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 건강 알아봐주는 스마트 변기? 2023 이그노벨상 받은 연구들
<KISTI의 과학향기> 제3905호 2023년 10월 30일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매년 이뤄지곤 한다.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s)은 미국의 유머 과학 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감(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제정해 1991년부터 수여하는 상이다.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노벨상에 대한 패러디이다.
그림 1. 이그노벨상 시상식 현장. 현장도 마찬가지로 엉뚱하기로 유명하다. 출처: Flickr
이 상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웃게 하지만, 이후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를 기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얼핏 보면 황당한 연구들이더라도, 이 같은 다양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들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물론, 정말로 웃자고 하거나 풍자하는 의미로 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올해에는 한국인 박사가 이그노벨상 공중보건상을 받았다는 경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바로 스탠퍼드대학 비뇨기의학과 박승민 박사다. 박 박사는 어떤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그노벨상이라는 명예를 안았을까? 박승민 박사의 공로와 올해 이그노벨상을 받은 기막힌 아이디어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건강 장기적으로 검진해주는 ‘스마트 변기’
박승민 박사는 2016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사람의 배설물을 장기간 분석할 수 있는 ‘스마트 변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연구팀의 목표는 데이터를 수집해 사람의 배설물을 장기간 분석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항문 모양과 지름이 다르고 개별 인식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항문 인식 카메라를 개발했다. 이어 2020년 스마트 변기로 변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논문을 네이처 바이오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발표했다.
그림 2. 박승민 연구팀이 개발한 스마트 변기 원리. 출처: 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스마트 변기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변기에 다가와 소변을 보려 하면 적외선 동작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설치되어 있는 카트리지에서 소변 테스트 종이가 자동으로 나온다. 보통 건강 검진에서는 소변에 이 테스트 종이를 담그지만, 이 변기에서는 소변을 보며 테스트 종이에 직접 ‘뿌리는’ 형태로 테스트한다. 30~60초 후 테스트 종이는 다시 자동으로 회수되고, 카메라가 상태를 확인한다.
스마트 변기는 센서와 렌즈 등으로 환자의 배변 상태와 횟수, 대변의 모양, 색깔 등을 컴퓨터 비전으로 분류하고 딥러닝으로 분석해 질환 10여 종을 진단한다. 소변의 형태와 속도, 양상도 확인할 수 있다. 각 변기 사용자를 지문과 항문 특정 부위 모양에 따라 구분할 수 있으며, 데이터는 암호화돼 서버에 안전하게 저장된다. 연구팀은 변기 시스템과 연동되는 휴대폰 앱도 개발했다. 스마트 변기가 없는 환경에서도 휴대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배변 상태를 기록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박 박사는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화장실은 우리 건강의 조용한 수호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마트 헬스케어 변기란 생각을 비웃을지 몰라도, 이번 이그노벨상 수상은 가장 개인적인 순간조차 건강에 영향을 미칠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며 “당신의 배설물(Waste)을 낭비(Waste)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스마트 변기에 견줄만한 독특하고 재밌는 이그노벨상 연구들
올해 이그노벨상 시상식에는 박승민 박사를 비롯해, 여러 다양하고 기발한 연구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화학 및 지질학상은 ‘과학자들이 암석을 핥는 이유'를 설명한 영국 리세스터대학 얀 잘라시에비츠 교수에게 돌아갔다. 화석이 혀에 더 잘 붙는 경향이 있으므로, 지질학자나 고고학자들은 ‘핥아서’ 돌인지 화석화된 뼈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라시에비츠 교수는 암석을 혀로 핥으면 표면의 화석이나 광물의 질감이 더 생생하게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기계공학상은 죽은 거미를 물건을 집어 올리는 로봇 손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인 미국과 중국, 인도의 과학자들이 받았다. 거미의 몸 안에는 각 다리의 움직임을 개별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일종의 밸브가 있다. 거미가 죽으면 이 같은 기능이 사라지면서 모든 다리가 한꺼번에 오므라든다. 연구진은 죽은 거미의 몸체에 바늘을 찔러 공기를 불어 넣으면 다리가 벌어지고, 공기를 빼면 다리가 오므라든다는 것을 보였다. 또 죽은 거미의 다리로 인형 뽑기 게임기의 집게 손처럼 물건을 들어 올리는 도구를 10분 만에 만들어냈다.
그림 3. 죽은 거미의 몸체로 집게 도구를 만드는 방법. 늑대거미를 안락사시킨 뒤 다리를 조종하는
체내 부위에 바늘을 꽂아 밀봉하고, 공기로 가득찬 주사기를 주입하면 죽은 거미가 집게
도구로 변신하게 된다. 출처: Advanced Science
그림 4. 죽은 거미로 만든 집게 손.
출처: Preston Innovation Laboratory/Rice University
일본 메이지대학 연구진은 젓가락이나 빨대에 전기 자극을 주어 사람들이 느끼는 음식 맛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연구를 선보여 영양학상을 수상했다. 혀에 전류를 흘리면 짠맛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저염식 식단이라도 맛있는 짠맛처럼 느끼게 해 주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상용화되어 전기로 짠맛을 느끼게 하는 숟가락 제품으로 출시됐다.
의학상은 시체에서 양쪽 콧구멍의 코털 수를 세어 본 미국과 캐나다, 마케도니아 등의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구 동기는 코털 같은 얼굴 부위의 털이 세균 감염을 막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정작 해부학 교과서에서는 사람의 코털 수를 실제 확인한 연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직접 세어본 결과, 코털의 평균 개수는 왼쪽 120개, 오른쪽 122개였다고.
물리학상은 멸치가 떼 지어 산란하는 행위가 해수의 섞임 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유럽 연구자들이 받았다. 바닷물은 바람과 조류의 영향 등으로 끊임없이 섞이면서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구자들은 바닷속 생물의 행태도 이 같은 해수 섞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림 4. 멸치가 떼 지어 산란하는 행위가 해수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 그림. 출처: nature geoscience
문학상은 같은 단어를 많이 반복하면 익숙한 단어도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자메이뷰(Jamais Vu)’ 현상을 연구한 아키라 오코너 세인트루이스대 교수(신경과학)팀이 수상했다. 자메이뷰는 처음 보는 것이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데자뷰’의 반대 현상이다. 이외에도 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멈춰 하늘을 쳐다보면 주위 사람들도 따라서 하늘을 보는지 연구한 미국 연구진이 심리학상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느끼는 지루함을 연구한 과학자가 교육상을 받았다. 커뮤니케이션상은 스페인어권의 문장 거꾸로 말하기 달인들에 관한 연구가 받았다.
엉뚱해도 괜찮아, 대한민국 이그노벨상 현황은?
노벨상을 받은 한국인 과학자는 아직 없지만, 이그노벨상은 박승민 박사 이전에도 4명의 한국인이 받았다. 그 중 가장 최근에 수상한 사람은 2017년 당시 버지니아대학에 다니던 한지원씨였다. 그는 커피잔을 들고 걸어 다닐 때 커피가 쏟아지는 이유와 잔을 쥐는 법을 바꾸면 커피를 쏟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 공로로 이그노벨상 유체역학상을 받았다.
첫 한국인 수상자는 향기 나는 양복을 발명한 공로로 1999년 환경보호상을 받은 FnC코오롱의 권혁호 씨였다. 양복에 넣어 둔 수많은 마이크로캡슐이 사람의 움직임과 함께 깨지면서 캡슐 속 향료가 나오는 원리다. 2000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대규모 합동 결혼을 성사한 공로로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우리나라에 종말론 열풍을 일으킨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인류 마지막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한 공로로 2011년 5명의 다른 종말론자들과 함께 수학상을 받았다.
박 박사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연구 내용을 듣고 쓸모없다고 단정하는 경우를 많이 봤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며 자칫 황당해 보이는 연구도 중요히 여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과학강국이 되는 데 필요한 건, 체면이 아닌 엉뚱함도 받아들이는 포용력일 수도 있다.
글: 한세희 과학칼럼니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