평안하게 하다, 안락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makes me feel safe”, “they comfort me”입니다.
한자로 본다면 안위 (安慰)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다. 안심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안심”과 유사한 뜻으로 보여집니다.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느끼는 안도감입니다.
▶ 막대기와 지팡이는 우리를 살리시는 / 안전하게 하시는 / 도우시는 / 하나님의 선한 도구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는 반대로 원수를 물리치시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호와가 목자가 되는 자에게는 구원하시고 도우시는 구원하시는 손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천사도 될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과 자연 그리고 환경도 그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는 다양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 막대기, 쇠막대기와 같은 것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막대기로 인간 막대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들어 막대기로 많이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이 한 때 불순종했을 때 또는 영적훈련을 받을 때 모두들 인간 막대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훈련소에서 경험한 조교의 막대기는 매섭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에게 징계로 다가오는 막대기가 아니라 우리의 원수를 물리치시기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막대기로 다가오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위급한 상황 속에서 그런 막대기와 지팡이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를 경험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안위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안위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절대 누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호와가 함께 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장대와 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텐트 속에 있는 감정 있지 않습니까? 바깥은 우당탕탕 하는데 자기가 있는 곳은 비가 들이치지 못하는 그런 상황말입니다. 이런 안위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목자일 때 양들에게 그가 가진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들을 안위했습니다. 양들의 주변에는 실제 늑대와 사자들도 여전히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선한 목자로 있기에 그 양들이 안전한 것과 같습니다.
목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늑대와 사자가 나타나 양들을 물어뜯고 비명을 지르며 피가 난다면 양들은 안식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참 목자로서 이런 위험들을 다 쫓아내 준 것입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목자되셔서 자기를 안위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철저히 여호와가 목자 되심을 믿는 자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나쁜 목자가 아닙니다. 늑대와 사자가 나타나면 도망가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원수 마귀가 우리들 주변를 맴돌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해서 원수가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닙니다.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시고 원수를 쫓아내심으로 우리들을 안위하십니다. 그분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영적으로 이런 지팡이와 막대기를 받는 기름부으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안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며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들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안정이되고 하는 기름부으심 말입니다.
이것이 안위하는 “막대기와 지팡이의 기름 부으심”이라 생각합니다.
막대기와 지팡이로 양들을 후려 잡으면 안됩니다. 늑대와 사자를 잡아야 하는데 늑대와 사자처럼 양들을 막대기로 쳐서 잡아먹으면 안됩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이런 목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나쁜 목자들입니다.
[겔 34: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이런 목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제 참 목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심하면 양 대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목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⑨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상은 실제 식탁을 차려 주신 것입니다. 잔치상입니다. 원수는 패배를 하고 다윗이 승리함으로 벌어진 잔치입니다.
다윗은 전쟁때마다 매번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백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적들은 승리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진 것을 개처럼 주워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자는 차려주시는 상에서 먹습니다. 미완료로 끝까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항상 승리는 했습니다. 그가 패배한 때는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그가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죽였을 때 그 이후로 다윗은 사실 인생의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여기 저기 대적들이 일어나고 가까운 아들 압살롬까지도 대적으로 다가옵니다. 도망 다녀야 합니다. 노숙하며 바닥에서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자녀들이 죽어 나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차려 주시는 상을 받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으로 죄로 인하여 훈련을 받아야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육간에 먹고는 살았지만 빈약한 상이었습니다. 잔치상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마치 군대 훈련소의 밥과 같았습니다. 겨우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 무 장아치 반찬 수준입니다. 더 심하면 포로된 자가 먹는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우리 수준에 맞는 밥상이 차려지는 것입니다.
출애굽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먹은 만나와 메추라기 수준과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고 그들이 먹은 음식은 다른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먹은 상이 잘 차려진 상일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주님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도 잔치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천국에서도 잔치상을 받을 것입니다. 승리의 잔치이며 혼인잔치이기도 합니다.
패배자에게 잔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것입니다. 모두 다 이런 잔치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저는 간혹 축구하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골을 많이 넣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축구 대표선수로서 10:1의 승리를 얻게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골 내주었다면 앞으로 열 골을 넣어 완전한 큰 승리를 할 것입니다.
1골은 저의 연약함 때문에 지난 날에 먹힌 골입니다. 어쩌면 자책골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는 한 골도 내주지 않아야 합니다. 골을 먹는다는 것은 실패를 뜻합니다. 넘어짐을 뜻합니다. 잔치상이 없는 상태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전쟁터에서 스스로 패배하면서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축구로 본다면 자책골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원수에게 패배를 당합니다, 자책골이 아니라 원수가 골을 넣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자책골을 넣게 만듭니다. 그러면 계속 무너지는 것입니다. 골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잔치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과 같은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신다는 고백을 하고 싶으면 끝까지 거룩함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