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연착륙, 대출 문턱 낮추더니 돌연 규제 강화
금융당국 경고에…은행권, 연령제한·상품판매 중단 등 조치
“대출규제 오락가락, 정책 신뢰만 잃어…LTV·DSR 관리 중요”
금융당국이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주된 원인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를 지목하면서 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자 부담을 줄이면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대출 문턱을 낮춘 정부가 최근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집값이 상승 조짐을 보이자 돌연 규제를 다시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다.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를 보면 올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8000억원으로 지난 분기 말 대비 9조5000억원 증가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을 통해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을 더한 포괄적 가계부채를 의미한다. 판매신용을 제외한 가계대출만 놓고 보면 해당 기간 잔액은 1748조9000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10조1000억원 크게 불었다.
가계대출 대부분은 주담대가 차지했다. 같은 기간 주담대 잔액은 1031조2000억원으로 직전 분기에 이어 최대 잔액 기록을 갈아치웠다.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부채 급증을 견인했다고 판단, 제도 시행 한 달여 만에 제동을 걸었다. 당초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에 맞춰 청년 및 신혼부부 등 취약차주 보호를 명목으로 해당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달 상품 출시 직후만 하더라도 부동산시장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전국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서는 데다 앞으로 분양가가 더 오를 거란 인식이 확산하고 금리 동결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어느 정도 고금리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몰렸다.
일반적으로 주담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적용돼 원리금 상환액이 차주의 소득의 40%를 넘길 수 없다.
일반적으로 주담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적용돼 원리금 상환액이 차주의 소득의 40%를 넘길 수 없다.
일반적으로 주담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적용돼 원리금 상환액이 차주의 소득의 40%를 넘길 수 없다. 하지만 만기가 늘어나면 다달이 부담해야 할 원리금은 줄고, DSR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두고 ‘DSR 우회로’로 작용한다며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 오는 10월까지는 실태 점검도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시중은행에선 ‘만 34세 이하’로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등 자체 대응에 나서는 중이다.
이 때문에 서둘러 대출을 받으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지난 24일 기준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2조8867억원이다. 앞서 7월 말 8657억원이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한 달 사이에 2조원 이상 치솟았다.
50년 만기 주담대를 활용해 하반기 내 집 마련을 고민하던 실수요자들은 볼멘소리를 낸다. 각종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다”, “대출받아 집을 사라고 하더니 이제는 대출받은 게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대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면서 어떻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겠냐” 등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흐름에 따라 부동산 규제 정책이 결정되는 건 정상적이지만 적어도 대출만큼은 이렇게 일관성을 잃으면 안 된다”며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폭락하자 정부가 스스로 손대지 말아야 할 대출의 문을 다시 열었다.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로 DSR을 일부 무력화시키더니 이제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가계부채가 증가하니 다시 문턱을 높이겠다는 건 정책 신뢰만 잃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새 아파트가 공급될수록 주담대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매년 30만가구 넘는 입주 물량 가운데 전세 낀 집을 제외하고 대출 없이 잔금을 치르는 수요자가 얼마나 되겠나. 정부 뜻대로 가계부채 총량 증가를 막으려면 신규 공급을 중단해야 하는 셈”이라며 “나이 제한을 두는 등 세대 간 편 가르기로 갈등을 부추기기보다 만기일시상환 대출상품을 다시 허용하고 LTV, DSR을 일관성 있게 잘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