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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Der Prozeß, 1915)(1925출간)
카프카(Kafka 1883-1924), 이주동, 솔, 2006, pp. 7-282(P. 301).
이주동(1946-) 서강대(명예교수) 카프카 평전
메트릭스의 레오가 잠에서 깨면 현실로 돌아온다. 소송에서 카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처형을 당한다. 그런 이야기인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만, 가상성은 카가 살아가는 영토와 다른 영토라는 점일 뿐이다. 다른 영토는 다른 코드가 있고, 그 코드를 모르는 경우에 순진무구하다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다면, 그 코드는 열린사회의 코드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법체계의 폐쇄성 또는 관료체제의 폐쇄성에 대해 쓴 것이라는 해석들이 많다. 맞는 말일 것이다. 작품 전체에서 무슨 죄명이란 명칭이 없다. 그런데 처형당하는 황당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의 영역이 자기에 예속되지 않는 한 인간을 폭력을 행사 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폭력과 권위의 보조물(변호사든 성당신부든)은 그 카프카(Kafka 1883-1924)가 살았던 당시에만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울나라 군사독재 시절에도 그렇지 않았던가. / 이 작품이 시오니즘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유태인의 작품으로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은 항상 역전술도 전술처럼 쓰는 유태인 국가주의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보관하고 사후에 출판한 브로트(Max Brod 1884-1968)는 카프카의 친구이며 시오니즘 주장자이다. (50RKE)
정신 논리와 영혼 심리라는 이중분절을 구성해본다면, 전자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후자에는 소크라테스와 스토아 일 것이다. 이 이중 분절은 한쪽은 부동의 완전한 존재를 사고하고, 다른 한쪽은 변화하면서 생성하며 덩이로서 사유한다. 전자에는 과거 단면(분절)가 미래의 가상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후자에서는 과거란 단면이 없으며 등장할 때는 언제한 현재의 안면에 붙어서 밀고 있듯이 등장한다. 전자의 회고적 사고와 후자의 내성적 사유는 두 집게이지만 차히로서 드러난다. 카프카는 후자의 계열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후자 계열은 인성을 최고로 고양시킬 대화와 실천을 중요시 하는데 비해, 카프카는 글쓰기를 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언어의 기본형식은 음성에 있지만, 카프카는 문자의 표현을 통해 형식에다가 내용을 담았다. / 사고 보다 사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는 영혼의 안녕과 즐김의 향유를 추구하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약간의 방심으로 영혼의 진솔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 같다. 방심 또는 기분전환은 표면의 현실들이 정신에 예속되어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데 대해, 메여있는 세상을 떠나서 영혼의 생성과 되기에 내맡긴 자유를 선택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 반성적 논리 사고는 대상에 대한 서술을 주로 하고 있으면서, 사고의 인과관계에 최고 위(상층)를 인정한다. 하지만, 내성적 공감 사유는 인성의 자발적 자생적 토대 위에 각자의 고유성(특이성)을 드러내다. 주인 카는 특이성인가? 아니면 반성적 사고의 영역의 차이들에 의해 겉보기로 공감 사유로 보이는가? 카는 반성적 사고의 틀들 중 은행간부의 사고에 한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카프카는 역설적으로 카를 주인공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내성적이 아닌가 한다. (50R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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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송(Der Prozeß, 1915)(1925출간)
* 결정본 ‘카프카 전집’을 간행하며 / 5
* 일러두기 / 6
* 차례 7
*체포 / 9
[* 30살 은행 중견간부 요제프 K. / 두 명 감시인(프란츠, 빌렘)을 데리고 온 감독관, 그리고 은행직원 셋(양팔을 흔들어대는 무뚝뚝한 라벤 슈타이너, 눈이 움푹 들어간 금발의 클리히, 만성적인 근육경련 때문에 흉측스러운 미소를 짓는 카미너)이, 내용과 영장 서류도 없이, 그가 체포되었다는 것만을 알린다. / 카(K)는 하숙집 주인 그루바흐 부인, 식모 안나, 뷔르스트너 양과 함께 산다. ]
<누군가 요제프 카(K)를 모함한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도 어느 날 아침 그가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하숙집 주인인 그루바흐 부인이 데리고 있는 식모가 매일 아침 여덟 시쯤 일찍 그에게 아침식사를 가져왔는데, 오늘따라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카는 잠시 더 기다리다가 베개를 베로 누운 채 전에 없던 호기심으로 자기를 살펴보고 있는 건너편 집의 노파를 바라보고는 언짢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해서 벨을 울렸다. 곧 노크 소리가 나더니 이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웬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늘씬하고 건장한 체격을 하고 있었고, 꼭 맞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행복처럼 여러 가지 주름과 주머니와 버클과 단추, 벨트가 달려 있어서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무척 실용적으로 보였다. “누구십니까?” 카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자신이 나타난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가 묻는 말엔 아랑곳 하지 않고 그가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당신이 벨을 울렸지요?” “안나가 아침식사를 가져와야 하는데” 카가 말했다. > (9)
*그루바흐 부인과의 대화. 다음에 뷔르스트너 양 / 27
[체포란 범죄자를 구속하러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체포는 K에게 소송을 알리는 것으로 보인다. K는 체포 ‘영장’이 온 날 정상적으로 은행 근무를 한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서 상황을 되돌아보기 위해 하숙 여주인 그루바르 부인과 뷔르스트너 양과 대화한다. 다른 등장인물로 여주인의 조카(대위)가 있다.]
<둘째 문단: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 낮 시간은 힘든 일과 수많은 찬사와 정다운 생일 축하 인사를 받는 가운데 빨리 지나갔다 – 곧장 집으로 가려고 했다. 낮에 일을 하는 동안 잠시 틈이 날 때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 까닭을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카에게는 그루바흐 부인의 집 전체가 오늘 아침의 사건 때문에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며, 그 질서를 다시 바로 잡으려면 누구보다도 자기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서가 다시 회복 되면 모든 사건의 흔적은 지워질 것이고, 모든 것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 갈 것이다. 특히 문제의 세 행원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수많은 은행 직원들 속에 파묻혔으며,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다. 카는 때때로 그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세 사람 모두 자기 방으로 불러보았는데, 그것은 단지 그들의 태도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매번 안심하고 그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27-28) [체포란 여기서 느슨한 올가미 같은 것인데 본인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짐작을 하지만, 그 실체는 없다. 직감이란, 어떤 일의 결말이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되어 간다는 것을 은연중에 안다는 것이다. 민중이 시대 상황에서 느끼는 것인데, 권력과 권위에 저항하기보다 하나의 희생양을 보며 자기가 그 속에 속하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어떤 떡고물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사로잡힌 것이다. 그 민중은 자신의 불안을 만드는 그 거대한 폭력 앞에 저항해보아야 소용없다는 무기력감과 제수 없이 걸리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쓰라린 숙명감을 감수하고 있다. K가 주인과 하숙녀와 이야기 한다는 점이 막 다가올 막연한 불안의 표시일 뿐이다. (50QMJ)]
< ... 뷔르스트너 양은 그 순간을 이용해서 몸을 빼고 문을 열더니 응접실로 살그머니 들어가서는 나지막하게 카에게 말했다. “자 이리로 오세요. 저것 좀 보세요” - 그녀는 아래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대위의 방문을 가리켰다. - “그 분이 불을 켜고 우리 이야기를 즐기고 있어요.” “갑니다.” 하고 카가 말하고는 앞으로 달려가더니 그녀를 잡고 그녀의 입에 그 다음에는 온 얼굴에 키스를 했다. 목이 타는 짐승이 마침내 발견한 샘물을 혀로 핥듯이 키스를 했다. 마지막에는 후두가 있는 목에 키스를 하더니 거기에 오래도록 입술을 대고 있었다. 대위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그는 얼굴을 들었다. “이젠 가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뷔르스트너 양의 세례명을 불러주고 싶었지만 이름을 몰랐다. 그녀는 피곤한 듯 머리를 끄덕이고 반 쯤 몸을 돌린 채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에게 키스하도록 손을 내주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숙인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카는 자기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곧 바로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에 잠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으나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좀더 만족하지 못한 게 이상했다. 그는 대위 때문에 뷔르스트너 양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했다. (41-42, 이 장의 마지막 문단 뒷부분)>
첫 심문 / 43
[심리위원회 예심판사, 목수라는 란쯔(그루바흐 부인의 조카인 대위의 이름과 동명이인) 심리법정의 여러 인간 군상들... 세탁부 여인, ]
<키는 다음 일요일에 자신의 사건에 대한 간단한 심문이 있을 것임을 전화로 통지 받았다. 이제 정기적으로 이 같은 심문을 하게 되는데, 매주는 아니더라도 더욱 자주 잇따라 하게 될 테니 그 점에 유의하라는 얘기였다. 한편으로는 소송을 빨리 끝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심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심문이라 모든 면에서 철저해야 하고 이에 따라 각고의 노력이 따르기 때문에 절대로 너무 오래 끌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심문은 빠른 시일 안에 되풀이하되 그 시간은 짧게 한다는 비상책을 택한 것이다. 심문 날짜를 일요일오 정한 것은 카의 직장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카가 이 날짜에 동의하리라고 예상은 하지만, 만일 다른 날짜를 원하는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심문은 야간에도 할 수 있지만, 그 시각에는 카의 정신이 맑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쨌든 카가 이의가 없는 한 일요일로 해두겠다는 것이다. 카가 어김없이 출두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에 대해 그에게 주의시킬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출두해야 할 집의 주소를 카에게 일러 주었다. 그곳은 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딴 교외의 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 이 통지를 받은 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는 곧 일요일에 가리고 결심을 했다. 이건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송이 시작되었으니 이에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 (43-44)>
< ... “의심할 여지없이 이 법원의 모든 언행 배후에는, 그러니까 제 경우에 있어서 체포와 오늘의 심리배후에는 거대한 조직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감시인, 멍청한 감독관 그리고 기껏해야 유리한 사건의 경우에나 맡을 수 있는 예심판사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어떻든 상급과 최상급의 판사들과 더불어 꼭 필요한 수많은 부하들인 정리, 서기, 경관, 다른 보조원, 그리고 서슴지 않고 말하지만 아마 사형 집행인까지도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조직체일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이 거대한 조직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죄 없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무의미하고 대게는 제 경우처럼 아무런 성과도 없는 소송 절차로 끌어들이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전체가 이렇듯 무의미한 존재이니 어찌 관리들의 극악한 부패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 (58)>
< ... 발언하는 동안에는 이들이 가장된 태도를 보이더니, 이제 결론에 이르니까 그 가장된 태도에 신물이 난 것일까? 그들은 어떤 얼굴로 카를 둘러싸고 있을까? 작고 검은 눈들이 이리저리 민첩하게 움직였고, 뺨은 마치 술 취한 사람들처럼 축 늘어져 있었으며, 긴 수염은 뻣뻣하고 듬성듬성해서 그것을 잡으면 수염이 아니라 발톱이라도 잡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수염 아래로 – 이것은 카 자신이 발견해낸 것이다 – 상의 칼라에는 여러 가지 상이한 크기와 색깔로 된 배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배지를 달고 있었다. 좌우 양 패거리로 보였던 그들 모두가 한패였다. 그리고 카가 갑자기 돌아섰을 때 그는 양손을 무릎에 놓고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예심판다의 칼라에서도 똑같은 배지를 보았다. “그렇군요!”라고 카가 외치고는 양팔을 치켜들었다. 갑작스러운 인식이 말문을 열게 한 것이다. - “이제 보니 당신들은 모두 직업들이야. 바로 내가 공박했던 부패한 작당들이야. 당신들은 여기에 몰려와 듣는 자의 역할과 첩자의 역할을 겸하면서 겉으로만 파당을 만들고 한 패는 나를 떠보려고 박수를 쳤지. 당신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속여먹을지 배우려는 거야. 그렇다면 당신들 여기서 헛수고하지 않으면 좋겠군. 당신들은 내가 무죄의 변화를 기대하는 통에 재미를 모았거나 아니면 – 비켜 이러면 갈길 테야.” 카가 자기 옆으로 유난히 가까이 다가와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 노인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니면 당신들은 실제로 무언가를 배웠을 테지. 그럼 당신들의 영업이 잘되길 바란다.” 카는 책상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던 모자를 재빨리 집어 들고 온통 침묵으로 뒤덮인 속을, 완전히 당혹스러운 침묵 속을 뚫고 출구까지 밀고 나아갔다. 그런데 카보다 더 빨랐던지 예심판사가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예심판가가 말했다. 카는 걸음을 멈추었으나 예심판사는 보지도 않고 그가 이미 손잡이를 잡고 있는 문을 보고 있었다. “당신에게 주의해 두겠는데.” 예심판사가 말했다. “그건 당신이 오늘 – 아직은 이것을 모르는 것 같은데 – 심리가 체포된 자에게 어떤 경우라도 주게 되어 있는 이득을 스스로 포기해버렸다는 것이오.” 카를 보면서 웃었다. “거지같은 자식들.” 그가 외쳤다. “앞으로 모든 심리는 거부하겠어.” 그는 문을 열고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의 뒤에서는 모인 사람들의 다시 활기찬 소음이 일었는데, 아마 그들은 이번 사건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방식대로 논의하기 시작한 듯했다. (60-61)>
[주인공 카가 이 위원회 속에 들어서면서 한 패거리들의 분봉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서 그는 서른을 살면서 사회가 무엇인지를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샌님? 은행에서 간부직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가 모르는 원성을 사고 있었던 것인가? 배지라는 기호체는 정태적 사회(체)만큼이나 견고한 것이다. 그 사회체에 속하지 않은 자는 웃음이 없다. 그리고 논리적 수사적 설명은 사회체의 패거리로서는 단지 우스꽝스런 우아한 담론일 뿐일 것이다. / 청문회에서 자한당(꼴부수당)이 질문하는데 대한, 후보자의 대답이 생까기(동문서답)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소설에서 패거리들의 영업이라는 것을 알면, 카는 이들과 싸울 것인가? - “거지같은 자식들.”이라 외친들 이미 그는 패거리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50QMJ)]
*빈 법정에서. 대학생. 사무처 / 62
[ 카는 “앞으로 모든 심리는 거부하겠어.”라고 예심판사에게 내뱉었다. 그 다음 법정은 열리지 않았다. / 허드레 일하는 세탁부 여인과 그 남편인 법원의 정리(廷吏), 법정에서 일하는 대학생(법학)인 베르톨트 ...]
<카는 다음 주 내내 매일같이 새 출두 통지를 기다렸다. 그는 심리를 포기한다는 자기의 말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다리던 통지가 토요일 저녁까지도 끝내 오지 않자 그는 동일한 집에 동일한 시각에 재출두하라는 무언의 소환을 받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일요일에 다시 그곳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곧바로 계단과 복도를 지나갔다. 그를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은 집 문에서 그에게 인사했지만, 그는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곧장 예의 그 문에 당도했다. 그가 노크하자 곧 문이 열렸다. 문 옆에 전에 보았던 여자가 서 있었는데, 그는 그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옆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오늘은 휴정인데요.” 그 여자가 말했다. “어째서 개정하지 않는 거죠?” 카는 이렇게 물으며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옆방 문을 열어서 그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방은 정말 비어 있었으며, 그렇게 비어 있으니까 지난주 일요일보다 훨씬 허술해 보였다. 연단 위에 그대로 놓여 있는 책상 위에 책이 몇 권 놓여 있었다. “저 책들을 봐도 되겠습니까?”라고 카가 물었지만 그것은 별다른 호기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보람도 없이 이곳에 왔다 가는 것이 싫어서였다. “안돼요.” 여자가 말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그건 금지되어 있어요. 그 책들은 예심판사님 거예요.” ...(62) > / [카는 세상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행동하고 있다. 사건의 일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시 말하면 예심판사의 생각 방향으로 흘러간다. (50QMJ)]
< .. 카는 맨 위에 있는 책을 폈는데, 점잖지 못한 그림이 나왔다. 남녀가 벌거벗은 채 소파에 않아 있었는데, 화가의 속된 의도를 훤히 알 수 있었다. .. 둘째 책은 속표지만 대충 보았는데 그것은 ‘그레테가 한스에게 당한 고통’이란 제목의 소설이었다. “이것들이 이곳에서 연구하는 법률 책이군요.” 카가 말했다. “이런 인간들한테 재판을 받아야 하다니.” “당신을 도와드리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 (64-65)> / [여자, 법정 주위에서 가장 예쁘다는 여자가 로비 통로인 셈이다. 카는 몰랐다. 그럼에도 로비의 통로보다
< “...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판사님에 대해 잊어버리고 잠자러 갔어요. 밤이 이미 깊었을 때였어요. 그 밤중에 제가 갑자기 깨었는데, 침대 곁에 판사님이 서 있는 거예요. 제 남편한테 불빛이 가지 않도록 그분이 손으로 등잔을 가리고 있었어요. 사실 그렇게 조심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제 남편은 잠이 들면 불빛이 비쳐도 깨어나지 않으니까요. 저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어요. 그렇지만 판사님은 매우 친절하셨어요. 조심하라고 저에게 주의를 준 후 자기가 지금까지 글을 썼으며 이제 등잔을 돌려주겠노라고, 그리고 잠자는 내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저에게 속삭였어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판사님이 실제로 보고서를 많이 쓰며, 특히 당신에 대해서 많이 쓰고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예요. 당신에 대한 심리가 지난 일요일 재판 중에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그런가 봐요. 그렇게 긴 보고서가 결코 완전히 무의미할 수야 없겠지요. 그리고 그 밖에도 지난번 일로도 아실 수 있겠지만 판사님은 저를 탐내고 있고, 그리고 저를 주시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지금이야말로 제가 그분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예요. 그분이 제계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른 증거도 있어요. 이제 그분이 크게 신임하고 있으며 자기 일을 거둘어 주고 있는 대학생을 시켜 제계 실크 스타킹을 선물로 보내왔어요. 마로는 제가 법정을 청소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건 구실에 지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일은 제 의무인데다 그 대가를 제 남편에게 지불하고 있으니까요. 예쁜 스타킹이에요. 보세요.” ... / 갑자기 그녀가 얘기를 중단하고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의 손위에 자기 손을 얹어 놓으며 이렇게 소곤거렸다. “조용히 해요. 베르톨트가 우리를 보고 있어요!” 카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법정 문에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 (68-69)>
< ... 그는 그들의 손에 몸을 내맡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손을 놓기만 하면 널빤지처럼 쓰러질 게 뻔했다. 그들은 작은 눈을 예리하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는 매 걸음마다 거의 들려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법정에서 쫓겨나는 장면]. 나중에 그들이 자기에게 뭐라고 말하는 듯 하였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모든 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음만 들릴 뿐이었는데, 그 소리로 인해 생긴 어떤 불변의 높은 소리가 마치 사이렌 소리처럼 울리는 것 같았다. “좀 더 큰 소리로요.” 그는 고개 숙인 채 속삭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기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이 충분히 큰소리로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마침내 앞의 벽이 뚫린 것처럼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옆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은 처음에는 떠나고 싶어 하더니, 여기가 출구라고 수백 번 말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군요.” 카는 아가씨가 열어준 출입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온 힘이 단숨에 다시 되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유를 빨리 맛보기 위해서 그는 곧 계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쪽으로 몸을 굽히고 있는 두 전송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몇 번씩 말한 다음, 그는 몇 번이나 두 사람과 악수를 하다가 그들의 사무처 공기에 찌들어 있어서 계단에서 불어오는 비교적 신선한 공기에는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손을 놓았다. 그들은 채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만일 카가 재빨리 문을 닫아주지 않았더라면 아가씨는 아마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카는 잠시 멈춰 서서 손거울을 보고 머리를 똑바로 매만지고는 다음 층계참에 있는 모자를 집어들었다. - 안내 담장자가 그것을 그리고 내던진 모양이었다. - 그리고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는데 너무나 상쾌하게, 너무나 성큼성큼 뛰어 내려갈 수 있었던 까닭에 갑작스런 변화에 대해 거의 불안을 느낄 정도였다. 평소 건강한 상태에서도 이렇듯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87-88)> [「빈 법정에서. 대학생. 사무처」의 마지막 문단의 일부인데, 카가 법원 사무실에서 본의든 본의 아니든, 사무실에서 지체하여 법원의 근무자에게 공무방해가 되었고, 그래서 아가씨와 안내원 남자에 의해 거의 들려 내동댕이 치듯이 건물 밖으로 내 동댕이쳐 버려지는 장면이다. 그런데 카프카는 사실을 표현하기보다 묘하게 심리적 묘사로 써 내려갔다.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고, 또한 카에게 미칠 막연한 불안감을 덧붙여서 다음 단계의 전개를 기다리게 하는 장(章)이다. 카는 항의 또는 하소연 하였지만 법원 근무자들에게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즉 그들에게는 카는 법정 소란꾼 정도로 여겨졌다. (50RKA)]
{* B의 여자친구 / 251}
[타이피스트 뷔르스트너와 면담이 안 되고, 그녀의 친구 프랑스어 여교사 몬타크에게 그 간의 사정이야기를 듣는다. 몬타크는 뷔르스트너 양의 방으로 옮기며, 여주인의 친척인 란츠 대위와 가깝다는 표시를 드러낸다.] .
그 이후 카는 뷔르스트너 양과 몇 마디 말도 나눌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항상 그것을 잘도 피해나갔다. 그는 사무실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자기 방 소파에 앉아 오직 문간방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녀가 지나가다가 비어 있는 듯 보이는 그 방의 문을 닫아놓으면 그는 잠시 뒤에 일어나서 문을 다시 열어놓았다. 아침이면 그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는데, 뷔르스트너 양이 출근할 때 혼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의 사물실과 집으로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하고자 애를 썼으며, 어떤 보상에도 응하겠노라고 밝히고, 그녀가 자기에게 설정한 경계선은 결코 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제발 한번 만나 이야기할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특히 그가 그녀와 먼저 상의하지 않고서는 그루바흐 부인과도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편지에 다음 일요일에 온 종일 방에서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겠으니 그녀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 여부를 알려주거나 아니면 그가 모든 면에서 그녀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약솔을 했는데도 어째서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적어도 밝혀주어야 한다는 것을 전달했다. 편지는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회답 역시 없었다. 그 대신 일요일이 되자 그 뜻이 명백한 어떤 조짐이 보였다. 그날 아침에 바로 카는 열쇠 구명을 통해 문간방에서 어떤 특이한 움직임을 보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곧 밝혀졌다. 지금까지 다른 방에서 살았던 프랑서 여교사가 뷔르스트너 양의 방으로 이사를 가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 여자로 이름은 몬타크였는데, 연약한 몸에 창백한 얼굴에 다리를 약간 저는 처녀였다. 그녀가 발을 질질 끌면서 문간방을 지나가는 것을 몇 시간 동안이나 보였다. ... (251-252, 첫문단)>
*태형리 / 89
[사법적 태형을 사법건물이 아닌 카의 건물에서 실행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인가? 아니면 법원을 묘사하는 카프카의 특성인가?]
<며칠이 지난 후 어느 날 카가 그의 사무실과 중앙계단 사이로 난 복도를 지나가고 있을 때 – 그날 그는 거의 맨 마지막으로 귀가했는데, 발송부에만 아직 사환 둘이 남아서 백열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일하고 있었다. - 전에 한 번도 들여다 본적이 없지만 막연히 창고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방의 문에서 신음 소리가 드렸다. 그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혹시 잘못 들은 것이나 아닌가 확인해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 잠시 조용하더니 다시 신음 소리가 들렸다. - 처음에 그는 증인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환을 부르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가 추측한 대로 그 방은 창고였다. ..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이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이 예심판사에게 우리를 비난하였기 때문에 매를 맞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제야 카는 그 두사람이 감시인 프란츠와 빌렘이라는 것을, 그리고 셋째 남자는 그들에게 매질을 하기 위해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 (89-90)>
*숙부. 레니/ 97
[숙부(알베르트 카알)는 카의 사촌 여동생(에르나)의 편지를 받고 시골서 도시로 나왔다. 알베르트의 학교동창으로 극빈자 변호사 홀트, 홀트의 시중을 드는 처녀 레니, 법원 사무장]
<어느 날 오후 – 우편물 마감 시간이라 카는 몹시 바빴다. - 서류를 들고 들어오는 두명의 사환 사이로, 시골 소지주인 카의 숙부긴 카알이 방안으로 밀치고 들어왔다. 이미 오래전에 카는 숙부가 온다는 소식으로 한번 놀랐기 때문에 그날은 숙부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숙부가 틀림없이 오리라는 것은 이미 한 달쯤 전부터 정해진 사실이었다. 그때 그는 이미 숙부가 지금처럼 구부저안 모습으로 찌그러진 파나마 모자를 왼손에 든 채 멀리서부터 그를 향해 오른 손을 내밀고 도중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밀쳐 넘어뜨리면서 허둥지둥 채상 너머로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었다. 숙부는 항상 서둘렀다. 무리한 생각에 쫓기고 있었던 까닭이다. ... (97, 시작 문장)>
< ... 이제 그는 방 안의 어두움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내부 시설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별할 수 있었다. 문 오른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는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몸을 수그렸다. 법관복을 입은 어떤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높은 옥좌 모양의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의자의 도금이 그림에서 여러 가지로 돋보였다. 이상한 점은 이 판사가 가만히 위엄 있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외팔은 등받이와 팔걸이에 꽉 붙이고 오른 팔은 기댄 데가 없이 그냥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금방이라도 난폭해져서 격분한 태도로 펄쩍 튀어 일어나 무엇인가 결정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판결이라도 내리려는 듯 보였다. ... “아마 내 담당 판사인지도 모르겠군.” 카가 말하고서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전 그분을 알아요.”하고 레니는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분은 여기 자주 오세요. 그림은 젊었을 적 모습인ㄷ 그분하고는 전혀 닮지도 않았아요. ..” (114-115)> [카프카가 벽에 걸린 그림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 ... “당신은 이 법원과 거기에서 필요한 속임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군요” 하고 카는 너무 세계 달라붙는 그녀를 자기 무릎에다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주니 좋아요.” 그녀가 말하고는 스커트를 펴고 블라우스도 바로 잡으면서 그의 무릎에서 자세를 편하게 했다. 그런 다음엔 두 손으로 그의 목에 매달리더니 몸을 뒤로 젖히고 그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런데 내가 고백하지 않는다면 날 도울 수 없나요?” 카가 떠보느라고 물었다. ‘나는 여성 협조자를 구하고 있는 거군.’ 그는 거의 놀란 기분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처음엔 뷔르스트너 양, 다음엔 정리의 부인, 이번엔 기 자그마한 시중드는 여자[레니]. 이 여자는 나한테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군.이 여자는 마치 내 무릎이 자기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양 거기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울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제 도움 같은 건 전혀 원치 않아요. 당신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당신은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믿게 만들 수 없군요.” “당인 애인 있으세요?” 하고 잠깐 있다가 그녀가 물었다. “없어요.” 카가 말했다. “있으실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네, 사실 있어요.” 카가 말했다. “애인이 없다고 말했지만 애인 사진을 지니고 다니기까지 해요.” 그녀가 애걸하는 통에 그는 엘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116-117)>
<“당신은 애인을 저로 바로 바꾸신 거예요” 그녀는 때때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보세요, 당신은 이제 애인을 바꾸신 거예요!” 그때 그녀의 무릎이 미끄러졌기 때문에 그녀는 짤막한 비명을 소리와 함께 거의 양탄자 위에 쓰러졌다. 카가 그녀를 붙잡으려고 껴안았지만 그 여자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이제 당신은 제 것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118) > [까뮈(Albert Camus 1913-1960)의 이방인(L'Étranger 1942)의 구성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 주인공 뫼르소가 행동한 것도 자기 장례식과 관계없는 일을 하듯이, 카는 소송과 관계없는 딴 짓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 / 전쟁 속에서 후방 사회의 부조리에서 느낀 작가(까뮈)의 심정인가? 카프카의 이 작품도 전쟁 중이 아닌가? (50RKA)]
< ... “이봐” 숙부가 외쳤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 넌 잘 돼가던 네 사건을 처참하게 망쳐버렸어. 그 보잘것없는 더러운 년과 기어들어가 숨다니. 게다가 그년은 분명 변호사의 애인인 것 같던데. 그래 몇 시간이나 안 나타날 수가 있어서! 이렇다 할 구실도 없이 아무것도 숨기는 기색도 없이 그것도 버젓이 다 드러내놓고 그 여자에게 달려가서 마냥 박혀있다니! 널 위해 애쓰는 이 숙부, 널 위해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변호사, 특히 현 단계에서 네 문제에 대한 관건을 쥐고 있는 중요 인사인 사무처장, 이렇게 다 앉아 있었단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널 도울까 의논했단 말이야. 난 변호사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고, 변호사는 다시 사무처장에게 그래야 했다. 그러니 넌 어디까지나 날 지원해주어야 했어. 그런데 넌 그러기는커녕 사라지고 말았단 말이다. 결국 그 일은 숨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분들은 점잖고 세상일에 밝은 사람들이라 거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 널 감싸주는 거였어. 그러나 결국 그분들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고 사건에 대해서 애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입을 다물고 말았지 우리는 몇 분 동안이나 말없이 앉아서 네가 돌아오지 않을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가 허사였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앉아 있던 사무처장이 드디어 일어나서 작별인사를 했단다...” (110) [삼촌(알베르트 카알)의 불평] > [삼촌의 이야기를 들어면, 주인공 카는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가 은행대리로서 무엇을 하고 사는 지조차.. 업무에만 충실하여 단순하고 또한 순진무구하다고 해서 자신의 일 외에 주변을 전혀 모르면서 대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어쩌면 도스토에프스키(Fiodor Dostoïevski, 1821-1881)의 이중인격(Dvoynik, fr. Le Double, 1846)의 일부와 닮은 데가 있다. 이 점은 심리소설의 특성일 것이다. (50RKC)]
*변호사. 제조업자. 화가 / 121-170
[변호사 홀트에 자문을 구하고, 은행 업무 중에 만난 제조업자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 화가를 만난다. - 점점 카는 소송에 대면하기보다, 소송의 외피의 조각들(변호사가 아닌 얼치기 로비스트) 속에 빠져든다. 왜 직접 법원과 그 조직에 들어가지 못하는가? 예전에 한번 보았던 성(Das Schloß, 1926 Le Château)의 구도와 같다는 느낌이다.]
<< [홀트 변호사의 긴 이야기 중에서 몇 가지] .. 특히 기소장은 피고나 변호인 측에서는 열람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진정서를 쓸 때 무엇을 겨냥하고 써야 할지 전혀 모르거나 적어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저 우연히 사건에 대한 중대한 것을 다믈 수 있을 뿐입니다. .. (123)
... 그러니까 개별적인 소송 단계, 마지막 판결 그리고 그 판결 이유 등을 연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교훈 따위는 이들 관리들에게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법으로 자기네에게 한정되어 있는 소송 부분만 취급할 뿐이고, 그 이상의 일, 그러니까 자기네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소송이 끝날 때까지 대개 피고와 연결되어 있는 변호사보다도 적게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도 변호사로부터 가 가치 있는 많은 것들 들을 수 있습니다. ... (127)
... 법원에서 어떤 개선할 점 ... 피고인은 거의 누구나, 아주 단순한 사람까지도 소송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개선책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다른 데다 쓰면 훨씬 낫게 쓸 수 잇는 시간과 정력을 소송에 낭비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 (129)
...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일을 맡겨두십시오. 비난해보았자 별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이유를 전체적인 의미에서 설명할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 사무처장에 대한 일전의 태도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손해를 입혔는지 모릅니다. 그 영향력 있는 분이 당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에서 거의 빠져나갈 상태에 있습니다. 소송에 대한 간단한 언급조차도 그분은 이제 의도적으로 못 들은 척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관리들은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의 태도는 사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종종 악의 없는 일에도 어린애처럼 마음이 상해서,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 친구들을 만나도 그만 돌아서 버리며, 사사건건 그들을 방해합니다. 그러다가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상대가 모든 것이 가망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하는 시시한 농담에도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화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대한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한데 거기에 원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여기 소송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는 데는 그저 중간 수준의 생활을 해나가기만 하면 충분한데, 그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지요. .. (130) >>
< [카는 은행 업무상 제조업자를 만났는데, 그가 화가(티토렐리)에게서 이야기 듣고 이 소송 건을 알고 있다고 한다] ... 그런데 언젠가 그(티토렐리)가 너무 자주 찾아오기에 제가 비난을 했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림만 그려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물어보는 주에 그의 주된 수입원은 초상화라는 것을 알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법원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더군요. 어느 법원이냐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이 법원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선생님께서는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가 방문할 때마다 법원에 대한 새소식을 듣게 되었고, 차차 그런 문제에 대해서 통찰을 갖게 되었지요. .. (144-145) > [통찰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자들의 술안주거리였을 것인데 .. 카가 솔깃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가 통찰로 들릴 수 있다.]
<[카는 업무 중에 은행 고객접대를 뒤로 미루고 화가를 만나러 간다.] ... 화가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으로만 자유롭거나 혹은 더 정확히 표현해서 일시적으로만 자유로운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판사들은 말단 판사들인데, 그들은 최종적인 무죄 판결을 내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럴 권한은 당신이나 저나 우리 모두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최고 법원만이 갖고 있습니다. 최고법원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고소에서 해방시키는 대권한은,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판사들은 갖고 있지만, 기소로부터 풀어주는 권한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식으로 당신이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얼마동안 기소를 면하게 되지만, 그 기소는 계속 당신 머리 위에 떠 있어서 상부 명령만 내려지면 즉각 효력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법원과는 좋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법원 사무처 규정에 나타난 실제적 무죄판결과 형식적 무죄판결의 차이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나타나는 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실제적 무죄 판결이 날 경우 소송 서류들은 완전히 기각되어 버리고 소송 절차상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기소장뿐만 아니라 소송 기록 그리고 심지어는 무죄 판결문까지도 취하되고, 모든 것이 소멸됩니다. 형식상 무죄판결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변경도 없이 그저 무죄 확인서, 무죄 판결문, 무죄 판결 사유서 등이 첨가될 뿐입니다. 그 외에도 그 서류는 재판 절차 중에 계속 남아 있게 되어 법원 사무처들의 부단한 업무 연락을 위해서 상부 법원으로 이송됐다가 다시 하급 법원으로 반송되는데, 그렇게 오가는 일은 빨리 진행될 때도 있는가 하면 다소간 지체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로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다 잊혀지고 서류는 분실되어 무죄 판결이 환전한 것으로 보이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서류는 분실되는 법이 없으며, 법원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날 – 아무도 그것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 어떤 판사가 그 서류를 손에 들고서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 사건의 기소가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즉가 체포를 지시합니다. .. (169) > [법의 임의성 그리고 하급과 상급기관 또한 최고 법원의 서류 심사는 판사의 자의에 달렸다. - 카프카 살던 그 시대의 상황인가?]
< [화가의 화실은 법원사무처 다락방] .. 그때 그는 열린 문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는 발을 다시 뒤로 끌어당겼다. “저것이 무지요?” 그가 화가에게 물었다. “뭘 보고 놀라십니까?” 화가도 덩달아 놀라면서 물었다. “법원 사무처입니다. 여기가 법원 사무처란 것을 모르셨나요? 법원 사무처란 다락방이면 거의 다 있으니까 여기라고 해서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제 아틀리에도 사실 법원 사무처에 속합니다만 법원에서 저한테 조치해준 것입니다.” 카가 놀란 것은 여기에 법원사무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법원 일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175) > [어느 누구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 사람은 국가 조직이든 회사조직이든 그 조직의 구성과 지위에 그리고 위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건에 관련하여 법원이란 제도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아는 사람(변호사, 브로커, 법무사)을 낄 수밖에 없다. 그때 비용은 삶의 전부를 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즉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실질적 무죄 방면, 즉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다. 카는 쓰레기가 되느니 싸움을 해보겠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
* 상인 블로크. 변호사와의 해약 / 177-212
[변호사(홀트)에게 상담 온 상인 (루디) 브로크도 레니의 손님이다. 상인 브로크는 5년 이상 끈 소송 때문에 홀트의 개돼지가 되어버렸다. 법이 인민을 개돼지로 만든다는 은유인가? 이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가?]
<[문장시작] 마침내 카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변호를 취소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냐 하는 의심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지만 그 행동이 불가피하다는 확신이 더 강했다. 변호사를 찾아가려고 했던 바로 그날 그런 결심을 해서 그런지 카의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너무나 일이 더뎠기 때문에 그는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가 변호사의 집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열시가 지나고 있었다. .. (177, 첫 문단 시작부분) >
< .. “이 분 말고 또 다섯 명의 변호사가 있다고요?”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요즘엔 여섯 번째 변호사와 교섭 중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변호인이 필요하지요?” 카가 물었다. “전부 다 필요합니다.” 상인이 말했다. “그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카가 물었다. “그렇게 하죠.” 상인이 말했다. “우선 소송에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제게 유익한 것은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 거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지라도 작은 희망이라도 버려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때문에 저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송에 이용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돈도 전부 사업에서 빼내었습니다. 예전에는 제 회사 사무실이 건물 한 층을 다 차지했지만 지금은 뒤채에 있는 자그마한 방 하나로 만족하고 있지요. 거기에서 저는 견습 사원 한 명을 데리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몰락하게 된 데는 돈 뿐만 아니라 작업 능력이 고갈될 탓도 있습니다. 소송을 위해서 무엇을 해보려고 들면 다른 일에는 거의 손을 쓸 수 없습니다.” .. (184-185)>
< ... 사람들은 그저 너무 지치고 많은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을 미신에 내맡기게 됩니다. 남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지만 저 자신도 나은 게 없습니다. 예를 들면 그런 미신 중의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피고인의 얼굴. 특히 입술 모양을 보고서 소송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를 점쳐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당신의 입술을 보건데 곧 틀림없이 유죄판결을 받으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유치한 미신에 지나지 않고 대개의 경우 사실과 전혀 다르지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지요. 이런 미신이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상상이 안 될 겁니다. ... (186)> [입술이라지만 “얼굴”인 셈이다. 할배가 손자에게 ‘얼굴에 쓰여 있다’는 단순히 손자의 행위 과정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듬이 수법으로 말을 꺼내게 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가 아버지 신앙의 경우처럼 고백을 강요받는 경우이다. / 타인의 얼굴(visage)에서 자기를 보는 경우가 사르트르이고, 얼굴이 흰벽과 검은 구멍으로 되어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들뢰즈이다. (50RKD)]
<[브로크] .. “그들은 서로 자주 왕래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나요?” 카가 물었다. “저는 지금까지 완전히 따로 있었는데요.” “대체로 그들은 서로 왕래가 없습니다.” 상인이 말했다. “그럴 수사 없을 겁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리고 공동 이해라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때때로 어떤 그룹에서 공동 이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게 곧 밝혀지지요. 공동으로 법원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든 개별적으로 조사합니다. 우리 법언은 가장 신중한 법원이니까요. 따라서 공동으로 관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다만 한 개인이 때때로 비밀리에 뭔가 뜻을 이루긴 하지만 그것이 이루진 다음에야 남들이 알게 되지요.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공통성이란 있을 수 없고, 사람들이 때때로 대기실에서 함께 만나긴 해도 별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 ”(187) > [개개인을 철저히 분할 또는 선분화해 놓고 권력은 폭력을 행사한다. ‘나누고, 지배하라’(divser rouler)라는 것은 식민지 통치술의 구호만이 아니다. 권력의 비밀스러움과 은밀함은 어쩌면 권력이 중심이 없음을 아는 주구들의 농간일 수 있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관료체계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고급관료의 입에서 “인민이야 개돼지지”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걸 거야!]
< [브로크] .. “그런데 제 진정서는 전혀 무가치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어요. 저는 어느 법원 직원의 호의로 진정서 하나를 읽어보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유식하게 쓰여 있긴 했지만 실은 내용이 없었습니다. 우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가 있었고, 다음엔 몇 쪽에 걸쳐서 법원에 대한 일반적인 호소가 있었고, 그리고 개개의 관리들에 대한 아첨의 말이 적혀 있었는데, 각자의 이름이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쉽게 짐작할 정도였지요, 그 다음엔 변호사의 자화자찬인데 그 부분에서는 법원한테 개처럼 비굴하게 굴었어요. 마지막에 제 사건과 유사한 옛날 법률 사건에 대한 분석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분석은 제가 보기에 무척 세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 (189)> [진정서나 추천사, 판박이 논문이나 또는 책의 서문, 등은 전문용어, 상대 또는 심사자에게 아첨 또는 찬사, 선행 작업에 대한 관점, 자기 이야기, 그리고 권위자에 대한 존경 등도 마찬가지이다. ]
< ... “대변호사들이라고요?” 카가 물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당신께서는 아직까지 그 사람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시군요.” 상인이 말했다. “그 사람들 얘기를 듣고 한 동안 그들에 대해 꿈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 피고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짓은 하지 마십시오. 누가 대변호사인지 저는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찾아갈 수도 없거니와 그것은 아마 전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들이 관여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건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변호를 더러 하긴 해도 우리들 자신의 뜻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에가 변호하고 싶은 사람만 변호하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맡는 사건은 하급 법원을 넘어온 것이어야 합니다. (191)>
< [홀트 변호사가 상인 브로크를 다루는 솜씨] .. 변호사는 구경하고 있는 사람[카]을 거의 모욕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가 어떻게 해서 이런 연극으로 자기를 사로잡을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카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다. 비록 변호사가 그를 아직까지 쫒아내지는 못했지만 이 장면으로 그렇게 하기에 충분했다. 카는 다행히도 오래 걸려들지는 않았지만 변호사의 그런 방법은 변호 의뢰인으로 하여금 세상 전부를 잊게 하고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이런 잘못된 길로 자신을 질질 끌고 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건 변호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였다. 만약에 이 변호사가 상인에게 개집으로 기어 들어가듯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거기에서 짖으라고 명령했다면 그 사람은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을 모두 잘 들어두었다가 좀더 높은 기완에 그것을 고발할 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의무를 맡은 사람처럼 카는 탐색하듯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는 온종일 무얼 했지?” 변호사가 물었다. “전 그가,” 레니가 말했다. “내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까 보통 머무르던 하녀 방에 가두어 두었어요. 그가 뭘 하나 가끔씩 통풍창으로 들여다보았지요. 그는 항상 침대위에 무릎을 꿇고서 선생님께서 주신 서류를 창턱에 올려놓은 체 읽고 있었어요. 그건 저한테 좋은 인상을 주었어요. ..” (208-209)
<[홀트 변호사가 말하고 레니가 상인 브로크를 .. ] .. “그런 말에 일일이 놀라지 말게. 또다시 그런다면 앞으로는 아무 얘기도 안 해주겠네. 말만 시작하면 최종 판결이라도 내려지는 것처럼 쳐다보니 말이야! ... 소송이 어떤 단계에 이르게 되면 옛날 습관대로 종을 울리게 되어 있지. 그 판사의 생각으로는 그때서야 소송이 시작된다는 거지. 지금 그것을 반박할 의견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할 테니까. 단지 반박할 게 많다는 것만 알아두게나.” 블로크는 당황해서 손가락으로 침대 옆에 깐 양탄자의 털을 쓸고 있었다. 판사의 말에 걱정이 되어 잠시 변호사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판사의 말을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었다. “블로크 씨” 경고하는 투로 레니가 말하고는 그의 윗옷 칼라를 잡아 약간 위로 끌어당겼다. “그 양탄자 털을 내버려두고 변호사님 말씀이나 들어요.” (211-212,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부분)> [‘레니가 말하고는 그의 윗옷 칼라를 잡아 약간 위로 끌어당겼다.’ 이는 레니가 상인을 개 취급하고 있는 장면이다. (50RKE)]
*대성당에서 / 213-240
[성당사제가 감옥 신부이다. 교회의 권위는 권력을 비호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권력을 만들려고도 한다. 그래서 권력과 권위는 상보관계이지만 가끔은 주도권 쟁취에서는 적대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사제는 권력에 예속된 도구이다. ]
<카는 은행에 매우 중요하며 이 도시에 처음 머무르고 있는 이탈리아 사업 동료에게 몇 가지 예술 유적들을 보여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른 때 같으면 분명 명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지시였지만 지금은 온 힘을 다해야 은행에서 체면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형편이어서 그는 마지못해 그것에 응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 있을 때면 언제나 걱정스러웠다. 그는 근무 시간을 예전처럼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다. 대개는 어쩔 수 없이 근무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무실에 있지 않을 때면 그의 걱정은 더욱더 컸다. 마음속으로 카는 항시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차장이 수시로 자기 사물로 들어와 책상에 앉아 자기 서류들을 뒤적이기도 하고, 수년 전부터 자기와 가까이 지내고 있는 고객들을 대신 맞아들여 이간질을 하며, 게다가 아마 오류까지도 찾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 (213 첫문단 시작부분)>
< ... “제가 도대체 뭘 착각하고 있단 말입니까?” 카가 물었다. “당신은 법원에 대해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법의 서문에 착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씌어 있지요. ‘법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가능한 일이지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났기 때문에 시골 사람은 몸을 굽혀 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문지기가 그것을 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그렇게도 끌린다면 내 금지를 어겨서라도 들어가 보시지. 그러나 알아두게. 나는 힘이 장사지. 그래도 나는 가장 낮은 문지기에 불과하다네. 그러나 홀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하나씩 서 있은데, 갈수록 더 힘이 센 문지기가 서 있다네. 셋째 문지기의 모습만 보아도 나조차도 견딜 수가 없다네.> 시골사람은 그러한 어려움을 예기치 못했다. 그는 법이란 정말로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털외투를 입은 문지기의 모습. 그의 큰 매부리코와 검은 색의 길고 가는 타타르족 모양의 콧수염을 뜯어보고는 차라리 입장을 허락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낫겠다고 결심한다. 문지기가 그에게 걸상을 주며 문 옆쪽에 앉게 한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날 여러 해를 앉아 있다. 그는 입장을 허락받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자주 부탁을 하여 문지기를 지치게 한다. 문지기는 가끔 간단한 심문을 한다. 그의 고향에 대해 자세히 묻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에 대해 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나 건데는 별 관심 없는 질문들이고, 마지막엔 언제나 그에게 아직 들여보내 줄 수 없노라고 문지기는 말한다. 시골사람은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장만해왔는데, 문지기를 매수할 수 있을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용한다. 문지기는 주는 대로 받기는 하면서도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이 무엇인가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 뿐이라네> 하고 말한다. 여러 해가 지는 동안 시골 사람은 거의 쉬지 않고 문지기를 지켜보고 있다. 그는 다른 문지기들은 잊어버리고 이 첫째 문지기만이 법으로 들어가는데 유일한 장애물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이 불행한 사건을 큰 소리로 저주하다가 후에 늙으면서부터는 그저 혼자말로 투덜거릴 뿐이다. 그는 어린애처럼 유치해진다. 그는 문지기를 수년간 연구하다가 그의 모피 식에 붙어있는 벼룩까지 알아보고 그 벼룩에게까지 자기를 도와 문지기의 마음을 바꾸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침내 그의 시력이 약해진다. 그는 자기 주변이 정말 점점 어두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눈이 착각을 일으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그 어둠 속에서 그는 법의 문으로부터 꺼질 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광채를 알아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죽기 전에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 세월의 온갖 경험들이 그가 여태까지 문지기에게 물어보지 못한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이제 굳어져가는 몸을 더 이상 똑바로 일으킬 기력도 없어서 그는 문지기에게 눈짓을 한다. 문지기는 그에게 몸을 깊숙이 수그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몸 크기의 차이가 시골 사람에게 매우 불리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또 무얼 알고 싶은 건가?>라고 문지기가 묻는다. <끈질기기도 하군.>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법을 절실히 바랍니다.> 시골 남자가 말한다. <지난 수년 동안 저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해줄 것을 요구한 적이 없는 데, 어째서 그런가요?> 문지기는 시골 사람이 이미 임종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고, 희미해져가는 그의 청각에 들리도록 고함을 친다. <이곳에서는 자네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라받을 수가 없네. 왜냐하면 이 입구는 단지[오직] 자네만을 위해서 정해진 곳이기 때문이야. 이제 가서 문을 닫아야겠네.>’” / “그러니까 문지기가 그 남자를 속인 거군요.” 카가 곧바로 말했는데, 그 이야기에 매우 강하게 끌렸던 것이다. “속단하지 말아요.” 신부가 말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나는 책에 씌어 있는 대로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속임수에 대해서는 거기에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습니다.” .. (230-232)> - [신부의 ‘법 앞에 문지기’ 이야기는 카톨릭 피정에서 할 법한 이야기이다. 신법의 문지기는 각 개인에게만 열려있을 것이다. 그 신법이 그 개인의 사망에서 닫혀 진 것은 더 이상 신법이라는 “기만” 또는 “착각(l’illusion)”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상층의 상징에 매몰되면 그 앞에서 죽을 때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심층의 권능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하나의 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 없다는 것 안다. 흐름과 탈주선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문이 있다. 단지 현실에서 주체가 상층을 바라볼 때는 ‘하나“의 문만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50RKE)]
< ...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해요.” 신부가 말했다. “당신은 교도소 신부이지요” 카가 말하고는 신부에게로 다가갔다. 은행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가 말했던 만큼 그렇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기에 더 머물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난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요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240,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부분)>
*종말 / 241
<카가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저녁에 – 저녁 아홉시 경 거리가 조용한 시간이었다. - 두 남자가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프록코트를 입고, 창백하고 살이 쪘으며 실크 모자를 고정시킨 듯이 푹 눌러쓰고 있었다.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를 두고 현관문에서 간단힌 의례적인 말을 하더니 , 카의 방문 앞에서는 그런 의례적인 말을 요란하게 되풀이했다. 그들의 방문이 통지되지 않았을 텐데도 카는 그네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고 문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태도로 손가락에 꼭 끼는 새 장갑을 천천히 끼고 있었다. 그는 곧 일어나 그들을 호기심에 찬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저 때문에 오셨군요?” 카가 물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든 실크 모자로 서로 상대방을 가리켰다. 카는 다른 사람이 찾아오리라 기대했었노라고 스스로 실토했다. ... (241, 시작문단)> [수배되지 않고 소송이 시작한지 1년이구나... / 나도 일 년이 지난 것 같다. (50RKE)]
<그러나 카의 목구성에 한쪽 남자의 양손이 놓이고 다른 남자는 칼로 그의 심장을 찌르고는 거기를 두 번이나 돌렸다. 흐려져 가는 눈으로 카는 두 남자가 바로 자기 눈앞에서 뺨과 뺨을 맞대고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는 죽은 후에는 치욕만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247, 마지막 문단)>
** 미완성된 장들 / 249
B의 여자친구 / 251 = 위에 있음(*「태형리」 앞에 놓여 있음)
*검사 / 261
[검사 하스테러, 하스테러의 애인 헬레네 .. ]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에 은행에서 지점장이 업무상 이야기를 하던 중 전날 저녁에 카를 보았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가 착각하지 않았다면 카는 검사와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는 것이다. 지점장은 그걸 매우 신기하게 여기면서 – 평소 그의 세밀함을 말해주듯이 – 어느 교회이름까지 들어가면서 그 긴 측면 쪽에 있는 분수 근처에서 그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신기루를 묘사하려고 했더라도 달리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는 그에게 검사가 자기 친구이며 자기네들이 실제로 어제 저녁에 교회 옆을 지나갔노라고 말해주었다. 지점장은 놀라운 듯 미소를 짓고는 카에게 앉으라고 독촉했다. 그것은 지점장이 카의 환심을 사게 된 순간들 중의 하나였는데, 이 약하고 병들어 기침하고 있는 남자. 책임이 많은 일 때문에 과도한 부담을 가진 이 남자가 카의 안녕과 미래에 대한 염려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266)> *엘자에게로 / 268-269]
[엘자는 카가 일주일 한번쯤 만나는 애인이다. 두 쪽인데 엘자에 대해 쓰려고 시작하다 만 것이다.]
*차장과의 싸움 / 270-274
[은행에서 진급 상으로 경쟁자인 차장 이야기는 다섯 쪽이다. 좀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관청 / 275-278
[네 쪽이다. 법원으로 가는 길]
< 처음에는 그것과 연관 지을 뚜렷한 의도는 없었지만 카는 여러 번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기 사건에 대한 고소가 맨 처음 일어난 관청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처음 물었을 때 티토렐리나 볼프 하르트도 그 관청의 정확한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 (275. 첫 문단 시작 부분)>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 / 279
[삼년 째 안 찾아간 어머니, 그래도 생활비는 보낸다. ..]
<... 그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법원과 관련이 있는 직원[쿨리히]에게서 편지를 빼앗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찢어버릴 수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은 좋은 징조일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은 물론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창백하고 둥근 쿨리히의 뺨을 소리가 나도록 두 대 갈리는 일이었다. (282 마지막 문단 중 마지막 부분) >
# [역자 후기] 경계선상의 마술가, 카프카 / 283-301
[체코인] 카프카(Kafka 1883-1924)의 소설 소송(Der Prozeß, 1915)(1925출간)은 [오스트리아인]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1880-1942)의 특성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 Roman, 1930)(3권 1933)와 [독일인]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마(魔)의 산(Der Zauberberg (La Montagne magique) 1924과 함께 작가, 비평가, 문예학자 그리고 다양한 언론 매체 등을 통해서 20세기 독일어권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어 왔다. ... / 사람들은 카프카의 작품을 꿈같은 환상문학으로, 수수께끼 같은 비유적인 작품으로, 유대교의 카발라 세계를 반영한 작품으로, 아버지와 아들 간의 심리적 갈등 문제로, 아니면 현대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소외 문제로, 문명 세계의 비판이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 사회의 권력과 욕망의 구조로, 해체주의적 형식주의로, 초현실주의 세계의 반영으로, 극단적으로는 ‘병적인 작가 개인의 망상’을 반영한 작품으로까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283) [카프카는 소설(글쓰기) 영역에서 탈영토화 작업의 선구자가 아닐까?]
그는 당대의 유명한 신비주의적인 신지학자이며 살아있는 인성교육의 창시자 였던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 박사를 찾아가 자신의 글쓰기는 항상 꿈과 잠, 비몽사몽의 중간 상태에서 혹은 깊은 침장의 순간에 많은 문학적 착상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287)
카프카의 모든 작품의 공통된 주제와 서술기법 또는 서술 구조를 담았다고 불 수 있는 미완성 작품 사냥꾼 시라쿠스((Der Jäger Gracchus, 1917)(카프카는 이 짧은 단장을 무려 다섯 개의 미완성 판본으로 남기고 있다) 역시 이러한 이중적인 시각과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카프카는 예전의 통일적인 보편적 세계의 상실과 일상생활의 굴레 속에서 정신적, 영혼적 세계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 인간의 실존 상황과 정신세계와 현실세계가 서로 양극화된 채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인간사를 독특한 비유적 시각으로 조망하고 있다. (289)
실재로 ‘그라쿠스’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카프카와 같은 뜻인 까마귀[le corbeau]를 의미한다. 카프카는 이 경계선상에 있는 그라쿠스의 상을 통해서 현대 인간의 비극적인 실존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갈라진 두 세계를 동시적으로 조망하고자 애쓰는 그의 불행이지만 이상적인 예술가상을 드러내고 있다. (290-291) [까마귀를 어디서 보는 냐에 따라 까마귀에 대한 인상이 다르다. 흐리고 싸늘한 초겨울의 들판에서 보는 까마귀는 우울하다. 그런데 남불에서 6월의 맑고 건조한 날씨에 하늘의 태양이 비칠때 보는 까마귀, 즉 고호가 보았던 까마귀는 매우 신사같은 모습이다. 까마귀 털 빗이 까만 색도 아니고, 짙은 잿빛이며 잘 차려 입은 연회복(연미복) 처럼 보인다. 제비가 아니라 까마귀로 비유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까마귀 서양에서 길조(吉鳥)라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남프랑스불에서 보았던 대로, 지중해 문화에서 까마귀는 길조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카프카는 소송을 쓴 해인 1914년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1866)과 어느 러시아 시인의 「강제수용소에서 온 편지」를 읽었는데, 이것이 역시 소송의 문학적 소재들로 사용되었다. 특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의 살해에서 느끼게 되는 ‘죄의식’과 ‘양심의 법’에 대한 갈등과 고백은 소송의 주인공인 요제프 K의 인물과 성격, 그리고 소설 내용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297)
“법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 ... 그들은 모두 법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실상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을 전제로 했다고 생각되는 현실적인 제도나 체제에 속한, 즉 구체적인 인간 법제도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법의 생리를 알고 있기는 하나 시골 남자와 마찬가지로 절대적 법을 본적도 그 안으로 들어간 적도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역시 문지기와 마찬가지로 법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 밖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함부로 법 안을 드나들려는 자들을 마긱도 하고 또한 뇌물 받기도 하며 여인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그들이 읽고 있는 서적들에는 ‘대중 연애소설’이나 ‘춘화’ 등이 끼여 있다. 시골남자로 대변되는 요제프 K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묻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소송 자체를 누군가 “꾸며낸 장난”이거나 “일종의 은행 사업”으로 생각하며, 뇌물로 법원에 속한 자들의 환심을 사려 하거나 법원 관리들과 가까운 여인들을 자기 소송 목적이나 성적 수단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그는 겸허함보다 명망을 중시하고, 의무보다 승진을 생각하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기만과 거짓을 일삼고 있으며,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위선적이고 비열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요제프 K를 대변하는 인물인 ‘시골남자(원래 히브리어로 무지자(無知者)란 뜻)의 법에로의 입문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293-294)
노고산 연구실에서 2005년 1월 / 이주동 (301)
(17:8, 50RKF) (17:19, 50SK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