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 소속의 박인비(27)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2015 브리티시오픈(총상금 300만 달러ㆍ 우승상금 45만 달러)에서 우승, 역대 7번째'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선수 최초, 아시아 선수 최초의 신기록이다.
'커리어 그랜스 슬램'은지난 2013년 아니카 소렌스탐 달성이후 12년동안 달성자가 없었다.
2일(현지시간) 박인비는 2015 브리티시오픈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7개, 보기 2개로 7타를 줄여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은퇴전까지 4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 한 것이다.
박인비는 2013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퍼레이션), US오픈, LPGA챔피언십(현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등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대기록에 도전을 해왔다.
박인비는 브리티시오픈대회 우승은삼수만의 결실이다. 2013년공동 42위, 두 번째 도전인 2014년 브리티시 오픈은4위로 고배를 마셨다.
역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루이스 석스(1957년), 미키 라이트(1962년), 팻 브래들리(1986년), 줄리 잉스터(1999년ㆍ이상 미국), 캐리 웹(2001년ㆍ호주), 아니카 소렌스탐(2003년ㆍ스웨덴) 뿐이었다.
남자 프로골프 투어 PGA에서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들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2000년 미국), 잭 니콜라우스(1966년), 게리 플레이어(1965년), 벤 호건(1953년), 진 사라센(1935년) 등 5명밖에 없다.
박인비는 오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현존 5개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슈퍼 슬램( Super Slam)'이라는또 하나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이날 박인비는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에일사코스(파72ㆍ6410야드)에서초반 컨디션 난조로 몹시 고생을 했다.2,3번홀에서 연속 버디로 쾌조의 출발을 보이는 듯 했지만 4,5번홀에서 연속 보기로초반의 부진 징크스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7번홀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9번홀까지 3연속 버디로 분위기를 압도하던 박인비는 14번 홀에서 큰 일을 냈다. 파5에서 투온에 성공한 그는5미터 넘는 퍼팅을 성공, 이글을 만들어 내며 대기록 달성에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반면 같은 시각, 12언더파로 단독 선두를 달리던 고진영(20, 넵스)은 13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11언더파로 박인비와 공동 선두가 됐다.
이때부터 승리의 여신의 두선수에 대한 선택이 엇갈렸다. 박인비는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12언더파로 한수 앞서가기 시작했고, 고진영은 박인비가 이글을 잡은 14번 홀을 파로 마감하며 불안한 기색을 보이더니16번 홀에서 공을 개천에 빠뜨리며 더블 보기, 9언더파로차이가 벌어지면서 승리를 갈랐다.
박인비, 그랜드슬램 의미
박인비는 메이저 7승을 거뒀고, 역대 일곱 번째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여자골프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한 선수는 6명이다. 팻 브래들리, 줄리 잉크스터, 안니카 소렌스탐, 루이스 석스, 카리 웹, 미키 라이트다. 남자 골프에서 그랜드슬램을 한 선수 역시 6명이다. 보비 존스, 벤 호건, 진 사라센, 잭 니클러스, 게리 플레이어, 타이거 우즈다.
박인비는 2003년 안니카 소렌스탐 이후 12년만에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다. 박세리는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이 없어 그랜드슬램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박인비는 200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후 5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2013년 대활약을 펼쳤다.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6월 초 미국 뉴욕주 피츠퍼드 로커스트힐 골프장에서 열린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서 카트리오나 매튜와 연장 끝에 우승했다. 6월 말엔 역시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세보낵 골프장에서 끝난 US여자오픈에서 8언더파로 우승했다.
2013년 8월 박인비는 그랜드슬램을 위해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에 발을 디뎠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아니라 캘린더 그랜드슬램 도전이었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라운드 10번홀까지 6타를 줄이며 대기록을 예고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박인비는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한이 맺혔다. 2014년 이 대회에서 최종라운드 선두에 나섰지만 역전패했다. 올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을 벼르고 시즌을 시작했고 결국 우승했다.
메이저대회는 프로 선수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다. 잭 니클러스는 한 시즌의 성패를 상금이 아니라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봤다. 메이저대회 우승만을 이야기했고 메이저 우승 수만 셌다. 타이거 우즈도 그렇다. 선수들은 명예를 남기려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
톰 왓슨은 “메이저대회는 1라운드가 시작되는 목요일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부터 코스와 그린에 신경을 집중한다. 학기 중 보는 쪽지 시험이 아니라 마지막 시험을 보는 것 같은 것이다. 학기 중 시험에서도 잘하기를 원하지만 마지막 시험은 당신의 성적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랜드슬램은 위대한 선수와 역사에 남을 선수를 구분하는 벽이다. 샘 스니드와 아널드 파머, 톰 왓슨, 필 미켈슨 등은 메이저 다승을 기록했지만 그랜드슬램을 하지는 못했다.
박인비,가족 사랑의 힘에서 나온 긍정의 에너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사상 일곱 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해낸 박인비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었다.
3일(한국 시간) 오전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브리티시여자오픈. 박인비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이들은 가족이었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 아버지 박건규씨를 비롯, 어머니 김성자씨, 남편 남기협 프로와 함께 했다. 박인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주부터 영국에 들어와 이번 주 대회를 준비해왔다.
대회 날인 아침 박인비는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 박병준 옹에게 전화를 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인 할아버지는 박인비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박인비는 "할아버지는 늘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주신다. 어제 생신이었던 할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기를 받았다"고 했다.
박인비는 이번 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추운 스코틀랜드 날씨에 왼쪽 허리 디스크 증상이 도졌다. 지난 주에는 부담감에 샷 감마저 흔들렸다. 둘째 날 강풍 속에 라운드 하면서 1타를 잃고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흔들린 박인비를 잡아준 것도 가족이었다. 박인비는 "인생도 그렇지만 골프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은 운동이다. 슬럼프였던 2009년과 2011년에 골프를 그만둘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힘든 상황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준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있기에 내가 있다. 가족과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가족"이라고 모든 공을 가족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