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이승혁:1993 인천 강화 출생
강화고등학교 졸업 예정
우물이 있던 자리
잠 못 이루는 잔별들이 풍덩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드는 밤
할미의 쇠잔한 잔기침을 받아내는 밤안개가
처마 끝에서 너울지며 유영하고 있었지
빨랫줄에 걸린 물때의 온기가 자정을 적실 때면
어린 나의 입 속으로 곳감같은 어미의 숨결이 아득하게 쏟아졌었지
위태로운 유년을 닮은 초승달이
내 여린 이마를 가만히 보듬고 가곤 했지
바다의 능선을 타고 돌아오던 메아리가
어린 치어들을 깨워놓고 산 그림자 속으로 흘러가던 날
두레박을 혼자 끌어올리자 변성기의 새벽들이 사춘기처럼 찾아 왔지
할머니, 내 울대의 잔별들이 사라졌는지
우물에선 맑은 목소리가 올라오지 않아요
누군가 머릿속에 방생한 악몽들만 짜디짠 입가를 헤엄치고 있어요
줄이 끊어진 두레박은 우물 속 깊이 가라앉았고
전설들 두레박을 기울여야 또 다른 힘을 얻던 유년의 꿈들도
더는 담겨지지 않아요
얘야, 네 어미의 바다는 새벽시장 마른 비늘의 궤짝들 틈이란다
횟 속 깊이 박힌 몇 개의 미늘과 목젖을 열 때마다
아아.. 말이 되지 못하는 실어증의 힘으로만 너를 낳았단다
그렇게 할머니의 유언이 몇 줌 두레박속의 전설로 담겨지는 사이
어머니의 바다 더 깊은 궤짝들 틈으로 실종 되었고
지금은 어떠한 우물거림으로도 씹히지 않는 먼먼 날들의 그 바다
저물녘
늧 가을의 핸들을 구부리며 깃드는 *산문리 451번지의 안마당 고요가
방금 전 그 파도에게라도 들켰는지
아주 오랜 옛날의 어신처럼 기억의 지느러미 하나로 획 사라지고
있었다
*강화읍의 마을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