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운것도 없다
남보다 잘냔것도 없고 가진거라고는 주민등록증
하나 밖에 없는 왜소하고 소심한 제가 사회에 적응이 될까
항상 그부분이 고민스러윘다
그래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나를 채용하려는 사람들도 쉽게 만날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중 시골 친구가 밥이나 사준다고 해서 만나 보니
시골티를 완전히 벗어나 세련된 이미지에 자신 만만한
포스로 나를 압도하면서 비싼 저녁을 사주고 거금의 용돈까지 손에 쥐어 주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자기랑 같은 업종에서 일도 할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을 하고 다음을 기다렸다
그 친구로 인해서 소위 말하는 요정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은 하찮게 여길지라도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여기에서
답을 찾고 싶어 죽어라 최선을 다해 인정 받고 싶어 조금도
망설임없이 나를 보여 주고싶었다 그야말로 요정생활은 나에게는 지상천국이었다
생전 보지도 못한 최고급 양주에다 맛난 요리갸 있고
돈도 일반 직장인의 한달치를 단 몇칠만에 벌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는 내 또럐의 어린 호스티스 아가씨들의 분내가
기운까지 나게 만들었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티브에서만 보던 우리 사회의 고위층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각종 진귀한 요리들 촌티를 벗어났다고 놀리는 꽃보다 예쁜 아가씨들 나는 조금도 요령조차
피울줄도 모르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 했지만 전라도 출신이라 언제 어떻게 뱨신 할지도 모른다고 수근거림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일했고 나하고는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우리 구성원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낮에는 좋아하는 책도 마음꺼 보고 기다리는 저녁은 돈도 벌고 멀찍이서 그 분위기에 취해 신기하기도 하고 일도 재미 있게 했다 주인 마담에 눈에 들고 그 구성원으로 인정도 확실하게 받았던 같고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이 헌 운동화 한컬래 신고온 내가 앞서 가는 그랜져를 따라 갈수 있는 방법은 여기에서 받드시 성공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심만 가득찼다
손님들도 나를 싹싹하다고 이뻐 하시고 팁도 두둑히 받을수
있고 같은 구성원인 마담 지배인 아가씨 하다못해 주방에서 일하시는분들 조차 나를 호감있게 대해 주니 참 그런 느낌이 좋았다
내가 이 바닥에서 살아 남으려면 공부를 해야 했다
친절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실력은 무한 자본이다
그래서 먼저 손님 얼굴 기억하기 그 손님의 취향이 뭔지 좋아하는 음식은 어떤건지 어떤 분위기를 선호하는지 또한 가장 중요한것은 어떤 스티일의 아가씨를 원하는지 파악하는게 그분들을 더 편하게 모시는 방법중에 하나다
사실 그분들은 워낙 사회적으로 위엄과 귄위가 있었서인지
겸면쩍게 어떤 아가씨를 부르고 퇴짜 놓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업상 접대가 필요하고 사회생활에 걱정과 근심을 털어 놓고 싶어 지인들 또는 접대 파트너를 모시고 오고 그분들의 취향에 맞게 내가 정성으로 다하고 언제 어떻게 오섰는지 어떤 써비스를 원했는지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오시면 친절하게 아는체 하기를 시도하니 관계가 가까워졌고 자기를 알아주니 지갑도 스스로 열어 주셨다
그리고는 거래처 전화번호를 모조리 외위 버렸다
저녁 장사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술도 시키고 얼음도 주문하고 아가씨들의 한복집도 야채가게도 밴드 마스타까지도 출근하는지 안하는지 알수가 없는 아가씨들의 집전화까지 전화번호 수첩을 찾을 필요도 없이 번호가 슬슬 나와
일처리가 편하니 직원들이 나에게 부탁들도 하였다
사실 바쁜 와중에 수많은 전화번호 찾으려연 여간 성가신
일이 이니다
요정의 세무일부터 업소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찾아서 하나에서 열까지 챙기고 내것으로 만들고 업소에 들어오는 입구 주변까지 늘 깨끗하게 가꾸니 다른 가게에서도 누가 나를 쉽게 무시하지 않고 저절로 내편이 되어주었다
요정생활에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자신감도 생기고 재미도 붙여갔다
그러던중 저녁 늦게 마무리를 하고 토요일 저녁 늦은 시간에 모처럼 친구을 만나 잠깐 스트레스도 풀고 새벽에 들어와 잠을 청하다가 아침 이른 시간 전화벨에 간신히 눈을 떠서 전화를 받았다
어제 저녁에 접대건으로 오셨던 개발공사 사장님이 직접 전화해서 지갑을 잃어버려 찾으려고 하는데 지집속에 중요한 서류와 신용카드 신분증 현금등 몽땅 분실하여 꼭 찾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시간이면 우리 구성원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라 찾아 보겠다고 비몽사몽간에 대충 대답만 하고 그냥 잠이 들었다
점심 무렵에 사장님께서 나를 깨우더니 자기가 전화를
누구로부터 받았는데 현금은 필요 없으니 긴급한 서류만이라도 꼭 찾고 싶다는 말끝에 거기 직원에게 전화 했는데 주인에게 전달도 되지 않고 성의 없이 전화를 받는거 보니 그 직윈이 아무래도 수상 쩍으니 닥달 해보라는 이야기까지 내게 하시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데 그제서야 나에게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음을 느끼고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사실은 잃어버린 지갑은 본인 책임이고 어리고 선량한 아가씨 누구도 손댈 사람이 아무리 봐도 없었다 귀가중 분실 했을거라 단단히 믿었다
사실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늦은밤에 외출하고 그방을 정리한게 나였고 전화까지 문제가 생기니 영락없이 도둑이 되어
있었다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백번을 이야기도 햬도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고 말문을 막았지만 오히려 더 구차하게 나를 조여 오고 있었댜
노련한 사장님은 우리 가게 구성원 모두를 불러 모아 놓고 중요한 서류만이라도 찾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참으로 모든 화살이 나에게 집중 되어 몹씨
불편했지만 뽀족한 방법이 나로써는 없었다
그러고도
몇칠 지나 그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대문 앞에서 지갑을 발견했단다
그렇다고 누명이 벗겨질리도 없고 답답한 상황은 이어지고
지갑만 찾겠다는 사장님은 약속을 어기고 지문을 채취해
범인을 찾아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조금 시간이 흘러 아가씨 한명이 사장님
면담을 신청하여 그걸로 마무리 되었지만 나에게 누구도
위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아련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군대를 제대하고 그 추운 겨울에 시골 집을 나섯는데
겨울을 보내고 봄에 올라 가라는 아버지 성화를 뿌리치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그리던 서울에 도착했지만 막상 갈곳은 한군데도 없고
먼저 올라온 친구들도 별반 도움도 되지 않아 소개료도 없이 직업소걔소를 찾아 들었다 다행히도 목욕탕 탈의실
자리 하나가 나와 소개를 받았다
따뜻하게 겨울 한철을 목욕탕에서 머무는것도 좋을것도 같고 무엇보다는 소개료가 들지 않아 맘에 들어 어르신을 땨라 종암동 산비탈 목욕탕에서 힘들지 않게 숙식이 해결되어 조마 조마한 마음이 해방이 되어 너무 좋았다
겨울 석달을 큰 근심없이 그럭저럭 지냬다 보니 사회로
나가고 싶어 동네 사람들도 샤귀고 손님들도 사귀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던중 뜻밖에 사고가 터졌다
오후 시간은 정먈 휴식시간이나 다름없는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 사우나에는 중년 남성 한명 초등햑교 학생 한명 나까지 세명이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명은 귀가 하고 나 혼자만이 탈의실을 지키던중
사모님께서 호출이 와서 카운터로 들어가 보니 방금
가섰던분이 그때 당시의 한달 월급을 도난 당했는데
생각나는게 뭐 없는지 확인 해보랴고 하시면서 조금 전에 나간 초등학생이 아닐까 설마하면서 말끝을 흐리면서 내게 물어 보는거라 내가 알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 멍때기만 하다가 나라고 무슨 재주가 있을까 싶고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주눅이 들었지만 사장님 내외분들의 심성이 위냑 좋은분들이라 믿었다
그분들의 상심한 모습이 걱정도 되긴 했지만 그때 보일러
기관장이 올라오시더니 내일은 인근 학교에 가서 소수문
해보아야겠다고 하시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바로 밖에 뛰쳐 나가 내가 평소에 튀김도 사주고 챙기던
초등학생 애들을 만날수 있어 방금 목욕하고 나간 친구을 꼭 좀 알아봐 댤라고 부탁하니 어린 친구 하나가 바로 자기 친구가 방금 목욕을 하고 위로 올라갔다는 소리에 같이 가서 확인 해보니 그 친구는 탈의실 사물함이 열려 있어 지갑을 보고 경찰관 신분증에 마음이 떨렸으나 참고서를 사야해서 이내 돈을 훔쳐 가지고 책을 사오면서 집에 오자 마자 나를 만나 것이다
참고서 값을 제외하고 책 갈피에 있는 돈을 회수하여 내돈을 부족분에 보태어 그 경찰관에게 그돈 전부를 전해주고 나니 어딘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가난이 뭔지
가난이 죄다
집안을 보니 부모님은 어디론가 일 나가시고 가정 형편이 몹시 궁핍한 전형적인 빈민촌 산동네의 그 학생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에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 댜음에 좋은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난 혼자 산 동네를 쓸쓸하게 내려 오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몹시 저려 오던 기억도 가물가물 올라 왔다
파랗게 피워나는 유흥의 뒷골목에서
내 푸른날에 고달픔도 자식이 객지에서 배골치만
않게 해달라는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당산나무 앞에
막걸리를 따라 놓고 수없이 절을 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난 한시도 놓아 본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