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2011년 8월 16일]
<변산반도 숙소 - 내소사 - 법성포 - 법성포 백제 최초 불교 전래지 - 백수해안 - 서울>
어제 날이 저물어 도착한 격포 해변에서 우선 잠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채석리조트오크빌이란 곳에서 방을 얻었다. 퀸싸이즈 침대가 둘 있고, 부엌시설도 있는 꽤 큰 원룸식 방인데, 한참 때는 20만원을 받지만, 우리에게는 12만원에 주겠다고 하고, 또 1층에는 식당이 딸려 있어서 묵기로 했다. 방에는 46인치 벽걸이 TV와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에어컨, 냉장고 등 시설도 무척이나 좋았다. 그런데 그 밑에 있는 식당은.... 별로다. 절대로 권하고 싶은 집은 아니다.
어쨌든 아침을 먹고 나서 연주에게 전나무길을 보여주기 위해 내소사를 가기로 했다.
변산반도에 자리한 능가산 내소사는 다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그 무엇보다도 입구까지 이어진 전나무 숲길과 대웅보전의 꽃 문살, 이 두가지는 이 고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꼭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일주문을 보니 반가운 일중 선생님의 글씨가 우릴 맞는다. 지난 번 송광사에 탐사반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도 일중 선생님의 글씨를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선생님의 글씨는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보다가 일중이든 여초 선생님이든 눈에 익은 글씨를 보면 괜히 남다른 애뜻함으로 다가온다.
[내소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일중 선생님의 현판 글씨]
일주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맞아 주는 그 전나무 길이 있다.
[시름없이 늘어서 있는 전나무들.... 그 향이 온 몸을 그득 채우고 나면, 절로 영혼까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전나무길 중간에 소위 '대장금' 연못이 있다.
사람들은 가던 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여기가 대장금 찍은 연못이래.'라면서 지나지만, 사실 TV에 나온 장면을 실감나게 보려면 연못 동쪽에서가 아니라 북쪽 머릿쪽으로 가서 일주문 쪽으로 되돌아 봐야 그 장면 그대로 볼 수 있다.
[대장금의 한 장면과 장금이가 앉아 있던 곳에 서 있는 연주... 지금은 장금에 없던 물레방아가 있다.]
내소사 경내로 들어서면 누구나 경내에 있는 그 엄청난 느티나무를 보게 된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1000년은 족히 되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20여 미터, 둘레가 7.5미터 정도가 된다고 한다. 부안군에서 지정한 보호수다. 안동 하회마을의 삼신당 나무도 그렇지만, 이런 보호수들을 보면 정말이지 신령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듯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거대한 나무를 꼭 등장시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주가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들과 나무 등걸을 비교해 보자... 정말 대단한 신목이란 생각이다.]
[내소사 대웅보전... 화엄사 각황전처럼, 빛바랜 단청에서 오히려 묵직한 선풍이 느껴진다.]
그리고 드디어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수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는 그 꽃살.. 나무결을 그대로 드러내며 절묘하게 한 잎 한 잎 살아 움직이듯 하다. 자세히 보면 같은 것들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치에 따라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법당 안에 들어가서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를 볼 때는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정갈하게 비쳐든다고 한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 문살...]
내소사를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영광 법성포... 소위 '영광 굴비'의 본고장이다. 사실 이 곳을 들른 이유는 이곳이 굴비로 원래 유명한 곳이라 여기서 꼭 굴비정식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때문만이 아니라, 요즘 한창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인 '불교 백제 최초 도래지'를 꼭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법성포 항구 주변은 정말 온통 '굴비' 밖에 없다. 정말 저렇게 많은 굴비들이 잡히나 싶을 만큼... 그러나 대개는 추자도 쪽에서 잡은 것들을 이곳에 와서 가공해 굴비로 만들어져 전국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법성포항 주변 길거리 모습... 이 일대는 이와 같이 온통 굴비와 관련되 상가들 뿐이다.]
'굴비정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로 이동했다.
백수해안도로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건너편 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사면불을 볼 수 있다. 백제 침류왕 원년이던 384년, 지금의 파키스탄 북쪽에 위치한 간다라 지역 승려 마라난타 존자가 실크로드를 거치고 중국 동진을 거쳐 배를 타고 건너와 당시 백체 땅인 이곳을 통해 불경 등을 가져와 불교를 전래했다는 성역이다. 법성포라는 지명 자체도 '성인이 불법을 들여오신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다. 그후 존자는 좀 더 내륙 쪽으로 옮겨가 불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 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식'의 불교 유적지와는 전혀 다르다. 마라난타 존자가 간다라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왔고, 그 유물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전시되어 있는 등 이 유적지 일대가 온통 간다라 풍으로 되어 있어 무척이나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마라난타 존자가 들어온 지점에는 데크가 깔려 있다. 데크에서 올려다 본 불당과 사면불의 모습]
여름철에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경내에 있는 간다라 유뮬관을 꼭 들러보라고 추천한다. 전시되어 있는 소박해 보이는 모든 유물들이 마라난타 존자가 가져온 진품들(목조 불상은 복제품)이여서라기 보다는.... 너무너무 시원하다... ^6^; 사실 별로 해를 피할 곳이 없어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기진맥진 할 수 밖에 없는데, 유물관 안은 말 그대로 천국과 같다.
유물관에 들어서자 마자 앞에 떡 서 있는 조각상이 바로 마라난타 존자다. 그리고 그 왼쪽 벽쪽 유리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이 존자가 들고 왔다는 불상을 복원한 것이고... 오른 쪽으로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영상관이 있다...
어느 방을 보든, 찌는 듯한 유물관 외부 경내를 돌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시원하기 이를데 없는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참, 입구 오른쪽 벽쪽 행거에 걸려 있는 것들은 졸업식 때 입는 가운이 아니라 백제의 관복이라도 한다. 유뮬관 내부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그 옷을 입으면 그 라운지 구역에서 마라난타 존자상 옆에서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입구 라운지에 있는 마라난타 존자상 옆에 백제 관복을 입고 한 컷!]
[부처님 진신사리가 보존되어 있다는 탑원. 이국적인 간다라 양식으로, 감실마다 부처상, 탑 등이 들어 있다.]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를 나와,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백수 해안 도로'를 향한다.
국도 77호를 연결하는 군도 14호선이 구수산 해안가 자락을 구비치며 장장 19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지는, 서해안 다른 곳에서는 정말 볼 수 없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우리나라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 중 9위로 선정되었다는 말도 있다.
초입 도로변에는 키작은 해당화들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피어 있다. 만석동을 떠나 도화동 수봉산 중턱에 있는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 그 집 마당에는 해당화를 비롯한 많은 꽃나무가 있었다. 장미와 비슷해 보이지만, 줄기에 훨씬 더 자잘한 가시들이 있고, 꽃은 장미와 같이 탄탄한 느낌이 아니라, 좀 헤프게 벌어진 듯한, 그러나 그 색은 전혀 장미에 뒤지지 않는 그런 자태를 뽐낸다.
이곳도 역시 걸어서 감상하는 길로 조성이 되어 있었고, 중간 중간 차를 세우고 눈 앞의 그 큰 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구름 없이 맑은 날, 지는 해를 바라보면 환상일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바다라는 곳은 해가 지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해는 저녁마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그 곳으로 사라져 가곤 했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큰 바다로 지는 석양은 아마 그 보다 몇 배나 더 멋지고 몽환적일 거란 생각이 든다.
[백수 해안 도로 첫 번째 휴게 전망대... 집사람과 연주가 우리 애마와 포즈를 취했다. 집사람 뒤 왼쯕으로 보이는 것이 영광 원자력발전소다.]
[뉘엇 뉘엇 지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소록소록 추억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멋진 영광 백수 해안 도로 브라이브를 끝으로 이번 여행이 끝났다.
여정 내내 나 개인적으로는 수 많은 곳에서 데자부를 겪어야만 했다.
그 시절 나와 함께 뛰놀았던 '진로, 어까짜, 꺼욱이, 금자'와 같은 이상한 이름의 아이들,
삼나무 줄을 꼬던 이웃집 어부 아저씨 가족과 새우젓장수 부부,
뾰족두구를 신고 그 비좁디 비좁은 축축한 골목길에 콩콩콩 구멍을 만들며 새초롬해서 지나다니던 뒷집 아가씨
대성목재로 들고 나던, 보루네오 원목을 가득 싣고 오가던 괴물같은 거대한 화물차들
바닷가 기찻길과 철교...
그 철교위에서 놀다 기차가 오는 바람에 피하지 못하고 철교 밑으로 숨었다가 고무신을 바닷물 속에 떨어뜨려 울던 아이...
이 모든 장면들이 오버랩이 되어 스쳐지난다.
우리 윤식이와 연주는 이담에 어떤 추억을 회상하게 될까?
어떤 곳에서 우리 아이들은 데자부를 겪게 될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