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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전북 지방문화재 제100호
▶소 재 지 : 전북 고창군 고수면 전불.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7쪽 하]
▶내 용 : 노산사는 1826년 경향의 유생들이 양간공(良簡公) 연(璉) 선생을 주벽으로 창건한 사우이며, 건물은 사우 5가 3간, 내삼문 3가 3간, 강당 5가 5간, 돈목재 강당 5가 6간(전북 지방문화재 제100호) 경앙문 3가 3간, 전사실 5가 3간, 고직사 5가 4간이다.
02. 영사암(永思庵)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129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11-1번지
▶내 용 : 영사암은 의정공 김국광 형제가 시묘살이 하던 때인 성화 을미년에 창건하였는데 이는 선영을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26간 집이었는데 동쪽 변두리에 7간이 있고 서쪽 변두리에 섬돌과 주춧돌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있는 건물은 조선조 후기 건물로 한식기와 8작 지붕으로 후면에 있는 문 일부를 변형시킨 것 이외는 대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물은 노후 되어 있는 상태에 있으나 영사암 건립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성이 깃들여 있고 민족 고유의 전통 한옥에서 조선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제자(題字)는 김겸광이 썼다.
03.[광성부원군 사당]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143호
▶소 재 지 :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내 용 : 조선조 중엽 광성부원군 김극성(金克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1간 크기로 맞배지붕이다.
김극성은 연산군 4년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관직에 들어온 후 수찬 병조좌랑을 거쳐 중종반정 때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 4등으로 광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중종35년 사후 충정공(忠貞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선생은 나라가 어려울 때 학문과 덕으로써 고른 정치를 베푼 재상이었다.
04. 김기서 강학당 (金騏瑞 講學堂)
▶지정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소 재 지 : 전북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17쪽 하]
▶내 용 : 이 강학당은 조선 명종 3년에 세워진 건물로 정면 5간 측면 2간의 팔작 지붕으로 조선조 초기의 소박한 건축양식을 본따 지어진 것이다.
성종 10년에 고창읍 호동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학문과 효를 겸비한 선비로 중종 3년에 조정으로부터 광릉참봉을 제수받았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세속을 등지고 후진양성의 전당으로 사용하였던 김기서 만년의 거소를 겸한 이 강학당은 전불사 불당지라고도 전해오고 있다.
▶지정번호 :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13호
▶소 재 지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상권 147쪽 하]
▶내 용 : 부용정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문발(文發)이 1398년에서 1403년 사이에 건립한 정자로서 공의 호로서 부용정(芙蓉亭)이라 편액했다. 이 정자에서는 광주향교의 남전향약(藍田鄕約)과 백녹동규(白鹿洞規)를 수행하였으니 이 고을의 향약좌목(鄕約座目)이 이때부터 시행되었고 정자 주변의 큰 나무도 공이 심은 나무이다.
06. 취석정 (醉石亭)
▶지정번호 :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제153호
▶소 재 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호동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19쪽 하]
▶내 용 : 노계공(蘆溪公) 휘 경희(景熹)가 건립한 정자이다. 공이 명종 을사, 정미 사화에 연루된 후 과거를 폐하고 「천하가 맑은 후 라야 남아가 세상에 나아갈 것이라」하고 취석정을 짓고 양광문(梁廣文), 정자(鄭滋), 이만영(李萬榮), 양응정(梁應鼎)과 더불어 시를 읊고 후진을 양성했으니 저서로 노계집이 있다. 동국필원에 올랐으며 황윤석(黃胤錫), 이민보(李敏輔), 정방(鄭枋)이 행적을 찬하고 참판 기정진(奇正鎭), 판서 김영목(金永穆: 사계 선생의 후손), 대제학 김영수(金永壽: 사계 선생의 후손)가 취석정기를 지었다.
07. 풍영정 (風詠亭)
▶지정번호 : 전남지방 문화재 제4호
▶소 재 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852번지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상권 159쪽 하]
▶내 용 : 칠계공(漆溪公) 諱 언거(彦 )가 건립한 정자, 칠계공은 1503년생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 교리, 응교와 봉상시정, 상주, 연안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으며 승문원 판교를 거쳐 향리로 내려와 풍영정을 짓고 당시의 제현과 도의로 사귀었으며 학문이 높아 가례초(家禮抄), 송사절요(宋史節要)등 수십권의 저서를 남겼다.
▶지정번호 : 전라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 141호
▶소 재 지 : 전북 정주시 소성면 애당리 모촌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40, 41 상]
▶내 용 : 옥산서원은 사우 5가 3간 팔작지붕, 내삼문 3가 3간 팔작지붕, 옥산정사 5가 4간 팔작지붕, 모양문 5가 5간, 영정각 5가 3간, 신문 3가 3간, 삼강정려 돌기둥 2층 구조로 3가 3간 팔작지붕으로 된 보기 드문 양식이며 고직사가 있다.
◈ 옥산서원 사우(玉山書院 祠宇) : 신독재 김집(金集) 문인 충신 의촌공(義村公) 김남식(金南式)을 주벽으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문인 효자 시은공(市隱公) 김이성(金履成), 중주(中洲) 이직보(李直輔) 문인 인일정(引逸亭) 김성은(金性?)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 옥산정사(玉山精舍) : 의촌공(義村公) 諱 남식(南式)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에 일으렀으나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남쪽으로 내려와 계령산 아래 집을 짓고 옥산정사라 편액 후진을 양성한 곳으로 1661년 창건 하였고 1786년에 중건한 건물로 전라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41호이다.
◈ 광산김씨 삼강문(光山金氏 三綱門) : 삼강문은 1828년 나라에서 내린 삼강정려로 특이하게 2층으로 되어있다. 이 정려에는 충신 26世 김남식(金南式), 효자 27世 김이성(金履成), 열려 29世 김윤문(金允文)의 처 완산리씨, 효녀 29세 김윤중(金允重)의 처 연안김씨, 29世 효자 김윤명(金允明), 31世 열녀 김국회(金國檜)의 처 성산이씨, 32세 열녀 김찬영(金瓚榮)의 처 신평송씨의 정려이다.
09.[인일정공의 영정]
09. 인일정공(引逸亭公), 諱 성은(性?)의 영정(影幀)
▶지정번호 :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제141호
▶소 재 지 :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모촌, 옥산서원내 영당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57쪽 하]
▶내 용 : 인일정공은 성리학이 높아 김원행, 송치규, 이서구 등과 경의를 질의하였고 도의로 사귀었다. 저서 및 편저로 동국문헌록, 삼강록, 임병창의록, 성리변론, 태극해설이 있고 노계집을 발간하였다. 조선 및 세계지도 등을 그렸고 장성, 오산에 임진창의비를 세웠다. 유고가 있으니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서문을 지었고 영의정 조인영이 실적을 지었으며 군수 운영구가 묘갈을 짓고 조종규가 묘표를 지었으며 가선대부 안동(安東) 김황진이 행장을 지었다. 좌승지에 증직되었고 옥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영정(影幀)은 화백 석천(石泉) 한용필이 그렸으니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제141호이다.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제110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내 용 :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로 학문과 식견이 높았으며 명종 4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리에 등용되고 사관을 거쳐 부수찬, 전적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명종 21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동부승지를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그 후 평안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대사헌이 되고 주청사로 북경에 다녀와서 이듬해 예조참판에 올라 경연관이 되었다. 졸(卒)한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행장을 짓고 간역 최립(崔笠)이 비문을 지었으며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지문을 지었다.
11. 모선재 (慕先齋)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30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내 용 : 사계 김장생의 부친인 황강 김계휘(金繼輝)와 황강선생의 부친 지례공 김호(知禮公 金鎬)의 재실로 자손들이 조상을 숭상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이다.
의정공 김국광 종가옆에 위치한 건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0여년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전면 4간 측면 2간 건물로 모두 원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관리상태도 양호한 전통건축물이다. 한식 팔작집인 이 재실은 우측면 1간을 제외하고 전면 3간을 길게 마루로 설치하였고 맨 우측 1간을 부엌, 중간 2간은 방으로 그리고 맨 우측간은 대청으로 설치되었다.
12. 좌의정 김국광 묘역(左議政 金國光 墓域)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308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99쪽 상]
▶내 용 : 김국광은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철산의 아들이다. 양천허씨 부인은 그의 조모이며 세조 6년 북쪽 오랑캐의 변을 맞아 경차관(敬差官)으로 나가 오랑캐가 마음을 돌려 스스로 물러나게 하니 그 공으로 병조참판으로 승진하고 그 뒤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세조 13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책훈되고 성종원년에 좌리공신 1등에 책훈되었다. 좌의정을 지냈으며 광산부원군에 봉해지고 경국대전을 편찬하였다.
13. 모원재 (慕遠齋)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308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100쪽 하]
▶내 용 : 조선 초기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의 재실로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건물이 양호한 상태이다.
모원재는 김국광 분묘 조성후에 건립하여 그동안 수차 중수(重修)되어 왔지만 한옥 재실로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4. 침락정 (枕洛亭)
▶지정번호 :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제40호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392쪽 상]
▶내 용 :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영남 북부 열읍(列邑)의 의병대장을 지냈던 근시재 김해(近始齋 金垓)선생의 아들인 김광계(金光繼)선생이 조선 현종 13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 4간 측면 2간의 납도리 집으로 가운데 4간은 마루로 되고 양쪽 온돌방을 두었다. 잡석 낮은 기단위에 방형의 초석과 기둥을 세웠으며 홀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린 간소한 건물이다.
당호는 정으로 되어 있으나 일종의 강당건물로 김광계선생은 이곳에서 학문을 강론하고 시회(詩會)를 열기도 하였다. 원래 안동군 예안면 오천동 낙동강에 인접하여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15. 근시재공 諱 해(垓)의 사당(祠堂)
▶지정번호 :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27호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377쪽 상]
▶내 용 : 참판공의 증손자로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란의 의병장이며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양관대제학 성균관 좨주에 증직되었고 향인이 사우를 지어 향사한다.
16. 창의비각 (倡義碑閣)
▶지정번호 : 전남지방 유형문화재 제120호
▶소 재 지 : 전남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 302번지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상권 165쪽 상]
▶내 용 : 오산 남문창의비는 1802년 호남 유림이 임란에 창의한 의병장 67위를 새긴 비다. 여기에 기록된 광산김씨는 13위 이다. 비는 1802년에 수비하고 비각은 1809년에 창건하였다.
17. 사계 김장생 묘소 일원(沙溪 金長生 墓所 一圓)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제4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200쪽 상]
▶내 용 : 이곳은 광산김씨의 중흥을 이룬 양천허씨 부인과 그의 아들 철산과 부인, 공안공 김겸광, 김공희, 김장생, 김선생 등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김겸광, 김장생의 신도비가 있고 양천허씨 재실인 영모재, 김국광의 종가 및 김장생 사당과 재실인 염수재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전기간에 걸쳐 정치 및 군사,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광산김씨의 정신적 터전을 이루는 유서깊은 곳이다.
18. 양천허씨의 묘(陽川許氏의 墓)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4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88쪽 상]
▶내 용 : 관찰사공 諱 약채의 큰며느리, 조선조 초기의 열부로 양천허씨니 아버지는 대사헌 허응이며, 남편은 고려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을 지낸 문(問)이다. 17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되었다. 친가의 부모가 불상히 여겨 개가 시키려 하자 부인은 죽기를 맹세하고 친가인 개성(開城)에서 어린 아들 철산을 업고 시가인 머나먼 길을 주야로 걸어 연산에 왔다. 그 후 유복자를 정성을 다하여 훈육하고 부도(婦道)를 다하며 79세로 卒하였다.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09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88쪽 하]
▶내 용 : 조선시대의 화려하고 특이한 건축양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이 정려는 정경부인 허씨의 정려이다. 허씨부인은 조선 태조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의 딸로 광산김씨 가문인 김문에게 출가하였으나 17세의 나이로 홀몸이 되었다. 이에 친정부모가 개가 시키려 하자 유복자인 김철산을 데리고 시가가 있는 연산지방으로 내려와 일생을 마쳤다.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세조 13년에 정려를 세워 후세에 길이 현창하였다. 허씨부인은 광산김씨 가문을 크게 일으켰는데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과 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인 김겸광을 비롯하여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 예학의 거두 김장생, 학자이며 정치가인 김집, 김반 등 조선시대 정치, 사상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게 한 것이다.
20. 영모재 (永慕齋)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89쪽 하]
▶내 용 : 영모재는 贈 정경부인 양천허씨의 세일사에 재숙하는 재실이다. 양천허씨의 묘갈은 후손 신독재(愼獨齋) 김집이 지었고, 정려 중수기는 후손 지수(志洙)가 지었으며 사실이 여지승람과 삼강행실록에 실려 있다.
21. 의정공 諱 국광(國光)의 부조위(不 位) 사당(祠堂)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거정
▶내 용 : 좌의정공 諱 국광(國光)의 부조위 사당이다.
▶지정번호 : 국가중요 민속자료 제170호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148번지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하권 155쪽 상]
▶내 용 : 조선조 중기 연산군 때의 성리학자 쌍벽당 김언구(金彦球)선생이 살던 곳에 그의 유적을 기리기 위하여 유림에서 명종 21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선생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향리에서 후진양성에 힘쓰면서 주변 빈터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현재 쌍벽당과 함께 있는 본채는 П형의 평면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연이어져 있는데 안채는 선생의 부친 죽헌 김균(金筠)선생이 1450년에 건립한 것이라 한다. 쌍벽당은 정면 1간 측면 2간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무익공제(無翼工製) 건축으로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으며 중수기(重修記)에 가정(嘉靖) 병인 창건, 임진(효종 3년) 수증측등의 기록이 보인다.
23. 유일재공(惟一齋公) 諱 언기(彦璣)의 종택(宗宅)
▶지정번호 :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113호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사 진 : [광산김씨 유적보감 159쪽 상]
▶내 용 : 지방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된 전통유가의 건물양식으로 전수되어온 유일재공의 종택이다. 공은 퇴계 이황(李滉)이후 여강동주(廬江洞主)가 되어 서원을 여강에 세우고 선사를 높이며, 백운동고사를 모방하여 국학을 장려하고 유학전수에 노력하였다. 기품이 청고하고 용모가 뛰어나 엄정하였으며, 화려한 것을 물리쳐 명예에는 뜻이 없었다. 문인들이 보덕단을 세워 추모하고 안동의 용계서원(龍溪書院)과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되었다.
24. 진사공 諱 정수(廷秀), 配 진천송씨의 묘(墓)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4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정경부인 양천허씨墓 아래
▶내 용 : 승문원 참교공 諱 방윤(芳胤)의 아들, 1541년생으로 자는 사언(士彦)이며, 학문이 일찍 이루어 진사에 합격하였다.
25. 주천서원 (朱川書院)
▶지정번호 :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42호
▶소 재 지 : 전북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주자천)
▶내 용 : 주천서원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산8번지에 있다. 1924년에 세운 서원으로 사당 전면 3간, 측면 2간 맛배지붕이며, 외 3간 1동이 있다. 주벽은 주희(朱熹)선생이며, 배향에 광산김씨 공안공 후손 매곡공(梅谷公) 김충립(金忠立),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이 배향되어 있다.
26. 시서영정 (市西影幀)
▶지정번호 :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145호
▶소 재 지 : 전남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내 용 : 시서 김선(金璇)의 본관은 광산, 호는 시서거사이다. 선조 3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계에 진출하지 않고 초당을 짓고 은거한 인물로 종가(宗家)에 초당한람(草堂閑覽)이 유존(遺存)한다.
영정은 인조 4년 이응하(李應河)라는 화객(畵客)이 그린 것이다. 이 영정은 의자에 앉은 전신상(全身像)으로 약간 우향하여 왼손에 부채를 들고 오른손을 무릎위에 얹은 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안면의 담채화법(淡彩畵法)과 간결한 선묘(線描)의 의습(衣褶)처리, 그리고 죽건(竹巾)과 학창의(鶴 衣)의 겉옷, 신발, 노선(蘆扇) 등 조선시대 중기 17세기의 초상화풍은 물론 당대의 복장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마마를 앓은 얼굴에는 시골 선비다운 강건한 기개와 소탈한 촌로(村老)의 풍모가 담겨있다. 크기는 80×130.5cm로 영정전면 우측 상단에 11행의 자필이 있으며 뒷면에는 시서의 내외사조(內外四祖)와 처의 내외사조의 약력이 기록되어 있다.
27. 사의 김입휘 묘 및 재실 (司議 金立輝 墓 및 齋室)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308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두마면 왕대리
▶내 용 : 황강 김계휘의 아우로 품성이 순후하고 지혜가 총민하여 뛰어난 재질과 아름다운 덕행으로 세상 사람의 추중(推重)을 받았으며 함열현감을 거쳐 장예원 사의를 지냈다. 재실은 모수재(慕修齋)이다.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134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두마면 금암리
▶내 용 : 이 집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고택(古宅)이다.
29. 임이정 (臨履亭)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67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95번지
▶내 용 : 이 정자는 인조 4년에 창건한 것으로 당시 조선시대의 거유인 사계 김장생선생이 황산에 정자를 짓고 학문을 가르치고 닦던 곳이다.
정자는 3간 정면에 2간 측면으로 방문은 12짝으로 되어 있는 팔작지붕의 한식기와집으로 그 건축양식을 보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조정에서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는 재목을 스고 그 양식을 따라 건축한 유적이라 하겠다. 임이정 뒤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다 하며 그 앞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어 굽이돌아 흐르는 금강물과 펼쳐진 모래사장과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다.
임이정이란 이름 이전에는 「황산정」으로 불렸던 것 같고 임이정이란 이름은 대학에 있는 여임심연 여이박빙(如臨深淵 如履薄氷)의 구절에서 따온 듯 하다. 임이정 천정에는 한시가 있는데 이 한시는 송귀봉선생이 사계선생의 정자인 「임이정」을 두고 축하하며 칭송한 「황산정운(黃山亭韻)」의 한시이다.
30. 염선재 (念先齋) 안채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315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두마면 금암리 45번지
31. 염선재 (念先齋) 및 정려(旌閭)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316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두마면 금암리 45번지
▶내 용 : 이 곳은 순천김씨의 재실이다. 순천김씨는 정부인을 추증받았고 충익공(忠翼公) 김종서(金宗瑞)의 7대손이다. 나이 17세에 아버지의 계훈(戒訓)에 따라 사계 김장생의 집에 들어가서 부군(夫君)을 섬기며 조상의 원통함을 신설(伸雪)하기 위하여 꾹 참아오다가 사계선생이 별세하니 부인이 애훼(哀毁)하여 거의 생명을 보전치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정성을 다하였고 겨우 담제( 祭)를 마친 후 순절(殉節)하였다.
32. 요월정 원림(邀月亭 園林)
▶지정번호 :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70호
▶소 재 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황룡리 171번지
▶내 용 : 이 정자는 조선 명종 5년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金景愚)가 기묘사화후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던 곳이다.
정자에는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명현들의 시가 32개가 현판에 새겨있다.
특히 후손 김경찬(金京燦)은 "조선 제일의 황룡이라" 현판하여 나라에서 불러 "황룡이 조선 제일이라면 한양은 어떠한고" 하문하니 '천하의 제일입니다" 그럼 "중국의 낙양은 어떠한고" 하니 "만고의 제일입니다"고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정자 밑으로 황룡강이 굽이쳐 훌렀으며 백일홍과 노송으로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33. 와룡암 (臥龍庵)
▶지정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 제18호
▶소 재 지 : 전북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내 용 : 이 와룡암은 조선 선조 때 첨지중추부사로 봉직한 김중정(金重鼎)선생이 인조 15년에 관직을 사임하고 현 위치인 주자천(朱子川) 와룡암(臥龍岩)위에 효종 원년 창건하였으며 이 지방민의 수학의 도장이 되어 수백명의 유생을 배출한 유서깊은 유적이다.
34. 김집 선생의 묘 (金集 先生의 墓) 및 신도비(神道碑)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296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내 용 : 이 묘소는 신독재 김집선생의 묘소로서 전면에는 신도비가 있다.
김집은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사계선생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예학의 체계를 확립하는데 크게 공헌 하였다.
성리학, 철학, 사상가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특히 예론에 밝았다. 아버지인 사계 김장생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어 있으며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35. 김집선생 종택 및 사당 (金集先生 宗宅 및 祠堂)
▶지정번호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294호
▶소 재 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내 용 : 이 사당은 신독재 김집선생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본래 돈암서원 옆에 건립 하였는데 고종 17년에 서원을 옮겼다. 종가 후편에 건립된 이 사당은 조선조 건축양식으로 된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집 건물이다.
신독재 김집은 광산김씨 문중의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진사가 된 후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로 은퇴하였다가 인조반정 후 부여현감으로 다시 등용하였고 이어 지평 집의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후 퇴직하였다가 효종때에 이르러 대사헌 좌찬성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36. 김반의 묘 및 신도비 (金槃의 墓 및 神道碑)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 제7호
▶소 재 지 : 대전시 서구 전민동
▶내 용 : 이 곳은 조선 인조때의 충신이며 대학자였던 김반의 묘이다. 선생의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舟)다. 전통적 명문유가인 사계 김장생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당시 왕을 남한산성으로 모시고 둘째아들 김익희와 함께 전투를 감독하고 격려하였으며 그 때 부인 서씨와 셋째아들 김익겸도 강화에서 순절하여 정려문을 세웠다.
묘 주위에는 상석 문인석 묘비 정려각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의 글을 청음 김상헌이 짓고 글씨는 동춘 송준길 선생이 썼다.
37. 창주공 김익희의 묘역 (滄洲公 金益熙의 墓域)
▶지정번호 : 대전광역시 지방문화재 제5호
▶소 재 지 : 대전시 유성구 가정동 산 8-9 과학공원 뒤
▶내 용 : 허주공 김반의 둘째아들로 인조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남한산성으로 모시고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산성을 방어하며 척화(斥和)를 주장하였고 효종대왕의 북벌계획을 은밀히 도왔으며 이조판서 겸 양관대제학을 지냈고 영의정을 추증받았다.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며 문집이 세상에서 널리 알려졌다.
38. 문충공(文忠公) 諱 만기(萬基)의 신도비(神道碑)
▶지정번호 : 경기도 지정문화재 제131호
▶소 재 지 : 경기도 군포시 대야미동
▶내 용 : 충정공 諱 익겸(益兼)의 장자. 조선조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영숙, 호는 서석이다. 송시열이 묘표와 신도비문을 짓고 이이명이 시장을 지었다.
39. 환벽당 (環碧堂)
▶지정번호 :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
▶소 재 지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번지
▶내 용 : 환벽당은 교리공 諱 윤제(允悌)가 구축하여 후진을 양성했으니 송강 정철(鄭徹= 공의 외손서( ) 김성원= 공의 종질) 충장공 덕령(德齡) 형제(공의 종손)등 수 많은 인물을 배출했으며 김하서, 고재봉, 기고봉, 임석천, 박회재, 백옥봉 등 당대의 명사들과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읊었다. 김하서는 도연명의 집에 비유하였고 정송강은 「높은 기상 곧은 지조를 상상할 수 있도다」하였다.
40. 식영정 (息影亭)
▶지정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내 용 : 서하당공 諱 성원(成遠)이 구축한 정자이다. 식영의 뜻은 "그림자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 똑같은 것이요, 그늘지면 없어지고 햇볕이 나면 나타나는 것이니 사람의 처세함도 이와 같은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송강 정철과 더불어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으니, 산수가 수려하여 전국의 사림(士林)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읊었다.
41. 충장공(忠壯公) 諱 덕령(德齡)장군의 충효지리(忠孝地里),
▶ 정려(旌閭: 지방문화재 제4호) ·수목(樹木: 지방문화재 제16호)
▶소 재 지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5번지
▶내 용 : 충효지리는 교리공 諱 윤제(允悌) 서하당 諱 성원(成遠), 충장공 3형제(德弘, 德齡, 德普)등 랑장공 후손들의 발상지이다. 1789년 충장공을 좌찬성에 가증하고 이곳(충효리)에 정려각과 충효리 비(碑)를 세우고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를 심었다. 그 뜻은 일송은 하늘의 본성으로 푸르고 절조함이요, 일매는 천고절조요, 오류는 고향을 상징하는 뜻으로 충장공 부처(夫妻)의 높은 절조가 있는 고향이란 듯이다.
42. 주검동 (주劍洞)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 제21호
▶소 재 지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산 214-1번지
▶내 용 : 충장공 諱 덕령이 임진왜란 이전에 병사를 훈련하고 병기를 만든 옛터이다. 광주 무등산 북쪽 기슭에 있는데 광활하고 험준하며 지금도 칼과 화살촉을 만든 주동의 흔적이 있다. 후에 그 터의 암벽에 큰 글씨로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의 주검동이라 각자하고 유적지로 보호하고 있다.
43. 풍암정사 (楓巖精舍)
▶지정번호 : 지방문화재 제15호
▶소 재 지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금곡리 정암
▶내 용 : 습독공 諱 붕변(鵬變)의 아들, 1571년생으로 諱는 덕보(德普)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이며 공이 세운 정자이다. 공은 문장을 숙취하였고 임란에 두형(덕홍, 덕령)이 전사하자 지리산에 은거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풍암정사를 구축하고 안방준, 정홍명 등과 종유하였다. 장원서 별제와 찰방을 제수되었으나 취임치 않았고 정묘호란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의열사에 배향되었다.
44. 정읍 김동수씨 가옥 (井邑 金東洙氏 家屋)
▶지정번호 : 전라북도 중요 민속자료 제26호
▶소 재 지 : 전북 정읍군 산외면 오공리
▶내 용 : 이 가옥은 김동수의 6대조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창하산(滄霞山)을 배경으로 앞에는 동진강의 상류인 하천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터전에 세운 주택건물이다. 바깥 행랑채의 소슬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다시 안 행랑채의 안 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대청을 이루며 좌우 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평면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 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이 건물은 비교적 섬약(纖弱)한 부재(部材)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조선후기에 지은 중류이상의 주택 건물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있으나 건립자의 독창성을 엿보게 한다. 후세에 보수 되거나 개조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택과 주위환경이 잘 정돈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집의 주위에는 8채의 호지(護指: 노비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2채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