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탈 데 꼰데스의 저녁

[마르타]

호스피탈 데 꼰데스의 저녁

최옥

당신 코펠에 커피 끓일 수 있을까요

나의 한 마디에 저녁을 먹고 있던 코펠을 비워서 씻고

손수 불 위에 물을 올려주던 덴마크 남자

그 남자의 코펠에 커피를 끓여서

알베르게 문 앞 벤치 그 남자 옆에 앉았다

코펠에 든 커피를 내려놓고 보니 꼭 사약 같다

덴마크 남자가 발은 괜찮은지 물어보며

행주를 갖다 준다 뜨거우니 행주로 싸서 마시란다

이 남자와 나는 몇 분의 몇의 확률로

이 시간, 이 곳에 나란히 앉게 됐을까

덴마크 남자의 친절이 꼭 당신을 닮은 듯하여 가슴이 저렸다

멀리 보이는 산의 눈매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산을 넘어오고 굽은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온

발의 통증을 가만가만 달래며 앉아 있는 시간

빨랫줄이 흔들리며 빨래가 말라갔다

산너머 일몰이 혼자 꺼내보던 그때의 시간처럼 쓰라린데

덴마크 남자가 조용히 '뷔우리플'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두 손으로 코펠을 들고 사약을

마셨다 당신 목소리, 당신 몸짓을 향한 울음이

저 붉은 눈매의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사약을 마셨다 내 삶의 어느 곳을 고쳐쓰면

나도 내 삶에게 '뷔우리플' 그렇게 말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