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도 말했지만 유스는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아서요. 나야 유스가 여기 있으면 좋긴 하지만....."
"글쎄다,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걸? 여기 있는게 편해."
"당신은 왕궁 기사잖아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그럼 직업이 있고 또 거기에 당신 생활이 있쟎아요."
"훗, 내직업이라...... 그래, 처음 왕궁 기사가 되었을당시엔 정말 기뻤지, 목숨을 다해 왕께 충성하는 기사가 되고 싶었는데...."
"기사 생활이 안 좋았나보죠?"
"후후후...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참내, 아직 노인도 안 된 사람이 노인처럼 저렇게 세상 다 산것처럼 굴다니.... 나 도 모르겠다. 자기가 가고 싶지 않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왠지 저러는게 찝찝하군....
며칠이 더 지났다. 유스는 여전히 돌아갈 생각을 안했다.
"유스, 돌아가야 하지 않아요?"
"왜?"
"왜라니요, 생각해보세요, 유스는 여기 반역자를 잡으러 온 왕궁 기사였쟎아요, 그런데 반역자도 죽고 같이 온 기사들도 죽고 유스 혼자 남았는데 돌아가서 보고를해야 하지 않아요? 안그러면 어떻게 된건지 모르니까 여기에 또 기사들을 보내 올
지 모르쟎아요, 그럼 여기 이러고 있는 유스는 뭐라고 할꺼여요?"
"오 그렇구나. 똑똑 한걸?"
"그건 똑똑한게 아니라 상식이라구요, 상식!"
"뭐 금방 찾을수 없다는건 그들도 잘 알고 있을테니 몇달 늦는다고 달라지는건 없겠지, 단지 난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그곳이 싫어요?"
"지금은......"
"그럼 갔다가 다시 오면 돼잖아요. 가서 보고를 하고 기사를 그만 두고 여기로 와 요. 여기 아무도 못 살게하고 유스를 기다리고 있을께요."
"후후후, 처음에는 나보고 당분간 여기 머물라고 하더니만 이제는 날 못 보내서 안달이구나, 내가 그렇게 싫증났니?"
"그런게 아니라구요."
"알아, 나도 언젠가는 거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잠시 나를 억매고 있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잊고 그냥 지내보고 싶었어.... 단지 그것 뿐이야. 네말대로 나는 곧 가야 하겠지."
".........."
"하하하,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꼭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같쟎아."
"기사라는게 좋은게 아닌가봐요, 유스가 그러는걸 보면..."
"그렇지 않아. 단지 지금 왕궁이 좀 혼란스러워서 그러는 거야, 예전엔 우리 왕궁 기사단은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해주는 대단한 곳이었다구.... 이제 다시 안정돼면다시 예전처럼 될꺼야."
"흠 나야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알고 싶지는 않지만 어째든 돌아갈 생각은있나 보군요."
"그래 돌아가야지. 할아버지께 부탁해서 내게 건 봉인을 풀어주겠니?"
벌써 봉인 푸는 방법을 알아 놨다구....... 할아버지께 허락도 맡았구.
"언제 가게요?"
"빨리 갈수록 좋겠지, 아힌이 이렇게 날 싫어하는데..."
"싫어하는게 아니라고 했쟎아요."
"그래그래, 어째든 거기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 올꺼야, 그때까지 여기가 이대로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마 그대로 있을꺼예요. 여기에 다른 사람이 살지 않게 내가 봐줄께요."
"하하하, 왠지 정든 님을 떠나 보내는 아가씨의 대사 같은걸?"
"에게게? 유스가 잘생긴 젊은 남자라도 되는줄 알아요?"
"뭐? 내가 어때서, 난 아직 장가도 안간 총각이라구."
"총각이면 단가요? 나이를 생각 하셔야지요."
"예예~~ 알겠습니다. 아름다우신 레이디."
나는 순간 흠칫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여자라고 말한 적도 없고, 또한 여자처럼 행동한 것도 없는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요?"
"처음에 네 할아버지가 손녀를 해코지 하려고 했다고 펄펄 뛰셨쟎니, 솔직히 그때는 잘 몰랐는데 네가 그렇게 검술 연습을 하는데도 팔에 힘이 없어서 바스타드 소드를 못 쓰는 걸 보고 눈치채기 시작했지, 그리고 더운 날인데도 나랑 씻으려고 하
지도 않았쟎아. 보통 소년들 같으면 같이 냇가에서 씻을텐데...."
"참내, 눈치하난 빠르다니까. 그런데 왜 여태껏 모른체 했어요?"
"그냥 아힌이 말을 안해 주니까,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데 굳이 아는체 할필요도 없을것 같아서말야..."
"어째든 그럼 언제 출발할꺼예요?"
"봉인이 풀린다음 곧 출발할꺼야."
"그럼 지금 풀어줄께요."
"아힌이 풀줄 알아?"
"벌써 할아버지께 허락 맡았다구요, 그럼 오늘은 늦어서 못갈꺼구, 내일 가겠네요?"
"그래야겠지? 내일 새벽에 출발해야겠어."
"그래요 그럼, 내일 난 배웅 안할꺼예요. 일찍 못 일어나거든요."
"이거이거, 내가 가는데 아린이 배웅을 안해주면 섭섭할텐데?"
"또 돌아 올꺼잖아요, 그러니까 알아서 가세요. 여기까지도 잘 왔으니까, 짐정도는챙길줄 알쟎아요. 참 돈은 있어요?"
"그래, 나에게도 얼마정도 있고, 또 이 집에 돈도 조금 있더라고... 그거면충분해."
"잘 됐네요, 그럼 봉인을 풀께요"
나는 할아버지께 배운대로 주문을 외우고 봉인을 풀었다. 할아버지가 봉인할때는별 힘들이지 않고 하시는것 같은데 내가 봉인을 풀려니까 꽤 많은 양의 마나가 필요했다. 역시 이것이 고룡과 해츨링의 차이인가?
봉인을 풀고 난후에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레어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난 일부러 늦게 일어났고 앤드루의 집에 가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 레어에 가서 늦께 까지 놀다가 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난 앤드루의 집에 가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봄이 왔다.
이제쯤 유스가 돌아 올거란 생각이 든 나는 그때서야 앤드루의 집에 가봤다. 오랫동안 비워놓은 집이라서 그런지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거실의 탁자에는유스가 떠나기전 써놨을 메모가 어떤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아힌에게
정말 진짜 배웅오지 않을 줄 몰랐는데 안오다니 너무한걸?
섭섭해... 하하하 농담이고 아힌에게 약속한대로 그곳 일을 정리하고 일찍 돌아오도록노력할께. 아마 늦어도 2년 안에는 돌아 올꺼야. 그때까지 집 잘 지키고 있어.
그리고 이건 우리 어머니 유품이야. 약속의 징표로 줄테니까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
- 유스가 -
에구구 나이도 많은 아저씨가 닭살돗는 짓하고 있네, 하지만 뭐 기분은 나쁘지 않은 걸? 단지 아저씨가 한 20년만 젊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에구구 내가 뭔 생각 을 하고 있는거야?
탁자위에는 메모지 말고도 목걸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렇게 고급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사파이어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어디보자 벌써 거의 일년이 지났으니까 일년 안에는 돌아 오겠구나.... 언제 올지모르니까 가끔 와봐야 겠다.
그뒤로 나는 가끔씩 집에 와서 청소도 하고 거기서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일년이다가도록 유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뭔 일이 생겼나? 하긴 그곳이 좀 복잡한 상황 이랬지? 참 나도 많이 외로운가보군....꼭 낭군을 기다리는 색시 같쟎아?'
그러나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다시 몇년이 지나도 유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안 오려나 보군. 뭐 하는수 없지, 어짜피 평생을 같이 살 것도 아니고, 또 돌아 와봤자 내가 성룡이 되기도 전에 늙어 죽을텐데뭐....'
라고 위로를 해보았자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을 모른체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레어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용히 폴리모프의 주문을 외웠다. 오랜만에 드래곤 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레어에도 오지 않고 앤드루의 집에서 지냈던 것이다.
나는 레어에 누워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린아, 아린아 그만 일어나 언제까지 자고 있을꺼야?"
"으응~~ 엄마? 조금만 더 잘래~~"
"어리광 피우지 말고 얼른 일어나지 못해? 100년간 잤으면 됐지 얼마나 더 자려고 그래? 너 성룡이 될때까지 잘꺼야?"
뭐? 100년?
정신이 확 들었다. 일어나보니 인간 세상에 놀러 갔다는 엄마가 어느새 돌아왔는지 내 앞에 계셨고 그 옆에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할아버지, 엄마? 언제 돌아 오셨어요?"
"쯧쯧 이것아 네가 동면한지 벌써 100년이 지났어."
"그러길래 왜 애는 재우고 그래요?"
"흥, 해츨링을 버리고 놀러나간 엄마가 뭔 잔소리가 그렇게 많냐? 내가 그랬으면 뭔가 이유가 있는줄 알 것이지."
"뭐라구요? 평소에 잘 했으면 내가 이런말도 안하지요. 그러길래 누가 평소에 못하래요?"
"흥, 그럼 넌 평소에 못난 행동을 하던 나한테 애를 맡기고 놀러 갔냐?"
"아니 누가 아버지한테 맡겼다고 그래요? 단지 레어가 가까이 있으니까 자주 봐달라고 했지."
"그게 그거지 뭐냐?"
에휴휴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전혀 변하신게 없군 두분은..... 그래도 이분들 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100년이 지났으니 내가 몇살이지?
"잠까만요 엄마 내가 100년동안 잤으면 지금 내가 그러니까 나이가..."
"400살 하고도 이제 99살이지, 내일이 네가 태어난지 500년이 되는 날이란다."
"벌써 그렇게 됐어요? 그럼 내일은 내가 성룡이 되는 날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너를 깨우러 온게 아니겠냐? 네 엄마도 너가 성룡
이 되는 걸 보기 위해 이렇게 왔쟎니...."
"세월 참 빨라요, 이녀석이 태어난게 얼마 안 된것 같은데, 벌써 성룡이라니....."
"글쎄말야, 이녀석도 이제 한명의 드래곤이 되는군..."
"그러고보니 해츨링이 또 태어 났다지요?"
"그래, 이번엔 두마리나 태어 났다는군, 실버하고 그린이라고 하던데?"
"흠 이제 해츨링도 계속 태어나니 드래곤 로드도 걱정을 덜었군요."
"그렇지, 이로써 우리 드래곤도 100명을 채웠군..."
"할아버지 그럼 드래곤이 100명이 못 넘었나요?"
"그래, 우리 드래곤들은 아기를 잘 낳지 않거든, 그래서 종족수가 몇 안돼지, 너희
엄마가 태어날쯤엔 50명이 됐나 그럴껄? 그때 전 드래곤 로드가 종족수를 늘리기 위
해 무단 애를 많이 썼지."
흠.... 드래곤 숫자가 100명이라고? 하긴 드래곤이 많으면 큰일이겠지....음식도 많
이 필요할꺼고 또 드레곤 레어도 많이 필요할꺼고, 또 많은 드래곤들이 인간 세상으
로 놀러가봐......... 음 역시 능력있는 종족은 적은 편이 좋겠군....
"아! 그래 아린아 내일 할머니 레어로 오는것 잊지 마라. 네가 성룔이 되는 날이니
지금 있는 레드 드레곤들이 다 모일꺼야."
"아린 애비도 오나?"
"그 용놈(?)은 인간 세상으로 놀러 갔어요. 뭐 자기 자식이 성룡이 되는날인데 올지
도 모르지만..."
"흠 그렇군, 그놈 아직 아린을 한번도 안 봤쟎아?"
"글쎄 자기 자식한테 관심도 없는 용이라니까요."
그러고보니 난 내 아버지 되시는 드래곤을 한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궁굼
해 하지 않으니...나도 관심이 없긴 마찬가지군....
할아버지와 엄마가 내일 늦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돌아가지자 나는 슬슬 밖으로
나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긴 별로 변한게 없는것 같았다. 나는 우선
앤드루의 집이 있던 곳으로 가 보았다. 누가 부셔놨는지 아니면 저절로 무너졌는지
앤드루의 집은 무너져 있었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앤드루를 묻은 공터를
가 보았지만 거기도 공터였던 흔적은 사라져 있었다.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구나...'
그러고 보니 숲은 더 울창해져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의 발길이 없어진 탓이겠지
만.... 하지만 여긴 앤드루의 가족이 살았던 곳인 만큼 다른 사람들이 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저쪽으로 좀더 가면 마을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긴 약초를 캐는 사람
이나 사냥꾼이 없단 말야?
호기심이 동해진 나는 마을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 해츨링은 인간 마을에 가는 것이 금지되긴 했지만 난 내일이면 성룔이 되는데 뭐
봐주시겠지, 그냥 얼른 갔다오자.'
이런 나쁜(?) 마음을 먹은 나는 곳 마법으로 공중으로 떠오른뒤 마을이 있다는 쪽
으로 날아갔다. 100년이 지나서 그런지 마나가 예전보단 더 많아졌고, 더 자연스럽
게 흘렀다.
나는 길을 잃어버릴까봐 실프를 불러 냈다.
"안녕 실프, 오랜만이지? 저기 인간들의 마을을 찾아 줄래?"
'오랜만이예요 주인님, 저를 잊으신줄 알았어요.'
힉 실프가 말을 했다?
"지금 너가 말한것 맞지?"
실프가 살포시 웃더니 말했다.
'주인님의 마력이 높아 지셔서 저와 대화를 하실수 있는 거예요, 더구나 주인님은
저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니 제가 감히 말을 걸수 있는거예요.'
아 예전에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 났다. 드래곤은 정령들에게 말을 걸지 않
는다는.....
"어째든 잘됐네, 실프 너와 말을 할 수 있다니... 잠에서 깨어 나니 좋은 일들만
생기는걸? 그나저나 실프 이 근처에서 인간의 마을이 어디 있지?"
'저 산을 넘어가야 마을이 하나 나와요. 꽤 먼 거리지요.'
"뭐? 예전에는 이 근처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근처의 숲의 정령들에게 물어 볼까요?'
"그래줄래? 이상하다 분명히 이 근처에 마을이 있다고 들은것 같았는데...."
숲의 정령들에게 물어 본다고 갔던 실프는 잠시 후에 돌아왔다.
'백년전까진 저기에 마을이 하나있었대요,'
"그런데 왜 지금은 없는거지?"
'백년전에 고룡인 레드 드래곤이 와서 흔적도 없이 멸망 시켰다고 하던데요? 그뒤
로 이쪽으로는 사람들이 오지 않았대요.'
"고룡인 레드 드래곤?"
이 근처에서 고룡이라면 할아버지뿐인데? 근데 할아버지가 뭐하러 마을을 없애셨
지? 잠깐만 내가 동면을 하도록 마법을 거신게 할아버지라고 하셨지? 그럼 할아버
지가 유스의 일을 알고 계셨구나.... 그것때문에 화가 나셔서 마을을 없애버리셨
구........ 참내 할아버지는 너무 과잉 사랑을 하신 다니까.....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안됐지만 나는 사악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럼 실프 마을은 찾지 말고 우리 오랜만에 사냥이나 한번 해볼까?"
다음날 나는 할머니 레어로 갔다. 할머니께선 늘 그래왔듯이 레어에 계셨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할아버지, 엄마를 비롯한 다른 드래곤들이 와 있었단 걸까? 마치
내가 태어나서 여기로 이름을 받으러 온 때 처럼....
"어서 오너라 아린아. 좀 늦었구나."
엥? 난 일찍 온다고 온건데? 하지만 어른들이 먼저 다 와 계셨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군...
"죄송합니다. 좀 늦었어요."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어머, 벌써 쟤가 성룔이 되는군요."
"해츨링이 태어 났다고 모인지 벌써 500년이나 지났다니...."
"아! 당신은 아린이 태어 났을때 인간 세상에 있어서 몰랐겠군요?"
"예, 돌아와서 칸 세실리스님께(아린 할머니세요 ^^) 인사드리러 왔더니 해츨링이
태어 났다고 하시지 뭐예요."
"그러고보니 해츨링이 또 태어 났다지요?"
여전하군.... 내 인사가 끝나면 수다 떨기 시작하는거.... 비록 이게 두번째 모임이 긴 하지만
"자, 이제 그만 하시고 아린이 왔으니 성룡식을 시작 하겠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대표자인 칼 제피로스 아저씨가 나섰다. 참 엄마가 그러시는데 이젠
나도 성룡이기 때문에 아저씨란 호칭을 쓰면 실례란다. 정중히 ' 칼 제피로스님'
이라고 불러야 한다는군.
드래곤의 예절은 간단해서 좋긴 하지만 인간 예절에 익숙해 있던 내가 아저씨라 부
르던 사람에게 갑자기 그럴려고 하니까 상당히 어색했다.
"아시리안은 앞으로 나오시오."
성룡식이 시작 되었다. 그런데 성룡식이라고 해서 거창한게 아니었다. 그냥 칼 제
피로스께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다.
"위대한 태고의 용 칸 크라비스이시여, 이제 제 앞에있는 아이가 성룡이 되려 합니
다. 레드 드래곤의 대표로서 이 아이에게 성룡의 증표를 당신을 대신하여 내립니다.
"
흠.... 드래곤들은 신을 섬기지 않는 대신 자신의 조상을 섬기나 보군.....
그때 제피로스의 손을 통해 내 머리속으로 어떤 마나가 흘러 들어왔다. 그런데 내
마나와 다른 주제에 마나끼리 서로 충돌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서로 섞이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 머리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홀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겁먹을것 없단다 아린아. 그건 성룡의 표식, 각 종족의 대표들이 성룡이 되는 드
래곤들에게 주는 거란다. 그게 있어야 대표들이 각각의 드래곤들의 위치를 파악하
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단다."
그렇구나... 드래곤들도 서로 가끔은 연락도 하고 그러나 보군. 하긴 그러니까 행
사(?) 때마다 이렇게 모이지....
"이제 해츨링 아시리안은 레드 드래곤의 일족 칼 아시리안이 되었음을 선포 합니다.
"
그게 끝이었다. 그걸로 난 성룡식을 다 마친 거였다. 뭐 드래곤들은 게으른 종족들
이라 거창하지 않을 거라는건 짐작 했지만 이건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아니 겨우 이걸 보려고 이렇게 여기 모인거란 말야?'
물론 그렇지 않았다. 지금 끝난건 1부 였고, 이젠 성룡식을 막 치룬 성룡에게 행
복한(?) 2부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종족의 어른들이 이제 막 성룡
이 된 드래곤을 축하하기 위하여 준비한 선.물을 주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약간 낡아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건네셨다.
"아린아, 이건 마법의 주머니란다. 여기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어떤 물건이든
얼마만큼이든 넣을수가 있단다. 거기다가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아무리 많은
물건이 들어가도 무겁지 않단다. 너를 보아하니 곧 인간 세상으로 나갈 것 같으니
이게 너한테 좋은 선물일 것 같아 준비했단다."
"우와, 고맙습니다 할머니."
호호호, 이젠 짐 걱정은 안해도 되겠군, 다 여기다 넣어서 가지고 다니면 돼잖아.
이렇게 운이 좋을수가....
할아버지는 마법의 망토를 주셨다. 겉으로 보기엔 약간 낡은 그렇지만 푸른색의 아
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망토였다. 이것을 걸치고 있으면 5클래스의 마법에 정통으로
맞아도 끄떡이 없고 거기다가 추위는 물론 더위도 막아주는 여행에 딱 알맞는 망토
였다.
엄마는 마법이 걸린 부츠를 주셨다. 이건 엄마가 처음 성룡이 되어 인간 세상에 나
가서 여행을 하다가 구한 것이라고 하셨다. 역시 여행하기에 좋은 부츠였다. 더위
와 추위를 막아주는건 물론이고 왠만한 물리력은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드래곤들도 많은 선물을 주었다. 칼 제피로스는 금화 한자루를, 칼 세실리안
은 미스릴로 만든 정교한 레이피어와 단검 30자루를...
이렇게 해서 난 하루아침에 왠만한 인간 부자들 못지 않게 큰 보물들을 갖게 되었
다.
웃음이 저절로 나와서 입이 영어질 것 같았지만( 푸하하하하 ) 그래도 웃음을 감추
고 정중하게 감사를 표시했다.
이걸로 성룡식이 끝나나 했다. 하지만 한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바로 성룡식의 하
일라이트, 드래곤 로드와 전 드래곤 종족의 고룡들께 성인이 되었다고 인사를 드리
러 다니는 거였다. 물론 공간 이동으로 빨랑빨랑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그러면 하
일라이트가 아니지....
드래곤들은 시간이 남아 돌아 어쩔줄 모른는 종족, 인사가 한 몇년쯤 늦어도 귀엽게
봐주는 것이다. 몇달만에 도착하면 빨리 도착했다고 그럴껄?
그러므로 이건 같은 종족의 어른과 함께 인간 세상을 통해서 여러 고룡들께 인사를
드리러 다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세상을 구경할 첫 기회란 말씀!
하지만, 이 행복한 기회에는 동행할 어른이 필요한데 말씀이야... 보통 엄마 드래곤
이 같이 동행을 한다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성격이 난폭한 레드 드래곤중에서도 성
질 드럽기로 유명한 분, 이분이 갔다간 뭔 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걸 여러 드래곤들
이 느끼는 거였다.
"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엄마니까 당연히 내가 가야지요!"
"네가 갔다가 뭔 일을 저질르려고? 성인식을 치르고 고룡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벌인 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 안 하냐?"
"흥, 내잘못만은 아니라고욧."
"칼 세르니안, 당신은 인간 세상에 나갔다 온지 얼마 안 되었으니 좀 쉬시는게 어
떨지?"
"내가 금방 갔다 왔기 때문에 가려는 거라구요, 그만큼 내가 인간 세상에 대해서
잘 알지 않겠어요?"
할말 없다....
"흠, 그럼 나도 같이 가마, 난 아린을 지금까지 돌봐줬으니까 끝까지 돌봐 줘야지."
"칸 시스파슈타인 당신이 간다면 맘이 좀 놓이겠군요."
오 의외로 할아버지가 인정을 받고 계시는군... 하지만 저 두분이 계시면 내가 피
곤할텐데....
"뭐 아린이 두 분을 잘~~ 아니까 문제는 없겠지요."
이거 어째 어감이 이상하다?
"그럼 이번 아시리안의 첫 여행에는 칸 시스파슈타인과 칼 세르니안이 함께 동행하
는 걸로 알겠습니다."
어라라? 그렇게 정해버리면 난 어쩌라구? 이번이 첫 여행인데... 저 두분 사이에
끼어서 골치만 아프게 됐쟎아? 이거 여행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