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대상 판결
1. 사건 개요
가. 이 사건의 원고들은 피고인 현대미포조선과 도급 계약을 체결해 이른바 협력 업체의 관계에 있던 용인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용인기업과 피고 사이 도급 계약에 따라 피고 회사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해 왔다. 원고들이 소속된 용인기업은 2000년 겨울 폐업했고, 원고들은 졸지에 직장을 잃고 실업자 신세가 됐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나. 원고들은 피고와 용인기업 사이에 체결된 도급 계약은 위장 도급이고, 따라서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는 직접 근로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원고들의 노무 제공은 근로자 파견에 해당하고, 구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3항에 정해진 고용 의제가 적용돼 직접 근로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 하급심인 부산고등법원2)은 인정되는 사실 관계를 통해 피고와 용인기업 사이의 계약 관계는 위장 도급이 아니라 실질적인 ‘진정 도급’에 해당하고, 원고와 피고 회사 사이에 근로 관계나 근로자 파견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2. 대법원 판결 요지
가. 원고용주에게 고용돼 제3자 사업장에서 제3자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 근로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원고용주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제3자의 노무 대행 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은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또 근로 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간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대법원 1979.7.10 선고, 78다1530 판결 ; 1999.7.12자 99마628 결정 ; 1999.11.12 선고, 97누19946 판결 ; 2003.9.23 선고, 2003두3420 판결 등 참조).
나. 원고들이 소속된 용인기업은 약 25년간 오직 피고 회사로부터 선박 엔진 열교환기, 시 밸브(Sea Valve), 세이프티 밸브(Safety Valve)의 검사·수리 등의 업무를 수급인 자격으로 수행해 왔는데, 피고 회사는 용인기업이 모집해 온 근로자에 대해 피고 회사가 요구하는 기능 시험을 실시한 다음 그 채용 여부를 결정했고, 그 시험 합격자에게만 피고 회사가 직접 지급하는 수당을 수령할 자격을 부여했으며,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거나 승진 대상자 명단을 통보하는 등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의 채용·승진·징계에 관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피고 회사는 원고들의 출근·조퇴·휴가·연장 근무·근로 시간·근무 태도 등을 점검하고, 원고들이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 방법·작업 순서·업무 협력 방안을 결정해 원고들을 직접 지휘하거나 또는 용인기업 소속 책임자를 통해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했으며, 용인기업이 당초 수급한 업무 외에도 원고들로 하여금 피고 회사 소속 부서의 업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용인기업의 작업물량이 없을 때에는 교육, 사업장 정리, 타 부서 업무 지원 등의 명목으로 원고들에게 매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는 등 직접적으로 원고들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행사했다. 더 나아가 용인기업은 원칙적으로 수급한 물량에 대해 시간 단위의 작업량 단가로 산정된 금액을 피고 회사로부터 수령했지만, 피고 회사는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이 선박 수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피고 회사의 다른 부서 업무 지원, 안전 교육 및 직무 교육 등에 종사하는 경우 이에 대한 보수도 산정해 그 지급액을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원고들에게 상여금, 퇴직금 등의 수당을 직접 지급했다. 한편 용인기업에 대한 작업량 단가는 피고 회사 소속 근로자(이른바 직영 근로자)로 조직된 용인기업 노동조합과 피고 회사 사이에 체결된 임금협약 결과에 따라 결정됐으며, 원고들의 퇴직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 역시 피고 회사가 기성 대금과 함께 지급하는 등 피고 회사가 원고들의 임금 등 제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마지막으로 용인기업은 사업자 등록 명의를 가지고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소득 신고, 회계 장부 기장 등 사무를 처리했으나, 이러한 사무는 피고 회사가 제공하는 사무실에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용인기업은 독자적인 장비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소속 근로자의 교육 및 훈련 등에 필요한 사업 경영상 독립적인 물적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다. 이러한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춰 살펴보면, 용인기업은 형식적으로는 피고 회사와 도급 계약을 체결하고 소속 근로자들인 원고들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자신의 사업을 수행한 것과 같은 외관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업무 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 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피고 회사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 대행 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고, 오히려 피고 회사가 원고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 조건을 정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는 직접 피고 회사가 원고들을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Ⅱ. 평 석
1. 들어가며
주식회사 현대미포조선의 사내 하청기업인 용인기업 소속 근로자들이 원청 기업인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종업원 지위 확인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2008.7.1 현대미포조선과 원고들 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원고들 근로자가 원청 업체인 현대미포조선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 판결이 선고되자 대부분 언론들이 판결의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고, 노동계에서는 대법원의 판결 내용에 대해 매우 환영하는 평가들이 쏟아졌다. 그와 같은 반응들을 감안한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법리적 부분에만 한정한다면 위 판결은 대법원의 기존 법리에 따른 것으로 새로운 법리를 설시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사내 하청에 있어서 하청 기업 소속 근로자의 사용자
가. 사내 하청의 의의
기업이 타인의 노무를 이용하는 가장 기본적 방법은 근로자와 직접 고용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직접 고용 외에도 기업은 근로자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노무를 제공받을 수 있고, 오히려 특정한 분야에서는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간접 고용 방식 중에서 주로 기업들은 도급 방식을 많이 이용하고 있고, 그 외에도 파견·사내 하청·근로자 공급 등 다양한 형태의 간접 고용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내 하청은 원청 회사와 하청 회사가 도급 계약을 체결하고 원청 회사의 사업장에서 하청 회사의 근로자들이 원청회사 소속 근로자들과 함께 원청 회사의 생산 시설을 이용해 사실상 원청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생산 업무를 수행3)하는 노무 도급의 한 유형이지만 본래적 의미의 도급과는 구별된다. 사내 하청은 고용과 사용이 구분되고, 파견법이 금지하는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에 근로자가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불법 파견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또한 기본적으로 도급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나 그 실질은 위장 도급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 원청 회사가 사내 하청 회사 근로자들의 사용자가 되는지 여부가 특히 문제되고 있다.
나. 노동관계법상 사용자
노동관계법상 각종 권리 의무 주체인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다양한 근로 제공의 형태에 따라 누가 사용자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노동관계법은 근로자와 대향 관계에 있는 권리 의무 주체를 각 법률에 따라 사용자 또는 사업주로 달리 규정하고 있다. 가장 근간이 되는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은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 경영 담당자, 기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위 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위와 같은 정의 규정만 본다면 어느 정도 사업주 또는 사용자의 확정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노동관계법상 권리 의무 내용이 다양하게 규정돼 있고, 그 각각의 권리 의무에 따라 수범자도 달라질 필요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4) 실제 법률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각종 구제 절차 및 소송 요건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당해 근로계약의 당사자이어야 한다. 특히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의무를 지는 사용자로 인정하기 위해 엄격하게 근로계약의 존재를 전제해 왔다. 이는 채권 발생 원인을 계약, 불법 행위·부당 이득·사무 관리 등에 한정하는 민법의 기본 태도에 비추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직접적인 근로계약의 체결이 없는 경우에도 제3자를 실질적인 근로계약상의 사용자로 보는 경우가 있고, 이러한 경우 묵시적 근로계약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묵시적 근로계약이 존속하는 것으로 평가할 것인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다. 묵시적 근로계약의 존속에 관한 판단 기준
이에 관한 직접적인 논의는 아직까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반면 이와 관련한 논의는 주로 위장 도급과 파견을 구별하기 위한 기준이라는 측면에서 진행되어 온 것처럼 보인다.5) 이 사건 대상 판결도 도급과 파견을 직접적으로 구별하기 보다는 어떠한 경우에 묵시적 근로계약의 존속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관해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이전에 은마아파트 사건6) 등에서도 설시된 바와 같이 ‘원고용주에게 고용돼 제3자 사업장에서 제3자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 근로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원고용주는 사업주로서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제3자 노무 대행 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은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또 근로 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간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례 법리에 대해서는 제3자와 근로자 사이에 강한 사용 종속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 중간에 존재하는 원고용주가 조금이라도 지휘 명령권을 행사한다면 제3자의 사용자성은 부인된다고 하거나7) 사용 사업주와 근로자간이든 혹은 고용 사업주와 근로자간이든 하나의 근로계약 관계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고에 기초한 것이고 근로계약 관계의 다면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간접 고용에서 사용자 개념을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는 논리8)라고 하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평가는 앞으로 대법원 판례의 전개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3. 불법 파견에 있어서의 고용 의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불법 파견의 경우에 구 파견법 고용 의제 규정이 적용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파견법상 고용 의제 규정에 따른 판단은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대법원 태도는 이전에 있었던 인사이트 코리아 사건9)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인사이트 코리아 사건에서 대법원은 ‘실질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사건에서 파견근로자법상의 근로자파견계약이 성립됐음을 전제로 제6조 제3항의 고용 의제 규정이 적용된 결과로 비로소 그와 같은 고용 관계가 성립된 것이라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적절하지 아니하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고 보았다. 즉 실질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사안에서 파견근로자법상 고용 의제 규정으로 우회할 필요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태도라 할 것이다.
4. 결 론
대규모 제조 업체에서 사내 하청은 일반화 돼 있다. 이러한 사내 하청은 대부분 도급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직업안정법이나 파견법을 잠탈하는 위장 도급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법적 제재가 이뤄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대부분 진정 도급임을 가장하는 외형적 요소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원심은 외형적 요소에 가로 막혀 묵시적 근로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와 같은 외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요소들을 중시해 사내 하청을 위장 도급으로 판단했다. 이는 간접 고용 근로자의 권리 보호 수준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것으로 구체적 정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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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여 대법관 재판장 안대희, 김영란, 이홍훈(주심)
2) 부산고등법원 2005.11.9 선고, 2004나9787 판결
3) 변호사가 풀어주는 노동법 Ⅲ,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119면.
4) 대법원 2004.2.27 선고, 2001두8568 판결은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5) 이러한 도급과 파견의 구별에 관한 판단 기준과 관련해서는 변호사가 풀어주는 노동법Ⅲ 203면, 검찰의 불법 파견 불기소 처분의 부당성에 관한 긴급 토론회 자료집(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7면 등 참고
6) 대법원 1999.11.12 선고, 97누19946 판결
7) 윤애림, 다면적 근로 관계에서 사용자 책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학위논문, 51면.
8) 도재형, 상시적 구조 조정에 따른 고용 법리의 재조명,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학위논문 158면.
9) 대법원 2003.9.23 선고, 2003두3420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