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능악 백배사죄
토요일(7일) 90세의 할머니를 모시고 부산으로 가던 중 오후 5시 10분경 김해터널 앞에서 6중 추돌사고가 있었습니다. 커브길에서 앞차가 급정거를 해 뒤따르던 2번째 3번째 차는 모두 정지했는데, 마침 그때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나는 순간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밀리면서 앞차와 충돌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차를 박는 순간 뒤따르던 무쏘가 내 차를 더 강하게 박아버렸고, 마지막 여섯 번째 차량이 또다시 덮쳤습니다. 조수석에 앉았던 할머니는 가슴을 움켜 지면서 신음하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정양씨도 “아이고 우짭니까” 하면서 곧 울상이었습니다.
내 차는 4번째 차였는데 조수석에 타고 있던 할머니가 가슴에 통증을 호소해서 앰블란스로 병원으로 싣고 갔습니다. 할머니는 둘쨋 딸인 영도 고모님께서 한 달 정도 모시고 싶다고 해서, 멀미약까지 드시게 해서 어렵게 모시고 가다가 이런 사고를 당해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정양씨는 앰블란스에 할머니와 아이들을 싣고는 병원을 달려가고, 나는 사고 현장에 남아서 사태를 수습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평소 같으면 말을 잘 못해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정양씨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했을 때는 아무말 없이 옆에 있어만 주는 것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어! 이럴 때는 우리 마누라가 괜찮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차가 우리들의 사고 조사를 위해 달려오다가 다시 또 3중 추돌사고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다시 두 번째로 고속도로 순찰대에서 사고 조사차 백차가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백차가 오기 전에 견인차량 운전수가 내 옆으로 오더니, “아저씨! 아저씨 차가 제일 많이 부셔졌네요. 할머니도 다치시고...” 그러면서 나직막히 “아저씨! 뒤차가 박았다고 하세요. 이럴 땐 다 이러는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그 순간 나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6중 추돌의 사고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간악한 생각까지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그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라는 마음도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견인차량 운전수에게 다가가서 은근히 “보통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이 상황을 보세요 아저씨 차가 뒤에서 받쳤네요. 앞부분보다는 뒷부분이 더 많이 부서졌네요” 라고 말하면서 아예 내 차가 먼저 먹은 사실을 부인해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내 심정은 거의 견인차 운전수가 얘기한 대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자동차 보험을 넣은 보험설계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설계사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좀 우겨도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리저리 전화를 많이 하고 견인차 운전수와 가까이서 얘기를 많이 나누자,
내 차를 박은 5번째 차량 운전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 곁에 다가왔습니다. 5번째 차량의 운전자는 결국 충격이 2번이 왔는지 한 번이 왔는지가 중요하다면서 나에게 “아저씨! 나중에 정확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하고 다그쳤습니다.
사실 그때 나는 2번의 충격이 있었는데, 견인차 아저씨가 한 말도 있어서 마음 속으로는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 사실대로 정정당당하게 말해야지”하는 내가 내 스스로는 꾸지람하는 마음의 소리도 들렸습니다.
드디어 경찰차가 왔다. 경찰관은 사고가 차량 운전자를 불러 차례대로 물었습니다. “몇 번 충격이 왔습니까?”
“3번” “3번” “3번” 1번 운전자부터 3번 운전자까지는 모두 “3번이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아저씨는 몇 번 충격이 왔습니까?“ 순간 나는 역시 망설였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두 번 충격이 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찰이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앞 차를 먼저 박고 뒤차에 받쳤습니까? 아니면 뒤차에 받치면서 앞차를 박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뒷차에 받치면서 앞차를 박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아저씨! 같습니다가 어딥습니까? 먼저 박았어요 아니면 받쳤습니까?” 그때도 저는 더 큰 소리로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먼저 받쳤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한번 거짓말이 이제는 스스로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되었습니다. 참으로 일심이 동하면 능선능악(能善能惡)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자 경찰관은 사고 차량을 모두 일렬로 세우게 하곤 사고난 부위를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가까이서 정밀 감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차 앞에 와서 “아저씨! 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받친 차는 아래로 쏠리기 때문에 사고 지점이 여기처럼 아래쪽이 되고 그냥 서 있다가 받치면 위쪽으로 자국이 남습니다. 아저씨가 박은 것 맞죠?” 이렇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차피 보험회사에서 다 처리가 될 텐데 사실대로 말해서
빨리 끝냅시다.” 하고 덧붙혔습니다.
그 순간 나는 “육근이 유사하면 정의를 양성하라”는
마음공부의 말이 생각나면서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부끄러움과 함께.....
그래서 저는 “예. 그렇습니다. 경황 중에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제가 먼저 앞차를 박았습니다” 하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견인차 운전수의 얼굴을 보니 그는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피해버렸습니다.
내가 두 번 충격을 받았다고 진술하자, 조사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4번째 차인 내 차가 앞 차를 한번 충격을 주고 5번째 차가 부딪치면서 2번째 충격을 주고 마지막으로 6번째 차가 와서 부딪치면서 3번 충격을 준 것입니다.
난 경찰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내 앞차의 사고 차량 주인들을 만나서 일일이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내가 사실대로 말하자 경찰관은 오히려 내 편이 되는 듯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누가 사고를 내고 싶어서 냅니까? 그래도 아저씨는 솔직하신 겁니다. 끝까지 우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사고 조사도 현장에서 조서를 꾸미고 금새 끝났습니다.
조서를 다 끝내고 나서 경찰관은 “보험가입 확인서는 월요일까지 고소도로 순찰대로 가져오세요” 했다. 그래서 나는 “고속도로 순찰댑니까? 그러면 이 앞전에 근무했던 정○○ 대장을 아십니까?” 경찰관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네. 잘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었다. “아, 예 집안의 아저씹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사고 조사가 끝나고 나는 견인차량 조수석에 타고 부산 경남정비공업사로 들어 갔습니다. 차량을 타고 가는 도중에 다시 견인차 운전수는 내가 영 못마땅한 듯 “아니, 고속도로 순찰대장이 집안의 아저씨면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하곤 다시 또 다그쳤습니다. 나는 이미 “육근이 유사하면 저의를 양성하라”는 정전의 대의를 지키고 있었기에, 웃으면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사고원인은 정확하게 이야기 해야죠”
그러자 그 운전수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사고 차량을 정비소에 맡기고 렌트카를 타고 부산 영도병원으로 달려 가니, 할머니가 막 X-RAY를 찍고 응급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사시는 고모님과 고모부님이 오셔서 함께 있었는데, 고모님은 “할머니가 기침할 때도 통증이 없는 것을 보니 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제발 할머니가 무사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드디어 X-RAY가 나와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판독을 했습니다. “전에 할머니가 갈비뼈를 다친 적이 있습니까?” “네, 젊었을 때 감나무에 올라 가셨다가 떨어지면서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그것은 여기에 나타나는데, 오늘은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주사 한 대만 맞고 약을 지은 뒤 고모님댁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모두들 그 와중에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이제 돌아와서 일기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기를 기재하면서도, 사고를 낸 뒤 조사를 받을 때 있었던,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일기 기재를 하고 싶지 않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로마병사들에게 끌어 가 밤새도록 고통을 당할 때, 새벽닭이 울기 전에 정확히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베드로처럼, 저 역시 두 번씩이나 진리를 부인한 사실을 진리 앞에서 스승님들 앞에, 그리고 만천하의 공부인들 앞에 저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고 엎드려 사죄를 드리는 바입니다.
참으로 능선능악(能善能惡)입니다.
그래도 사고 기간 내내 보내 주신 <공부심 공부길 공부인> 2001년 7월호 책 한 권을 산 경전으로 큰 경전으로 삼아 공부를 한 결과 겨우 일기는 그대로 기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인이 어찌 해야 속죄할 수 있을지 스승님의 가르침을 구합니다.
7.9. 정현태 백배사죄.
@
저는 진리를 배반했습니다.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따라 있어진다고 하지만,
어쩐지 제가 비겁하고 야비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메일을 첨부해서 보내 드리니 감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7.10. 정현태 오체투지.
@ 정선생님!
더위를 잊고 잠시 긴장을 하면서 읽어 가면서 공부 많이 했어요!
지난주에 전국환경 활동가 워크샵에 가서
그동안 정선생님과 공부한 경험으로
여러 시민 단체 활동가들의 공허함을 문답 감정 중심으로
6시간 동안을 마음공부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제2의 정선생님 같으신 분들을 많이 만나고 왔습니다.
그 효과로 어제는 종교인 환경모임에 이현주목사님과 저가 주제 발표를 하고 전국에서 오신 여러 신부님 수녀님들과 목사 스님분들과 천주교 서울교구 한마음수련장에서 수련이 있어서
오늘 아침에야 메일을 받았습니다.
저는 가끔 '목격자를 찿습니다' 프랭카드를 볼 때마다
사고 낸 사람들을 비난을
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그 분도 원래는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하면서
안타까움으로 바뀌는 저의 에너지에 감사드리면서도
뺑소니 차를 발견하면
그 사람과 정의를 위해 끝까지 쫓아갈
에너지도 동시에 보면서 무척 기뻤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보는 온전한 공부이고,
그 것이 정의 불의 넘어선
온전한 정의입니다.
그래서 대산 스승님은
[법마(法魔)상전(相戰)에서 여래(如來)의 만능(萬能)을 익훈다]
하셨습니다.
진주만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하와이에서
대산 종사님을 모시고 지낼 때
장산종사님께서 '오늘은 희생된 미군과 오롯이 나라를 위해 가장 중요한 목숨까지 포기한 일본군도 함께 상극의 기운을 풀고 상생으로 천도되도록 기원 하자'는 법문 말씀에
이것이 새 시대를 열어갈 상생의 기운이고 개벽이라는 큰 자각이 들어서 항상 명심하면서 저도 항상 공부합니다.
그런데 이번 정선생님은 그 이중적 갈등으로 직접 공부를 하셨으니
큰 공부 하셨고,
'역사는 무엇인가?'에 나오듯이 역사는 결국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므로 이번 기회에
진리가 준 큰 은혜로써 베드로님 뿐만 아니라 성경을 새롭게 현재의 시각으로 풀어 갈 힘을 얻었습니다.
저가 자주 말씀 드린 대로
요란한 만큼 마음을 공부하면 정력이 쌓이고,
어리석은 만큼 마음을 공부하면 지혜가 밝아지고,
그름만큼 마음을 공부하면 계력(戒力)이 쌓이므로
경계와 마음공부는 반비례하는 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젠 실생활 속에서 하는 살아있는 마음공부는 경계와 마음공부가 비례하는
공부임을 크게 공부 하셨군요!
잠깐 더위를 잊는 당신의 새 소리(베드로 경계)에 저 역시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결국 체험자는 비난하고 싶은 욕구를 잊습니다] 비난 안 해야지 가 아닌.....
[삶이란 불안정 한 것, 불안정 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안정하는 것]
몇 년전 어느 날 저는 저의 일기에서 큰 변화를 느낀 것은
길거리에 걸려있는 '목격자를 찿습니다'는 프랭카드를 보면서
뺑소니 친 그 사람과 피해를 입은 사람이
다 부처님으로, 마음으로 만나졌을 때
참으로 묘한 감동이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안으로도 죄는 미워하데 정선생님은 미워하지 않는 공부와
잡초를 미워하며 뽑는 공부가 아닌 곡식을 키우기 위해 잡초를 뽑는
聖胎長養 공부를 하며 聖人의 心法을 배우게됩니다
[자기 불공(사랑)은 타인 불공(사랑)의 공식을 얻는 것]-정산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