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순 (2008-01-08 10:13:31)
그날 영주 김주태 시인이 소개 하던 신인 남수현님의 작품입니다
남수현님은 현재 상주 거동에서 장동농원을 운영하고 있고요 김주태 시인과는 사이버 동호회 회원이라고 합니다. 66년생이고요.(연락처 : 011-9383-5075)
술랑님께서 잘 보듬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점숙이 - 남수현
아홉 오라비 하나 둘 객지로 나갈 때 나이 든 부모 곁에 남아 왼종일 갈비를 끌어와 정지 한켠을 가득 채워놓거나 걸레를 우리 집 수건보다 말갛게 빨아 널던 점숙이 사시인 눈은 언제나 반쯤 허공에 걸려 있었네
동네 인근 배수로 공사 때 잡부로 딸려온 좀 모자라는 노총각에게 짝 지워져 사내아이 연년생으로 낳았지 육아상식 제대로 알려주는 이 하나 없어 아이 둘 젖뗄 무렵 어마어마한 짝젖이 되고 말았지
바람 유난스레 불던 가을 취로사업 갔다 오다 정원이 넘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웅얼거리다가 죽었네 고운 옷 입혀 월악산 아래 묻던 날 여름휴가 때 쓸 요량으로 그 집에 맡겨놓은 중치의 개를 오라비들 말없이 꼴삐 풀어와 나눠 먹었네 에미생각 나거들랑 다녀가라는 외할머니 당부에도 외손자들 아직 다녀가지 않았네
국민학교 졸업장 받도록 제 이름 석 자 그리지도 못했던 점숙이 간이역에서 고향 가는 버스편을 묻고 있겠지 희끄무레한 눈을 허공에 반쯤 걸어두고
산 아래 - 남수현
산꿩이 꿩. 꿩. 솟구쳐 오른다
며칠 전 폭발먼지를 산불로 오인해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했었다 물이 바싹 말라 버린 그 산 아래 논은 매년 수확량만큼의 나락 값을 받았다. 2년 전부터인가 권리금까지 얹은 레미콘공장으로 장기 임대되었다 환경단체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흥분한 주민 몇 불러놓고 인터뷰를 하고 사진 몇 장 찍어갔다
- 뒷산을 저래 파불면 동네에 마이 안 좋을낀데 쉬이 도장을 놓아준 마을을 버스로 지나는 사람들은 안쓰러워 한다 과속으로 마을 앞을 내달리는 덤프트럭의 위험과 맞바꾼 얼마간의 기부금을 꺾어 봄마다 관광을 가는 산 아래 사람들
산꿩이 다시 순하게 날고 황사보다 더 빽빽한 먼지가 마을을 벗어나자 사람들은 멈추었던 제 일을 다시 시작한다
가을 한낮 -남수현
힘줄 돋은 장정의 세찬 도리깨질에도 끄덕 않던 덜 여 문 콩깍지들이 구름 속에서 막 나온 해가 콘크리트 마당 안을 훤히 비추자 따닥 따닥 따다닥 바닥에 온몸 낮추어 야 들릴 듯한 낮은 목소리로 제 몸을 바싹 말리고 있다
심양 아줌마 - 남수현
풍채가 좋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게 생 긴 조선족 아주머니. 여기 오기 전에 말이라요 다섯 살 때 오구서리 60년 만에 외삼촌 집에 왔을 때 생각이 나느만요, 일흔 다섯 외숙모가 기러대요 중국에선 도토리를 어찌해서 먹노? 도토리를 어더렇게 먹어요 우리중국에서는 도토리는 정부가 수매해서 돼지나 먹이지 사람은 안 먹어요, 기랬는 데 며칠 지난 뒤에 우리 외삼촌이 기러더만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도토리묵이라고, 기날 저녁상에 도토리묵이 올랐는데 외숙모한테 어더렇게나 미안하던지 말 없이 한 그릇 비웠더랬지요머, 일 읎으요, 사과꼭지를 똑똑 자르신다.
은혜병동 그 여자 -남수현
며느리가 사온 요플레 몇 개를 단숨에 마셔치우는 여자 휠체어에 앉아 겨우 닿는 발끝으로 구석구석 다니다 지치면 남자 환자 방에도 곧잘 드러눕는 여자 옆 환자들의 사식을 탐내 한 손에 움켜쥐고 한 손으로 집어먹는 여자 안전띠 채운 휠체어에 앉아 비지땀 흘리며 콩밭 매다가 모심기꾼 새참하러 간다며 종종걸음치다 발이 부르트고 해 저물면 영감님 밥상 차리러 가야한다며 돌아갈 길 서두르는 여자 한시도 쉬지 않는, 양말을 벗었다가 신었다가 쓰레기통을 엎었다가 담았다가 하는 그렇게 하루 일과 다 끝나면 입은 환자복 단추를 죄다 뜯어놓는 여자
은혜병동 7층 창가 봄햇살 쪼이며 졸다 해사한 웃음 간간이 날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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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시가 잘 안 될 때 써본 산문입니다)
Just a moment!
-남수현
바로 옆 동네에 자형을 따라 몇 년째 철근 일을 하는 남편의 친구가 있다. 그는 일을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과수원 일을 도와주러 오곤 한다. 일이 많아 늦게 끝나는 날이면 저녁은 으레 식당으로 가게 마련인데 그 친구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술을 시킨다. 그이는 소주 몇 잔에도 쉽게 취하는데 그 무렵엔 목소리가 대책 없이 높아지면서 누구라도 그의 말에 끼어드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이때 그가 쓰는 독특한 몸짓이 손사래를 치면서 "Just a moment!"라 소리치는 것인데 그때부터 술이 술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해 순간순간 외쳤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설과 추석명절을 유난히 싫어한다는 것, 그래서 그때만 되면 바다로 훌쩍 떠나고 싶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1년에 두세 번씩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연히 집을 떠나 열흘이나 보름 만에 집에 돌아오는데 그 모습은 일흔 중반의 노모를 상심케 하곤 한다. 휴대전화도 꺼놓고 술에 취해 마음이 내키면 늦은 밤 우리 집이나 객지의 친구들에게 일방적인 전화를 해서 그 밤을 다 깨워놓는다.
쉰이 못되어 홀로되신 그의 어머니는 마흔 갓 넘은 노총각 아들 때문에 내가 죽어도 어찌 눈을 감겠느냐며 한숨만 내쉰다. 그가 노총각이 되기까지 사연이 있었다는데 그의 가까운 친척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그가 고교시절부터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정도로 여자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20대 후반의 어느 날 결혼을 약속한 집안과의 상견례가 그의 집에서 있었는데 이웃동네에 한센병을 앓은 배다른 작은아버지가 조카의 혼사 일이 어찌나 궁금했던지 초대하지 않은 그 자리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 후 예정되었던 결혼이 깨지고 그는 부산으로 포항으로 외항선원이 되어 사오 년 객지를 떠돌아다녔다.
고향에 돌아온 지 6년째, 철근 일로는 결혼도 어렵겠다 생각한 서울의 셋째 누나가 자신이 경영하는 규모가 제법 큰 정육점으로 불러올렸다. 몇 개월 만에 고향에 다니러 왔는데, 적당한 염색에 하얀 피부가 빛나 보였다. 햇볕에 그을려 새까만 남편에게 우리도 서울 가자, 사람이 되어 보이지 않느냐,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며 농담삼아 졸랐다. 그런 그가 일 년 만에 귀향을 한 것이다. 손님을 상대하는 정육점 일이란 것이 담배를 한 대 피워도 꼭 가글을 해야 하고 아침 10시부터 저녁 늦도록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며 갑자기 접하는 팍팍한 서울생활이 그를 편치 않게 했던 것이리라. 멋쩍은 듯 우리 집에 와서 그동안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 행복해 하는 표정은 무엇에 비길 수 없었다.
어제저녁 구미에 있는 남편의 친구가 와서 함께 외식을 했다. 집까지 데려다 주는 차안에서 노래방을 가자고 하는 그에게 다음을 약속하며 그의 집으로 향하는데 골목길에서 도무지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아 남편과 승강이를 벌이게 되었다. 마실갔다 돌아오시던 그의 어머니가 골목길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에 놀라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비틀거리는 아들을 고집 부리는 소 끌듯이 데리고 들어가시면서
"껕보리 같은 이 어머이 없으면 니가 우얄끼고..."
그에 응답하듯 노총각 아들 큰 소리로 손사래를 치며,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Just a moment ... just...!"
마루에 앉아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사월의 차가운 밤바람에 목련이 후두두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