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약속
-여성인턴제 에듀케어과정을 시작하면서-
봄볕도 푸근하고 바람도 기분 좋게 간질간질합니다. 마음만 들로 산으로 내달리고, 몸은 그저 햇살이 밝은 창밖을 향해 눈과 귀를 쫑긋거립니다.
창 밖에서 소리들이 들리네요. 조잘조잘 높고 낮은 음이 섞여서 떠다니고 있습니다. 학교가 파했나 봅니다. 조금 전까지도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골목 안에 차오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를 부르며 뛰어가거나 떡볶이 가게 앞에 모여 있겠지요. 어떤 장난꾸러기가 던진 신발주머니에 맞아 울고 있는 여자아이도 있을 겁니다. 그 옆에 정의파 어린이가 흥분하여 따지는 모습도 떠오르네요. 갑자기 학교가 끝난 후의 해방감도 함께 맛보고 싶고, 심각한 아이들 사이의 문제에 끼어들고도 싶어집니다. 이 소리가 조금만 더 계속 된다면 쫓아 내려가 잠시라도 어슬렁거리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동화작가 현덕의 이야기책에는 노마, 영이, 똘똘이, 기동이 같은 친구들이 나옵니다. 이 친구들의 놀이는 아주 단순합니다. 고양이가 담 밑에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 고양이가 되기로 합니다. ‘야우웅’ 하며 소리와 모양을 흉내 내다가 아주 고양이가 되어버립니다. 생각도 고양이처럼 하면서 북어를 몰래 꺼내다 먹습니다. 혼이 나도 고양이니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또 바람이 불면 모두 바람이 됩니다. 웅웅거리며 바람아이들이 골목을 누비고 다닙니다. 큰 바람이 작은 바람을 막으면 작은 바람은 샛바람이 되어 빠져나갑니다. 책 생각을 하다 보니 창 밖에서 아이들이 책가방을 던져놓고 바람놀이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책속의 이야기이고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현실의 아이들은 조금 후면 이 골목에서 모두 바람처럼 사라질 겁니다. 학교 옆에 살기 때문에 잘 압니다. 알록달록한 봉고차들이 데려가거나 어깨에 저마다 가방 하나씩을 메고 흩어집니다. 엄마가 일을 하시는 경우는 물론이고 엄마가 집에 있어도 요즘 아이들은 자꾸 어디로 갑니다. 놀이터에 모여 노는 아이들도 없고 심심한 아이들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하면 어른들은 깜짝 놀라서 놀이수학과 놀이영어 놀이과학 같은 ‘놀이학원’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들은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돌다가 가끔 길에서 마주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놀이와 이야기들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혼자 놀기 시작한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아무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미술치료나 음악치료 독서치료들의 층이 보편화 되어 우리아이들이 언제 부턴가 심리상담과 치료의 ‘대상’이 되어 있더군요. 소통하지 않는 아이와 어른은 바로 단절된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 합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아이들이 놓여 있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에 뒤지는 대분분의 아이들은 여타의 보살핌에서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형편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충청북도와 교육청이 협력하여 실시하는 “여성인턴제” 에듀케어교사 파견이 소중한 우리아이들의 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사회적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에 반가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에듀케어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교육생 여러분들 또한 현실과 아이들의 마음 사이에 기꺼이 다리 역할을 하고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방과후보조교사로 파견된 각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어린이들과 어머니같은 선생님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오징어놀이'도 하겠지요. 구구단도 함께 외우고 연극놀이도 하겠지요. 풀꽃과 곤충을 관찰하기 위해 손잡고 들에도 나가겠지요. 선생님 무릎앞에 모여 앉아 동화도 듣겠지요. 그곳은 ‘술래잡기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외치면 와그르르 모여들 아이들이 있는 곳입니다.
어린시절의 즐거움과 슬픔과 감동의 기억이 문학과 예술로 꽃피우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놀이들 속에서 지혜와 끈기를 배운 것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경쟁에 앞서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합의가 되었다면 이제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믿을 때까지 이어가야겠습니다. 여성인턴제 에듀케어과정이 여성의 취업과 사회적일자리창출의 의미를 넘어 지속되어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아이들과 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 도정신문 2006. 4월호 / 여성발언대
- 충청북도 여성인턴제 사업관련 글
- 오혜자 / 초롱이네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