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부동산정책 이야기
편집과 글쓴이: 전준우(韓國不動産競賣硏究院 院長)
여의도는 60년 말 후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군집아파트 1번지로 그 명성을 날렸던 곳이다. 그러다 70년대 말에서부터 시작하여 80년 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이 된 강남 3구에 그 명성을 넘겨줘야 했고, 그나마 1975년의 국회의사당과 1979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의도로 오면서 오피스 촌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1985년에 63빌딩과 1987년 쌍둥이빌딩이 들어서고 1994년 동양증권· SK증권, 이듬해 굿모닝신한증권의 본사가 완공되면서 증권사들이 몰려들어 업무와 금융산업의 중심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렇듯 여의도가 최근 몇 년 새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여의도의 본래적 기능을 이제 서서히 하고 있다는 징조인 것이며, 2002년부터 한강의 샛강변을 낀 40층 이상 되는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스카이라인을 확 바꿔놓고 있다.
2002년 말 41층 주상복합인 대우 트럼프월드 1차가 입주하면서 초고층시대를 연 이후 대우 트럼프월드2차(37층), 금호리첸시아(40층) 등이 한강변을 중심으로 들어섰다. 1970년대 지었기 때문에 낡았던 중층 아파트들이 재건축이 되면서 고층 주상복합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옛 한성아파트 자리에 여의도 GS자이가 입주를 했고 롯데캐슬아이비(35층), 롯데캐슬엠파이어(39층)도 재건축된 주상복합아파트이고, 1970년대 건립된 광장·미성·시범·수정아파트도 60층 이상의 주상복합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에 있다.
그 밖에도 이처럼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을 획기적으로 바꿀 주역은 다국적 부동산개발회사인 스카이랜이 여의도 통일주차장터 4만6465㎡에 짓는 파크원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될 것이다. 파크원의 사업비만 2조원이 투입되는 대형프로젝트로 59과 72층 빌딩 2개동과 호텔(26층) 및 ·쇼핑센터(6층)가 지어지고 있어 여의도에서 현재까지 최고층으로 63빌딩 이었으나 그 기록을 머지않아 갈아치우게 될 것이다. GS건설이 파크원의 맞은편 옛 중소기업전시장 자리 3만3058㎡에 짓는 서울국제금융센터(SIFC)도 최고 55층으로 2004년에 착공해 2013년 완공된다. 여의도공원을 따라 이어지는 대로변에 여의도파크센터(34층)는 장기투숙객을 위한 서비스레지던스호텔인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가 지어졌다. SK건설이 여의도역 부근 SK주유소터에 짓는 에스트레뉴(S-Trenue)도 최고 36층인 복합 빌딩이다.
<1969년 7월 17일 제21주년 제헌절을 맞아 여의도 국회의사당 신축 기공식에서 이효상 국회의장·정일권
국무총리·민복기 대법원장 및 내외 귀빈이 기공 삽을 뜨고 있다.>
이제 여의도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마천루의 숲이 되고 있어 박정희 대통령이 기획한 대로 월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국제금융기업과 세계적인 금융사 등을 유치해 국제 금융 허브로 육성이 될 것으로 본 다면,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복안이었고 그 꿈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여의도가 미국에서처럼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가 되고 초고층 주상복합이 즐비한 맨해튼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것은 서울시가 2004년 확정한‘전략사업 육성 및 기업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여의도는 명실상부한 금융산업의 육성지역으로 정해져 뉴욕의 맨해튼 같은 금융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 목표가 된 것과 일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버려진 땅, 여의도 모래밭에 대한 개발정책과 토지경제학에 대한 실현을 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1970년 대 부터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를 개발의 한 축으로 하여 경부고속도로양편에 세워진 강남 3구의 아파트는 수많은 원성과 지탄을 받으면서 지금의 강남 터미널과 양재동(말죽거리) 등지에 세워진 강남 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여기여 왔으나 여의도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바뀌면 강남 3구에 빼앗긴 정주공간에 대한 주거단지의 명성과 함께 직주공간으로도 그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서울의 전지역을 휘돌아가고 있는 남부순환도로의 개설은 강화도에서 출발하여 김포 및 김포공항을 지나 신월동 화물터미널과 오류동(안산 인천지역과 연계되는 지역)과 광명과 구로공단을 통과하여 시흥대로에 접속되어 여의도에 이어지고 대림동 신림동과 봉천동을 뚫고 서울이 관문이자 3남지방의 사람과 모든 산업물의 나들목이 된 경부고속도로와 연계한 도로로 개설이 된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 및 물류에 대한 구조와 환경을 확 바꾸어 버린 것이었다. 남부순환도로의 개설은 서울과 인천 및 경기도 동서남북부지방과의 인적 물적 교류뿐만 아니라 수 천년 동안 폐쇄되었던 그 지역과의 모든 것을 소통하게 되어 수도권의 기능 확장과 그에 따른 부동산 입지학적인 측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 못지않은 국토의 변화와 경제적 효과를 유발하게 되었다. 물론 그에 따른 역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엄청난 변화와 국토의 효율성이 커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일예로 경기도 시흥군 또는 서울시에 편입이 된 이후에도 영등포구의 벽촌에 해당하여 토끼와 노루가 뛰놀고 산이 깊어 숯을 구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많았던 곳(숯고개- 숙고개)에 우리나라 최대의 명문학교인 서울대학이 종로에서 봉천동과 신림동에 걸쳐있는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오고 지하철 제2호선이 순환도로 밑으로 지나는 사당동 사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봉천동 사거리를 지나 신림동 사거리에 이르는 곳은 남부순환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지에서 지금은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엄청난 입지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이것을 대변해 주고 있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남부순황도로를 타고 전개되는 야경(夜景)을 즐기는 것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고, 그 야경의 중심에는 여의도와 한강이 들어가 있다.
1980년 이후 여의도 아파트 값은 강남보다 많이 낮고 목동이나 잠실보다도 더 싼 편이었으나, 2000년 도에 들어와 과거의 수많은 아파들에 대한 재개발로 인하여 주상복합이 들어서면서 가격도 많이 오르고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개발계획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여의도는 다시 각광받고 있다. 그로이해 한때는 출퇴근 시간에는 여의도와 연결되는 도로가 막혀 강남 등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GTX의 표본이 되고 있는 지하철 9호선과 5호선 개통으로 여의도는 교통여건도 크게 개선되었다. <계속>(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