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다시 저물어 간다
늘 묵은 해와 새로운 해가 교차점이 되는 이 계절이면 회환과 절망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가슴을 짓누르며 요동치게 만든다.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하지만, 365일 그 수많은 시간들을 허송하며 보낸 듯 하여 저절로 후회와 자책이 가슴을 채우는 것은 왜 일까?
경제가 정부의 노력과 계획에도 불구하고 실제 서민의 경제는 아직도 거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다.
경제 체감지수는 최극 한파이다.
또한 극히 염려되는 것은 한탕주의의 사기와 병폐된 사업들이 서민 경제를 더욱 울리고 있다.
세상이 어렵다 보니 정상적인 방법과 노력으로는 작은 집 한 채라도 장만하기 어려운 이 시대여서 누구라도 로또복권 같은 환상에 젖거나, 사기꾼들의 돈버는 획기적인 수치에 눈이 잠시라도 멀어질 수 밖에 없어서 열심히 투자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날이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어렵고 힘든 삶이 서민을 아프게 하는 2023년 겨울이다.
게다가 일찍 찾아온 한파는 더욱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불행한 사례도 번번해서 우리 삶의 무게를 무겁게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경제시대에 있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예술과 문화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그 예술문화 활동이 전업일 때는 참으로 낭패한 현실이 펼쳐지는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현장은 많은 문제점과 과제를 안고 있다.
한 예로 돈버는 일에 전 생애를 바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많은 분야 중에서도 문인에게 보내는 시선은 곱질 않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왜? 글을 쓸까?” 라고 생각하는 돈을 가진 자들의 안스러움은 문인에게 있어서 ‘위대한 문인’의 삶에 회의를 주게 된다.
왜? 문인을 위대하다고 표현하는 것인가?
실은 우리 역사를 이끌고 지탱하며 인류를 계도하고 발전시켜온 힘은 바로 문학이요 문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이 있었기에, 우리가 쓴 글들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람의 사상과 꿈을 표현하고 시대의 미래를 바라보며 예언한 문학은 우리의 역사를 일궈온 위대한 자산이며 에너지가 되었음은 인류 역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문학뿐만이 아니고 미술, 연극, 영화 등에 걸친 문화예술의 힘은 위대한 인류를 만들어온 원동력이자 기초력이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만 한다.
돈만 있으면 이 시대의 웬만한 것은 다 얻을 수 있는 현실이 되었지만 아직 돈으로 매수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문인의 정신’이다.
우리 한국의 역사만 보더라도 수많은 선비들이 자신의 사상과 기개를 지키며 목숨을 걸고 충(忠)과 용(勇)을 내세웠고, 수많은 선비들이 민중에게 문(文}과 지(知)를 가르쳐서 그 시대의 사표롤 삼아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 되게 하였다.
왜정시대의 근대사만 보더라도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강국’을 제창해서 투옥 중에도 죄수들과 이름 석자도 못쓰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이 급선무라는 인식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참으로 김구 선생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문인의 정신이며 후세에 물려줄만한 유산인 것이다.
문화가 잘 발전된 나라는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잘 발전되기 때문에 국민을 문화적으로 무식하게 내버려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위대한 선구자 김구 선생의 생각이며 문인정신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대한민국 시대는 1인당 GNP가 35,000여불이 넘어설 정도로 세계 상위권 수준임에도 문인들이 춥고 배고픈 것은 어인 일일까?
문화의 올바른 가치관을 습득하기 전에 문화의 쾌락을 먼저 취하며, 문화의 정중한 지식과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문화를 돈으로 즐기고 향유하는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형성된지 오래이다.
문(文)의 정신은 퇴물처럼 그 존중성이 사라지고, 돈으로 정신조차 사려는 풍조가 이 시대의 산물이다.
몇해전 겨울에 보도됐던 한 여류작가 죽음이 오늘날 우리 문인의 최극단적인 가난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온 이 작가는 이웃집 현관문에 다음과 같이 쪽지를 붙여 놓았었는데,
그 이웃집이 새해 연초라 집에 없던 탓으로 이 쪽지를 보질 못했고, 이 여류작가는 문인의 자존심을 굽히고 살짝 이웃에 전한 이 쪽지의 응답을 기다리다가 굶어죽는 비극을 남겼다.
평소 안면이 있는 이웃이 자신을 이해해 주리라고 믿고 살짝 남긴 쪽지였을 것이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어떻게 보면 이 좋은 세상에 어리석은 죽음이지만 문인! 그 자존있는 멍예가 그의 일생을 가난이라는 색깔로 만들고 굶어 죽는 결말로 간 것인데,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잘 말해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 문인의 자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겨질 문인의 정신을 높이 들고 무엇이라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해야만 한다.
옛날 선비들은 자신의 가족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더 중시하며 상것들이 보기에도 안스러운 가난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는데. 지금 이 시대는 그렇지않음은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다.
어떻게라도 일하면서 문인의 정신을 더욱 값지게 살찌우며 살아가야할 필연적 책임이 있음도 깨우쳐야 한다.
언제이던가 글을 통해 “아직도 성공의 시간은 충분하다”라고 세상에 말한 적이 있다.
특히 문인들이여! 희망과 용기를 잏어서는 안된다.
여러분은 가난 속에서 더욱 뛰어난 이상과 글을 세상을 향해 던질 수 있다.
문인의 길이 가난하다면 문인의 정신은 그 가난 속에서 더욱 풍요로워 진다.
문인의 풍요로움이 이 세상을 살찌게하는 거름이 되었음을 깨닫고, 큰 자부심으로 세상을 느긋하게 관조할 수 있는 문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결국 가난한 문인의 정신이 풍요로운 세상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문인은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선구자이다.
여러분의 좋은 생각이 여러분의 좋은 글이 이 시대의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필자는 그대를 ‘위대한 문인’으로 존경한다.
‘위대한 문인의 정신’을 사랑한다.
반드시 오늘 그대가 원고지에 쓴 글들이 이 세상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정서를 순화시키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정신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난히도 이번 겨울은 추위가 빨리 왔다.
그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구들목에서 손을 호호 녹이며 원고지와 씨름했던 옛 우리 선배들을 생각하며, 새벽 추운 밤에 마당에 나가 별을 헤이며 작품을 지었던 우리 옛 선비들을 생각하며, 위대한 문인의 정신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우리였으면 하고 바래본다.
-2023년 한국신춘문예 겨울호를 내면서
발행인 엄원지
첫댓글 건강하시고 평온하시길 기원합니다.
오타 몇자로 강건하심을 염려하게 됩니다.
원래 세심하셨었는데ᆢ
그러나 글 속에선 여전히 문학과 문인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는 걸 보니, 곧 그리고 반드시 예전의 그 모습을 되찾으실 것이라 확신하게 됩니다. 겨울이 봄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2024.4.6.
도하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