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박사 윤송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주요직책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대에 명품인재반열에 오른 이 사람을 보라.
윤송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고무줄이나 인형놀이보다 궁금한 것들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일찍부터 과학자들의 위인전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과학에 관심과 소질을 보였다. 그 결과 자신의 방을 현미경,실린더,비커 등이 가득한 실험실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화공약품 원액 등 온갖 재료들을 청계천 등지에서 구해다가 혼자만의 과학실험을 즐겼다.
이 아이는 학창시절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엔 길거리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져 피가 나는데 울기는커녕 자신의 피 형태가 궁금해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이때 처음으로 적혈구를 발견하고 신기했다. 곤충을 채집하느라, 산길을 지도로 그리느라 집 근처 산 속을 8시간씩 헤매 다니기도 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답을 찾지 못하면 도서 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모두 뒤졌다. 스스로 이해 되고 납득할 때까지 파고 들었다.
어린시절의 작은 소망은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늘 작은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기록’의 연속이다. 서울과학고 2년 만에 조기졸업, 카이스트 수석 졸업, 전 세계의 내로라 하는 수재들만 모인 MIT에서 국내외 통틀어 최연소 박사학위취득, 귀국 후 맥킨지사 컨설턴트, SK텔레콤 최연소 상무,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에서 ‘주목할 만한 세계 여성기업인 50명’에 선정.
이런 그녀의 유명세는 정치권에서 먼저 파악했다. 전국구 1번을 제의하며 입당을 권유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치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확실한 금배지 제의를 사절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서 샘물을 팔 때 가장 좋은 생명수를 만들 수 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천재공학박사’라고 하면 흔히 갖게 되는 고정관념도 해당되지 않는다.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외골수와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멀티형인간이다.
카이스트 재학시절 수채화 그리기를 좋아해서 미술 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했고, 합창단 활동, 챔버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주자로도 활동할 만큼 예술방면에 재주가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왔던 그녀는 원래 음악, 미술 등을 좋아해 예술중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었지만 과학 실험실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진학을 포기했다.
지금도 여가 시간에는 영화를 보고 바이올린을 연습한다. 시간 나면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데 아주 빠른 곡을 정신없이 연주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요리 또한 즐긴다.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이렇게 피력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냄비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요리다. 요리는 소금을 한 스푼 더 넣느냐 덜 넣느냐, 참기름을 많이 넣느냐 조금 넣느냐에 따라 요리가 달라지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가 무엇을 하든 즐기는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다.
윤씨는 누구보다 집중력이 탁월하다. 카이스트 재학시절 수많은 에피소드 중,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다 말고 불현듯 문제의 해답 아이디어가 떠올라 식판을 떨어뜨리고 실험실로 올라간 일화는 지금도 그의 후배들이 전설처럼 즐겨 인용한다.
또 MIT 미디어랩에서 6명과 팀을 이뤄 로스앤젤레스 전시회에 출품하는 합성캐릭터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다. 3개월간 실험실에 붙박여 하루 20시간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그렇다고 나머지 4시간을 온전히 수면시간으로 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잘 때도 연구를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곤 했다.
이런 놀라운 집중력과 근성으로 버터낸 윤씨는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오는 날 수면부족과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1주일 동안 입원한 그는 하루 종일 잠만 자며 체력을 회복했다.
인생에서 공짜로 1년이 생긴다면 “맘껏 연구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자기 일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어떤 일이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그녀의 수면시간은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6~7시쯤 일어난다.
윤 박사는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남들이 이 분야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어느 분야든 내가 정말 더 알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관심이 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면 전망이 없어도 언젠가는 세계 최고로서 즐길 수 있다. 동기와 호기심을 마르지 않게 하라."는 조언도 들려 주었다.
윤 박사도 자의와는 관계없이, 20대에 이미 천재 이미지로 자리매김되었다. 그의 이력은 천재의 요건에 착 들어맞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결코 천재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거듭된 성공의 길을 걸어왔다면 그건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하는 걸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앞으로도 돈이나 명성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을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녀의 꿈은 과학기술과 인간을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한번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풀릴 때까지 무섭게 매달리고,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린 채,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오직 그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는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을 가진 그녀가 그려낼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건 매우 유쾌한 일이다.
50~60대 되면 자신은 이런 위치와 모습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나이 들어서는 후배 들이 찾아왔을 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녀는 20대에 남다른 탁월함을 생산하고 있다. 그녀의 이력만으로도 명품인재로 선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가 만들어갈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윤송이 박사에게 뽑아낸 성공의 핵심코드
관심이 가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라.
자신의 한계를 긋지 말고 적극적으로 덤벼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소신을 가지고 하면 최고가 된다.
‘왜’라고 질문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