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 & 무서리 - 제주올레
미스 홍당무 쥔장께 가까운 관광지를 여쭸더니 비자림으로 가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비자림으로 와서 내렸다. 다행히 문을 닫지는 않았다. 늦은 오후시간이라 사람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비자림이 유명하던데 어떤 숲일지 궁금했다.
비자림은 오래된 비자나무가 2800그루가 심어져 있고, 500-600년 된 비자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곳으로 단일수종으로는 세계최대의 숲이라고 한다.
숲 한 바퀴를 도는데 40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숲길도 황토 길이다.
비자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으니 꼭 나니아 연대기 벽장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이런 숲그림은 처음 본다.
일반 산 속의 숲과는 신비로움이 있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비자나무로만 숲이 이루어져 있어서 그렇다. 단일종 비자나무만 심어져 있으니 모두 나무색깔이 같다. 그러니까 숲이 온통 한 가지 색깔이다.
저녁때가 되니 숲 속에 그늘만 드리워져 있어 꽤나 쌀쌀하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마지막 관광객으로 비자림을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날 여행은 다른 날보다 돌아가야는 부담감이 없어 더욱더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이 앞선다. 신비한 숲 속을 여유롭게 즐기며 천천히 걸었다. 입구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면 되었다.
다시 택시를 부르려는데 동네에 사신다는 어르신께서 식당이 모여있는 동네까지 차를 태워주신단다. 자신의 집이 지나가는 길에 있단다. 친절한 제주주민이시다. 어르신은 365일 비자림에 오신다고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비자림의 모습은 다르단다.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인데 비자를 수확할 수 있어서 좋고, 숲이 우거진 모습을 보려면 여름도 좋단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제주는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무니 푸른 비자나무를 볼 수 있단다. 비자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예전엔 비자림이 인기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힐링을 하고 싶어졌는지 갑자기 유명해지는 바람에 평대리에도 사람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서 여기저기 설명도 들었다.
갑자기 어르신은 제주무를 먹어봤냐고 하셨다. 안 먹었다고 하니 자신이 아는 집 무밭에 차를 세우시면서 무를 뽑아가란다. 뽑은 무를 먹어보니 설탕같이 달다.
맛없는 배보다 더 달다. 차에는 칼도 있어서 직접 깎아서 주신다. 우리가 손녀딸 같은가보다.
가져 갈 수 있는 만큼 뽑으라는데... 어르신 밭도 아닌 남의 집 무밭에서 무서리를 시작했다. 공짜라면 좋아서 무를 두세개씩 뽑아오는 순간 차 안에서 포착한 친구의 능력도 대단하다.
잠깐만~ 뽑은 건 좋았는데 어찌 비행기에 태운다지... 잠시 당황했지만 우리에겐 트렁크가 있었다.
어르신은 식당이 모여 있는 곳에 내려 주시면서 만나서 즐거웠다고 하신다. 다음에 오면 자신은 비자림에 매일 오니까 만날 인연이 있겠다면서...
서울 같았으면 남의 차를 쉽게 타지 못했지만 여행지에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고 사건이 생기고 제주도 무를 트렁크에 싣고 갈 생각을 어찌 꿈꿨을까...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행동이 자유롭다.
<포토일기 10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