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어떻게 '피서'했을까 |
1910년대엔 용추폭포·광주천서 더위 식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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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산구 신가동 풍영정 주변 정경. 1920년대 이곳 극락강가에 수영장이 들어서는 등 광주에도 몇군데 근교 피서지가 출현했다.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광주광역시 |
|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염을 벗어나려는 여름휴가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도시를 빠져 나가려는 차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수백만 명이 바다와 계곡을 빼곡히 메운다. 이맘때가 되면 으레 되풀이되는 이런 광경은 이제 여름 풍속도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사실 10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여름휴갗라는 개념은 없었다. 휴가란 말과 얼추 비슷한 말로 `말미’라는 게 있었는데, 이것은 외방에 나가있던 관리들이 일시 집에 돌아가 가사를 돌보거나 여인네들이 몇 해에 한번 시댁 식구들의 치다꺼리를 뒤로하고 친정집을 방문하는 것을 의미하는 정도였다. 물론 이런 말미는 여름과 특별히 연관된 것은 아니었다. 여름은 그저 다른 계절보다는 조금 한가한 시기일 따름이었다.
더구나 무더위 속에 집밖을 나서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흔히 집과 그 주변에서 여름나기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피서지라는 개념도 있을 리 만무했다.
여름휴가를 겸한 `피서’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엽이었다. 물론 1910년대까지도 용추폭포나 광주천에 가서 잠시 더위를 식히던 광주사람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집 근처의 계곡이나 개천을 찾는 것으로 피서를 대신했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피서의 방식이 바뀌었다.
이 무렵 여름철만 되면 전국의 유명 피서지를 소개한 기사가 신문지면을 가득 메웠고, 당시엔 사뭇 선정적으로 비쳤을 수영복을 입은 여자들의 사진도 거리낌없이 실렸다. 또 주요 피서지에 요즘의 펜션 임대와 비슷한 사업이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광주에도 몇 군데 근교 피서지가 출현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곳이 됐지만 광산구 신가동 풍영정 앞의 극락강가나 임곡동의 황룡강변에 수영장이 들어선 것이다. 이들 지역은 지금이야 교외 축에도 들지 않을 만큼 도시화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곳들이지만, 당시엔 시내에서 꽤 먼 거리였다. 그럼에도 이들 지역이 피서지로 개발된 데는 교통수단이 큰 몫을 했다.
요즘 피서는 집과 도시, 그리고 일상을 탈출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를 띤다. 물론 이런 탈출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높은 자동차 보급률이다. 또 자동차는 피서지의 선택폭을 넓혀 이제껏 때묻지 않았던 자연마저 떠들썩한 유락지로 오염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몇 세대 전만 해도 이런 일은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다. 색다른 곳을 찾는 일은 접어두더라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가까운 물가까지 가는 일 자체가 큰 곤욕이었다.
1920년대에 이런 곤욕을 덜어주고 피서의 관념을 바꾸게 한 것은 철도였다. 풍영정 앞 극락강 수영장이 생겨난 것도 1922년 광주-송정리간 철도가 놓인 뒤였다. 철도회사는 여름마다 풍영정 근처에서 1분간씩 정차를 해 수영객을 내려놓곤 했다. 황룡강변의 임곡수영장도 그 근처에 임곡역이 없었다면 피서지가 되지 못했을 운명이었다.
철도는 피서객을 좀 더 멀리까지 실어 나르기도 했다. 지석강변에 위치한 능주의 영벽정 일대가 광주사람들의 피서지가 된 것은 1932년 여름부터였다. 이곳은 광주에서 30여 km나 떨어진 외진 곳이었고, 이 때문에 과거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1930년 광주-여수간 철도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고, 때마침 전국을 휩쓸던 피서열풍에 맞춰 강변에 임시 정거장이 생기면서 광주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게 됐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유명 피서지들 가운데는 이처럼 일제시대의 철도회사들에 의해 개발된 곳이 많다. 영벽정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개발된 여수의 만성리나 보성의 율포해수욕장도 광주-여수간 철도를 소유했던 남조선철도회사가 직·간접으로 개발한 곳이었다. 광주지역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산 명사십리·부산 해운대·보령 대천·서천의 무창포 해수욕장도 모두 이 무렵 철도교통이 낳은 유명 피서지였다.
1920~30년대에 시작된 교통과 피서의 이런 관계는 오늘날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 아마도 해방 후에 우리 모두가 열심히 일해 집집마다 자동차 한 대씩은 가지게 된 덕분일 것이다. 물론 그 덕에 우리는 교통체증이란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교통체증에 `왕짜증’이 나 되돌아오는 사람들도 내년이면 다시 피서행렬에 뛰어들 것이다. 일상의 버거운 짐을 덜고, 무료함을 달래고, 진짜 더위라도 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행의 즐거움과 자유의 만끽도 크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가 너무 많은 차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잠시 눈을 찔끔 감고 휴가부터 떠나자. 교통체증도 지구온난화도 당신의 차가워진 머리에서 해결책이 나올 테니. (본 기사는 '광주드림'사의 제공에 의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
조광철 <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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