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계 파]
김방경의 6세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 중 13파만이 현존하고 있다. - 제학공파(提學公派) : 김익달(益達) -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 김사렴(士廉) - 익원공파(翼元公派) : 김사형(士衡) - 조선개국 1등공신. 태종때 좌정승에 올랐다. - 군사공파(郡事公派:) : 김칠양(七陽) -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 김구용(九容) -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 김구정(九鼎) - 밀직사사공파(密直司事公派) - 개성윤공파 - 전서공파 - 복야공파(僕射公) - 안정공파 - 대호군공파
[ 대표적 인물 ]
- 김선 :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를 지냈다. - 김흔 : 김방경의 아들. 찬성사를 지냈다. - 김순(恂): 김방경의 아들. 삼사판사(三司判事)를 지냈다. - 김윤(倫):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를 지냈다. - 김승용(承用) : 김선의 아들. 대제학을 지냈다. - 김승택(承澤) : 평장사를 지냈다. - 김영돈(永暾) : 유명한 무장(武將)이다. - 김영후(永煦) : 우정승을 지내고 후손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구안동'의 주축이 되었다. - 김질 : 좌의정을 지냈다. - 김수동(壽童) : 영의정을 지냈다. - 김찬(瓚) :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자점(自點) : 인조 때 영의정으로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구안동의 세는 꺾이게 되었다. - 김제갑(悌甲) : 원주목사로 임진왜란 때 순절했다. - 김시양(時讓) : 판서를 지낸 청백리이다. - 김휘(徽) : 김시양의 아들.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득신(得臣) : 숙종 때의 시인이며 참판을 지냈다. - 김응하(應河) : 무장(武將)으로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 김응해(應海) : 김응하의 동생.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중기(重器) :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구(九) : 백범(白凡). 독립운동가, 정치가. 3.1운동후 중국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지냈으며, 1928년에 항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40년 임시정부의 주석이되었으며, 해방되자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여 독립당 당수 등으로 있다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 족보 발행 ]
- 경진보 : 1580년(조선 선조 13년) - 기미보 : 1739년(조선 영조 15년) - 무술보 : 1778년(조선 정조 2년) - 을유보 : 1825년(조선 순조 25년) - 임인보 : 1902년(조선 고종 6년) - 을해보 : 1935년 - 기미보 : 1979년
- 무진보 : 1988년3월
[항렬표]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원(源) |
영(榮)- |
-묵(默) |
재(在)- |
-회(會) |
태(泰)- |
-식(植)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용(容)- |
-교(敎) |
종(鍾)- |
-우(雨) |
병(秉)- |
-희(熙) |
기(基)-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현(鉉) |
수(洙)- |
-동(東) |
연(然)- |
-혁(赫) |
진(鎭)- |
-영(泳)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근(根)- |
-병(炳) |
효(孝)- |
-용(鏞) |
택(澤)- |
-목(穆) |
희(熹)- |
49세 |
50세 |
5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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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圭) |
련(鍊)- |
-준(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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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인구] 398,240명이 있다.(198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