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분 반포대교를 달리며 차창밖으로 본 한강 모습
오늘 여행 일정표
영동 여행중 제일 먼저 도착한 천태산 영국사 주차장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 원래의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였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명종 때에 왕사(王師)를 지낸 원각국사(圓覺國師) 덕소(德素)가 중건하여 규모가 커졌다.
'영국사(寧國寺)'라는 명칭은 홍건적의 난 때에 마니산성(馬尼山城)으로 피신한 공민왕이
이 절에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불사를 올린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조선 태조 때에 세사국사(洗師國師)가 국청사에서 영국사로 명칭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서 정확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당시 영동군수이던 이해용(李海用) 등이 사찰을 중수하였으며,
1942년에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3층 석탑이 사찰 경내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그리고 1979년에는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중수되었다.
현재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내에 보물 제533호인
영국사삼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제534호인 영국사원각국사비(寧國寺圓覺國師碑), 보물 제535호인
영국사망탑봉삼층석탑(寧國寺望塔峰三層石塔), 보물 제532호인 영국사부도(寧國寺浮屠) 등의
중요국가유산이 있다. 아울러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된 영국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천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국가에 재난이 있을 때에 울음소리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대웅전 가는 길의 이층 누각 만세루
상사화가 곱게 피어 가을 산사의 운치를 더해 준다.
극락보전
영국사 대웅전, 대웅전과 극락보전이 나란히 위치해 있는 절은 처음 본다.
대웅전 내부
보물 제535호인 영국사망탑봉 삼층석탑(寧國寺望塔峰三層石塔)
유명한 영국사 대웅전 앞 단풍나무 한그루와 꽃무릇
보물 제534호인 영국사원각 국사비(寧國寺圓覺國師碑)
국사 경내에 있는 비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명종 4년(117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龜趺)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거북 머리는 퇴화되었고, 거북등의 6각형 무늬와 비를 끼워두는 곳의
덩굴무늬는 생략되었다. 비몸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비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원각국사비명(圓覺國師碑銘)'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몸에 비하여 비받침이 커서 안정감을 주는 반면, 비머릿돌이 지나치게 커서 중압감을 주고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이다.
구형승탑과 앞에 원각국사비
영국사 석종형 승탑, 부도탑인 줄 알았는데...
영국사 은행나무 안내문
천년고목 은행나무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永同 寧國寺 은행나무)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1970년 4월 27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약 31m, 가슴높이
둘레 약 11m 정도이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큰 나무로
문화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천연 기념물223호 영국사 은행나무
엄청난 크기의 보호수, 부분적으로 85번의 수술과 81번의 죽은가지를 잘라냈다고 한다.
천년이 넘은 노거수인데 아직도 은행 열매가 많이 열려있어 건강함을 보여주고
은행나무 사랑 시문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장승들과 쑥부쟁이 꽃이 반겨주고
천태산 영국사 일주문
천태산 삼단폭포
하늘도 예쁜날 천태산 영국사 관람을 마치고 옥천 舊읍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정지용 문학관과 생가를 먼저 둘러보고 고 육영수여사 생가도 들러 본다.
어죽집이라고 물어 물어 찾아간 옥천에서 소문난 생선 국수집
드라마 괴물 협찬 장소였다고 한다.오늘 점심은 영동 옥천의 유명한 대박집에서 민물 생선국수로...
생선국수 맛을 보니 옛날 고향 친구들과 천렵하던 추억이 떠오르고, 웨이팅을 해야만 먹을수 있다는
옥천 풍미당의 물쫄면을 기대하고 갔었는데...
버스가 시내가 아니고 옥천 구읍에 내려주는 바람에 점심 메뉴가 생선국수로 바뀌었다. ㅠ
정지용생가부터 둘러 보기로 한다.
얼룩빼기 황소 상도 만들어 놓고,
초가지붕의 정지용 생가
한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인 [향수] 정지용의 생가이며 정지용문학관 바로 옆에 있다.
1902년 11월 20일 정지용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1974년에 허물어졌으나
1996년 7월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정지용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며 순수시를 쓴 시인이다.
이곳은 한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인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생가는 초가로 지어진 단층 한옥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다.
안채는 부엌과 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랑채는 방 2칸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생가 주변에는 정지용 시인의 동상과 시비, 그리고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정지용문학관에는 정지용 시인의 유품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품으로는 시인의 유복, 붓, 먹, 책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관련 자료로는 시인의 생애와 작품,
옥천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 해설가가 상주해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물레방아도
시인의 동상
가수 이동원과 박인수 교수가 부르는 향수 노래소리가 들리는듯하고,
정지용 문학관 내부로 들어와서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음력 5월 15일) ~ 1950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명은 지용(池龍)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되었다.
정지용의 삶 일대기를 설명해주고,
정지용 시인 문학관을 둘러보고, 다음은 육영수여사 생가 터로 이동한다.
육영수 생가 가는 길에
(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1925년 11월 29일에 태어난 장소이다.
현재 건물은 없지만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송정승 및 민정승이 거주하여 삼정승의 집이라 불리던
가옥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가 민정승의 자손 민대감에게서 1920년 매입하였다고 한다.
6,047m2의 대지 위에 1970년 초에 개축된 관리사·사당 등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울창한 산림이 형성되어
있고 본채·사랑채·별당 등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터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연못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국민들은 대통령보다 영부인을 더 좋아했었지, 이런 영부인도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변하여 그런지?
연당사랑 앞에서
엄청 큰 비단 잉어들이 유유히 노니는 후원엔 수련이 곱고,
정승의 집이라그런지 수 많은 방들이
후문
후원에서 내려다 본 바로앞이 안채와 생가터 모습
후원의 대밭
당시에 석빙고도 있었다 하니
연자방아도 있었고,
곡식을 보관하는 뒤주
당시에 차고가 있었다니
이 영사기는 육영수 여사 아버지 육종관씨가 사용하던 것인데 6.25때 인민군들이
망가뜨려놔 불가능한 상태다.
육영수여사 생가를 둘러보고 나와 옥천향교로
옥천향교 명륜당
대성전 문이 잠겨있어 겉 모습만
옥천 향교를 뒤로 하고 옥천의 8경의 부소담악으로 버스로 이동
부소담악 가는 길...데크길이 이어지는데 가파른 계단 길로 이어진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부소무늬마을에 가면 부소담악이라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인데, 길이가 무려 700m에 달한다.
조선시대 학자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추소팔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경이다.
부소담악은 처음부터 물가 절벽이 아니었다.
본래 산이었지만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겨 물 위에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풍경이 되었다.
부소담악의 장관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추소정이다.
정자에 오르면 용이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바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지만 수천 년
세월을 간직한 자연의 신비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부소담악의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협소한 능선길 아래는 시퍼런 물이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아찔한 낭떠러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부소담악
절벽 위에 세워진 추소정
좌측으로 부소담악이 보이는데 위에서 내려다 봐야만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저 반대편 동네 군북면 추소리 저기에서 보면 부소담악을 제대로 찍을수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와야 가능할것 같다.
예전의 추소정
걸어서도 갈 수 있었던 저 아름다운 풍경을..
추소정에서 160m정도 더 가면 철망으로 진입을 막아놓았다.
얼마 전에 부소담악으로 이동중에 관광객이 실수로 미끄러지는 사고가 있어 진행을 막아놓아 아쉽고,
추소정
드넓은 대청호를 뒤로 하고,
영동 옥천 여행을 마치고.....
지난 추석 연휴에 월류봉을 다녀오고 2주만에 두번째로 영동 옥천 여행을 떠난다.
서울 시청역 앞에서 06:57분에 출발한 버스는 10:18분에 영국사 주차장에 하차 하여 자유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영국사와 은행나무를 둘러 본다.
영동의 천태산은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찾아와 등산후 영국사를 돌아 보는 곳이기도 하다.
천천히 영국사와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옥천 舊읍으로 이동하여 개별 점심 식사후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육영수 생가를 둘러보는 스케줄로 10여분쯤 걸어가서 옥천에서 소문난 생선 국수로 점심을 먹고
옥천 출신의 시인 정지용 문학관과 생가를 둘러 본다.
1902년 출생하여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특히 필자가 좋아 하는 향수라는 정지용 시인의 시를
지금도 기분 좋을 때 흥얼 거려 보는 때가 있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정지용 생가와 동상 문학관을 둘러 보고,
500m쯤 떨어진 교동의 육영수여사 생가로 이동 육여사의 어린시절을 보낸 곳들을
돌아보고 인자한 모습이랄까? 지금과는 너무 격세지감 이라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많은 국민들은 그런 인자한 모습의 영부인이 아직까지도 머리속에 오래 남아 있는데
앞으로 또 이런 영부인이 나오기를 기대해 보는데...이런 개인적인 작은 소망이 사치일까요?
나오는 길에 옥천 향교와 옥천 전통 한옥을 체험하고 14:20분 버스로 30여분 부소담악으로
이동하여 대청호반 위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보며, 왜 이곳을 와 보려고 했는지?
또 하나의 묵은 숙제 하나를 해결하는 시간이였다.
다만 지난번에 관광객 추락 사고로 중간에 통행을 금지해서 부소담악을 끝까지 걸어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늘도 맑고 바람도 시원한 날씨에
멋진 가을 여행 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 이였다.
여기까지...
2024. 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