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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15. 둔황예술의 결정판 막고굴(莫高窟).
◈ 일시 : 2007. 9. 29~10 .7일 (8박 9일).
◈ 위치 : 중국 제일 서쪽의 신장위그루자치구와간쑤성.
◈ 여행코스: 인천공항 →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신강 위그루자치구 박물관. 천산천지)→투루판(吐魯番토로번)
(고창고성,아스타나 고분군,베제트릭 천불동,카레즈,교하고성,소공탑,포도농원,화염산,토욕구 천불동)→
산산(鄯善:선선)(쿠마타크사막)→하미(哈密 합밀)(마귀성,빠리쿤초원,회왕릉)→둔황(敦煌 돈황)
(돈황고성,양관,명사산,월야천,막고굴)→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홍산공원,남산목장,국제바자르)→인천공항.
◈ 지도 : 중국지도.눌러 보세요.
간쑤성지도. 눌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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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실크로드의 핵심인 둔황과 신장자치구의 위치를 그려본 것이다.
실크로드 전체루트.
붉은점 표시한 곳이 이번에 들린곳이다.
실크로드. 눌러 보세요. 좀 크게 잘라본 그림이다. 붉은점 표시한곳이 이번에 들린곳이다.
실크로드를 입체적으로 그려 이해를도운 그림이 있길래 퍼온 그림이다.
중국 간쑤 성[甘肅省 감숙성] 서부에 있는 도시로 주천지구(酒泉地區)에 속하는 현청소재지로 인구 18만명이살고있고 99%가 한족이다.
돈황은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사이에낀 오아시스 도시로 중국 서쪽의 관문이다.
장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는 돈황에서 천산북로와 천산남로 두갈래로 나누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다.
중국인 거주지의 서쪽 끝에 해당하며, 서양에서 중국 통치영역으로 들어가는 외국상인들이 처음으로 거쳐가는 교역도시이기도 하다.
돈황이라는 이름은 '크게 번성한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 그대로 고비사막의 오아시스도시로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특히 당대 7세기부터 8세기 중엽에 걸쳐 가장 왕래가 성해 동서무역의 중계지점으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세계적인 '돈황예술'을 창출했다.
이미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막고굴의 천불동이 그 예다.
그 밖에 이곳의 볼거리로 막고굴을 비롯해 사주성(沙洲城), 백마탑(白馬塔),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 월아천(月牙泉) 등이 있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25km에 실크로드 최대의 성지 돈황 막고굴이 있다.
막고굴은 4세기에 시작돼 14세기에 이르기 까지 1000년의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석굴이 지어졌다.
막고굴은 366년 동쪽에서 온 한 승려가 수행과 공양을 위해 석굴을 파면서 시작됐고
대부분은 돈황의 호족과 실크로드 각지의 왕족들의 기증에 의해 만들어 졌다.
비단을 가득 실은 낙타들을 몰고 가는 대상들과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향하던 승려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건너기 전,
바로 이곳에서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장도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무사 안녕을 비는 기도처였고 서역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휴게소였다.
돈황의 기후는 중국 북서쪽의 대륙성 기후대에 속해 여름에는 덥지 않으나 매우 건조하며, 겨울에는 평균 영하 9~1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다.
건조한 여름이지만 이 도시에 들어서면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백양나무의 푸른 잎새는 단조로운 사막의 풍경과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새로움을 준다.
이 나무는 원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흔히 오아시스 도시의 주변에 많이 늘어서 있는데, 돈황의 백양나무 너머에는 옥수수밭과 보리밭, 목화밭 등이 펼쳐져 있다.
아침,저녁간 기온차가 극심하고 건열풍과 흑사폭풍 등의 자연재해가 있기 때문에 선글라스와 모자, 모래바람을 막을 두건은 필수품으로 꼭 챙겨야 한다.
대체로 5월에서 10월 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돈황의 평균적인 기후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8.1 -3.4 4.8 12.6 18.6 22.9 25.0 23.8 17.4 9.2 0.5 -6.5
최고기온(°C) -1.0 4.4 13.2 21.0 26.9 31.0 32.9 32.0 26.7 18.8 7.9 0.0
최저기온(°C) -15.1 -11.0 -3.3 3.8 9.5 13.7 16.2 14.8 8.3 0.6 -5.8 -12.6
평균강수(㎜) 0.8 1.2 1.7 2.5 3.2 7.4 12.3 6.3 1.9 0.6 0.8 0.9
돈황시내 관광지 약도다.
◈ 일정정리.
10.5(금). 7일.둔황(敦煌)
08 :30~13 :55. 판매점들리고 점심먹고 시내 관광후 25km떨어진 막고굴로감.
14 :20~16 :20. 막고굴(莫高窟)관람.
16 :20~19 :00. 시내관광과 저녁식사.
19 :00~19 :40. 돈황역으로 나와 야간열차를 탐.
20 :15 : 돈황역출발.(열차내숙박)
◈ 여행후기.
◇ 막고굴(莫高窟).
돈황예술의 결정, 막고굴 (莫高窟, magaos caves, 모어까오쿠): 세계문화유산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돈황에는 구법승, 대상, 병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때문에 경제적인 융성 뿐 아니라 돈황예술을 꽃피우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흔적이 바로 세계적인 불교유적지로 유명한 막고굴(莫高窟)이다.
운강석굴,용문석굴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로 불리는 막고굴은 둔황관광 최대의 하이라이트로
둔황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 약 삼십분 거리에 있고,
굴 주변으로 가느다란 시냇물이 흐르며 명사산과 동쪽의 삼위산과 교차하는부분에 펼쳐진 약 1.8km에 달하는 절벽에 만들어져있다.
이 막고굴이처음 조각되기 시작한것은 동진때인 서기 366년 승려 악준(樂樽)이 명사산(鳴砂山)과 삼위산(三危山)에 이상한 빛이 있음을 알고
석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4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 화가, 역경사, 석공, 도공, 목공,
시주 들이 드나들면서 하나, 둘씩 굴을 팠으며 그렇게 파게 된 크고 작은 굴의 전체 수가 약 천 개 가량이 된다.
이 방대한양의 막고굴은 긴 세월이 흐르는동안 자연붕괴와 인간들의 무지한 파괴에 의해서 현재 492개의 동굴만이 남게 되었다.
이 492개의 동굴은 수나라 이전의것이 120개,수나라때의것이 140개,단나라때의것이 111개,오나라때의것이 7개,
그리고 송나라때와 원나라때의것이 35개이다.동굴안에 남은 유물은 소상(塑像)과 벽화(壁畵)가 주를 이룬다.막고굴에 남겨진 예술작품의 내용을 보면
초기에는 민간신화가 많았지만 후한시대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그 내용은 불교예술이 주를 이룬다.
각 굴마다 들어서있는 소상들은 표정과 자세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하고 ,벽에 그려진 벽화는보는이의눈을 찬란한 불교 미술의 하려함으로 고정시킨다.
그 중에서 장경동(藏經洞)이라는 17굴은 송나라때까지의 경전이나 문서등을 보관하던 곳이었는데 서하의 지배에 있을 때 봉쇄됐다가 1900년에 발견되었다.
이 17번 굴 속에는 우리나라 신라 혜초 스님이 남긴 '왕오천축국전'이 다른 보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막고굴의 전모가 드러나고 전세계에 알려지게되었으며 1987년 유네스코에의해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000개의 굴이 있다 하여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굴마다 불상의 형태나 벽화의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어두운 동굴의 천장과 벽화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림에는 한결같이 어떤 종교적 고행이 느껴지며,
또한 각 굴의 천장화는 매우 정밀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와 예술의 피땀어린 결정체이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경동의 유물들은 일찍이 약탈로 인해 수만점이 해외로 유출되어 현재에는 10여개국의 박물과과 도서관에 분산 보관되고 있다.
이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막고굴문화재의 보호와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1961년에는 국무원에서 막고굴을 중점문화재로 지정하고 막고연구원을 설립하여 보호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막고굴 예약시간이 오후 2~2시30분으로 돼있어 오전엔 돈황시내의 판매점과 시내구경을하고
점심식사후에 막고굴로갔다.시내에서 25km라는데 30여분걸린다.
돈황역을 지나서 다시 사막길을 좀가면 삼위산자락과 명사산자락이 만니는지점에 가운데로 넓은 물마른 건천이 있고
건천옆 자갈과 모래와 흙이섞인 역암(礫岩)으로 된 절벽에 굴들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매표를 하고 왕원록 도사탑등 여러기의 탑들이 있는곳을지나 건천위 다리를 건너면 막고굴앞이다.
맨앞에 막고굴전면을 장식한 9층루가있고 그 양옆으로 2층 3층으로된 굴들이 보인다.
막고굴은 일체의 촬영이 금지되어 카메라 보관소가있다.휴대는하더라도 촬영은 안되며 발견되면 압수란다.
1000여개의굴중 현재 남아있는것은 492개의굴이고 그중에 개방된굴이 32개인데 개방된 굴을 전부 볼 수 잇는것이 아나고
그중에 그날 안내나온 연구원이 보여주는대로 대개 8~9개를 보여준다.
어눌한 말을하는 한국어 안내원(막고굴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이 나오고
맨앞의 9층누안의 96호굴 대불부터 보여주는데 굴안은 조명이 안되어 어둡다.
연구원이 후래쉬로 비춰가며 설명해주는데 앞,뒤팀이 밀려있어 혼잡스럽다.
연구원이 비춰주며 설명하는대로 몇개보니 그야말로 한강모래사장에서 모래한줌 보는 기분이다.
1400개의 불상과 벽화 총면적이 45000㎡라는데 1m폭으로 펴면 45km즉 100리가 되는데 단 몇m보고 막고굴을 봤다고 할 수 있을까?
6~7개굴을 보여주고 옆 박물관비슷한곳으로가서 1900년대에 이곳에서 가져간 인물과 유물을 설명하며 "도둑놈들" "도둑놈들"한다.
제일먼저 헝가리출신의 스타인이 왕원록에게 뇌물을주고 약 1만점의 고문서를 가져갔고
프랑스인 펠리오가 5000점,일본의 오타니가 300점을 가져갔고 미국의 워너는 불상과 벽화를 아예 떼어 갔단다.
맨 마지막으로 16호굴을 보여주는데 16호굴 입구의 우측에 아주 조그만 곁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17호굴이다.
이굴은 장경동((藏經洞)이라고 하는데 이굴에서 수많은 경전과 토지문서등 엄청난양의 불서들이 나왔다.
이들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신라의 해초스님이쓴 왕오천축국전이다.
이중 많은량이 도사 왕원록을 매수하여 독일,일본,미국,러시아,프랑스등로 나가고 그 일부만이 남아있단다.
1900년대까진 발견을 못햇는데 1900년에 이곳주지인 왕원록도사(도교사원이라서 주지가 아니고 도사다)가 우연한 기회에
16호굴을 청소하다가 옆의 모래를 치우니까 이굴이 발견됐단다.
이굴이 폐쇄된 이유는 추측하기를 서하(西夏)가 침입해오자 급하게 문서를 숨기려고 굴안에 넣고 입구를 막은것이 아닌가한단다.
막고굴을 보고나와 막고굴의 모조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막고굴예술관에 들려 구경을하고
다시 돈황시내로 나와서 자유시간을 좀같고 저녁을 먹고 돈황역으로 나가서 8시15분 우루무치행 기차를 탄다.
막고굴 전체모습니다. 삼위산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본 막고굴 북굴로 폐허가 됐나보다.
주차장에서. 건천(乾川) 건너로 막고굴의 간판인 9층루가 얼굴을 내민다.
막고굴 17호굴을 발견한.왕원록도사의 탑이다.
17호굴은 1900년에 우연히 16호굴을의 모래를 치우다 발견했다.
많은 유물들이 이사람을 매수해 해외로 유출해 갔다.
막고굴앞의 건천(乾川).
막고굴은 명사산과 삼위산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큰산에 비가 많이오면 여긴 홍수가 난다.
막고굴 현판.
막고굴 9층루.
안에는 96호굴이고 33m 대불이 있다.
막고굴의 굴들.
2,3층으로 돼 있고 동진때인 서기 366년 승려 악준(樂樽)이 시작하여 1100년동안 굴들이 조성됐다.
막고굴을 만든 절벽의 지질은 모래와자갈과 훍으로 된 역암(礫岩)으로 돼있다.
막고굴의 벽화나 소상들을 만들어 전시하고 또 팔고있는 막고굴 예술관이다.
막고굴은 사진촬영이 안되고 또 어두운 굴속이다.
472개굴중 개방된것은 32개굴인데 이중에 실제 하루방문하여 볼 수있는굴은 10개도 안된다.
또 본다고해도 어두운 굴속에서 연구원이 후래쉬로 비춰주며 설명해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1400개의 불상과 벽화의 총면적만도 45000㎡인데 이중에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왔다.
아래의 그림들은 "영원한 돈황(敦惶"冊 에서복사해온 그림들이다.
삼위산은 고대 신화때부터 나오는산이다.
둔황에서 출토된 죽간인데 완성된 한자로는 제일오래된 죽간아다.
둔황에서 출토된 토기.
둔황에서 출토된 석탑(북위).
둔황에서 출토된 견타용(당대).
17호굴 장경동에서 나온 대당지세도.
둔황에서 출토된 유물(동한).
17호굴(장경동).
16호굴 곁간굴로 1900년에 왕원록에 의해 발견됐다.
여기서 수 많은 경전과 문서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고 그중의 하나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다.
1908년 베트남 하노이에 와있던 프랑스의 펠리오(p pelliot)가 이굴에 소장돼있던 사경류 1500 여점을 헐값이 사갔는데
그중에 책명도 저자명도 떨어져 나간 227행으로 된 두루마리 필사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으로 현재 프랑스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있단다.
16호굴은 상당히 커서 사방 10여 m쯤되고
17호굴은 16호굴 입구의 우측에폭 3자정도에 높이 6자쯤되는 작은문이 있고
안은 사방 10자쯤되는방에 당나라 고승 홍변(洪변)의 소상이있다.
이 17호굴에서 불교경전은 물론 중국황제의 칙령,마니교의기도문집,티베트전통처방전,위그루인들의 토지매매계약서,인도경전등
엄청난양의 고문서들이 쏟아져 나와서 17호굴을보통 장경동이라 부른다.
158호굴 열반상(당대).
130호굴 대불(당대).
328호굴 소상군(당대).당대의 대표작품.
왼쪽 앞쪽에 부처님한분은 반출돼서 외국으로 갔다.
현재 막고굴에있는 唐宋시대의 다섯개 건축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이른 목조 건축물이다.
259호굴 선정불.
북위시대 작품으로 미소짓는 미소상.
45굴.보살(당대).
배도 나오고 가장 섹시한 부처님이다.
45굴.
당대.오른쪽 두번째상이 바로 윗그림이다.
251호굴굴형(窟窟形).
407호 굴굴형(窟窟形).
285굴 천정(天頂).
254굴 내경(內景).
401굴 조정(藻井)
佛 248窟.
천수천안 관음 3굴(元代).
경변도 423굴.
경변도는 심오한 불교경전을 회화의 기법을 통하여 이해하기쉽게 표현하여 그린그림을 말한다.
오대산도 61굴(五臺山圖).
비천(飛天) 321굴 (당대).
공양인(供養人) 98굴.
공양인은 출가하여 개굴조상(開窟造像)한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보살(供養菩薩) 272굴.
들소 249굴 (西魏)
설법도(說法圖) 322굴(당대).
법화경변도(法華經變圖) 23굴.
살타나태자사신사호도(薩타那太子捨身飼虎圖) 428굴.
환희금강(歡喜金剛) 465굴(원대)
비천(飛天) 유림굴 15굴.
경획도 유림굴 25굴(당대).
당승 취경도 유림굴(唐僧取經圖 楡林窟) 3굴(서하)
막고굴 입장권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