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전 242. 해모수 20세
연은소가 해모수의 아내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와는 상관없이, 삼칠성 성주의 외동딸 연은소를 위한 비무초서比武招婿(무예를 겨루어 사위를 구함)대회가, 약속대로 유월 보름부터 열리게 된다.
유월 초순에 접어들자 각지의 인사들이 삼칠성 성주의 초대에 따라 삼칠성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삼칠성주는 교유 관계가 아주 넓은 듯, 그 무리들 중에는 왕후장상들도 섞여 있었다.
해모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번조선 왕실의 기비와 기진 남매가 벌써부터 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막조선의 왕세자인 맹성猛省도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고요하고 고운 아침의 나라’ 막조선莫朝鮮의 왕도인 남평양(북한 평양)으로부터 이 작은 성에 당도했다는 것이다.
막조선은 한반도를 차지한 왕국으로서, 압록강으로부터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 한강, 금강, 만경강, 영산강에 이르기까지 비옥한 평야지대를 많이 끼고 있어서, 정치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예로부터 백성들이 부유하고 평온하며 넉넉한 삶을 살았다.
재물이 넘치면 썩기 쉽다. 막조선 왕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해모수 시대에는 막조선의 왕권이 나락에 떨어져 간신히 명목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삼칠성은, 막조선 땅에 있었지만, 당시 막조선 대다수의 성들이 그랬듯이, 막조선 왕의 통제를 벗어나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성주는 그 성의 군주나 다름없었다.
삼칠성주가 초청한 인물들 가운데는, 막조선 왕세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화하(중국) 연燕나라의 왕세자도 있었다. 연나라 왕세자 단丹은 스무 살이 채 되어 보이지 않은 어린 나이임에도 위풍이 당당한 사나이였는데, 그가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삼칠성에 당도했다.
당시의 중국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다. 연 왕자 단이 삼칠성에 당도한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전국칠웅 가운데 하나인 진나라 왕 정政은 중국을 통일한다.
그러나 이상은, 삼칠성주가 초청한 최고 귀빈들의 전부가 아니다.
유월 보름.
연은소를 위한 비무초서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해모수는 새벽에 일어나 호흡기도로 천제 하나님과 교통하고 다물 임금의 <행심록>을 읽으며 마음을 맑힌 후, 상쾌한 가슴으로 비무초서 대회가 열리는 관아 정문 앞 광장으로 가기 위해 막 영빈관의 방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시녀인 백선의와 청아련이 방 안으로 숨 가쁘게 들어왔다.
“공자님, 밖에 지금 누가 왔는지 아세요?”
해모수는 삼칠성주의 간청에 못 이겨 두 여인이 곁에 있기를 허락했지만, 결코 그녀들을 종으로 부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녀들로 하여금 자신을 부를 때 주인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백선의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나와 보세요.”
해모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두 시녀를 거느린 채 대문을 나섰다. 그 때 담소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한 무리의 남녀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해모수가 그들을 바라본 순간, 어떤 젊은 여인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는데, 둘의 눈길이 충돌하는 찰라, 그 여인이 아연啞然한 낯을 지으며 자신을 뚫어지게 쏘아보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여인이다.
해모수는 그녀의 눈을 얼른 피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위풍당당한 장수들과 시녀들이 그녀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임이 분명한 것 같았다. 해모수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무초서 대회가 열리는 관아 정문 앞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감에, 그 무리가 뒤에서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상해서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낯선 여인이 아직까지 겨울하늘의 샛별처럼 영롱하면서도 예리하고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다. 번조선의 기진 왕녀처럼 댕기를 땋지 않고 양쪽으로 가볍게 묶어 놓기만 한 그녀의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인지 고갯짓인지에 삼단처럼 울렁거렸다. 그 사이에 든 백설 같은 얼굴은 얼음장 같은 냉기를 뿜고 있다.
해모수는 깜짝 놀라 신속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갔다.
얼핏 보았지만, 그녀의 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해모수는 속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십칠팔 세로 보이는 처자였는데, 고아한 기품과 함께 눈처럼 차갑고도 눈부시며, 연분홍 꽃잎이 무수히 겹친 천첩홍매화처럼 어떤 아련하고 그윽한 매혹을 풍기고 있었다.
아니, 겨울 밤 하늘의 달빛마냥 싸늘하고 고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토록 기이한 신비감을 주는 화용월태花容月態의 얼굴은 난생 처음 보았다.
‘내가 장가갈 때가 되어서인가? 어째서 젊은 여인들마다 이토록 고혹적이고 아름답게 보이는가? 예전에는 어떤 여아도 그렇게 보인 적이 없었는데.’
그가 의심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이, 그의 심안에는 번조선의 기진 공주가 선명히 나타났다. 이 차갑고 고고하고 신비로운 아가씨는, 난초처럼 어여쁜 번조선의 공주 경국지색 기진과, 미의 쌍벽을 이루는 것 같았다.
아니 어찌 보면 그녀는 온 나라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을 듯한, 눈 속에서 막 나온 설향국색雪香國色같았다.
해모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런 미사여구들을 상상의 화폭에 천연색 물감으로 그려가다가 후방으로부터 들려오는 누군가의 부름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해모수 공자님!”
다시 뒤돌아보니, 어느 샌가 삼칠성주가 빙설같이 냉엄한 그 아가씨의 무리 곁에 서 있었다. 해모수는 가급적 그 신비롭고 서늘하고 화사하기 그지없는 화미華美의 여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삼칠성주에게 눈동자를 고정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삼칠성주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오는 동안 해모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딴청을 피우느라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삼칠성주가 곁에 와서 부드럽게 그의 팔을 잡아끈다.
“어서 와서 인사드리세요. 이 분은 매우 귀하신 분입니다.”
그 때까지도, 그 눈이 시리도록 신비롭고 냉엄한 여인 일행은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해모수는 다시 돌아가 지체가 대단히 높은 듯한 그 고고한 냉엄미冷嚴美의 여인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해모수라고 합니다.”
삼칠성주가 즉시 그 소녀에게 해모수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말해주는 한편으로 또한 그를 높이 띄웠다.
“이 사람은, 폐하의 종친인 아남성 욕살님의 막내아드님인데, 적자嫡子가 아니고 서출입니다. 그러나 무예만큼은 천하에 독보적입니다.”
젊은 여인의 냉엄한 눈길이 도도한 느낌을 태운 채 해모수에게 화살처럼 쏟아지고 있는 사이, 삼칠성주가 고개를 돌려 해모수에게 물었다.
“이 분이 누군지 아세요?”
해모수가 삼칠성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 해모수의 낯을 냉정하게 바라보던, 그 초탈하고 차가운,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자가 해모수 코앞으로 몇 발자국 성큼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서, 신분이 극히 높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고귀한 향취가 물씬 풍겨왔다.
그녀가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해모수는 향취가 맹렬히 진동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가슴이 두근거려 그는 삼신일체 상제를 부르며 심호흡을 했다.
그녀가 여전히 차갑고도 괴기한 미를 흘리며 해모수의 얼굴을 뚫어지라 응시하면서 짤막하게 말했다.
“난 설이매雪二梅라고 해요.”
“아, 설······.”
“설이매 공주님이에요.”
삼칠성주가 그의 말을 끊고 소개했다.
“삼조선 임금 폐하의 막내 따님이십니다.”
“네?”
해모수는 속으로 대경실색했으나 하나님을 부르며 침착과 고요를 유지한 채, 얼른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소인이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어쩐지 그녀는 황실에서 자란 여인답게 청묘淸妙한 자색을 지닌 데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냉엄한 초연미超然美를 풍기고 있었다. 번조선의 왕녀 기진 공주와는 누가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여쁨을 앞 다투고 있는 듯했다.
다만, 번조선의 공주 경국지색 기진의 분위기가 난향蘭香, 국향國香처럼 좀 따스해 보인다면, 황녀 설이매는 매우 차갑고 세외적인 천향고매天香高梅의 초탈염색艶色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 두 여인의 차이점이었다.
의외지변意外之變이다. 삼조선 전체 고열가 임금의 황녀가 호위 장수들과 시녀들을 거느리고 장당경藏唐京 환화궁桓花宮(임금의 궁궐)으로부터 머나먼 이 곳 삼칠성까지 내려온 것이다. 삼칠성주의 외교술은 실로 눈부신 것 같았다. 해모수는 설이매 공주의 자태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또한 삼칠성주의 탁월한 교섭에 해연駭然함을 감추지 못했다.
삼칠성주가 해모수에게 맡긴 두 시녀, 백선의와 청아련은 이 때 해모수의 등 뒤에 서 있다가 해모수와 함께 무릎 꿇고 황녀에게 절했다.
설이매 공주가 차갑고도 예리한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어서 일어나세요.”
설이매 공주의 목소리가 얼음장 같다. 설이매는 해모수 뒤로 일어선 두 여인의 낯을 매섭게 훑어보았다.
“아, 저의 시녀들인데, 해모수 공자에게 제가 맡겼습니다.”
삼칠성주의 설명에 설이매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시녀가 설이매에게 다시 한 차례 곱게 인사한다.
이후부터 백선의, 청아련은 해모수를 수행하며, 해모수가 여인과 만날 때마다, 감시의 눈을 번득이는 듯, 아름답고도 예리한 눈망울로 그녀들을 은밀하게 훑어보곤 했다. 해모수는 그들더러 자신을 따라다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데도, 그녀들은 삼칠성주의 명이라며 막무가내로 그와 동행했다.
연은소를 위한 비무초서 대회는 이틀간에 걸쳐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각지에서 찾아온 젊은 영웅들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연은소와 겨루었는데, 그들은 연은소의 연검 아래 줄줄이 패하였다.
장당경 환화궁에서 온 고열가 임금의 공주 설이매, 번조선 왕실의 기비, 기진 남매, 막조선의 맹성 왕자, 연나라의 단 왕자 등이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연은소의 무예 대결을 지켜보았다.
연은소의 무예는 모든 이의 예상을 초월했다. 용맹한 남성들이 모두 그녀의 연검 아래 무릎을 꿇고 그녀와 싸워 비기거나 이기는 영웅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튿날 오전까지 이어진 비무대회가 막을 내리기 전, 점심 식사 자리에서 삼칠성주는, 초청한 각국의 왕자들에게 은근한 제안을 했다.
“내 딸아이의 무예가 어떻습니까?”
“저는 어린 나이지만 일찍이 천하 곳곳을 유람하며 놀라운 여류 무술가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또 그들의 무예를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소저娟小姐의 무예와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연나라 세자 단이 통역을 통해 아낌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단 왕자님은 그녀와 한 번 겨루어볼 의향이 없는지요?”
삼칠성주가 아름답고도 예리한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유감스럽습니다만, 저는 고국에 이미 혼약한 여인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비무초서를 떠나 왕자님의 놀라운 무예로써 그냥 우리의 눈을 한 번 즐겁게 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뭐 그리 어렵지 않지만, 꼭 대결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제가 혼자 시연해 보이면 어떨까요?”
그는 연은소와의 무예 대결을 극구 회피하는 듯했다.
“좋습니다. 왕자님은 어떤 무기를 사용하시나요?”
“식사 후, 제가 맨손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그거 좋군요. 내친 김에 우리 막조선의 왕세자 저하께서도 왕자님도 우리의 안목을 넓혀주실 수 있는지요?”
“성주님의 간청이라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맹성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예로부터 우리 배달겨레는 문文과 아울러 무武를 숭상해왔다. 그러므로 임금과 군왕의 자제들은 문무 양면을 연마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무예가 점차 홀대를 당하고 천시받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이후 중국의 유가儒家사상이 국내 정치이념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 제도, 신라의 화랑花郞, 백제의 무사도武士道만 하더라도, 단군조선과 대부여의 무예존숭 기풍을 여전히 계승하고 있었다.
오후에 이어진 대회에서 최후 장식으로, 연나라 왕자 단의 맨손 무예 시범, 맹성의 검술 시연 등이 있었다.
해모수가 그들의 무예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 연나라 왕자 단의 무술은 조선의 무예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특이한 것은 몸과 손을 쓰는 법이었다. 그의 몸은 가볍기가 마치 가랑잎과 같아서 자유자재로 날고뛰었으며, 손놀림은 단순명쾌한 조선의 권법과 달리 아주 현란한 게, 흡사 사색四色의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과도 같았다.
맹성의 검법은, 육중하고 위력이 넘쳐흘렀다. 그의 검은 보통 사람들의 검보다 더욱 길고 무겁고 커보였다. 그는 이 장검을 막대기 돌리듯 가지고 놀았다. 그의 완력과 힘은 가히 뭇 영웅들을 위압할 만했다.
단 왕자의 권각법과 맹성의 검법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구경하고 있던 장당경 환화궁의 설이매 공주가 곁에 앉은 삼칠성주에게 소곤거렸다.
“성주님, 저도 무예를 무척 좋아합니다. 제게도 기회를 주시겠어요?”
“네?”
삼칠성주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전 공주님께서는 무예를 하시지 못하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근데, 저 혼자 하기는 좀 심심할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제 딸과 검을 맞대어 보고 싶으신가요?”
“아니에요. 저기 저 아름다운 아가씨와 한 수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설이매 공주는, 경국지색의 매혹을 풀풀 흘리며 안온하고 기품있는 태도로 앉아있는 번조선의 기진 공주를 가리켰다.
“아, 기진 공주님을 말씀하시는 군요. 하지만 그녀는 무예를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 때 삼칠성의 여성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진 공주에게 다가갔다.
“기진 공주님, 혹시 무예를 배우셨는지요?”
“제 여동생은 무예를 할 줄 알지만, 남과 겨루는 일은 극구 사양합니다.”
곁에 앉아있던 그의 오라버니 기비 왕자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에요. 혹시 저와 대결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있는 건가요?”
기진이 아주 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물으며 반대편에 앉아 있는 해모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해모수의 뒤에는 백선의와 청아련이 서 있었다. 그녀들이 불꽃 튀는 눈으로 기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기진이 해모수를 언뜻 쳐다보다가 그녀들의 눈빛과 마주쳤다. 기진은 그녀들에게 살짝 미소를 던진다.
“네. 진, 막, 번조선, 삼三조선 전체 임금의 따님이신 설이매 공주님께서 공주님의 무예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하십니다.”
삼칠성주가 기진에게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설이매 공주님의 명을 받들겠어요.”
그녀가 선뜻 응락하며 우아한 자태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설이매 공주에게 다가가 인사한다.
“천녀賤女가 공주님의 부르심을 받잡고 왔습니다.”
설이매 공주가 백설같이 아름답고 희고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칭찬의 말을 던졌다.
“번조선 공주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을 통틀어 아마 둘도 없을 거예요.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오늘 직접 보니 소문을 능가하는 것 같군요.”
“과찬이십니다. 공주님께서 저보다 훨씬 더 아름다우십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설이매 공주의, 새하얀 눈처럼 눈부신 미를 칭송했다. 서릿발 같은 위엄과 함께 눈 속의 매화처럼 차갑고도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설이매 공주가 기진의 칭찬에 얼굴이 풀린 듯,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
해모수는 딴청을 부리는 듯하면서 속으로 그녀들의 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번조선 기진 공주의 무예도 아마 공주의 자태처럼 세속을 초월한 듯 황홀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요.”
황녀 설이매가 말했다.
“천만에요. 저는 약간의 무예를 익혔지만, 어찌 당당한 제실帝室의 무예에 비하겠습니까? 제궁帝宮의 무예는 말로만 전해 들었지 구경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우물 안 개구리가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 공주님의 부르심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기진 공주는 아주 겸손하시군요. 공주님은 어떤 무예를 익히셨는지요?”
“저는 약간의 권각법과 검술을 익혔습니다.”
“그렇다면, 권각법으로 대결해보는 게 좋을 듯 하군요.”
삼칠성주가 두 사람을 모시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천하의 두 절색이 무대 위로 사뿐사뿐 올라오자 군중들이 그녀들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듯, 일순간 사위는 물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 때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이어서 장내에 박수갈채와 휘파람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다음 회로 계속)
**************
샬롬.
2022. 1. 28. 설을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