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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영혼들에게 띄우는 편지(통권 74호)
예 수 사 랑 • 가 족 사 랑
11권 10호 2010. 12. 1. Daum Cafe: 가족치유상담센터
수치심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
지난 11월 13일(토)에 장신대에서 열렸던 목회상담학회의 주제는 수치심이었습니다. 수치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별력있는 수치심이고 다른 하나는 불명예스러운 수치심입니다. 분별력있는 수치심은 건강한 수치심으로서 분별력있는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 수치심을 느껴야하기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중한 행동을 합니다. 분별력있는 수치심은 선한 양심, 청결한 양심이나 착한 양심(딤전1:19)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별력있는 수치심을 갖지 못하면 못된 일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불명예스러운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처음에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들과 탕진하고 호구지책으로 돼지농장의 일꾼으로 전락해서 불명예스러운 수치심의 소유자가 됩니다.
탕자는 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회개하고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탕자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을 입게 되면서 분별력있는 수치심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불명예스러운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끄러운 일을 계속하면서도 전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에 북한이 연평도를 무차별하게 공격해서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북한 지도자들은 화인맞은 양심의 소유자로 분별력있는 수치심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스승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가롯 유다는 죄없는 예수님을 유대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면서 불명예스러운 수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사도는 둘 다 수치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가롯유다는 한 쪽 눈에서 수치심의 눈물만을 흘렸고 그의 인생은 자살로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한쪽에는 예수님을 부인했기에 수치심의 눈물을 흘렸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기에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불명예스러운 수치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꼭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감사의 눈물은 수치심에서 은총으로 인도합니다.
*** 김영근목사<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인>***
2010년 12월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2010년 마지막 달입니다. 금방 한 해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요. 지난 11월에는 G20모임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한국의 발전된 위상을 보는 것 같아서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을 갖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광조우에서 열린 아세아 올림픽 대회도 감동을 주는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중에 북한의 연평도를 향한 기습포격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가운데 몰아넣었습니다. 한반도의 안정과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를 모읍시다.
1. 기도시간
가족중보기도는 매일 오전 6시, 낮 12시, 저녁 9시에 개인이나 혹은 그룹별로 1회 10분 이상씩 하면 좋습니다. 시간 여건상 하루 세 번이 불편하면 편리한 시간에 한두 번을 선택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2. 중보기도참여자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누구나(개인, 교회, 기관별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의 사람들을 환영합니다.
3. 기도의 대상
기도참여자가 살고 있는 <시⦁군⦁구>에 있는 가정들이 기도의 대상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 저의 기도대상은 <남양주시>의 가정들입니다.
4. 기도의 제목
1) 일반기도제목
첫째, 가족구성원들의 상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옵소서!
둘째, 거절의 아픔을 겪는 가족들이 예수님의 영접하심을 경험케 하소서!
셋째, 주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가족 안에 용서를 실천하게 하소서!
넷째,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소서!
다섯째, 가족의 모든 식구들의 생각이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여섯째, 식구들의 언어가 불평과 원망에서 감사와 축복으로 바뀌게 하소서!
일곱째, 가정의 신맛(미움, 정죄)이 단맛(사랑, 격려)으로 바뀌게 하소서!
여덟째, 우리들의 이웃을 향한 적대감이 환대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하소서!
아홉째, 우리들의 교만한 마음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변하게 하소서!
열 번째, 가족에게 두려움이 떠나고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옵소서!
2) 특별기도제목
첫째, 북한의 악한 정권이 교체되어 선한 정권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둘째, 알콜중독, 성폭행, 음란 등으로 고통을 겪는 식구들을 치유하소서!
셋째, 지구촌 위에 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이 치유되게 하소서!
넷째, 북한동포들에게 독재와 굶주림에서 해방과 신앙의 자유를 주소서!
김영근의 요즘생각
남편에게 존경을, 아내에게 사랑을!
정동섭은 사람의 행복의 조건으로 생존조건, 건전한 신앙, 봉사의 일, 사랑하는 관계 등의 네 가지를 제시했는데 이 문제를 좀 더 생각해보자. 첫째, 생존조건에서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갖춰져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의식주가 갖춰지지 않고 먹고 사는데 궁핍하면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의식주의 빈핍이다.
둘째로 행복의 조건에는 건전한 신앙이 꼭 필요하다. 신앙은 삶의 중심에 예수님이 있는 생활이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은 삶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 자신이라는 인간은 항상 자기중심적이고 쾌락적이고 동시에 변화가 무쌍하다. 변화의 모습은 바람에 흔들리는 배와 같다. 바람이라는 외부의 영향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상태는 하루에 몇 번씩 변화한다. 보통 사람은 주변 사람의 한 두 마디 말에 따라서도 기분이 바뀌고 우울해진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자신의 삶의 근거가 예수님이기 때문에 외부의 환경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지 않는다. 심지어 생존조건이 열악하더라도 자족했던 바울사도의 경험처럼 행복할 수 있다.
셋째로 행복의 조건에는 봉사의 일이다. 사람들은 봉사의 일을 할 때에 가장 행복하다. 일들이 자기위주로만 진행되면 그 사람은 행복하지가 않다. 많은 소유를 누리는 사람들도 봉사의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소유가 무미건조해지고 메마른 삶이 되고 만다. 빅톨 프랭클(Victor Frankl, 1905-1997)이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곳에서 의미를 발견해서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었다. 그가 그곳에서 의미를 발견했던 것도 작은 봉사의 일을 통해서였다. 자기 혼자 먹어도 허기를 면하기 어려운 양식으로 주어진 빵을 신체가 건강한 사람에게 주었을 때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았다. 예수님도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봉사의 일을 제시하셨다. 최후의 심판의 상황을 묘사하는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양의 편에 서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무명의 사람에게 작은 봉사의 일을 실천했던 사람이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주었고 나그네를 영접했고 병든 자를 돌봐주었고 옥에 갇힌 자를 방문했던 사람은 천국행 티켓을 얻었다. 자기 것을 자기가 먹고 네 것은 네가 먹으라는 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하지가 않다. 내가 할 일을 내가 하고 네가 할 일은 네가 하라고 할 때에 그 때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평생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온 나이든 노부부가 한 분을 먼저 천국에 보내드릴 때에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 섬김 대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가까이서 존경했던 권사님 한 분은 오랜 세월 병으로 방안에서만 지냈던 남편을 보낼 드릴 때에 남편을 섬기면서 힘들었기에 짜증내었던 일들을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과하셨다. 그런데 그 권사님은 병든 남편이 떠나고 나서 더 이상 섬길 분이 주변에 없어졌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통스럽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얼마 전에 소천한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아버님이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쉽다.
넷째로 행복의 조건을 사랑하는 관계로 제시하였다. 우리들의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요, 나 자신이요, 이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이웃은 부부관계, 자녀관계와 친구관계를 포함한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관계가 없을 때에는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야기가운데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 외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왕따를 당하는 나에게 친구는 없고 주변에는 온통 나를 왕따 시키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사랑의 실천 장소이다. 외로움은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할 때에 극복이 된다. 잠언17장 1절은 말씀한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먹을 것이 너무나 쌓여서 식생활이 넉넉하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고 다투고만 있으면 사람들은 외롭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집안에 먹을 것이 부족하여도 부부가 서로 사랑해서 행복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에도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남편의 아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아내의 남편사랑은 존경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말은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원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존경을 원한다는 것이다.
많은 남편들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존경에 굶주려 있다. 존경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남편의 나이가 40대가 되면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나누어진다.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오래있는 것이 힘들어지고 자신의 남은 생애에 대한 자신감도 약해진다. 남편의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그리고 남편의 퇴직은 이들이 직장으로 인해서 받았던최소한의 존경심 마저도 사라진다. 이때에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 아내의 존경이다.
베드로전서 3장을 보면 1절에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순종과 2절에는 남편에게 두려워하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말씀은 아내의 남편 사랑은 순종과 경외심인데 그것은 존경으로 나타남을 보여준다. 물론 함께 살아온 아내는 남편을 향하여 존경심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존경할 부분이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 쇠붙이는 닦아야 더욱 빛이 나고 가치가 있다. 사람은 상대방의 존경을 받을 때에 더욱 빛이 난다. 역으로 사람이 상대방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삶이 빛을 잃는다.
목회자가 교회를 섬길 때에 가장 힘쓰는 영역이 설교의 탁월성이다. 목회자의 설교의 비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목사의 부인인 사모이다. 목사의 설교가 사모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이때에 아내가 설교자 남편의 설교의 능력을 존중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코치했을 때에 남편은 좋은 설교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한 아내인 사모가 정직하게 비평한다고 설교의 구성이나 내용에 메스를 가하기 시작하면 설교자 남편은 비참해지고 절망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남편 목사는 자기가 신앙하는 예수님보다 아내의 비평이 더 크게 보이면서 신앙이 흔들린다. 꼭 기억하자 모든 남편은 아내의 존경을 받아야만 인생이 행복하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원하는데 그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베드로전서 3장은 남편들이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며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며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남편들의 아내 사랑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무식하게 사랑할 수 없기에 남편의 아내 사랑은 지혜를 꼭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워가고 연습해야 한다.
또한 아내 사랑을 위해서 한 공간에서 머무는 것이 참 중요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떨어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사랑도 약해진다. 직장 때문에 자녀교육 때문에 함부로 남편은 아내와 떨어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서 부인과 자녀들을 외국에 보내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남편들은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며 돌봐야 하고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았고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저 하늘나라까지도 함께 여행할 진정한 벗이라는 믿음 속에서 아내 사랑을 감당해야 한다.
남편의 아내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심기울이기이다. 이 관심기울이기는 사소한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은 과대화의 경향이 있기에 큰 것을 주면 행복할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 관심기울이기는 지극히 작은 부분이다. 한 번 껴안아주는 것, 친절한 말 한마디, 따뜻한 미소,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 진정한 감사와 칭찬 등이 남편이 아내에게 할 수 있는 관심기울이기이다.
사랑과 존경의 의미해석은 쉽지만 사랑과 존경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힘이 든다. 사랑과 존경의 실천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임을 꼭 기억하자.
가정사역자 정동섭 칼럼1
남녀의 차이를 알면 가정이 잘 보인다(1).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마치 개인의 소유물처럼 다루는 것을 보며 자라났다. 이른바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할머니부터 아들 딸 모두를 권위주의적으로 다스리면서 가정에서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대로 아내를 사랑할 인격체로 보지 않고 부려먹을 식모처럼 대우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한국여성의 생활은 권위에 대한 비참한 굴종으로 이어지는 삶이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신체적으로 구타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준비한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머니의 말이 당신의 기분에 거슬렸다 싶으면 예고없이 밥상을 둘러엎곤 하였다. 어떤 일로 어머니와 의견충돌이 있을라치면 아버지는 언제나 언성을 크게 높이심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어머니에게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밥상에서 식사를 했고 어머니와 딸들은 남자들이 식사한 다음에 먹거나 방바닥이나 마루바닥에 앉아서 식사했다. 장유유서나 남존여비 사상은 어린이는 어른 앞에서 그리고 여자는 남자 앞에서 조용히 순복할 것만을 요구했다. 위계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것이었다. 특히 여성에게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이처럼 유교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양반가정에서 자라났다. 내가 자라난 가정의 문화는 삼강오륜에 따르는 남존여비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은 소녀 시절에 부모에게 순종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지아비로 모시고 노년에 이르러 과부가 되면 재혼이 금기시 된 문화 속에서 아들의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했다. 여성의 활동무대는 집안의 몇몇 가까운 친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정에서의 생활은 가장 밖의 확대사회에도 반영된다(Nock, 1987, p. 6). 우리 모두는 가정문화의 산물이다.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1991)이 관찰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갖는 관념이나 남녀관은 모두 모델링(본뜨기)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던 근원가정(family of origion: 출신가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부터 여성을 멸시하고 무시하도록 서서히 사회화되었다. 충청북도 시골에서 자라난 나는 여러 첩을 거느리고 사는 이웃 아저씨가 집안싸움으로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여자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자 쪽을 탓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모든 책임은 여인의 손에 특권은 남자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으로 알아왔다. 한국의 유교문화는 나에게 남자는 항상 옳고 여성은 열등하고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악한 존재라고 가르쳤다.
권위와 순종에서 사랑과 신뢰로
지금부터 반세기 전만 해도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교육과 사회진출의 모든 기회를 누렸다. 그러나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사실상 차단되어 있었다. 양반집 딸들도 극소수만 공적인 교육, 이른바 제도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양반이라는 이유로 서당에 다니며 한문과 한글을 깨우칠 수 있었으나 나의 어머니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평생을 문맹으로 살았던 것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미개하고 미신적인 가정에서 10남매란 대가족의 중간아이로 이렇다 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는 이단집단 구원파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는 남성우위론자로 성장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내가 이단의 앞잡이로 활동했던 8년 동안 더욱 강화되고 굳어졌다. 교주의 측근에서 통역과 섭외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그의 비인격적인 생활양식을 보고 그대로 흉내냈다.
나는 구원파에서 아내를 만났는데 교주가 그의 아내를 대하듯이 나도 내 아내를 마구 다루었다. 나는 아내에게 무례했고 화를 잘 내었으며 끊임없는 잔소리로 아내의 인격을 손상했다. 잠언12장 18절의 말씀대로 나는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했다. 계속되는 잔소리와 언어의 폭력에도 결혼이 파탄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아내가 성격장애자인 남편에게 (장모님이 장인어른에게 하듯)순복하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 처음 6년 동안 처가식구들이 우리 집을 방문한 뒤에 아내에게 하는 말은 “너는 심장을 빼놓고 사는 거냐? 어떻게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에 나는 8년 동안 맹목적 충성을 바쳤던 구원파를 1977년 아내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불쌍히 여겨 이단의 굴레에서 건져주신 것이다. 이단의 교리로 세뇌된 나는 그 뒤 3년 동안 혼란의 와중에서 방황하다가 1980년 서울 ‘사랑의 교회’ 여름수련회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상처투성이인 나를 영접해 받아주셨다(롬15:7). 우리 주님의 인격적인 손길을 경험한 나는 정통교회 안에서 새로이 사회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관과 자아상과 대인관계에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받아주시는 사랑을 경험한 나는 우선 아내와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었다. 여성관, 즉 여성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내를 나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갈3:28)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여성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던 태도가 후회와 용서를 비는 마음,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뒤에 주님께서는 내가 침례신학대학 통역강사로 사역할 때 만났던 두 명의 여자교수를 비롯해 여러 명의 여성 친구들을 허락해 주셨다. 쉘톤(Shelton)교수와 부쉬만(Bushman)교수의 따뜻한 우정과 돌봄이 없었다면 나는 어린 시절과 이단에서 생활하면서 받았던 수많은 정서적 상처를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두 명의 미국인 교수를 나는 내 생애에서 인격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타인을 통하여 나를 어루만져 주셨고 사람을 보는 시각을 바꿔주셨다. 40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통하여 나는 권위와 순종에 의해 유지되던 부부관계에서 사랑과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대등한 동반자관계로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여성은 남성에 의해 늘 천대를 받아왔다. 여성은 합리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대로 단순한 노리갯감이나 성적유희의 대상, 무보수의 요리사, 집이나 지키는 사람, 아이나 돌보는 사람, 그리고 머리가 텅 빈 이등인간으로 취급대기가 일쑤였다. 그들의 의사는 대체로 인정받지 못했고 인격은 무시되었으며 그들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영역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들은 한 세대 전에 비해 현저히 다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지위는 얼마나 향상되고 있는가?
여성의 지위향상과 남녀평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1988년 2월 25일 우리나라 최초로 정부 내에 여성정책을 총괄조정하는 부처로 ‘정부 제2장관실’이 설치되었다. 1989년 12월에 통과된 가족법은 여성의 법적지위를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87-88년에 고시한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내용에 남녀평등을 반영하고 있다. 취업일선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이 정착되어가고 있다.
기독교의 복음이 한국 여성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었고 교육의 기회를 열어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주도하는 가정법률상담소 등의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사회는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족법이 개정되고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졌고 남녀고용평등법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 많은 이들이 남자와 여자가 법 앞에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생활에서 이러한 믿음은 거부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60-70%가 여성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단에서 여성의 사역기회는 차단되고 있다. 그들의 잠재력은 단지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되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의 중요한 의결기관에 여성들이 참여하는 것을 제한시키고 있다.
인간의 사용단어 가운데 “당신 생각에는 어떤 단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 행복, 가정, 하나님, 건강 등을 말한다. 『관계중심전도』의 저자 톰슨(Oscar Thompson: 1980) 목사는 사람의 이름, 즉 고유명사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관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랑과 행복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면 사랑도 행복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모든 관계 가운데서 가장 우선적인 관계로 제시하고 있다(시42:1-2, 엡5:1, 18). 그러나 수평적인 인간관계 가운데서 가장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관계는 역시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엡5:22-33, 골3:18-19). 남편과 아내의 친밀한 관계에 비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주종관계같은 것은 부차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엡6:1-9, 골3:20-4:1).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가 자기보다 연약한 여성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며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여기고 존경하십시오”(벧전3:7, 공동번역)라고 권면한 적이 있다.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롬15:7).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결혼을 비롯한 모든 인간인관의 기본이 된다. “남녀관계보다 우리의 감흥을 일으키는 주제는 없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우리 모두의 생활가운데 대부분의 시와 소설, 대부분의 범죄, 대부분의 고상함과 대부분의 잔인함, 대부분의 환희와 대부분의 권태의 배후에 깔려있다.
창세기 1장 말씀에 의하면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되었다는 데서 발견된다. 인간은 외로운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나’와 ‘너’로서 서로 대면하는 두 인격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하나의 인격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는 우리가 관계를 누리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능력과 피차 관계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김양중의 신앙칼럼
첫째 이야기: 지리산에서
지리산지역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일 것이다. 국립공원지역이어서 개발이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산업기반도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역에는 실상사라고하는 천년 이상 된 고찰이 있다. 달리 생각하면 이 지역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아온 곳이란 뜻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깊은 산중일지라도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깨끗한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수가 흐르는 곳에 아주 오래전부터 터전을 잡고 살아온 것이다.
잘 부르는 찬송가 가사에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라는 내용이 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주님께 나아오면 생수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찬송이다. 사실 예수님 믿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적인 고난을 끌어안고 산다. 그런데 그 내막을 살펴보면 예상외로 진리되신 우리 주님께 집착하는 태도가 많이 약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영적인 관심사가 많은 것 같으면서도 정작 우리 주님께 집착하는 마음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잠언5장 말씀에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는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4장 말씀에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해준다. 만일에 우리가 어린 아이같은 마음으로 우리 주님 한분께 다가선다면 풍성한 은혜의 생수로 우리 심령을 생기 있게 하시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실 주님이신 것이다. 이처럼 해답은 간단하다. 주님께 나아가 주님 안에만 자리잡으면 되는 것이다.
창세기49장 22절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라고 말씀 하신다. 그는 여러 시련을 거치면서 주님 안에 굳건히 자리잡는 법을 배웠다. 사도바울의 그 유명한 옥중서신의 말씀들도 얼마나 ‘그리스도 안에서’가 강조되어서 이야기 하고 있는가? 마치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매여있고 갇혀있듯이 성도들은 주님의 그 귀하신 사랑에 매인바 되어 주의 은혜가 사슬이 되어 주님께만 묶여진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직 주님께 붙어있어 주의 사랑에 정복당한 모습으로 굳이 주님 벗어나고자 하지 않을 때 에베소서1장3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라고 말씀하심처럼 주안에서 참으로 신령한 복으로 부요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반대로 성도가 그리스도 영역밖에 머무르는 삶을 고집부린다면 아무리 주옥같은 말씀들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몫이 되지 않는 한낱 ‘그림의 떡’ 에 불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산짐승들은 자신의 영역이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주님향한 우리의 마음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고 믿는다. 즉 우리는 떠날 수 없는 마음의 주님을 나의 영혼삼고 주님을 나의 거할 거처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시편90편1절에서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터전삼고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왔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의 삶을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우리에게 모든 것 되어주시는 주님께만 철저히 속해 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 속함’이란 사실은 성도의 가슴속의 사무친 고백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소홀히 여겼다가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주님 향해 사무친 마음 품어보았듯이, 누가복음15장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집을 떠났다가 사무친 마음으로 아버지집의 귀함과 복됨을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는 이제는 결단코 아버지집 벗어나지 아니하리라는 뼈있는 생각을 가져보았듯이 주님 벗어나서 해매였던 영혼들은 주님께 돌아와 주님께 속해 산다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좋은 것인가를 사무치듯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고전 2장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 말씀하심을 읽어볼 수 있다. 오직 주님한분께만 집착해 산다는 뜻이다. 요한복음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도 오직 주님한분께만 집착해서 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10장의 선한목자와 양의 비유의 말씀도 오직 주님께만 깊은 관심을 기울여 산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편73편25절에서 ‘하늘에서는 주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자 없나이다’ 말씀해 주신다. 오직 주님 한분을 나의 모든 것 삼고 주님께만 전심전력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현대사회의 복잡함속에 덩달아 성도들의 마음도 생각도 관심도 복잡해져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 우리가 단순해질 수 있다면! 우리 주님은 우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기를 기대하시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요한복음13장 23절에서 사도요한이 ‘주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 말씀하시고 이어 25절에서 ‘주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말씀하심처럼 우리들도 날마다 주님 품 그리워하며 주님 품 의지하며 주님 품에 잠기어서 우리의 온전한 인격과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되는 삶을 빈틈없이 살아가 보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근의 말씀치유 1
첫째 이야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 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
창세기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창조를 끝으로 모든 창조사역을 마치고 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창조물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친구들을 폄하하는 말 중에 한 가지는 “너를 놓고 너의 어머니가 미역을 먹었으니까 한심하다”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네가 지극히 못나서 너의 어머니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을 가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런 무시를 당하는 사람도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입니다. 종종 산을 등산해 보면 절벽경사면에 소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 끈질긴 소나무의 생명력에 감복합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도 바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나 좋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면서 유복자 한 명을 키웠는데 이제 노인이 되어 기력이 다했지만 알콜중독자가 된 그 아들을 알콜중독자 치료보호소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모습입니다. 이 아들을 낳고 과부 어머니는 이 아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좋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알콜중독자가 되어서 집안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기에 치료보호소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더 이상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하지 않고 원수라고 말합니다. 한 때 이 아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좋았던 때도 있었지요. 주님을 떠나 원수마귀의 올무에 묶여서 이 아들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 아들을 하나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사람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사랑의 손길을 펴십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은 여전히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빛, 궁창, 식물, 일월성신, 조류와 어류, 곤충과 육축과 인간 모두 좋습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내 주변에 모든 것도 하나님은 여전히 좋아하십니다.
나의 가까운 친구 목사가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밭에 나는 잡초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잡초도 좋아하기 시작하니까 밭에 나타는 잡초 때문에 힘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좋아하시기에 우리가 때로 손가락질하는 대상인 잡초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둘째 이야기: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 2:25)
여러 해 전에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자녀 문제로 아픔을 겪고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후배인 제가 상담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서 자기 가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가문의 영광을 자랑하는 일에 사람들은 익숙해있기에 가문의 부끄러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 상담은 부끄러운 것을 이야기를 해야 시작이 됩니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서 가까운 친구와 담소하는 과정에서 자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자녀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나는 망설이는 친구에게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권면했고 그 친구는 아들의 알콜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아들을 만나서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참 인생은 이상합니다. 자랑할만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많이 생겨나는지 모릅니다. 부끄러운 일은 가족 사이에도 생겨나고요, 특히 부부사이에도 생겨납니다. 아담과 하와사이에도 부끄러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서로의 부끄러움을 용납하고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21일에 소천하신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늘 부끄러운 생각만이 듭니다. 그 이유는 아버님에게 충분히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종종 저를 부끄러워하셨습니다. 아들이 세상적인 공부도 많이했고 기대를 했는데 아들이 그런 기대감을 채우지 못한다고 늘 생각하셨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동네 사람 챙피해서 못 살겠네.” 이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자녀들이 못된 행동을 하는 경우에 사용합니다. 종종 자녀들이 제대로 행동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기대이하로 세상살이를 할 때에 이런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보다 신심이 깊으신 어머니는 나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목회자로서 작은 교회지만 성실하게 섬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성애는 부성애보다 수용성과 친밀성의 밀도가 크기 때문에 어머님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타락전의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면서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관계하는 사람들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셋째 이야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입히시니라.”(창3:21)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의 열매를 먹고서 눈이 밝아졌지만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다음에 깨닫게 된 사실은 자신들의 벌거벗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원래 이들은 서로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죄를 짓고 나서는 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수치와 허물을 가리고 싶어합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사람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부끄러움과 수치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죄를 짓기 전에 벌거벗은 모습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렸습니다.
하늘 아버님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줍니다. 그들이 왜 에덴동산을 떠나게 되었는가요? 그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죄인된 몸으로 에덴동산을 떠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로 하여금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했고 그 결과로 생긴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었습니다.
좋으신 하늘 아버지는 비록 범죄한 인간이지만 그들로 하여금 은총의 삶을 살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죄악 가운데 계속해서 고통 가운데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죄를 뉘우치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것이 가죽옷이 가진 속죄의 능력입니다.
또 다른 가죽옷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죄와 허물을 가리우는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죄악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 튼튼한 가죽옷으로 죄를 가려주어 사람들의 조롱과 저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렵게 하는 성도들이라도 절대로 미워하지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감싸주었답니다. 교회의 상황을 잘 아는 분들이 걱정이 되어서 교회 장로님들이 잘 협조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열심히 협력해주시고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그 후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문제의 사람들이 완전히 변했다고 합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은총의 가죽옷을 입혀주면서 허물을 가려주었지요. 이것이 가죽옷의 감싸줌의 능력입니다.
배정웅 칼럼
첫째 이야기
아는가? 당신은 타인의 감정을 조종할 힘이 없음을.....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크리스천이 흔히 빠져들기 쉬운 현상에 소위 성자병이란게 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했을 때는 마치 내가 있을 자리 같이 편안한데 그보다 나은 환경에 서게 되면 남들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나만 이렇게 좋고 편안한 환경에서 즐기는 것 같아 웬지 불안하고 죄스럽고…… 결국에는 죄책감에 빠져드는 증세이다. 우리가 어려움을 힘들게 극복하고 이제 막 삶을 좀 즐기고 누리려 할 때 뒤에 남겨둔 사람들 생각으로 죄책감에 종종 빠져들기 쉽다. 아직도 그들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삶을 누리고 살아도 되는지………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의존적 성격 (codependency)의 한 증세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알콜 중독과 구타로 인해 이혼한 남편에 대해 만약 내가 이혼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라고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아이들을 좀더 열심히 교육시켰더라면 그들이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터인데……. 여전히 바람을 피워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부모가 자녀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항의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내가 좀더 인내하고 잘 참았더라면 교회가 이렇게 어려움에 빠져들지 않았을 터인데……. 이럴 때면 어김없이 마음의 평안은 깨어지고 마치 이 모든 일들이 나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죄책감과 후회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을까? 그들이 처한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분리되어 우리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는 일은 고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옳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용서와 용납과 사랑을 더 크게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성장의 목표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이 선택한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지탱하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이해와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그들의 선택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우리는 그들의 선택한 삶을 통제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그 어떠한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과거에 어떤 일들을 했거나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지금 우리에게는 그들을 통제할 어떤 힘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들이 현재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통제할 힘이 없다. 그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분노하거나 원망하거나 실망을 느끼거나 더 나아가 증오하고 배신감을 느끼거나 또는 사랑하고 감사하며 연민을 느끼거나……… 그 어떤 감정도 그들의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해서 바꿀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상대방에게 나의 행동을 변명하는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그들의 감정과 선택에 전혀 무력한 까닭에 만약 다르게 처신하거나 대응하더라도 그들의 감정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들의 치유와 변화는 오직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 몫의 책임이다. 그 누구도 그들 자신을 대신하여 치유로 인도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다. 그들의 회복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치유와 성장은 오직 나 자신의 치유일 뿐이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우리는 결코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그렇게 믿고 행동해 왔다면 큰 착각과 오해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우리의 무력감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바로 보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내가 그들과 함께 묶여 벗어나지 못하고 함께 허우적대고 있던 바로 그 상대방을 사랑으로 풀어줄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된다. 이 때 비로소 죄책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나의 치유와 성장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야기
직접 말하라
“감정이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속임, deceit)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서 드러나리라” (잠 26:24-25)
지난 주(9. 23, 2010)에 뉴욕의 롱 아일랜드 병원 사역자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원목, 호스피스 등등)을 위한 문화적 배려 컨퍼런스 (Conference for Cultural Sensitivity) 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 모임을 주관하는 필자의 슈퍼바이저가 현장에서의 경험을 20분간 발표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하여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데 미국문화에 대하여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미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하여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지를 설명했다. 나중에 질의 응답시간에 두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그것은 한국 문화의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이며 가장 약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를 인용하여 한국의 가족 윤리와 그 강한 연대 (solidarity)는 세계 최고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국 문화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순간적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자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 문화의 부정적인 모습은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묘사된 “체면문화(face-saving culture?)”라는 생각이 얼른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가장 큰 장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체면이 중요한 까닭에 한국에서 좀 그럴듯하고 높은 직위에 있다가 이민 온 한인들은 미국에서 아무 일이나 하기 힘들다. 차라리 학벌, 가문, 지위를 별로 내 세울 것이 없었던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훨훨 날아다닌다. 일전에 아는 한인 가운데 어떤 분은 한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새마을 운동하다가 이민 왔는데 그 새마을 정신으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자기 차에 옷들을 싣고 프리마켓을 여러 곳들을 매일 누비며 그 누구보다 멋진 집도 사고 행복해 하며 감사하며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반면에 필자가 경험한 많은 고학력자들은 언어적 제한 때문에 미국에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신세타령을 하며 탄식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무엇보다 체면문화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도록 이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그렇다고 강변하지만 서양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이런 모습이 의존적 성격(co-dependent)으로 비친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말하고 나누는데 대체적으로 인색한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의사 전달이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이 끼니가 떨어지면 집안 문중의 가장 부잣집을 찾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집 마당을 청소한다. 물론 주인이 그런 일을 시킨 적도 시킬 의도도 전혀 없다. 며칠을 그렇게 하면 주인은 아마도 ‘그 집에 쌀이 떨어졌나 보다’ 라고 추측하여 그가 돌아갈 때쯤 하인을 시켜 쌀 한 됫박을 주어서 돌려보낸다. 그러니 이런 배경에서는 그 누구도 체면을 구길 일이 없다. 정작 아쉬운 사람도 아쉽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물론 주인은 돈이 좀 있다는 죄로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도움을 베풀도록 강요받은 사실에 화가 많이 나겠지만……. 그래도 주인은 자신의 화나고 힘든 감정을 직접 대놓고 말하는 법이 없다. 물론 뒤에서는 화도 내고 상대방에 대해 욕도 많이 하겠지만.....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겉으로는 아무 탈이 없는 듯이 말없이 진행된다.
아마도 이런 예를 들면 오늘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항의를 들을지 모르겠다. 물론 요즘 한국은 필자가 미국에 온 22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미국 안에서 필자가 경험하는 한인들의 모습은 위의 예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믿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않고 감으로, 희미하게, 우회적으로, 자신의 체면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의사 전달을 한다. 문제는 이런 의사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상대방이 직접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게 되면 뒤에서 격렬히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있다.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아마도 이민 목회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교인들의 영주권 문제일 것이다. 이런 경우 본인들이 영주권이 필요하다고 직접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중요한 문제를 다른 교인들이나 친척들을 통해 늘 간접적으로 요청해 온다. 본인들은 전혀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는 듯이……. 제발 직접 말해 온다면 속 시원하게 문제를 털어놓고 예, 아니오를 말할 수 있겠는데 분명히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주쳐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가 연출된다. 혹시라도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건네게 되면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해 보라고 한다고 둘러댄다. 끝까지 남의 탓과 핑계를 대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할 경우 뒤에서 격렬한 비난이 들려오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문화를 떠나서 왜 이렇게 직접 자신의 요구와 생각과 감정을 직접, 정직하게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는 상대방을 통제(control)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대화는 상대방이 듣기 원한다고 생각되는 말들만을 골라서 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자신의 말을 듣고 상대방이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서거나, 싫어할 만한 말을 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남에게 싫은 소리를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기보다 사실은 그 이면에 상대방을 철저히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강한 욕망의 소유자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즉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남에 대한 컨트롤의 욕구가 남다르게 강한 사람이란 뜻이다. 문제는 이렇게 남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나뿐만 아니라 그 상대방까지 희생자와 순교자처럼 억울하게 느끼도록 강력한 덫을 놓는다는데 있다. 이렇게 맺은 인간관계는 서로 불편함을 주고받게 되고 참다못해 결국에는 점점 멀어지고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화를 내다가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부부, 가족, 친척, 교회, 직장 등등 모든 관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필자도 가장 착하다는 교인이 어느 날 말도 없이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나 직접적이고 정직한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 우리는 안전하게 느낀다. 우회적인 사람은 자신의 현재 품고 있는 욕구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까닭에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비록 지금 그것을 말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그 진실을 드러낼 때가 올 것이다. 그 때는 이미 서로에게 되돌릴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고 떠나게 된다. 정직하게 직접 말함은 우리의 시간과 많은 에너지를 절약해 줌을 잊지 말자. 오직 정직하게 말할 때에만 우리 자신이 희생양이라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 비로소 순교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아가 그렇게 될 때 우리에게 진정한 힘과 분별력이 주어진다. 그 결과 서로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렇다. 자신의 의도와 감정을 빙빙 둘러대지 않고 직접,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일은 큰 축복이고 즐거움이다. 하나님도 정직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는 도대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추측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들이 생각과 감정에 정직하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비로소 그들이 정말 원해서 우리 곁에 있는지 아니면 죄책감과 책임 때문에 억지로 머무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이 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과 맺은 관계가 어떤 것인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가 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경우 물어보면 그들이 정직하게 대답해 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이 화가 났는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또 즉시 해결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이 뒤에서 우리를 공격하는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어떤 내용이라도 할 말이 있을 때는 직접 말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비로소 우리가 지나치게 그들에게 기대고 있는지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정직한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김영근의 국토순례여행(37) - 1월 26일
손양원목사님의 숨결이 밴 여수애양원
순천의 찜질방에서 하루를 머물고 순천시내를 걸어서 순천시청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주민지원센터에 들려서 내가 속해있는 학회의 논문심사서를 작성했습니다. 여행 중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었는데 해결하니까 그렇게 홀가분했습니다. 이 지원센터는 도서관도 잘 구비되어있고 여러 대의 컴퓨터가 있어서 활용하기가 좋았습니다. 직원은 나그네에게 커피까지 한 잔 대접하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지역주민센터를 나와서 순천강을 걸었습니다. 순천강은 유량이 넉넉한 강이었습니다. 이 강물은 순천만으로 흘러갑니다. 순천만은 생태계보고입니다. 그래서 순천시는 환경수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높이 올렸습니다. 강가에는 걷기를 위한 보도가 잘 정비되어있습니다. 순천강은 걷기에는 너무나 편하고 아름다운 강이었습니다. 강가에는 많은 선남선녀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가의 정취에 취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강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수 애양원으로 가야합니다. 순천역근처에 여수 애양원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우선 순천역을 찾아갔습니다. 역까지 가는 길이 무척이나 멀었습니다. 강을 걸을 때는 무척 가까운 거리로 생각했는데 시내를 걸어서 순천역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강따라 걷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애양원까지 가는 버스는 오래 기다려야 했기에 우선 율촌이라는 곳까지 가서 그곳에서 서경수 목사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서경수목사님은 필자가 섬겼던 녹산사랑의교회 전임자입니다. 서목사님은 부산 장림동에 있는 사랑의 교회를 사직하고 여수노회에 속한 섬지방에 있는 교회를 섬기다가 2002년부터는 애양원근처에 있는 도성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갈등이 많습니다. 교회내의 갈등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합니다. 의견충돌이 생기고 서로 간에 적대감이 생기면 해결이 되더라도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교회 안의 갈등은 치유하기가 힘들고 나중에는 갈등의 결과로 상처가 너무 심해서 회복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을 때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의만 주장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됩니다.
서경수목사님도 섬에서 목회할 때에 한 성도님 부부가 와서 용서를 빌었고 현재의 도성교회를 섬길 때 다른 성도 부부가 와서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가 용서를 빌러 온다고 해서 이미 모든 잘못을 용서했으니 올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이들은 오게 되었고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직접 용서를 구하니까 정서적으로 더 깊은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임상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율촌에서 서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번 여행길은 많은 것을 정리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서목사님이 사랑의 교회를 떠난 후 약 7개월 정도 동안 교회의 담임목사가 공석이었고 내가 부임한 후에 교회내의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화해하려고 시도했는데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서 목사님은 충청도 양반기질을 간직한 목사님으로서 항상 푸근하며 절제의 덕을 잘 갖춘 목사님이셨습니다. 율천에서 만나서 애양원 가는 길에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 애양원 숙소로 안내해주었습니다. 숙소로 는 길에 국립애양원병원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지리산지역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에 이 병원과 연대해서 시골지역의료지원체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훈련시에 목회자들과 여수근처의 여러 섬들을 다녀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숙소로 사용되는 집은 애양원교회와 병원에서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는 집인데 시설이 편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목사님과 나를 녹산사랑의 교회의 2대목사와 3대목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서목사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나도 2008년도 12월 말로 10년 10개월의 교회사역을 마무리하고서 후에 장신대 강의교수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서목사님은 지금은 여수노회에서 안정된 목회를 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든 섬김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했습니다. 서목사님은 서운했던 이야기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 절제된 신앙인격의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려지는 손양원목사님이 섬겼던 애양원교회의 형제교회인 도성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나는 서목사님이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용서해주셨던 손목사님의 사랑의 체취를 가까이 경험하면서 참된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녁 10시부터 진토리교회 사역자집회 둘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둘째 날 집회에 5분 특강을 맡게 되어서 여러 번 리허설을 해서 메시지를 준비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나서 집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 서경수목사님의 목양사역에 주님의 은총을 더하소서!
주님, 애양원의 모든 가족들과 후손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주옵소서!
애양원을 찾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을 경험케 하소서!"
강성기목사 사랑샘칼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감사드리며
사랑샘사역을 시작한 지 어느덧 1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처음에는 앞이 캄캄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었지만 이제는 서서히 눈앞에 다가온 터널의 끝을 보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한 일이 이제는 함께 더불어 감당하고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끌고 온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그리고 건강하게 지내 온 것,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27세 청년시절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신학을 마친 후 경남지역 복음화에 대한 꿈을 안고 1991년 4월에 서울불광동성서침례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경남 마산(현재, 창원)으로 왔습니다.
저에게 경남지역은 아주 생소한 지역은 아닙니다. 청년시절에 잠시 한국철강에 근무하면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서 자치를 한 적이 있고 거제도 대우해양조선에서 만 5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마산에 와서 처음 약 2년 8개월 동안 일반목회를 하였습니다. 일반목회를 하면서 하나님 말씀(시편 146편)을 묵상하는 중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일반사역보다는 소외계층을 위한 특수사역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1993년 10월부터 알코올 약물의존자, 교도소출소자, 신체정신장애인 등을 섬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1993년 12월 31일자로 일반사역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1994년 1월부터 소외계층인 공동체-사랑샘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특수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을 고치시면서 죄인들과 낮고 천한 자들을 섬긴 것처럼 저도 그들을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사랑샘사역 초창기에 창원보호관찰소를 통하여 보호관찰대상자들과 교도소재소자 및 출소자들의 섬김, 마산역 등지에 흩어져 있던 노숙자들과 알코올 의존자들의 섬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과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청소년들의 섬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과 신체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섬김이 일상생활이 되었습니다.
사랑샘사역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많은 일을 하게 하셨고 많은 사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빵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특수용접, 전기용접, 운전강의)로 산업현장에서의 강의에도 열정을 갖고 뛰었습니다.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사랑샘선교회에서 돌보고 섬기는 소외계층인의 자립과 재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1994년부터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면 그들 중 자립의 의지를 갖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마산교도소(현, 창원교도소)인근과 회원동, 합성동 등지에 인력사무실을 운영했습니다.
1997년 10월에는 사랑샘침례교회를 설립함과 동시에 창원시 의창구 북면 마산리,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창원시 의창구 북면 화천리,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 등에서 직업자원재활센터(고물상)를 운영하면서 그들의 자립과 재활을 도왔습니다.
2000년 11월에는 기독교복음전파를 위한 사랑샘선교회와는 차별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알코올의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계획으로 사랑샘공동체를 설립하여서 2004년 12월에 경남도로부터 사회단체법인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2002년 12월에는 여성가족부의 허가를 받아서 재단법인 성서침례교회유지재단이 주체가 되어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인 사랑이 샘솟는 집(초대원장: 강성기, 2대원장: 문인주)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1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서 예비사회적기업을 운영을 하면서 사랑샘에서 돌보고 섬기는 사람들의 재활 및 직업재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사역방향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축적했습니다.
그들에게 빵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모든 것을 다 얻도록 돕는다해도 영혼의 문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허사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영혼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많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들은 한결같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봉사를 했는데도 돌보고 섬긴 사람들로부터 욕설을 들으면서까지 수고하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들을 통해서 늘 격려를 받고 지지를 받았습니다. 사랑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었습니다. 오늘의 영광은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17년간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샘을 거쳐갔습니다. 사랑샘의 물을 마신 사람들이 사랑샘공동체 회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눈물로 왔다가 웃음으로 나갔습니다. 17년이 지나고 나니까 어떤 사람은 목회자로, 사회복지사로, 행복한 가정을 이룬 가장으로, 어떤 사람은 세상의 가치없는 것들을 버리고 밝고 건강한 행복한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17년간 사랑샘사역을 진행하면서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로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에 많은 고통을 겪고 또 다시 갈 곳이 없이 방황하다가 돌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적응훈련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절대로 사랑샘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침을 뱉고 돌아간 사람들이라도 또 다시 사랑샘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또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샘직업자원재활센터 현장에 배치시키는 일로 여러 차례 시행착오와 함께 수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이전까지 아무리 잘 해 주어도 불만이 생기면 개인차원을 넘어서 집단으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현시대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의 문제, 가치관의 혼란, 가정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물량주의로 큰 것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작은 것에 대하여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며 개인을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회복이 곧 가족의 회복입니다. 가족의 회복이 니라의 회복이 되고 인류의 회복이 됩니다.
사랑샘사역 17주년을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하시고 큰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기도하며 후원에 동참한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로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3:1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8:28)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13:34-3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는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2:4)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가족치유상담센터 소개
가족치유상담센터는 1995년에 김영근 목사가 대전에서 크리스천 상담자를 교육하는 한국크리스천상담학교로 출발했다가 2002년에 가족치유상담센터로 개명한 치유상담전문기관이다. 본 센터는 모든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활동과 치유상담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커플 1박 2일 상담프로그램은 본 센터의 대표인 김영근 목사 부부와 1박 2일 동안 함께 생활하는 부부상담 프로그램이다. 본 센터의 주요활동은 다음과 같다.
►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한국과 지구촌의 모든 가정을 품고 기도하는 모임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군⦁구와 세계나라중의 한나라를 선택해서 개인별로 혹은 공동체별 로 기도하는 모임입니다.
► 가족상담⦁부부상담⦁청소년상담
아픔을 겪고 있는 부부와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상담합니다. 성장 의 아픔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격문제, 학습문제, 대인관계적응 문제를 상담합니다.
► 커플 1박 2일 치유상담프로그램
본상담센터의 대표인 김영근목사 부부와 가정에서 1박 2일을 함께 보내 면서 식사, 상담, 산보, 기도를 하면서 갖는 부부치유회복모임입니다.
► 다문화가정상담 및 탈북자가정상담
국제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식구들과 탈북 북한 이주민가정을 상담합니다.
► 월간쪽지 “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목적으로 매월 1일자로 발행되는 월간잡지입니다. 본 상담센터 카페에 수록되어있고 회원들에게는 이메일로 발송됩니다.
► 상담자교육을 위한 치유상담 아카데미
치유상담자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매해 3월초와 9월초에 시작되며 각과정은 15주 동안 매주 2시간씩 실시됩니다(매주 화요일 실시).
► 글쓰기고백 전인치유: 매년 2월 셋째 주(2박 3일) 실시
► 부부회복 프로그램: 매년 8월 셋째 주(2박 3일) 실시
가족치유상담센터(070-7648-3007)
Cafe.Daum.net/hometherapy0191(가족치유상담센터)
대표: 김영근목사 010-3290-1007/ 실장: 김희라박사 010-3219-1097
사무실: 경기 남양주 금곡동 776 신도브래뉴 102-1304
후원계좌: 농협453032-52-029597 김영근
<손양원목사님 부부 묘소 앞에서 필자>
【월간쪽지 예수사랑 가족사랑 편집후기】
월간쪽지 예수사랑,가족사랑 2010년 12월호를 발행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11년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글을 주신 배정웅목사, 김양중목사, 정동섭교수, 강성기목사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올 12월은 북한의 도발로 힘든 시간이지만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꼭 기도해야 할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보내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좋은 길 벗 김영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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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 김영근.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쓴뿌리치유』. 서울: 목양미디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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