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이치적으로 따져 본다면 지금의 계절은 세상에 널린 것이 물이어야 한다. 물이란 단어가 나오다 보니 문득 물에 관한 이야기 한 자락이 생각납니다. 따라서 여기 물에 대한 작은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삐그덕 덜커덕” 거리며 수레 지나간 자리! 그 움푹하게 패인 작은 웅덩이에도 미꾸라지와 붕어가 살아갈 수 있다고 할 만큼 여름 장마철에는 물이 흔하다.
그 수레바퀴 자국에 살던 붕어가 장마가 그치고 햇빛이 내려 쬐이자 목이 말랐다.
그때 붕어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애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 이! 보슈! 길가는 양반! 나에게 물 좀! 주세요!
그때 지나가는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지니고 있는 물이 없다. 허지만 내가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장강에서 한 두레박의 물을 길어다가 네 숨을 이어줄게! 하고 말했다.
그러자 붕어는 말했다. 당신이 짊어진 등짐에 물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세요! 네 목숨은 지금 경각에 달려 있소! 나는 지금 당장 한모금의 물이 필요하오! 오늘이 지난 훗날에 한 두레박의 물은 필요치 않소! 오늘 이후 내 안부를 물어보고 싶다면 뒷날 어물전 생선 장수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는 훨씬 것이 빠를 것이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
매사를 이치적으로 따져 본다면 좀 늦어도 괜찮은 일이 있고 또 화급을 다투는 일들이 있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해가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지금은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귀하다.
그런 그 어느 날 우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달고는 아전인수에 당연지사처럼 괴나리봇짐을 메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살갑게 반겨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산을 찾아서 세상 시름을 훌훌 털어 버리고 길을 잡아서 떠난다.
우리는 지날 달과 변함없이 월드컵 동편 주차장에서 만났다. 반가움에 손을 내밀어 인사를 했다. 또 날씨가 덥지 않고 땀이 몸에 베이지 않았다면 모두들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그립고 반가운 친구 들이다.
대충 자판기에서 뽑아낸 커피 한잔의 진한 향에 지난 한달 동안 있었던 은빛 비늘 같은 잔잔한 세월은 뒤로하고 금성산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군위 I/C에서 구미에 살고 있는 친구 이석곤을 만났다. 대충 수인사를 마치고 우리 모두는 오늘의 산행 예정지인 의성군 금성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장마철임을 말해주듯이 하늘에는 여린 구름이 가늘게 드리워져 있었다.
산운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그 옛날 서기 185년경에 부족 국가였던 조문국(照文國)시절의 포근하고 아담한 와가들이 잔잔하게 눈에 들어왔다.
조문국은 옛날 수많은 부족 국가들이 난립하던 시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작은 부족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뒷날 신라에 편입되는 약소국의 아픔이 서려있는 슬픈 사연을 담은 국가이기도하다. 당시 이곳 토착 세력인 김씨 일족은 의성군 금성면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키워 후일 신라의 왕조의 왕조세력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에 소재한 금성산은 원래 백악기 시절 생성된 산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 115만 년 전 활화산으로 탄생한 산이며 당시는 공룡이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이곳 인근 주위에는 공룡발자국이 더러 발견되고 있다.
허지만 금성산 정상 부근의 분화구는 모질고 무심한 세월 풍파 속에 그 자취를 잃어버리고 600 ~ 700 평의 분지에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발밑에서 아삭거리는 모래알이 금성산이 살아온 유구한 세월을 말없이 전해 줄 뿐이다.
맨 처음 금성산의 본 이름은 천진산(天辰山)이다. 금성산 이라 부르게 된 것은 진나라가 도읍하면서 수도방위를 위해 이 산에다 성을 쌓고 쇠 덩어리 같이 견고하다는 뜻으로 쇠울산성이라 이름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문으로 표기 할 때 쇠울은 금성이며 따라서 현재의 금성 산성은 쇠울에서 비롯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의 편도 2차선 도로를 가로 질러 가는 도중에 제법 붉은 빛을 띠우고 알알이 익어가고 있는 자두(일명 : 애추)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그러나 한층 각박해진 세월 속에 그저 군침만 흘리며 와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산운마을을 조용히 빠져나와 금성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대형 관광버스와 몇 대의 승용차가 미리 점거해 있었다.
갑론을박 끝에 우리 고은 산악회 회원들은 금성산 맞은편 비봉산을 향해서 길을 잡아 출발했다.
봉황이 날아간 듯한 비봉산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키 낮은 소나무가 띄엄띄엄 서있는 산행 길은 그 경사도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탈진 산길에 우리 일행은 작은 불만을 토로하며 가쁜 숨을 토해내며 올랐다. 이윽고 도착한 비봉산 9봉 중 제1봉 산불초소! 산불 초소에서 바라본 제2봉 뒤의 제 3봉은 흐릿한 운무 속에서 아련하게 보였다. 수고하고 애써 올라온 산길에 제 3봉의 아련한 모습은 또 다른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산은 시작할 때부터 20분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고!
비봉산 제 1봉을 지나고 또 제 2봉 그리고 제 3봉을 차례로 지나며 힘겹게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무겁고 힘에 겨운 발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그때 산 중턱부근 어느 지역 삐죽이 튀어나온 널찍한 바위에서 김원현 회원이 말했다.
야! 산도 힘들고 소주나 한잔 하고 가자! 여기 시원한 소주 있다. 족발 가지고온 사람 함 내나봐라!
난 그때 반갑고 기쁜 마음에 내 배낭에 든 족발을 냉큼 꺼내었다.
덕분에 내 배낭 속에서 만만찮은 무게로 어깨를 짓눌러 오던 돼지 족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휭! 하니 비워진 뱃속을 타고 자르르한 소주가 흘러내렸다. 된장이 듬뿍 찍힌 족발의 향긋한 향! 그리고 부드럽고 야들한 족발의 살점이 입안에서 질겅질겅 씹힐 때 7월의 더위가 스멀스멀 녹아지는 듯 했다.
왼쪽은 수정사! 오른쪽은 깎아지른 듯한 천장지구 단애!
야! 저기 미루나무가 있다. 귀가 솔깃했다.
미루나무~!
어린시절 하늘을 찌를 듯이 한없이 높아만 보이던 미루나무! 그 옛날 유년 시절에 그들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한 것 사며 머리위에 군림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무더운 여름날 길가에서서 태양의 따가운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초라하고 허름한 자태로 늘어서있다. 그저 작은 바람 한줌에 넓은 잎사귀를 하느작거리며 조용히 뒤척거릴 뿐이다. 지금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는 그 미루나무는 형체조차 흐릿하게 아스라이 저 멀리에 보인다.
유년 시절 곤충채집을 위해서 어떻게든 매미를 잡아 보려고 훌쩍 키 높은 미루나무 향해서 돌을 던졌다. 푸드득 매~! 앰! 하고 처절한 몸부림에 외마디 비명을 토해내고는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말매미를 보며 그저 허탈해 하던 그 시절! 발가벗은 채 개울가에서 멱을 감던 꼬마들은 뙤약볕을 피해서 미루나무의 그늘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 들었다.
그런 미루나무의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또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정상을 향해서 걸었다. 그렇게 3봉과 4봉을 넘고 남근석 전망대와 여인의 턱을 넘어 갔다.
만약 우리가 올랐던 비봉산을 금성산에서 바라본다며 비봉산 제 1봉부터 제 9봉까지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일목요연하게 펼치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여인의 이마에서 아름답고 부드럽게 흘러내린 턱의 고운선도 함께 볼 수 있다고 한다.
비봉산(飛鳳山) 정상을 얼마 두지 않은 낮은 구렁에서 우리 고은 산악회원들은 중식을 맞이했다. 땀에 젖은 등산복에, 머슴아들만 있는 밥과 찬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초라해 보였으리라! 그러나 그 초라한 밥상이 골고다 언덕의 우유처럼 향긋하고 설탕처럼 달고 꿀처럼 감미로운 것은 친구와 또 다른 그 무엇이 작용했으리라! 조금은 많아 보이던 술은 금세 동이 났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기자기한 모습은 분주하게 지나가던 낮선 아낙네로 하여금 군침을 흘리게 했으며 또 야! 맛있겠다.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무심코 권하는 소주 한잔에 녹아나는 여심을 볼 때 산은 그래서 웃음이 넘쳐나고 또 즐거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시샘인양 비봉산(671m)를 눈앞에 두고 흩뿌린 소나기는 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에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비된 우위를 입고 우산을 쓰고 그렇게 방정을 떨며 오른 비봉산 정상에서 맞이한 한줄기 햇살! 여우비는 그렇게 분주하고 바쁘게 우리들을 스쳐서 지나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오늘의 기억은 아른아른 또 생각이 나리라!
수정사(水淨寺)!
옛날 신라 선덕여왕 13년경(645년) 자장율사께서 창건 하신 절이다. 이 절은 임진왜란 당시에 승병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절에 머물고 있던 승병으로 사명대사(유정)께서 금성산 산성에서 왜적을 물리 쳤다고 한다.
수정사! 절 이름 그대로 물이 흔하고 맑은 곳이다. 허나 지금은 건 장마로 인해 그 어디에도 넘쳐 나는 물은 없다. 계곡을 따라서 하산 길에 세족에 시원한 등목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계곡을 가로질러 내리는 산길에는 풀썩풀썩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리고 등산화 발아래에서는 지난 가을날에 떨어져 내린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한여름의 고된 산행 끝에 도착한 수정사! 더위에 지치고 갈증에 목이 말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시원한 한모금의 물이 필요했다. 우리들은 수정사 한 중앙에 자리한 수돗물을 찾았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이 킨 수정사의 시원하고 냉기어린 물은 더위와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 회원들의 폐부까지 시원하게 씻어 주는 것 같았다.
탑산 온천의 유황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온천욕! 따뜻하고 감미로운 온천물이 여름 산행에 지친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돌아서 흘러갔다.
그리고 맞이한 도리원의 봉양숯불갈비 집의 소고기 구이!
미리 달궈진 불판에 몇 번이고 기름을 칠하고 난후 고기를 얹었다. 붉은 핏물을 흘리며 익어가는 소고기의 안창 살 그리고 등심! 성급한 마음에 애꿎은 소주만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이윽고 노르스름하게 잘 익은 소고기를 젓가락으로 집고는 알싸한 소주잔을 들어서 건배를 외친다. 크게 싼 한 쌈의 상추쌈! 그 속에 깃들인 청량고추, 된장과 그리고 마늘! 소금장에 절인 야들야들한 한우 안창 살 구이! 고생과 즐거움의 세월들은 항상 동고동락하며 그렇게 우리들을 비켜 가지 않고 늘 옆에서 함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스멀스멀 모여든 먹구름을 뚫고 콩알 같은 빗방울이 창문에서 부서져 흘러내리고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언제나 한결같이 찾아온 어둠이 조용하고 부드럽게 슬며시 등을 떠밀어내고 있었다.
2008년 7월 13일 일요일!
무덥고 칙칙한 여름날! 비봉산 산행에서 콩알 같은 비지땀을 흘리며 고생한 11명의 고은 산악회 회원님 고생 많이 했습니다.
다가오는 8월 보신 산행!
그때 다시 만나서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도록 흥겹고 신명나게 또 취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