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장쑤성(江蘇省)(2>
7. 운대산 죽림칠현(竹林七賢)
죽림칠현은 중국 위(魏)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司馬氏)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老莊)의 무위자연사상(無爲自然思想)에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
노장사상(老莊思想)에 빠져 있던 혜강(嵆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등 7인의 현자들은 세속(世俗)를 피하여 이곳에 은거하였다.
이곳 운대산은 AD 300년, 진(晉)나라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은거하였다는 백가암(百家岩)이 있다.
노장사상(老莊思想)은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 도가(道家)의 학자들이 인위적인 도덕이나 제도를 배격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를 것을 주장하던 학문의 일파이다. 중국 학문의 뿌리는 공자(孔子: BC 6세기)와 맹자(孟子: BC 4세기)에 의해 인(仁)을 기초로 한 유학(儒學)의 기틀을 세워졌는데 연이어 불교가 들어오면서 유학(儒道)과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지식인들은 제각기 새로운 덕목들을 내세워 제자백가(諸子百家)로 불릴 만큼 각양각색의 학파(學派)들이 난립한다.
죽림칠현 / 죽림칠현 은거지
그 중 하나가 신선사상(神仙思想)을 근본으로 하는 도가(道家), 일명 도교(道教)인데 음양(陰陽), 오행(五行), 복서(卜筮), 무축(巫祝), 도참(圖讖/참위<讖緯>) 등을 더하고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
▶도참(圖讖)-미래의 예언 ※참위(讖緯)도 도참과 같은 의미이다. ▶복서(卜筮)-점치기
8. 역사의 도시 난징(南京)
양쯔강(揚子江) 하구에 위치한 장쑤성(江苏省) 난징(南京)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도(王都)였던 이래 수많은 나라들이 도읍으로 삼았던 역사 깊은 도시로, 남경(南京)이라는 말 자체가 남쪽의 수도(首都)라는 뜻이겠다.
난징(南京) 기차역 /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 유적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도 남아있고 명(明)나라의 고궁(古宮), 쑨원(孫文)의 무덤인 중산릉(中山陵), 명나라 홍무제(洪武帝/주원장)의 효릉(孝陵), 링구사(靈谷寺) 등 볼거리도 많다.
온화한 날씨 탓인가 도시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며 가로수도 수령(樹齡)이 오래된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도 이채롭다. 해산물이 주재료인 광동요리(廣東料理/중국 남부지방)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중국이 자랑하는 난징박물원(南京博物院)은 선사시대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있고 백제 유물과 유사한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그 연관성이 주목 된단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박물관(博物館)이라 하지 않고 끝에 원(院)을 붙이는 것이 특이하다. 난징 박물원에는 국보급 유물은 물론 선사시대 이래로 농경문화(農耕文化) 유물들과 서화(書畵), 도자기(陶瓷器), 공예(工藝) 예술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난징 박물원 유물 / 난징 성곽 / 거리의 남생이 장수
중국은 국토가 워낙 넓고 소수민족(56개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지역마다 복색(服色)도 다르고 생활수준이나 가치관도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도시권과 시골지역의 생활수준 격차가 너무 큰 탓도 차이의 원인이 되겠지만 곳곳에서 중국인 특유의 공통적인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청두(成都) 무후사 앞에서 본 살아있는 남생이 장수, 이름 모를 열매로 장식품(열쇠고리 모양)을 만들어 파는 사람, 절에 가면 엄청나게 굵고 많은 향을 바쳐서 경내는 그 향이 타는 연기로 항상 자욱한데 무슨 소원을 비는지 수없이 절을 해 대는 중국인들, 화장실에 변기를 나란히 두 개 설치한 것은 함께 변을 보며 담소를 나누라는 것인지.....
내가 먼저 ‘여행 에피소드’ 에서 쓴 것처럼 기차 안에서 술을 마시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는데도 중국인들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함께 웃는다. 우리나라 경우라면 곧바로 경찰을 부르던지 조용히 하라고 큰소리가 오고갔을 것이다. 나는 촌스러워서 그런지 이런 중국 문화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인심이 각박해졌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를 못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때문일까? 유럽이나 미주 쪽을 여행하면서도 항상 느꼈던 것은 그 사람들은 처음 보는 여행객에게도 따뜻한 미소와 목례(目禮)를 보내며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관용의 미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겠다.
9. 난징 대학살 기념관(南京 大虐殺 紀念館)
인류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살육의 기록 중 하나가 난징(南京) 대학살이 아닐까?
독일 나치정권의 유대인 대학살도 책으로 읽었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난징 기록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참상(慘狀)들을 실물과 사진으로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 만 점에 이르는 자료와 사진, 개인 기록 파일들이 보관되어 있고 당시의 전투 장면과 무자비한 살육장면들을 동영상으로도 보여 준다.
우리나라도 일제 36년 간 온갖 고초를 다 겪었고 엄청난 희생자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 보여주는 곳이 있던가? 어찌 중국과 한국뿐이랴....
난징박물원 / 죽은 엄마의 피 섞인 젖을 빠는 아기와 울부짖는 소년
일제(日帝)가 저지른 이 씻지 못할 만행(蠻行)은 일본은 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비무장 민간인 대 학살을 일본은 피치 못 할 전쟁 중의 희생자일 뿐이라는 변명과 그 뻔뻔스러움에 개탄(慨嘆)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물 대부분은 당시의 참상과 짐승만도 못한 일제(日帝)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고 결코 잊지 말자는 절규(絶叫)가 묻어 있다. 학살자들을 한꺼번에 파묻어 뒤엉킨 채 발굴된 엄청난 양의 유골들, 잘라 낸 목을 철조망 나무에 올려놓고 입에 담배를 물려놓은 저 인간모독(人間冒瀆)을 어찌 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희생자 대부분이 비무장 민간인, 부녀자와 아이들이었다고 하며, 아버지가 딸을, 아들이 어머니를 강제로 겁간(劫姦)하게 하는 패륜적(悖倫的) 만행을 저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 단지 민간인 대 살육(殺戮)이었을 뿐이라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학살 후 집단 매장터 발굴현장 / 아~~아!! 잘린 목에 담배를...
두 일본소위의 목 베기 시합 신기록 / 학살 현장 사진 / 사망, 실종 30만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