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에서 만난 남자
김선유
시립미술관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랐더니 평일 대낮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있다. 한참 가야 하니 푸근한 마음으로 사람 구경을 한다. 맞은편 의자에 개그맨 박명수를 닮은 남자가 중절모를 손에 든 채 숙면 중이다. 살짝 벗겨진 이마에 흰 머리띠를 하고 있다. 테니스 선수들이 땀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항의인지 ELLE 상표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다니던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오는 길일까. 갈색 양복과 흰 머리띠가 묘한 대비를 이루어 눈길을 끈다.
왼쪽 손목에 금장시계, 오른손 중지에는 빨간 보석 박힌 반지. 벼락부자 티를 내며 거드름을 피운다. 왼쪽 재킷 깃에는 배지가 달려 있다. 매슬로우 이론 중 소속에 대한 욕구를 상징하는 배지다. 반질반질한 밤색 구두는 본인이 침 뱉어가며 닦았을까. 어쩌면 추레한 꼴을 못 보는 아내가 툴툴대며 닦아주었는지도 모른다. 검은 레이스가 달린 깜장 양말은 짧게 올라간 바짓가랑이 밑에서 발랄함을 가장하고 있다. 저 양말은 아무래도 딸내미가 신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배지와 레이스 양말이라니, 상상도 못 할 연출이다.
음악도 있어야겠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가 주제음악으로 딱 어울릴 것 같다. 사자왕의 행진, 수탉과 암탉, 야생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귀가 긴 노새, 숲속의 뻐꾸기, 큰 새장, 피아니스트, 화석, 백조. 그리고 모든 동물이 나오는 피날레. 9호선 남자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 모든 것의 조합이다.
집요한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가 흠칫하며 눈을 뜬다. 여기가 어디인지 잠시 가늠하더니 이내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 내릴 역을 지나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그를 다시 얕은 잠에 빠트린다.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노량진역에 내리는데, 쓸데없이 자꾸 돌아 보인다. 저이는 저렇게 차려입고 어디에 뭘 하러 가는 길일까.
강물 속에 어른거리는 것은
배에다 자동차를 실었다. 딱 차 두 대를 실을 수 있는 배다. 강 건너편까지 건너가는데 5분이면 족하다. 추사가 그린 ‘세한도’의 강나루 풍경처럼 “여보시오, 뱃사공!”하고 큰 소리로 부르면 들릴 듯한 거리다.
안동 풍산의 학암정에 올라 발밑에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오래전 그 해, 마을이 통째로 수장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가 마을과 들판을 휩쓸었다. 장날이면 호미와 낫을 놓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장터, 만국기가 펄럭거리는 운동장에서 온마을 사람이 모여 축제를 펼쳤던 학교도 물속으로 사라졌다. 모래강변을 따라 길게 펼쳐진 밭에 심었던 땅콩을 채 수확하지도 못한 채 허둥대는 사이에 물이 점점 차올랐다.
강물에 쓸려나간 것이 밭작물뿐이었을까. 너 나 할 것 없지만, 특히 남의 논을 부쳐 근근이 먹고 살던 소작농들은 더 모진 날벼락을 맞았다. 내 소유로 된 땅마지기 하나 없어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한 그들은 마을이 다 잠길 때까지 옮겨갈 곳을 찾지 못해 망연히 강물만 바라보았다. 행여 보상금을 받았다하더라도 쥐꼬리만 한 돈으로 마땅한 거처를 마련할 수 없었다.
법 없이도 살던 고통 마을 사람들은 한 권의 책으로 엮기에는 어림없을 많은 일을 겪었다. 조금 높은 곳에 있어 수몰을 피한 어느 댁은 이웃의 딱한 사정에 방을 거저 내주는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때다 하고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을 제 것으로 돌려 두둑한 보상금을 챙겨 한 몫 쥔 약삭빠른 사람도 있었다. 돈 냄새를 맡은 노름패와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들이 마을에 들어오자 곳곳에 큰 사달이 벌어졌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순박한 사람들이 얄팍한 보상금을 날리고 알거지가 되어 도시의 빈민가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도 많이 봤는지 강은 아예 눈을 감고 흐르는 듯하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많이 거두었던 계상고택은 멀리서 봐도 의연하다. 말 그대로 도리를 다한 사람의 품새이다. 옮겨갈 집을 구할 때까지 숱한 사람이 유숙했던 그 집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몇 년 전 한파를 막기 위해 별채를 지으려 하자 관청에서 간섭하는 바람에 혜택이 주어지는 문화재 지정을 아예 반납했다고 한다. 그 꼿꼿한 기질로 사랑을 실천한 집, 거기 사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가끔 가뭄이 들면 강물 속에 잠겨있던 마을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나 정다운 동무들과 보낸 학창시절의 기억이 흑백사진으로 떠오른다. 달곰쌉쌀한 첫사랑의 만남과 눈물겨운 이별도 있고, 젊은 부모님과 오빠 누이가 나누던 정다운 대화도 떠오른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설움을 삼킨 강은 여전히 푸르다. 쫓기듯 떠난 도시에서의 삶은 뿌리 뽑힌 나무처럼 시난고난한 역경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거친 손바닥을 비비며 마주하는 찰기 없는 밥은 더욱더 고향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바람 심한 날 담벼락에 걸려 펄럭이는 비닐봉지처럼 마음이 헛헛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노래 가사처럼 ‘미움을 싣기에는 아주 작은 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 물속을 들여다볼 일이다.
김선유 약력
-《문장》 신인상 등단 (수필, 2013)
- 달구벌수필문학회, 여백문학회, 대구문협 회원
- 저서 : 수필집 『달밤에 너를 그린다』
산문집 『찢어진 그물코 깁듯』
- pine12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