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운문-차하>
강산
김후란
물결 흘러가듯 세월은 이끌리는데
넉넉한 시간은 어디에 묶이어
갈 길을 잊었는가
푸른 나래 산야山野는 한눈에 들어오는데
시시각각 내뿜는 한숨소리는
고즈넉이 가라앉아 시야를 흐린다
그 어느 날 지치고 지친 생명들이 어우러
아라를 이룰 때
한 잎 풀이되어
이 강산을 노래해 볼까나
<일반부 차하-산문>
꽃물로 지은 밥상
전정숙
흔들리는 어머니의 걸음이 위태롭다. 간신히 몸을 실은 버스 안에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않고 만다. 사람들의 시선이 어머니에게로 향한다. 겨드랑이에 양쪽 팔을 끼워 넣어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힌다. 몸이 이렇게 쇠약해 지신줄 가까이 살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모시고 간 한의원에서는 우울증으로 인해 체력이 너무 약해지셨다며 나를 올려다보신다. 자식으로서 이지경이 되도록 어찌 몰랐냐는 무언의 꾸중을 하시는 듯 해 마음이 편치않다. 벌서 몇 번째인가 해마다 반복되는 우울증으로 피폐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도 몹시 지치게 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머니의 쓸쓸한 어깨와 힘없이 나부끼는 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건강하고 밝은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 안 어디에 숨어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오래된 우물속에서 물을 길어올리듯 젊은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 한 가운데 나무가득 설탕같은 하얀 꽃망울을 가득 매단 그 집에 어머니가 계셨다. 내 유년의 뜰을 거닐면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살아나와 내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하는 마음 따스한 그 집. 8남매를 낳으신 어머니가 그 마당안에서 꽃무늬 자잘한 몸빼바지를 입으시고, 매화꽃이 비치는 그 물로 쌀을 씻고, 열무를 씻고, 쇠죽을 끓이셨다. 매화가 사시사철 피는 꽃이 아닐지언대 내 기억속엔 언제나 눈부신 그 꽃이 비친 꽃물로 밥을 하신 기억만 새로운지 모를일이다.
어머니는 어려서 조실부모를 하였다. 막내딸로 태어나셔서 부모와의 인연이 다른 형제들보다 더 적으셨다. 부모로부터 따스한 밥상 한번 제대로 받아 보시지도 못하고 집안일만 도맡아 하시다가 열아홉살에 시집을 오셨다. 깐깐한 홀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 속에서도 어머니는 마실 나가는 시어머니의 흰고무신을 깨끗이 빨아 뜰팡에 널어 말리셨다. 틈틈이 열한명 대식구의 밥상을 차려내시는 일이 어찌 고단하지 않으셨을까. 늦게 귀가하는 자식들을 위해 따듯한 이불속에 묻어둔 아랫목의 고봉밥을 꺼내어 따스한 밥을 먹게 하셨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아랫목의 밥은, 지금도 지치고 힘이 들때면 가만 눈을 감고 떠올린다. 꽃물로 지은 밥으로 국과 반찬을 지으신 어머니의 손과 아랫목의 고봉밥은 영원한 삶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이른 새벽, 부엌 한켠에 떠놓은 정화수에 온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기도소리에 이어 쌀을 씻는 어머니의 새벽소리들. 어머니의 그 마음들을 왜 커가면서 잊게 되는지 슬픈 미소가 든다. 어머니가 차려 주신 그 밥상에서 밥을 먹고 몸을 키워 이렇게 잘 자랐는데 그 감사함을 왜 자꾸 잊는지.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속물이 되었나보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어머니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자식을 키우면서 밥상을 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일인지 느껴보지 않았던가.
오랜만에 어머니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따듯한 국과, 입맛에 맞는 반찬을 올린 식탁을 두고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드린다. 아기처럼 잘 받아 드신다.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이 강처럼 흘러내린다. 내 눈에도 별빛이 흘러 국으로 뚝뚝 떨어진다.
<차하-산문>
생명의 밥상
최광성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내와 나는 아파트생활을 하면서도 베란다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크고 작은 화초와 함께 키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상추는 사시사철 밥상에 오르는 단골이 되었다. 무엇이든 심고 키우는 재미에 빠진 우리 부부에게 산을 좋아하는 사촌아우는 산도라지, 산더덕도 캐서 보내고 시골에 사시는 처형은 참마를 화분째 가져가라고 하신다. 이러니 좁은 베란다는 마치 아프리카 밀림처럼 녹음으로 가득 찰 수 밖에 없다. 사실, 가까운 재래시장에 나가면 손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햇볕과 통풍을 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자라는 채소를 키우는 재미는 그렇게 쏠쏠할 수가 없다. 밥상을 차려놓고 우리는 ‘무공해 베란다표 야채’라고 낄낄대며 맛난 성찬을 즐긴다.
핼쓱해진 겨울산이 봄을 맞아 활기를 되찾고 녹음빙초가 우거지는 새 생명의 계절이 오면 아내와 나는 가벼운 차림을 하고 산과 들을 헤맨다. 황량한 대지위에 싹을 틔운 냉이와 달래를 캐어 집된장으로 국을 끓이면 겨우내 움츠러들가던 몸과 마음이 활짝 꽃을 피우듯 개운하고 가벼워진다. 처음에는 쌉쌀한 맛이 나는 씀바귀김치는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올 해는 부지런한 아내덕분에 머우나물맛도 보고 언제 뜯어놓았는지 산취나물로 몇 끼를 맛나게 먹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과 들을 찾는 탓에 차트렁크에는 아내와 나의 호미가 두 자루가 들어있다. 지천으로 자라는 나물과 먹을거리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그 맛을 보기가 쉽지않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철마다 풍성한 먹거리를 주는 자연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 아닐까…
지금도 어려서 산골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 때를 돌아보면 소박한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그 꿈에서도 구수한 된장국에 호박잎을 쪄서 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는 어머니손만 닿으면 맛난 별미로 변하는 게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는 줄 알았다. 차려주신 밥상에 앉으면 나는 게눈 감추듯 밥그릇을 비우곤 하였다. 그런 나를 쳐다보시던 어머니는 고기반찬도 못해줘 미안하다며 기특한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당신이 드시던 밥그릇을 슬며시 내 앞으로 밀어놓으셨구 철없던 아들은 어머니밥그릇까지 깨끗이 비우곤 하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멀건 누른지로 허기를 채우셨다. 그 때는 몰랐지만 크면서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아프던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어머니가 가이없는 마음에 얼마나 보답을 할 지…
비개인 오후 아버지는 작은 망태를 들고 앙증맞은 버섯을 따다 두부와 돼지비계를 쎃어넣고 맛있는 찌개를 뚝딱 끓여주시기도 하였다. 그래도 시골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버지는 파종할 씨앗과 자반고등어 두어손을 잊지않으셨다. 장작불위에 석쇠로 구운 고등어맛은 내가 이 세상에서 먹어본 생선중에 으뜸이었다. 시골에서의 밥상은 늘 소찬이었지만 대부분 자연에서 얻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병원치레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게 먹고 자란 것이 보약이 된 것 같다.
우리가 지나치게 인스턴트 식품과 기름진 음식으로 산성화되고 성인병이나 비만이 사회문제로 까지 대두되는 현실에서 진정 생명이 밥상을 자연에서 얻는 보석같은 친환경먹거리들이다. 녹색환경은 그래서, 신이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축복이 되는 것이다.
<차하-산문>
밥상
김현섭
지난해 8월 정년을 맞이하여 30여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났다. 그 후 가끔 동료나 제자들을 만나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이라며 이런저런것을 해 보라고 권한다. 뭐 특별히 하던 운동도 없고 해서 언제부터인가 짬만 나면 여기저기 걷는 일이 많아졌다.
송대 공원은 걷기운동을 하면서 자주 찾게 된 곳이다. 내가 사는 곳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했다. 학교와 집밖에 모르고 지내던 나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한눈에 들어오는 호수는 고요했고 길섶에 핀 야생화는 아름다웠다. 몇 그루 소나무와 목백합나무 그늘은 편안한 휴식처가 되었다.
가끔 산비둘기 울음소리도 들렸다.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새가 있는가 하면 호수 위에 날아와 한참을 노닐다 가는 새도 있었다.
우리의 삶에서 자연을 보며 가져보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큰대자로 누어서 하늘도 보고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도 보면서 지난날을 회상하고는 했다.
오늘은 푸른청원생명축제 행사장에서 백일장이 있는 날이다. 초등학교때 소풍가는 전날처럼 마음도 설레이고 잠도 설쳤다.
여느때 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무얼 먹나? 냉장고도 열어보고 어제저녁 먹다남은 찌개냄비도 열어본다,
나는 슬하에 아들과 두딸을 두었다. 두딸은 미국에서 살고 아들은 분가해서 살고 있다. 아내는 가끔 두딸이 있는 미국에 가면 두어달은 머물다 온다. 그러다보니 혼자 밥상을 차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시계를 보니 백일장에 가야할 시간이 촉박하다. 서둘러 찌개를 데웠다. 오늘 반찬은 찌개 하나다. 빈의자를 둘러본다. 내옆은 아내의 자리이다. 5인용 식탁에 모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던 때를 떠올린다. 가족들도 나처럼 나혼자만의 밥상을 떠올릴까?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 치민다. 듣기로는 혼자 사는 노인도 많고 기러기 아빠도 많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1년에 한두번은 온가족이 모여 밥상에 둘러 앉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함께 풍성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오늘도 백일장이 끝나면 송대 공원을 걸어 볼 생각이다.
나뭇가지 끝에는 단풍이 물들고 있다. 머지않아 오색으로 물들고 있다. 머지않아 오색으로 물드는 만추가 되면 아내의 생일이다. 그날만큼은 온가족이 모여 풍성하고 따듯한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그날이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