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을 찾아] 2. 인천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랑의 열림터
"사랑은 무엇과 같을까요? 그것은 가난한 이들과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며 그들의 불쌍함과 애처로움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이며 다른 사람의 한숨과 슬픔을 들을 수 있는 귀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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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내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던 곳과 인접한 동네였다. 어렴풋이 어릴 적 살던 집과 유치원과 골목길의 정경을 떠올려 보기도 하지만 이젠 그 때의 기억은 어디서도 더듬어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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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전동의 비탈진 주택가 골목길의 어떤 집 문 위에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열림터’ 라고 쓰여진 나무 현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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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키가 무척 크신 서양 신부님 한 분이 편안한 스웨터 차림으로 현관 앞을 쓸고 계시다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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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복을 입고 계시진 않았지만 그 분이 바로 뵙기로 약속했던 미카엘 원장 신부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분은 1985년에 수도회의 한국 진출을 위해 호주에서 온 신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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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고 외롭고 허기진 영혼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되어주는 곳, 그들의 말을 애정을 다해 들어주는 귀가 되어주는 곳, 그래서 ’열림터’라고 하는 그 집을 나는 ’달팽이 집’ 이라고도 불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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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땅에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4층으로 쌓아올린 그 수도원을 둘러보기 위해선 가파르게 굽은 계단을 빙빙 돌아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치기 쉬운 영혼들을 보듬는 아늑함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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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수도원의 구석구석을 모두 안내해 주었다. 방금 도배를 마친 아주 작고 깨끗한 수사님의 방과 2층에 가꾸어 놓은 햇살이 내리쬐는 아담한 정원, 그곳에선 앳된 모습의 수련 수사님 두 분이 신발장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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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봄기운이 묻어나는 햇살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뜬 채 잠깐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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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에 사로잡혔으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저토록 행복한 표정으로 이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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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로 사람들의 얘길 많이 듣는 편이에요. 한국말이 서툴러서 말하기 보다 들어주는 일이 훨씬 쉬워요" 라고 신부님은 농담처럼 겸손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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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는 세태 속에서 마음을 열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며 편견 없이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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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내 몫의 시간을 쪼개내야 하며 때론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중요한 일들을 뒤로 미뤄 놓은 채 마음 안에 타인을 위한 여백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를 비워낸다는 것이 우리에겐 그토록이나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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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354~430) 성인은 그리스도적 문학의 고전인 자서전 ’고백록’에 기록한 것처럼, 방탕한 청년기를 보낸 후 그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의 눈물 어린 기도로 33세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드라마틱한 삶을 산 분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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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후 40여년 동안 이룩한 업적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며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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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우리가 함께 모여있는 목적은 일치하는 가운데 우리의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봉사하기 위함이다"라고 요약되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을 따르고 있으며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내향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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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인간 내면에 있기 때문이며 "네 마음이 변덕스럽다고 생각되면 너 자신을 넘어서서 이성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다다르라"고 성인은 말씀하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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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85년 인천 교구장 나길모 주교님의 초청으로 영국과 호주 관구의 4명의 수사 신부가 도착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뒤로 필리핀 사제 3명이 파견되어 선교 활동을 하고 있고 한국 수사님 11분이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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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신부님이 수도회에 대해 여러 가지 소개를 해주시던 중에 6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부모 역할을 하시는 바르나바 수사님이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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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랑’이라는 이름의 청소년 가정 공동체는 IMF 이후 해체되는 가정이 급속도로 늘어가면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2002년 2월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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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했던 아이들, 각자 나름대로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피는 수사님을 보며, 이젠 공기나 물처럼 익숙해져 그 고마움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않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미카엘 신부님은 잿빛 눈동자에 깊은 생각을 담은 채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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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삶의 핵심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들은 너무 바빠요. 어머니들도 바쁘고 아이들은 공부하느라고 너무 힘들고 모두가 늦게 집에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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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호텔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줘야 합니다.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이 정말 중요한 건지 그 의미를 잃고 있어요.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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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와도 같은 속도의 흐름에 줄이 끊긴 부표처럼 표류하고 있는 가정들의 실상이 아릿하게 가슴을 저며왔다. 수도원을 떠나기 전 신부님과 함께, 커다란 온돌방의 감실 앞에서 잠시 침묵 중에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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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 각자의 가슴이 서로에게 ’열림터’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조금쯤은 걷고 있는 속도를 늦추고, 이쯤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눈부터 깊이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그의 결핍과 아픔이 무엇인지 헤아리게 해 주시고, 서로를 멀어지게 만드는 벽의 정체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모든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심안을 열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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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기의 빛 바랜 기억들이 아릿하게 떠오르는 그 골목, 그리고 달팽이 집 같이 아늑한 수도원엔 시간이 다른 곳 보다 한결 느릿한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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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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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입력시간 : 2002.03.28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