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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회 옥포대첩기념제전 백일장 심사 결과
전체 장원 - 거제 고등학교 2학년 5반 황해원
제목 : 끈
보글보글 솟는 거품과 회색 모니터 화면으로
여태까지 살면서 차마 못 다한 속마음을 전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기약 없는 꿈속에 잠겨버린 사람들
저 거품 소리를 들으며 고향 바다를 꿈꾸는 걸까
간간히 삐삐 울리는 심박기에서
어릴 적 뒷동산의 보리피리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링거액은 눈물처럼 흐르는데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몸부림처럼
끈질긴 애착과 연민으로 서로 차마 놓지 못하는
누운 자와 지켜보는 자의 실낱같이 가녀린 끈
무심한 모니터는 수학공식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포물선을 그으며
각각 살아 온 삶의 길이를 야금야금 지우고 누에고치 마냥
남은 시간의 끈을 힘겹게 토해 내는
잠 못 이루는 병실의 밤은 깊어만 간다.
※수상자 명단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 운문
△장원 서연지 (대우초 3-매)
△차상 김현지(연초초 1-2), 박재은(국산초 3-6), 김승민(계룡초 3-5)
△차하 윤소정(진목초 3-6), 김보람(하청초 2-1), 김연제(칠천초 2-1)
△참방 진수민(국산초 2-2), 반주원(중앙초 3-9) 정재윤(중앙초 2-4) 이지아(대우초 3-솔) 김채은(제산초 3-4) 강동훈(국산초 1-1) 강인서(고현초 3-6) 옥수현(수원초 3-2) 김준영(중앙초 1-3) 강은서 (아주초 3-1)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 산문
△장원 문수린 (대우초 2-매) 010-3863-9508
△차상 김주하, (신현초 3), 오지현(신현초 3), 정성훈(신현초 2)
△차하 이지아(대우초 3-솔), 김영록 연초초 3-2), 이지호(대우초 3-솔), 윤그리나 (신현초 2-3)
△참방 박서빈(계룡초 3-1), 한효주(거제초 2-2), 장예슬(대우초 1), 윤지승(신현초 2-3), 임지수(계룡초 3-5), 김경빈(중곡초 3-3), 박민석(게룡초 3-1), 박지희(대우초 2-매), 김혜원(중곡초 3-1)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 운문
△장원 윤가은 (국산초 6-5) 010-2805-1580 (담당교사-011-9344-7120)
△차상 김병준(국산초 6-1), 장서련(대우초 5-솔), 강은하 (아주초 5-4)
△차하 송세빈 (거제초 5-1), 황선영(고현초6-4), 김주아(고현초4-3)
△참방 김성염(대우초 5-대), 이인혜(칠천초 5-1), 이수현(계룡초 4-5), 정재현(대우초 4-대), 백인경(수월초 6-2), 김영민(국산초 5-5), 이수용(칠천초4-1), 김세정(국산초5-2), 이현민(신현초6-3), 천예진(대우초 5-대)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 산문
△장원 진예림 (거제초 6-3) 010-6692-9222
△차상 구병휘 (국산초 4-3), 박주희 (대우초 4-대), 성지미(5-솔)
△차하 정민지 (대우초 6-대), 김혜지 (대우초 6-매) 주연아 (아주초 5-3)
△참방 전기웅 (능포초 5-2), 김예림(옥포초 6-5), 박윤정(고현초 6-5), 송지현(6-매), 이연진(국산초 4-5), 신나라(거제초 6-3), 박지연(아주초 6-4), 이소정(제산초 4-4), 이수빈(고현초 4-5), 장영우(중곡초 5-7)
중․고등부 운문
△장원 김보람 (해성고 2-1) 010-9964-2586
△차상 이건우 (거제고 2-1), 강민수, 이정훈
△차하 박지수(거제고1-6), 천고은(거제고2-4), 원찬희(거제고2-4)
△참방 유동우 (해성고1-3) 최소영(거제고2-5), 한가위(거제고2-4), 장세희(거제고2-7), 백소영(거제고2-4), 송지수(거제고1-5), 윤혜정(거제고 1-5), 김형민 (해성고1-9), 이하영 (해성고1-6), 손명지 (해성고2-1)
중․고등부 산문
△장원 김연주(거제고 2-5) 016-590-9792
△차상 김재룡(거제고 1-2) , 도은하수(거제고 2-5) , 우은미(옥포고 2-9)
△차하 전나영(거제고 2-7) , 박민주(옥포고 1-10), 강도연(거제고 1-8)
△참방 윤영진(거제고 2-1) , 박유림(옥포고 1-6), 김민정(거제고 1-6) , 하부경(거제고 1-7) , 권새샘(거제고 2-5)
대학․일반부 운문
△차상 이형옥 (옥포 2동 526-1) 연락처 010-2854-5052
△차상 임영미 (010-5506-0076)
△차하 최유경 (010-2245-1125)
△차하 김태엽 (010-2907-6181)
대학․일반부 산문
△차상 전춘임 (010-8559-4518)
△차상 장은정, 최미경, 전은지,
△차하 윤혜란, 김서연, 이정순
△차하 윤신아, 설양, 윤은경, 황기두, 탁순애, 임순영
다문화
△장원 팅티상 (베트남 010-4321-5304)
△차상 누엔티리 (베트남)
△차하 김영자 (중국)
△참방 레티쑤언 (베트남)
※ 각 부분별 장원 작품 별첨
초등학교 저학년 운문 - 서연지 (대우초 3-매)
바다
저 옥포 바다에
우리 아빠 일하시는
조선소가 보이네
바다는 아빠들의 땀인가 보다
저 서해 바다에는
우리 바다 지키다
두 동강 난 천안함
바다는 우리들의
눈물인가 보다
저 넓은 바다로
응원하는 우리는
파도처럼
시원하고 힘찬
승리의 함성인가 보다
초등학교 저학년 산문 - 문수린 (대우초 2-매)
장난감 이야기
나에게는 유일한 친구인 달송이와 달랑이가 있다. 원래 장난감이 없어서 난 심심했는데 어늘 날 나의 친구가 달팽이 두 마리를 주었다. 그래서 난 베란다에 있는 천리향이란 나무에 붙여 주었다. 그 다음날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놓고 달려가 달팽이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이름은 바로 달송이와 달랑이다. 달송이는 암컷이고 달랑이는 수컷이었다. 어느 날에는 숙제도 하지 않고 달송이와 달랑이에게 물을 주는데 그럴 때는 엄마께 꾸중을 듣는 적도 있었다. 나는 달송이와 달랑이가 외로울까봐 싶어 가끔씩 둘이 떨어져 있을 때는 일부러 떼서
둘을 붙여 놓은 적도 있다. 그러니가 둘은 다시 떨어졌다.
난 둘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참 좋았다. 난 달송이와 달랑이를 손등에 올려 보았을 때는 밑에가 시원했고 더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그 모습이 공연을 하는 것 같고 또 나에게 재롱을 떠는 것 같았다.
무더운 날은 둘이 등껍질 속으로 들어갔다. 아마 우리처럼 더워서 들어 간 것 같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면 등껍질 속이 어떤지 궁금해서 달팽이들처럼 들어가면 좋겠다. 그런 일이 있으면 물을 줘서 다시 모습을 보고 싶다.
난 항상 달팽이들과 다녀보고 싶다. 학교에서 달팽이들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피아노를 칠 때는 피아노 위에 올려서 내 실력도 보여주고 노래도 들려주고 싶다. 그럴 뗀 달팽이가 참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달랑이가 화분 밑에 떨어져 있기에 다시 올려주었는데 난 그순간 깜짝 놀랐다. 달랑이가 죽어있었다. 난 너무 슬펐다. 그리고 혼자 남은 달송이를 보니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달랑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대로 몇 일 치우지 않았다.
내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달송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사랑하던 달송이를 주고 말았다. 그런데 친구는 달송이를 버렸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고 달송이에게 미안 했다. 만약 내가 다음에 달팽이를 다시 키우게 된다면 죽지 않도록 잘 보살펴 줄 것이다.
지금도 달송이와 달랑이가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에게 인형 같은 장난감 대신에 작은 곤충 같은 생물을 키우라고 애기해 주고 싶다.
초등학교 고학년 운문 - 윤가은 (국산초 6-5)
그림자
나는 그림자였다더라
언제나 꿈을 따라 다니던
그림자
아무리 얻고 싶어도
아무리 이루고 싶어도
햇볕의 따스함 사라지면은
모두 헛고생이였더라
나는 그림자였다더라
먹물같은 어둠 속
내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몰라
나는 그림자였다더라
흑요석보다 더 짙은 어둠 속에서도
햇볕이 내리쬘 때도
항상
나 자신만을 따라다니던
나는 그림자였다더라
초등학교 고학년 산문 - 진예림 (거제초 6-3)
월드컵에 대하여
2006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불쑥 다가오게 되었다.
나 또한 축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더욱 더 기대를 품게 되었다. 2002년에 4강에 진출, 그것은 전 세계인들의 화끈한 볼거리와 자존심을 건 대결 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강 진출을 향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었다. 그런 후회감을 뒤로 한 채, 선수들은 더욱 더 열심히 필드를 달리고 아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더, 더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하였다.
한편 그 시각 서울광장, 길거리 응원 등 붉게 물든 붉은악마들은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꼭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함께 마음을 나누며 2002년의 거대한 대한민국의 함성과 열기가 또 한 번 시작된 것이다.
내가 가장 감동한 이유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커서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다.
6월 12일 그리스 전이 시작되고 전반에는 이정수 선수가 첫 골을 넣고 박지성 선수가 후반전에 골을 넣어 분위기가 한층 더 달아올랐다. 그렇게 경기가 끝난 후 붉은 악마의 행렬은 막을 내리고 후회 없는 하루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신의 소득만 챙기고 가버리는 무의식한 사람들... 응원이나 애국심만큼은 불타고 인정받는 대한민국이지만 외국인들이 그런 무의식한 한국의 사람들을 본다면 약간의 비난을 받을지 않을까? 하는 서러운 마음이 지나갔다.
약 일주일이 지나고 랭킹에 들어가는 최강의 팀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스와 경기를 할 때보다 뒤처지는 것만 같아 걱정이 되었다. 체력적으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앞서지만 스피드나 공격, 패스에서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아르헨티나가 1점을 먼저 따고 말았다. 간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으로 우리나라가지고 있을 때 쯤 이청룡 선수가 중거리 슛으로 희망의 빛을 보여 줬지만 아쉽게도 4:1로 경기는 마무리 되었다.
아직 나이지리아와의경기가 남아 있어서 크게 속상하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선물해 주는 월드컵.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좋겠다.
항상 도전하는 선수들의 희망찬 모습을 보며 나도 일단은 시도해 보자!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서 옥포대첩기념제전이 내 추억에 남는 하나의 희망의 열쇠가 되는 것 같아 좋았다.
중․고등부 운문 - 김보람 (해성고 2-1)
끈
넓고 넓은 하늘아래
끊어진 끈 하나
반대의 끝자락에서 휘감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작은 끈
비록 겉은 끊어져
멀고 멀지만
그것의 사이로 이어진
보이지 않는 선붉은 끈 한가닥
어느 누가 그 끈마저 끊으려 한들
끊을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떠한 힘이
혈로 맺어진 끈보다
단단할까
오늘도 이어질 그날을
삼키며 붉게 더 붉게
물들어 간다.
중․고등부 산문 - 김연주(거제고 2-5)
나로호에 대하여
2010년 6월 10일 오후 5시. 우리는 한창 한국지리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5시 되기 10분 전 선생님께서 오늘 나로호의 2차 발사가 있다고 함께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자고 하셨고 평소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신이나서 기대에 부풀었다.
분명 아침 뉴스에선 어제 소방 문제로 취소되었던 나로호 발사가 날씨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당분간 힘들 것 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 발사 한다니 조금 걱정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라면서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발사를 지켜봤다. 그치만 나로호가 발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 두절 상태라는 자막이 띄였다. 다음날 우리 나로호는 제주인근 해역에 떨어졌고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실패로 끝났다.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며 실망을 느꼈다. 나 역시 너무 조급하다는 생각을 했던지라 실망을 크게 느꼈다. 차라리 조금만 더 늦게 하지 늦어도 좋으니깐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지 않은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격는다. 실패 속에 성공의 요인을 찾고 희망을 얻는다. 그렇게 맺은 열매는 고되지만 그 만큼 달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모의고사를 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종목표인 수능이란 큰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함이다.
이번 나로호 발사도 그러하다. 우린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연습단계이고 막 걸음마를 떼려는 상태이다. 넘어지고 또 넘어진 후에 달릴 수 있듯이 조금씩 한발을 내 딛으려 한다. 여러 항공기술 강국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격은 후에 얻어낸 성과이다.
지금 우린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 로켓 발사를 하였지만 이렇게 실패의 쓴 맛도 보고 성공의 달콤함도 느껴보면 머지않아 우리 스스로 전 과정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 국민들도 그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요소가 되길 바란다. 힘들어 하는 그들을 위해 위로의 한마디, 다음번에 더 열심히 하라는 질책의 한마디, 그 작은 소리들이 모여 큰 성공을 만든다면 다른 강국의 힘보다 더 큰 힘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성공할 그날을 기다린다. 내가 어른이 되어 우리의 힘으로 발사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대학․일반부 운문 - 이형옥 (옥포 2동)
액자
살아남기 위해 먹는지
먹기위해 사는지
내 가난한 유년시절
어른들은 늘 바쁘셨다
먹고살기 위해서
할아버지 생신날
멋낼 옷도 없으니
입은 옷 그대로
먼지 툴툴 털어내고
난생처음
사진이란 걸 찍었다
내 나이 아홉 살에
사진 속 나 만큼이나
촌스로운 액자에는
삼십년 전 추억이 담겨있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수줍은 설레임이
그리움으로 빛이 바래 있다.
대학․일반부 산문 - 전춘임
아버지
옥포대첩 백일장을 한다기에 딸아이 데리고 겸사겸사 행사장에 도착했다. 일반부에 ‘아버지’란 단어에 마음이 뭉클했다. 많이 배우지 못한 탓에 감히 처음 도전하는 산문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 아버지는 6.25 전쟁때 북에서 포로로 내려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계셨다고 하셨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친정에 내려가면 거제도로 시집가서 그런지 나만 보면 거제도 포로수요오가 있냐고 물어보곤 하셨다.
수용소에 잡혀있으면서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다. 그때는 길을 닦는다고 무거운 돌이며 흙이며 손으로 일일이 나르시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지내셨다고 하셨다. 그 후로 풀려나 지금 계신 곳 전라도 영광에 어머니를 만나 2남 3녀를 두고 계시지만 제일 마음이 아버지께서 부모 형제가 없다는 거다.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외롭고 보고 싶어 하고 계실까. 안 봐도 늘 고향이 그립고가고 싶어 하신다. 아버지는 여기에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는 너무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아버지는 혼자라 재산도 없고 가진 건 몸 하나였다.
어려운 살림에 산에서 나무를 일일이 지게로 지어 나르고 우리집에는 수도가 나오지 않아 동네 우물가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나르면 우리는 물도 아끼지 않고 퍽퍽 쓰는게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힘드셨다는 걸 느끼고 산다.
지금 아버지 연세가 여든 여덟이시다. 아버지는 40대 후반에 중풍이 오셨다. 손과 발이 다 돌아가고 정신까지 잃으셨다고 한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는데 어머니께서 아버지 병간호에 중풍에 좋은 약재를 구해 다려서 아버지께 매일 드시게 하고 제몸 상태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많이 좋아지시고 한쪽 수족만 조금 불편 하실 정도였다. 아버지가 아파 계실 동안 어머니는 고생을 엄청 하셨다. 우리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그 흔한 쌀도 먹지 못했다. 어머니가 남의 집 품을 팔아가면서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리곤 하셨다.
그때 일 이야기만 하면 눈물도 나기도 하고 아버지 어머니 고생한 것에 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와 보시고 싶은 거제도 한번 모시질 않았다. 내년 아님 올해 하다가 벌써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난 정말 아버지에게 정말 불효자이다. 저 역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마음은 포로수용소도 구경시켜드리고 오늘 같은 옥포대첩도 구경하시고 했으면 울 아버지 진짜 정말 좋아 하셨을 텐데....
못 해준 것이 오늘 같은 행사에 ‘아버지’란 주제에 가슴이 뭉클해져서 저도 모르게 종이를 받아 온 게 신기한 일이다. 그 만큼 내 내 아버지는 내 인생에 좋은 분이셨다. 이 기회를 빌어 울 아버지 거제도에 꼭 오셔서 못난 딸이지만 잘해드리고 싶다. 물지게 지느라 등이 휘고, 산에 가서 나무하랴 손발이 불편해졌지만 우리식구 따듯하게 보살핀 우리 아버지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어머니 가장 역할 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다문화 - 팅티상 (베트남)
친정 가는 길
한국에 시집 온지 벌써 4년이나 되었다. 내 고향 베트남에 가지 못한지도 오래 되었다. 오늘 따라 친정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베트남 친정집에 전화를 했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친정엄마랑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이 가득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친정 엄마가 “베트남 한 번 안 올래?” 나에게 물었다.
가고 싶지만 선뜻 고향에 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가 끝난 후에 남편이 집에 왔다.
“여보 친정엄마와 전화 했어요” 하고 내가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남편도 내 마음을 이해 하는지 친정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 순간 고맙고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얼마 후 여행사로부터 비행기 표를 받았다. 비행기 표를 쳐다봐도 기쁘고 마음이 설레었다.
요즘 베트남은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했지만 TV나 인터넷에서 베트남을 보면 경제 성장이 많이 된 것으로 보였다. 한국인도 집을 많이 짓고 사는 걸로 알려져 있고 베트남 교통수단이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있다. 지금은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어 있었다. 도시에는 고층빌딩이 생겼고 한국과 같이 아파트도 많이 생겼다. 그리운 고향 타이퐁에 빨리 가고 싶다.
나의 고향은 베트남 북부의 항구 타이퐁인데 도시 이름의 뜻은 ‘바다의 바람’이라는 뜻이다. 타이퐁은 수도 하이노이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걸리고 한국과 같이 사계절이 있어서 모내기를 일찍 한다. 외국으로 수출하는 물품은 하이퐁 항구에서 수출한다. 집과 가까운 곳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 왕의 별장도 있고 세게적인 문화유산 하이롱베이와 외국인 전용 카지노도 있다. 그리고 하이퐁 시 안에는 캇바라고 부르는 섬이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마을 앞에는 공원이 있는데 아침에 일찍 마을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한다. 오토바이로 15분 거리에는 넓은 바다가 있고 관광객이 숙박하는 호텔도 많이 있다.
제 친정동네 사람들은 아주 소박하고 인심도 좋고 이웃 간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웃 사람이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베트남에는 공동체 생활을 하기에 친척과 같습니다. 제가 베트남에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이 집에 놀러 와서 인사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심지어는 집에서 재배한 과일이나 자기들도 자주 못 먹는 고기도 가지고 온다.
친정집 식구로는 아빠, 엄마, 언니, 내가 있고 아빠 엄마 형제들이 한 마을에 살기 때문에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엄청나게 친척들이 많이 온다. 지금도 할머니가 살아 계시고 얼마 전 언니가 세 번째 아들을 출산해서 조카가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때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남자들은 맥주 한잔씩을 한다. 주로 밥을 주식으로 먹는데 부식으로 베트남 쌀국수나 월남쌈을 먹기도 한다. 베트남에 식사를 할 때 친척들과도 밥을 먹는다. 한국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만 가족이 함께 지만 평소 때에도 같이 먹는 날이 많고 과식을 하지 않고 소식을 한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이 없고 날씬한 것 같다.
한국에 와도 친정이 항상 그립고 가고 싶다.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는 가끔 전화도 하는데 어떨 때는 가족사진을 본다. 한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만 친정집 보다는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것 같다. 지금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한국에서 내 꿈을 펼치고 싶다.
‘그리운 나의 베트남아 다음에 갈테니까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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