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날로그 추억
- 여강 최재효
문명은 내 가장 소중한 추억마저 단편(短篇)으로 만들어 버렸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아날로그 세상의 일원이었다. 내 자신이 아날로그 였으며, 벗들과 가족들 역시
서로의 어깨를 비벼가며 아날로그 인간형(型)으로 만족했었다. 세상을 40성상(星霜)
이상 살아 온 나의 사고(思考)체계와 이미 축적돼 있는 기억 또한 전통과 관습에
자연히 융화되어 아날로그적(的) 인식 밖에 보관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갑자기 사이버(Cyber) 세상이 전개 되 있었다. 그 가상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방법은 아이디(ID)와 비밀번호(Pass word)를 자나 깨나 머릿
속에 넣고 있어야 했다. 은행에 맡긴 내 돈을 찾으려고 하면 적반하장으로 민원
창구에 앉아 있는 아가씨는 비밀번호를 대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어쩌다 깜박해서
기억을 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주변의 이상한 눈초리가 나에게 꽂히고 나는 죄인
처럼 그 자리를 얼른 떠야 한다. 주객(主客)이 전도되어도 누구 한 사람 내 편을 들어
주지 않고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일년에 누구에게라도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명도 없고 반갑지도 않은 전자편지(E-mail)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무례
하게 함부로 날아든다. 거의 개봉도 하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쑤셔 넣지만 한편으로
는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어쩌다 우표가 붙은 편지를 받으면 세금고지서나 과태료
범칙금 또는 경조사(慶弔事)를 알리는 준 세금납부 고지서 아니면 또는 밀린 도시
가스요금이나 신문대금 납부 독촉을 알리는 협박편지 뿐 이다.
디지털(Digital)이란 망령이 우리네 생활을 파고 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전 국민의 생활을 옥죄는 도구로 성공한 경우는 아마 세계 어느
나라를 관찰해 보아도 대한민국 밖에 없으리라. 각종세금고지서, 은행대출금이자,
신용카드대금, 송금 및 입금처리, 아파트관리비 심지어 경조사시 축의금및 부조
금(扶助金)도 사이버 머니, 즉 인터넷 뱅킹으로 집에서 처리한다. 말일 하루라도
늦게 되면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염라대왕보다 더 무서운 아가씨들의
독촉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졸이게 한다.
지난 몇 달간 나는 갑작스런 병으로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많은 경조사에
참석 하지 못했다. 꼭 가봐야 할 불알친구 아버님의 부음(訃音)을 듣고도 가보지
못한 게 이내 가슴에 큰 짐으로 남아있고, 크고 작은 이웃들의 일에 역시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컴퓨터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조작함으로 알량한 성의를 표한 것이
10년 묵은 체증처럼 아랫배가 묵직해 우울함을 가중 시킨다. 편리함이 반대로
무례(無禮)를 조장하고 있다.
인간생활을 윤택하고 여유 있게 만들어 줘야 할 문명(文明)은 오히려 인간과
인간 사이에 틈을 벌려 놓고 있다. 얼굴을 대면하기 보다는 바쁘다는 핑계로 휴대
전화의 노예가 되어 부모자식간 정을 휴대폰이 대신 전해주고 용돈은 사이버세계
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 이 얼마가 좋은 세상인가? 나는 휴대폰에 시간표시를
둥그런 시계모형을 표시해 놓았다. 숫자만 표시한 상태는 무미하고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나를 시간의 노예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는 나를 눈뜬장님으로 만들고 있다. 버젓이 두 눈이 있으면서도 장님
취급을 받으니 얼마나 고약한 일인가? 그렇다고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을 포기 할
수도 없다. 디지털 세계이 주민이 되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가시적인 형상이 숫자로 해석되고 있고, 그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의든 타의든 수긍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방인 취급을 받는
다. 갈수록 기억력이 쇠태 해 가는 세대에게는 사이버라는 거대한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게 되었다. 자고나면 쏟아지는 디지털 문자(文字), 디지털화(化) 된 정보(情報),
반대로 점점 엷어져 가는 기억력, 늘어나는 치매현상들, 오늘을 살아가는 중년들의
허둥대는 모습 아닌가?
몇 년 전 국내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만들어낸 자동차 계기판이 디지털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운전자는 숫자의 상승과 하강 정도만 보면 된다. 자동차 앞, 뒤, 좌우
창이 있지만 운전자는 계기판의 숫자만 보며 속도감을 잊기도 한다. 속도에 도취
된 운전자 앞에는 저승사자가 웃고 있지만 운전자는 전혀 보지 못한다. 그 자동차
제조 회사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조기에 그 자동차 모델을 단종(斷種) 시키고
다시 아날로그 형식의 계기판을 장착한 신형 모델을 내 놓았다. 그 차를 타면 다른
차에 비해 무척 답답하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된다. 숫자에 민감하고 숫자화 된
인격체를 지닌 사람은 편리할지 모르지만 나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아날로그(Analogue)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전문용어다. 전압·전류의 변화 또는 크기를 눈금으로 표시하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음성·영상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아날로그양이지만 이를 디지털로
변환하여 처리하는 방법과 같이 디지털에 대응되는 용어로 사용된다. 수치보다
눈금이 익숙한 나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 나 역시 새가 되고, 달이 뜨면 달이 되며,
꽃이 지는 밤이면 눈물을 흘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실물이 난 디지털을 멀리 쫒아 보낼 방법은 없을까? 문명이 조금 발달하였다고
임의 영역을 넘보는 하루살이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행여 ‘제2의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닌지…….
2006. 7. 8. 12:00
_()_ 주말 평안하소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