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韶天)선사 추모법회 - 각(覺)운동
각운동의 모체, 삼본사상과 삼대위력
스님께서 이 세상의 평화를 이룩하고 안녕을 가져오게 하고자, 우리 국가로 말하면 정말 탄탄한 자주독립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 주장하신 방법론 가운데 특별히 각(覺)운동, 활공주의(活功主義)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상운동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로, 당신의 진리, 깨달음의 진리, 참으로 있는 진리, 그것은 무엇이냐 우리표현으로 말하면 정법(正法)입니다. 이 정법, 우리 부처님의 깨달음을 당신은 표현하기를 만(卍)자를 깨달음의 표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근본진리라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보면 아는 것이고 보지 않아도 본래 있는 것이고 자기 가운데 다 있는 것인데, 스님은 그것을 세 가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삼본사상(三本思想)이라 합니다.
첫 번째는 평등(平等), 두 번째는 공심(公心), 공이라는 것은 공변될 공(公)자입니다. 모두가 독립해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대로 움직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공심은 자유의 원리인데, 오늘날의 자유라는 것은 전체와 더불어 하나라는 것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주장, 방종입니다. 참된 자유는 공심에 근거한 자유입니다. 세 번째는 자비(慈悲)입니다. 평등. 공심. 자비 이것을 삼본사상이라 합니다.
이 세가지는 바로 진리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며 진리가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진리답게 상응하려고 하면 평등. 공심. 자비 이것이 상부할 때 진리와 상부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추구할 필경 목표도 이것이고 우리가 도달할 세계도 이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깨달음의 진리 그 자체에서 표출된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이 많습니다.
둘째로, 이세상을 움직이는 진리에는 근본적인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진리(眞理)의 힘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 내부에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말할 수 있는 능력, 손발을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무수한 능력이 있는데 거기에는 모두가 진리가 뿌리가 되어 진리의 힘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애탐(愛貪)의 힘입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탐, 탐심, 욕심, 탐욕심이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탐욕은 죄를 부르고 악을 부르고 투쟁대립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탐욕은 뭐든지 만들어 내는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탐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사랑이다. 이것은 애(愛)라고 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서 뿌리가 되고 그 뿌리를 다시 보면 진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탐이라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고 무엇이든지 되게 만드는 힘이지 본래 나쁜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견이 삐뚤어져서 잘못된 방향으로 탐심을 부리면 자기도 망하고 남도 헤치게 되는 것이지만, 올바른 데로 쓰면 탐심은 자기를 크게 활동시키고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 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척 같은 사람은 그 훌륭한 능력을 사람을 헤치고 도적질하는데 썼기 때문에 천하의 악당이 되었지만, 같은 시대의 공자는 그 마음을 착하게 썼고 선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성인으로써 추앙을 받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근본적으로 탐심을 가지고 있다, 욕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무시해서는 아무 일도 안 된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하고자 하는 의욕을 채워주는 그 동기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고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행하는 것처럼 자유가 억압되고 동기가 억압되면서 사회정의나 평등을 위해서라는 구호를 내세워 봤자 인간 내부의 근본동기나 그 활력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법을 행하자', '불도를 행하자', 혹은 '착한 일을 행하자' 이렇게 구호만 아무리 외쳐 봐도 안 되는 것은, 인간이 탐의 뿌리가 있는데 이 탐의 부분을 살려 주지 않고 탐을 죄악시 해가지고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안됐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지는 사상에는 이것이 뿌리가 되어 사람의 욕심, 탐심을 무한대로 개방시키는, 그래서 무한대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그러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제도(制度)의 힘입니다. 이것은 매우 발전된 사상입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진리의 힘과 애탐의 힘과 제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도, 시스템인데, 이것은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단위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제각기 자기 개성 외에 이웃과 함께, 그 제도와 함께, 그 조직과 함께, 관습과 함께, 사회와 함께 살아갑니다. 자유주의체제 민주주의철학을 알아서 투표하러 가거나, 주권재민이라 해서 내가 주권이 있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 그 사회 속에서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성스러운 운동을 하더라도, 말하자면 이 땅에 평화운동 진리운동을 일으키더라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진리의 힘을 긍정해주고 그것을 바르게 발휘하도록 해라. 두 번째 인간내부에 가지고 있는 이 욕심, 이 애탐을 긍정해서 올바른 길로 쓰도록 만들어라. 세 번째 제도의 힘을 바르게 써라. 회사를 만들든지, 종교단체를 만들든지, 국가제도를 만들든지, 세계 평화운동을 만들든지 이 세 가지가 기본이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이것을 삼대위력(三大偉力)이라 합니다.
삼대위력과 삼본사상, 두 가지를 매치시켜서 당신은 활공주의라는 세계평화운동, 각운동의 모체를 구성했습니다. 그에 대한 방법론은 오늘날에 검토해보면 문제될 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저도 전폭적으로 그대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바닥에 깔려있는 정법사상과 삼본주의, 삼대위력 사상은 놀라운 것입니다.
스님이 평(平). 공(公). 애(愛)라고 하는 이런 사상을 끌어냈을 때 그 바탕을 어떠한 윤리의식, 높은 윤리철학에서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노장님은 깨달음을 존재론적으로 규명을 해서 그것을 체제의 원리로 도출해 낸 것입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일찍이 이렇게 착안하신 분을 못 보았습니다.
그 분이 쓰신 『활공원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해방직후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영예로운 국가로, 정말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그런 위대한 국가로 만들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시절입니다. 그 무렵 그 책을 보니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처음 그 책을 만났을 때 빨려들 듯이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장님이 제창하신 기본적인 주장은 아마 변치 않고 타당하며, 다른 사람이 아직 손을 못댄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세 가지 공만(公慢)사상
그리고 노장님의 주장 가운데서 우리가 꼭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공만(公慢)이라고 하는 사상입니다. 공만이란 공변될 공(公)자와 아만이다, 교만이다 하는 만(慢)자를 씁니다. 보통 아만, 교만은 떼어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격을 손상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어른은 공만은 클수록 좋다고 합니다. 이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삼종공만(三種公慢)이라 합니다. 이 삼종공만이 인격을 올바르게 키운다고 합니다. 제1공만은 국가(國家)공만이고, 제2공만은 인류(人類)공만이고, 제3공만은 일진(一眞)공만입니다.
국가공만을 어떻게 규정했나하면 '내가 누구냐, 나는 바로 국가를 대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일신의 행동여하에 따라 나라가 잘되고 못되고가 달려있다. 내가 질서를 지키고 내가 나라에 충성하고 내가 내일에 충실하고 내 가정에 충실해서 내가 잘할 때 내 나라가 잘되거니와, 내 행실이 불량하고 질서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정을 못 지키고 자기 직장을 못 지키면 바로 우리나라가 멍든다. 바로 나는 국가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자다. 이렇게 해서 책임(責任)공만을 노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이 국가가 잘 되는 것이고 자기는 바로 국가라는 높은 관념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국가공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이 충무공이나 안중근 의사를 내세우십니다. 이분들은 아무 사심없이 조국의 영광만을, 국가의 번영만을, 안정만을 추구했던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류공만이라는 것은 전 인류를 위해서 헌신하는, 이것은 자비(慈悲)공만입니다. 인류를 자기와 한 체온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해서 인류의 안녕과 평화, 인류의 방황과 고난을 바로 자기의 고난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하나하나 건져주고자 하는 큰 원, 그렇게 인류를 자기 몸으로 삼는 것을 인류공만이라 합니다.
이것은 큰 종교가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때 묻은 몸을 목욕시켜주기 위해서 신의 아들이 태어났다고 어느 종교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씻어주었으니까 우리 모두는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제가 해석한 것입니다.
언젠가 "십자가를 어떻게 보느냐" 고 묻길래 "내 해석은 인간무죄의 선언이라고 본다. 인간은 죄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씻어 버렸기 때문에, 형님이 대신 빚을 갚아줬으니까 나는 빚 없는 자 아니냐, 대신 죄를 씻어주었으니까 만인은 무죄다. 그런데 왜 죄인, 죄인하고 사람들은 그러느냐."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과연 그렇겠느냐, 오히려 힘이 모자라서 끌려가면서 '주여, 주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끝끝내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사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