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수식관(數息觀)과 일상선(日常禪)

[백우]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15. 수식관(數息觀)과 일상선(日常禪) 

불교닷컴    2015년 12월 14일 (월)     박영재 (선도회 지도법사 및 서강대 교수) 

성찰배경 : 오늘날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수행법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에 의해 확립된 수행 방법으로써, 당시 오늘날의 전문직 종사자에 해당하는 남송 시대의 사대부 관리들을 포함한 재가수행자들에게도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간화선 수행을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수식관(數息觀)' 수행을 먼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화두를 참구하더라도 이미 번뇌, 망상 속에 길들여져 있어 화두를 꾸준히 참구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이 점이 바로 일반인들에게 일상속에서 간화선 수행을 어렵게 여기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우선 초심자 분들에게 매우 유용한 방편인 '수식관(數息觀)' 수행법과 2015년 2학기 '우주와 인생' 수강생 가운데 수식관에 매혹되어 이를 일상 속에서 날마다 온몸으로 실천한 한 학생(2014학번)이 학기말 과제(수정된 인생지도)로 제출한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는 삶을 위한 수식관 예찬론자의 인생지도'란 제목의 '일상선(日常禪') 체험기를 원문 그대로 가감 없이 소개를 드려 참선에 관심이 있는 <불교닷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수식관(數息觀)과 일상선(日常禪)

   수식관의 요령

   예로부터 번뇌, 망상을 보다 쉽게 쫓기 위해 수를 세면서 숨을 쉬는 수행법이라는 뜻의 '수식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도 아울러 가다듬게 하는 좋은 방법으로 널리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먼저 초심자(初心者)를 위해 바른 좌선(坐禪) 자세(반가부좌: 특히 뼈가 굳은 20대 이후의 초심자에게는 무릎관절을 보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세임)와 수식관의 핵심요령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세 : 먼저 개량한복 같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허리띠를 풀어 허리를 느슨하게 한다. 그런 다음 방석 하나를 바닥에 깔고, 다른 방석은 반을 접어 엉덩이만 받치며, 허리를 펴고, 반가부좌를 한다.  참고로 편한 쪽 다리만 올리지 말고, 늘 교대로 다리를 바꾸어야만 척추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때 두 무릎은 아래 깐 방석에 안정되게 닿아야 한다.  그리고 두 손은 겹쳐놓되, 엄지손가락을 서로 붙이면서 계란모양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다리 위에 놓는다.  그런 다음 혀를 입천장에 넓게 붙이면서, 윗니와 아랫니를 가볍게 붙인다.  그런 다음 앞뒤, 좌우로 오뚝이가 된 기분을 가지고 흔들면서 바른 중심 자세를 잡는다.  끝으로 턱을 아래로 살짝 당기면, 눈은 코끝을 통해 본인의 앉은키에 맞게 1m에서 1.5m 전방을 주시하게 되는데, 초심자들은 눈을 살짝 감는다.  참고로 초심자의 경우, 처음에는 눈을 뜨면 주위가 산만해 집중이 잘 안되기 때문에 눈을 감고 하다가, 졸음이 오기 시작할 때 눈을 반쯤 뜨면 된다.

   호흡 : 이제 이런 자세를 취한 다음 우선 아랫배[단전丹田]를 자연스럽게 집어넣으면서 숨을 한번 다 토해낸다.  그런 다음 의식을 집중해 마치 코앞에 공기 입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랫배를 서서히 불리면서, 배가 다 불렀을 때, 공기 입자가 아랫배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다시 서서히 아랫배를 집어넣으면서, 서서히 공기 입자를 밀어낸다고 생각하라.  그리하여 아랫배가 다 들어갔을 때, 공기 입자가 코끝으로 다시 나왔다고 생각한다.

   수세기 : 아울러 이렇게 한번 숨을 길게 내쉴 때마다, 마음속으로 크게 "하나아! 두우울! 세에엣! 네에엣! 다서엇! 여서엇! 일고옵! 여더얼! 아호옵! 여어얼!"하면서, 열까지 세고는 또다시 하나로 돌아와 수를 세면된다.  처음에는 이것도 쉽지 않을 것이나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되는데, 만일 수세는 것을 놓쳤을 때는, 다시 하나부터 수를 세면된다.  한편 조심할 것은 수를 셀 때, 온몸으로 우주가 떠나갈 듯한 기분으로, 마음속으로 크게 외쳐야만 한다.  그래야만 망상이 일어나다가도 외침에 파묻혀 버려, 온전히 수만을 셀 수 있게 된다.

   수식관에 기초한 일상선

   이제 이를 바탕으로 초심자들은 집에서 이른 아침 기상하자마자 좌선 자세를 갖추고 먼저 나만을 위한 나만의 삶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자세를 길러주는, 누구나 실천 가능한 '新사홍서원'을 염송하면 좋습니다.  그런 다음 약 25분 정도 수식관 수행을 하고, 마칠 무렵 오늘 해야 할 시급한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는 하루 일과에 온몸을 던져 뛰어듭니다.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좌선 자세를 잡고 먼저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수식관을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것이 바로 일상선(日常禪), 즉 일상 속에서의 생활선(生活禪) 수행의 전부입니다.

   참고로 수식관을 매일 25분 정도 꾸준히 할 경우, 대개 빠른 사람들(주로 순수한 대학생들)은 15일에서 두 달 정도, 좀 머릿속이 복잡한 분들(주로 나이 많은 분들이나 많이 배운 지식인들)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면 잡념 없이 온전히 수세기에 몰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그 한 사례로 앞에서 언급한 대로 수강생의 체험기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상선(日常禪)' 체험기

   '우주와 인생' 수업 첫 시간, 앞자리에 앉아야 수업에서 얻어 가는 것이 많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자리를 옮겼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우주와 인생 수업이 종강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또 낙엽이 지고 눈도 내리며 한 학기가 끝이 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따금씩 믿기지가 않아 혼자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기도 하며 학기를 마무리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수식관의 기적은 이미 중간고사 시험을 치며 향상된 집중력과 차분한 마음을 통해 느껴왔으며 너무 기쁜 나머지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느꼈던 점에 대한 성찰 글을 개인적으로 써서 교수님께 제출하기까지 하였다. 

   그 성찰 글을 쓴 계기는 다음과 같다.  우주와 인생 첫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의 학점 만점 신화를 들으며 혼자만의 약속을 했었는데, 바로 모든 과목에서 에이 학점을 맞겠다는 약속이었다. 물론 학점이 그 수업의 다는 아니지만 에이 학점보다도 에이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이번 학기에 듣는 모든 수업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나의 다짐이 담긴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해 길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잘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개인적인 성찰 글을 냈던 것이었다.

   4달간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비단 집중력 뿐만은 아니었다.  그 집중력으로 인해 얻은 공부에 대한 흥미와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난 일은 훗날 미래에 나 자신에 대해 회상할 때 인생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수식관을 통한 집중력 향상 덕분에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었고,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정말 배움에 대해 익히려는 태도를 가지고 공부를 했더니 배우고 있는 과목들에 진정으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또한 평소에 매일매일 공부하는 습관이 길러져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예전보다 줄게 되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평소에 공부를 미리미리 해두어서 책을 읽을 시간도 많아졌다.  본래 나는 자기 계발서와 문학작품을 좋아해서 그런 책들을 주로 읽어왔었는데, 즉, 편독이 심한 편이었는데, 요즘은 과학과 관련된 서적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편독하지 않고 즐겁고 다양하게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는 엄청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학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수업을 들으면서도 자꾸 스마트폰에 손이 가려하고 그것을 참는 것이 정말 힘들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에 요즘은 수업시간 내내 스마트폰에 대한 생각도 잘 안 들고 집착이 많이 줄어든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수식관을 통해 차분해진 마음 덕분인지 예전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더 관계를 잘 맺고 있다.  예전에는 섭섭한 것이 있으면 혼자 집에서 계속 그 섭섭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나 자신을 자꾸 그 생각에 옭아매곤 하였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수식관을 통해 명상을 하다보니까 섭섭한 마음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리거나 이해를 하게 되었다.

   하루 20분의 수식관으로도 이렇게 인생이 많이 바뀌었는데 정석대로 하게 되면 얼마나 더 긍정적인 변화가 올지 너무 기대가 된다.

   인생지도에 수식관에 대한 칭찬만 너무 많아 수식관 예찬론 같은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나의 인생에서 4달 동안 많은 변화를 주었고 앞으로 하는 일에도 나의 힘이 되어줄 아랫배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수식관에 대해 이보다 더 적게 적을 수가 없다.

   학기 초에 처음 썼던 인생지도에서는 진로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다.  그런데 우주와 인생 수업을 들으면서 순수하게 과학에 대한 학문적 흥미와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적성과 진로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고, 지금 현재는 적성과 진로에 대해 자신 있게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는 꿈을 찾게 되었다.

   우주와 인생 수업을 들으며 예전에 관심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접었던 우주에 대한 흥미를 다시 일깨울 수 있었고, 전공인 화학에 대한 흥미도 얻게 되어 우주와 관련하여 화학도의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화학도의 길에도 많은 길이 있다.  그 중에서도 피부과학 쪽과 약학 쪽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더 적성에 맞을지, 내가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방학이 되면 이러한 나의 꿈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지도를 그리고 싶다.  여유롭게 서점에 가서 전공 서적들을 둘러보며 꿈에 대한 지도를 그려나갈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21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표나 나의 인생에 관한 지도를 구체적으로 그려 지켜온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일 때도 그저 방학 전 학교에서 숙제로 계획표를 그렸을 뿐 실제로 지킨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지도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방학만 되면 계획표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렇게 인생의 지도를 그리는 일에도 무관심해지고 무감각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만약 수식관을 몰랐다면, 우주와 인생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인생지도를 쓰는 일도,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그것에 따른 노력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와 인생'이라는 이 다섯 글자에 포함 되어 있는 4개월 동안의 여정은 나라는 사람이 많이 성장하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성장해 나가는 데에 끊임없이 도움을 줄 든든한 조력자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보통은 나이가 들어서 살아온 인생을 회고할 때 자신의 터닝포인트가 언제였는지 깨닫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감히 아직 인생을 오래 살아보진 않았지만 수많은 터닝포인트 중 대학교 2학년 2학기 시절이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고 미리 말하고 싶다.

   우주와 인생 수업, 수식관,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 수강했던 다른 모든 수업들과 그 수업을 열심히 이끌어주셨던 모든 교수님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번 학기를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 자신조차 내가 이렇게 모든 수업에 최선을 다하고 특히 우주와 인생 수업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얻어갈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 하였었다. 그저 과학 지식과 성찰에 관한 내용이 조금 들어있는 수업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한 사람의 아니, 나 말고도 많은 학우들의 인생을 바꾸는 수업을 듣게 되어서 정말 행운아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우주와 인생 수업을 해주신 박영재 교수님께서 주신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기'라는 책을 벗 삼아 계속되는 성찰여정을 떠날 것을 기약하며 나의 인생지도를 마친다.

   군더더기 : 사실 이 대학생이 수식관을 익히고 이를 일상 속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학생의 본분사(本分事)인 이번 가을 학기에 수강하는 모든 과목을 온몸을 던져 성실하게 수강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런 일상선 수행을 종교계를 포함해 모든 각계각층으로 활용할 경우 이해득실에 얽혀 맡은 바 본분사를 망각하고 현재 고소고발을 밥 먹듯이 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갈등을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않았으리라 판단합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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