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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소(短簫)
조신호
몇 년 전부터 대금(大笒)을 불고 싶었다. 마음 속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듯 그윽한 공명(共鳴)이 울려왔다. 길을 기다가 밥을 먹다가 특히 TV 국악 공연을 보면서, 누군가 자꾸만 대금 소리로 손목을 잡아 이끄는 것 같았다. 첨성대 부근 어느 국악기점에 들어가서 문의 했더니, 그 곳에 직접 지도하는 대금교실이 있는데 단소를 먼저 배우고 대금 공부를 하면 좋다고 했다. 그렇다고 쉽게 시간을 낼 수 없었다. 3년이 흘렀다.
지난 8월 말, 충북 영동의 <난계국악축제>에 갔다가, 체험 행사장에서 밋밋한 오죽(烏竹)으로 만든 단소 하나를 손에 넣었다. 직접 가서 배울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단소를 어느 정도 불게 되면 대금에 도전하리라는 희망, 그 씨앗을 심어두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국악 동호회를 드나들며 자료 수집이 시작되었다. 여러 곳에 다양한 국악과 단소 이론, 악보, 연주 파일 등이 탑재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초 지식과 운지법(運指法)을 익히면서 날마다 단소에 매달렸다. 그런 모습을 얼핏 감지한 직장 동료 한 사람이 단소 강의 씨디 3장을 빌려주었다. 동영상 내용으로 기초를 다지며 악보를 인쇄하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소리가 잘 나지 않다가, 불안정하지만 하나씩 소리가 만들어지면서 끈질기게 연습을 거듭했다. 태(汰)-황(潢)-무(無)-임(林)-중(仲) 음계가 내려갈수록 소리가 은근하고 넉넉하고 다정하다. 어느 정도 소리가 생성되면서 재미와 보람을 음미하며 적극적으로 몰두했다.
서양 음악과 달리 단소와 대금의 고음에서 한 단계씩 내려가면서 연습한다.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면서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는 중국의 오음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연습은 바로 사람과 단소의 친화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처음에서 작고 가벼운 단소가 엄청 무겁고 손마디가 아팠다. 팔과 손목에 특히 손마디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 때문이다. 점점 단소가 가벼워지면서 소리도 좋아지고 호흡도 길어졌다. 어떻게 숨을 쉬는지 정신이 없다가 여유있게 복식호흡이 가능해 지면서 정간보(井間譜)를 읽어가며 한 곡씩 불게 되었다.
단소를 공부하면서 조선의 전통 악보, 정간보라는 친구가 생겼다. 정간보는 조선 세종 때, 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표시하기 위하여 만든 우리 고유의 악보이다.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놓고 율명(律名)을 표기하므로 정간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생성(生成)하는 소리가 얼마나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가를 체험하게 되었다. 요즈음 한걸음씩 새로운 소리의 감흥에 젖는 기쁨을 맛본다. <아리랑>과 <홀로아리랑>같은 기본 악곡이라도 부드럽게, 애절하게, 또는 가냘프게 단소를 부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그 소리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초보자의 잰걸음이지만 동요와 가곡(歌曲)도 불게 되었다. 오선악보를 정간보(井間譜)로 옮겨 적는 연습도 해 보았다. 기준 율명을 잡아 음을 잡아놓고 1차 기보(記譜)한 악보를 여러 번 연주하면서 수정을 거치니 가능했다.
단소를 익히면서 음악은 마음으로 울리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터득하게 되었다. 한 곡을 입문할 때, 처음에는 정간보를 보면서 몇 번 연습하여 소리를 익힌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는 눈을 뜨고 불면 소리가 마음 속에 잘 스며들지 않는다. 두 눈을 감고 손가락 끝을 짚어가는 감각과 몸속에서 불어내는 숨결이 좁은 통로로 공명을 이루며 하나로 일치시키는 순간, 그 절묘한 공명(共鳴)의 시점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소리로 합일되는 경지로 가는 첫발을 디딜 때 눈이 저절로 감겨진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습득이었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고 기쁨이었다.
같은 소리도 눈을 뜨고 들을 때 보다 눈을 감으면 한층 더 느낌이 깊어진다. 눈을 감으면 시각의 세상을 닫고 청각의 우주로 나아가는 듯하다. 소리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고향 뒷동산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훨씬 더 잘 보인다. 흑백으로 더듬던 풍경이 눈을 감으면 천연색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하다.
낮은 음을 천천히 불면 단소의 공명이 주변을 맴돌다가 나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내 몸 속에 있는 또 다른 대나무 속으로 빨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나의 모든 것이 텅 비워지는 묘한 느낌으로 온 몸이 가벼워진다. 온 몸이 한 줌 바람으로 기화(氣化)되어 단소 가락에 실려 먼 허공을 흘러가는 듯하다. 안개가 흐르듯, 안개가 흘러 먼 하늘 한 조각구름이 되는 기쁨에 무아지경이다.
점점 높은 음으로 연습이 향상되면서 또 다른 느낌에 사로잡힌다. 높은 음으로 올라갈수록, <㳞-淋-湳-潕-㶂-㴢>으로 한 옥타브 소리가 상승되면서, 입술 사이로 불어내는 입김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온몸이 한순간 전율, 그 공명(共鳴) 속으로 하얗게 소멸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예리한 화살처럼 가슴에 박혀드는 느낌에 압도된다. 우리 가곡 <보리밭>이나 아일랜드의 민요 <Danny Boy>를 불게 되면, 가슴이 떨리다가 온 전신이 전율감에 후들거린다. 연주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는 어디로 가고 없고 아지랑이 같은 그림자만 가물거리는 것 같다.
대금을 불다가 지치면 나도 모르게 나직한 소리로 단소를 불기 시작한다. 점점 소리를 높여가면서 실개천이 흐르는 (마음 속에 있는) 초가삼간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복숭아 살구꽃이 만발한 고향집 황토 마당에 앉아 뒷뜰 대나무 숲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는 아련함에 젖어든다. 단소를 불면 그 소리가 다정하고 따스하여 초등학교 1학년 쯤 학교에서 돌아와 아지랑이 같은 미소의 어머니를 만나는 듯하다. (2007. 12.) |
첫댓글 단소에 대해 공부하였다네. 일요일의 늦은 저녁에.... 벽산
그간 새로운 자료가 올라오지 않아서, 졸작을 내 놓았더니 읽어 주어 고맙네.
하운산방의 단소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듯 하네...! 요사이 조각달이 보이던데 하운산방도 좋지만 이곳 청송 호림정에서 한곡조 해도 참으로 어울리는 분위기 같구먼...! 사모님도 잘 계시지...? 더운데 잘 지내시게...호림정 송헌이
그렇네! 보름달이 휘영청할 때, 호림정에서 불면 금상첨화가 되겠네. 그 곳은 좀 시원하겠지. 사모님 잘 모시고 여름 잘 보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