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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쓴 이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으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디자인연구소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철학, 가치, 비전, 정책과
대담한 정치적 상상력이 가미된 공공디자인을 생산하고 구현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민운동과 건강한 정치 생태계 건설에 복무하고자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글의 원문은 http://www.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5804
에 있습니다.
한편...
아래 글은... 최근 일어난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의 부음에
가슴 아파하는 김대호 소장의 심경을 다룬 글의 말미에 필자 자신이 몇 해전에 비슷한 글을 썼다는 기억을 상기하며 소개하는 글임을 알려 둡니다.
그의 페이스 북은 https://www.facebook.com/itspolitics 입니다...
[정치통계 20]
풍운아 3명의 부음을 듣고
-운동이 아까운 사람 망쳤다는 소리를 들을텐가?-
2009년 02월 04일 (수) 16:09:10 [조회수 : 1745] 김대호 itspolitics@hanmail.net
지난 금요일(1월30일), 토요일(1월31일) 나와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길을 걸어온 세 사람의 사망 소식을 연달아 들었다.
한 명은 김 신, 고대 83학번, SK텔레콤(GMS CR전략실 컨버전스정책팀장/부장), 1986년 건대 사태를 주도한 애학투 위원장. 부인과 애는 캐나다에 유학 보내고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 요즘 말로 기러기 아빠다. 친구들과 집에서 술 한잔하고, 한 친구와 집에서 자다가 구토를 엄청 심하게 해서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직책/직무(대외협력)상 ‘사회적 자본’이 핵심 역량인데,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386세대와 진보, 개혁, 민주파로 불리던 사람들의 ‘사회적 자본’이 엄청 망가지면서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꽤 받았다고 한다.
또 한 명은 이원주, 서울대 금속과 82학번으로 나와 같은 과 동기다. 대학 2~3학년 때 나처럼 학내 시위에 적극 가담하면서 전공 공부를 우습게 여긴 ‘소수 극렬 불순 학생’이라서 같이 막걸리 꽤 마셨고, 중간에 잘렸다가 복학해서 1990년 가을 학기에 같이 졸업했다. 이 친구는 대학 다닐 때는 노래 서클 '메아리'를 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386 벤처스타 장영승(역시 ‘메아리’를 한 서울공대 동기다)과 나눔기술을 같이 해서 잘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8~9년 전 불미스러운 일로 미국에 들어가서 주변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나와는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대략 10여 년 전이다. 지난 1월에 미국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로서 금속과 82학번 중에서 1983년(2학년 때) 당시 금속과에서 가장 열심히 학생운동 한 듯 한 82학번, 3인방 중에서 나만 살아 남았다. 다른 한 명(이상직)은 2학년 때 학사경고로 잘리고, 1986년에 서울대 국문학과로 다시 들어왔으나 1990년에 자살했다. 이 친구는 살아있었다면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낼 친구 중의 한 명 이었을 텐데……(물론 1984년이 되자 더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나타났고, 이 친구들은 지금 캐나다와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최창원, 연대 법대 82학번으로 1985년 당시 법대 삼민투 위원장을 했고, 사망 당시에는 수원에서 학원을 했다고 한다. 사인은 뇌출혈이라던가? 나와 일면식도 없고, 주변에 그리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이후 자세한 경력은 나도 잘 모른다.
사람이 죽는 것은 일상사고, 40대 남자가 사망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대우자동차 근무(1995~2004) 당시, 같은 부서에서 몇 년간 같이 일을 한 40대 몇 명이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KOSIS 통계를 뒤져보니 2007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총 사망자수가 24만4,874명이다. 10년째 24만 명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다. 2007년 사망자 중 40~44세는 7,030명이고, 이 중 5,084명이 남자다. 45~49세는 총 11,397명이고, 이 중 8,351명이 남자다. 1년을 365일로 잡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37명 가량의 40대 남자가 사망한다. 40대 남자의 사망은 흔한 일이다.
내친 김에 사망원인을 좀 세분화 해서 보니 40~44세 사망자 중 자살자는 2007년 현재 1027명(남자 691명), 45~49세 자살자는 1204명(남자 866명)이다. 40~44세 사망자 중 교통사고 사망자는 571명(남자 461명), 45~49세는 699명(남자 545명)이다. 자살자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대략 2배 수준이다. 혹시 한국의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유난히 높은가 해서 남자와 여자의 사망률을 연령대 별로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여성에 비해 남성의 사망률이 전 연령대에서 높은데, 확실히 40대 들어 남성 사망률이 점프를 하긴 한다. 30~34세는 10만 명당 남성 사망률이 여성 사망률의 1.49배, 35~39세는 1.83배인데, 40~44세는 2.48배로 껑충 뛴다. 이런 추세는 69세까지 25년간 지속된다. 45~49세는 여성 사망률의 2.67배, 50~54세는 2.92배, 55~59세는 2.94배, 60~64세는 2.65배, 65~69세는 2.54배이다. 70~7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2.15배 수준으로 떨어진다. 한국에서 40~60대 남자로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에 서면, 여름의 왕성한 생명력과 무성했던 잎을 돌아보고, 겨울의 추위와 앙상한 가지를 생각한다. 그처럼 젊을 때 비슷한 꿈을 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고통을 겪고, 40대 들어 그리 재미없는 인생을 살다가 덧없이 가버린 동년배 3명의 사망 소식을 들으니 우리 민주, 개혁, 진보 가치를 쫓아 청춘을 바친 사람들의 삶의 의미와 역사적 의미를 묻게 된다. 게다가 요즈음이 어떤 시기인가? 참여정부와 17대 국회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추풍낙엽이 되어, 아니 (MB)’博風백수’가 되어 발길에 채이고 있다. 물론 이들은 그나마 좀 낫다. 내 주변에는 그 좋았던 시절에 조차도 폼 나는 자리를 가져 본 적도 없는, 40대 백수들이 부지기수니…… 한편 미증유의 경제위기로 인해 민간기업들에서도 비상경영,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잘 나가는 부장, 이사로 있던 지인들의 퇴직 소식도 많이 듣는다. 이 중에는 진보개혁 세력의 몰락과 함께 사회적 자본이 쪼그라들어 퇴직을 하게 된 사람들도 좀 있다. 한국 사회는 위로 올라갈수록 정치권력의 향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들의 퇴직은 경기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젊은 시절의 총 결산 일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자신의 잠재력 혹은 그릇 크기를 다 보여주고, 인생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암 걸려서 수술했다는 지인(친구, 선배)들 얘기도 그리 드문 소식이 아니다. 벤처중소기업 해서 잘 나간다는 동년배들은 이제 거의 없다. 2000년 전후해서는 좀 있었지만…… 이 모든 소식들은 덧없이 간 40대 동년배들의 부음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세대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이루었나,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후대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할까, 우리 운동했던 사람들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등을 되묻게 된다.
비슷한 삶을 살아온 동년배들이 일찍 죽기도하고, 직장에서 떨려나고, 기업이 망하고, 암에 걸리고,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몸이 무거워도 대부분의 40대는 인생의 내리막이 아니라 인생의 오르막일 것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한창 올라가는 중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올라가야 할 곳, 즉 소명과 이상을 쳐다보고, 나와 우리 세대가 서 있는 위치를 알아보느라 기대 여명을 찾아보았다. 2007년 현재 45세 남자(1962년생)의 평균 기대 여명이 33.0년이다. 여자는 39.0년이다. 이는 지난 20년 전에 비해 평균 7세, 10년 전에 비해 평균 4세 가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온 날보다 살 날이 훨씬 짧다. 더구나 건강의 허락을 받으면서 뭔가에 치열하게 매진할 날은 글쎄 한 15년? 20년? 남았을까? 정치인으로서 유통 기한은 이보다 더 짧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요체인 시력도 맛이 가고 있다. 체력, 집중력 등 지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정말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 세대의 성적표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9년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27년 전에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2009년에는 우리 큰 애가 고3이 되고, 작은 애가 고2가 된다. 돌아보면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의 기억은 생생하다. 입시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 현실에 대한 자각과 분노,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고뇌 등등이 생생하다. 그 이후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지난 1979년~1989년 사이에는 개인사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많았다. 사고의 시간을 좀 길게 가지고 현실을 보면, 20~30년 전에 나와 우리 세대가 가졌던 기대, 예상, 이상에 비추어 볼 때 지금 한국 사회는 너무 각팍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변칙, 편법, 술수가 난무하는 야비한 세상이 계속되고 있는 듯 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식 세대는 부모세대 보다 훨씬 기회가 적은 세상을 살 것 같다. 개인적인 능력은 엄청난 교육투자로 인해 우리 부모 세대보다 앞설지 모르지만…… 이는 재벌.대기업, 공공부문, 주류 언론, 사학재단, 청년 인재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된 직업군, 대기업.공기업 노조, 부동산 불로소득자 등 사회적 강자들의 지대 추구 행위와 이를 방조하거나 이들과 결탁한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의 책임이 결정적이다. 물론 무능하고 사악한 공공의 중심에는 무능하고 사악한 정치가 있다. 주류 언론도 사악함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것이다. 엄청난 사교육 열풍, 유학 열풍, 기러기 아빠 현상, 고시.공시 열풍 등은 너무 줄어드는 기회를 움켜쥐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한국에서 가장 똘똘한 청년인재들은 하나 같이 글로벌 경쟁의 파도가 덜 미치는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똘똘한 중학생들은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입시학원인 특목고를 거치고, 2009년도 대입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명박으로 인해 가장 기세 등등한 고려대부터 변칙, 편법, 불투명을 총동원하여 이를 옹호하고 유도한다. 대학 총장들이 주요 구성원인 대학교육협의회는 이를 방조, 묵인하고 있다. ‘대입 자율화’의 미명하에 권한은 자유롭게 많이 행사하려고 하지만, (외부 비경제 효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악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총장 이라는 자들이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사회에 대해 대놓고 얄팍한 사기를 치고 있다. 교육 관료, 교장, 전교조, 한교총은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특목고가 한없이 매력 있는 학교로 보이도록 일반고를 정말로 후지게, 무책임하게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성적이 처지는 학생들이나 공부에 별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내신을 무기로 학교를 거의 감옥처럼 운영하고 있다. 공부는 못해도 기 하나는 살려놓아야, 철들면 뭔가라도 할 텐데, 기를 완전히 죽이고 심성을 완전히 뒤틀어 놓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대폭 늘어나고,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제도 등이 발전되고, 복지 예산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중하층민의 자유와 행복의 토대인 중하층 일자리 사정은 너무나 열악하다. 단적으로 ‘건설 노가다’ ‘식당 아줌마’ ‘청소 아줌마’ ‘택시 운전사’ ‘구멍가게 주인’ ‘지방의 자영업자’등의 소득은 대체로 근 15년 이상 답보 상태에 있다. 과거에 엄청난 고용 흡수력을 구가하던 ‘단순 기능공’ 자리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1987년 당시 운 좋게 대기업, 공기업, 공공부문에서 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노동운동의 발전과 분권화.자율화에 따라 가장 큰 행운아가 되었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은 구악을 별로 약화시키지 못한 채 신악을 추가했다. 이런 식으로 성토를 하려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이다.
어쨌든 한국 사회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노블레스에서 최하층까지,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얄팍한 술수(변칙, 편법, 반칙)가 일상화 되어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탓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와 진보개혁 세력은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라는 빙산의 아래 부분은 보지 못하고, 윗 부분만 가지고 변죽을 울리다가 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은 빙산 전체를 조금은 더 아는 듯 하지만, 권력과 정보가 무슨 비즈니스 모델인 듯, 이 지식을 철저히 사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다수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이 자유주의, 시장주의 원칙을 웬만큼 견지하면서 행태만 좀 거친 ‘조폭’ 정도 인 줄 알고 내심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1년을 지내고 보니 이들은 도무지 원칙과 상식이 없는 ‘양아치’로 판명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은 더 기회가 적고, 더 야비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나는 20~30년 전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피 눈물을 뒤로하며 학생운동.노동운동을 할 때, 우리 자식세대에게 이렇게 기회가 적고, 야비하고, 약자에게 가혹한 세상을 물려줄 줄 정말 몰랐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그렇게 형편없는 사회인 줄도 몰랐고, 남북간의 소모적인 대립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 몰랐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21세기에도 이렇게 배고프게 살 줄 몰랐다. 한국의 노블레스들이, 아니 한국 사회 전체가 이리도 실력이 없는 줄 몰랐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역사적 중간 성적표다. 물론 이런 형편없는 사회를 우리 세대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세대가 획기적으로 뜯어고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형편없는 사회를 만든 책임은 압도적이지는 않지만-그렇다고해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싼 똥도 여간 심각하지 않다- 해결할 책임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대의 역사적 소명은 점차 흐릿해져가고, 조기 유학, 특목고, 사교육 등을 통한 개인적인 돌파의지만 선명해 지는 느낌이다.
최근 2~3년간 몇 배로 증폭된 실망과 부끄러움
최근 2~3년간은 실망과 부끄러움이 몇 배로 증폭되었다. 그것은 2006~2008년 진보, 개혁, 민주파의 일대 위기 상황에서 한 때 머리띠를 맸던 세력이 예상외로 너무나 무능하고, 안이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지난 대선, 총선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한다. 아직도 적지 않은 진보좌파 세력은 이명박과 보수 세력의 압승을 참여정부의 (좌 깜박이) 우 클릭에서 찾는다. 참여정부는 가면 쓴 신자유주의라서 망했고, 이명박 정부는 토건형(무대포) 신자유주의라서 망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사람은 참여정부 세력의 서민.중산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 부족에서 찾는다. 어떤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과 호남 민중 배신에서 찾는다. 어떤 사람은 보수 언론과의 전쟁 혹은 프레임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관료정권이어서 그렇단다. 사실이 그렇다면, 아니 사실이든 아니든 다수 국민들이 그렇게만 평가해 준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열심히 국가경영 공부를 할 필요도 없고,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며, 참여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대한민국 관료도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조차도 신자유주의의 주구가 아니다. 그 후지다는 관료를 능가할 수 있는, 이론과 실물을 잘 아는 전문가와 정치인은 많지 않다. (김대중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가 용케도 정권을 잡고도, 다수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감만 주고, 지탄의 홍수에 휩쓸려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경영을 너무나 간단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왜 망하는가? 문제의 핵심을 지난 10년 간의 '좌클릭'에서 찾기 때문이다.攻城者 시절에 재미를 본 레토릭을, 城을 접수한 이후에도 城을 경영하는 원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왜 그렇게 신통찮았는가? (집권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권위주의와 권력자에 대한 도덕적 신뢰의 문제로 단순화 시켰기 때문이다. 진보좌파는 왜 정권을 잡을 수도 없고, 잡아서도 안되는가? 문제의 핵심을 '우클릭'에서 찾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대중 정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부들은 '좌클릭'과 '우클릭', '권위주의(기강과 질서)'와 '탈권위주의', '마키아벨리즘'과 '도덕적 신뢰', '儒家적 원칙과 法家적 원칙' 등 상반되는 원칙, 가치, 정책을 정교하게 결합시켜야 하는 나라를 너무나 단순한 원칙으로 경영하려다 보니 실패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국가경영에서는 낙제를 겨우 면했지만, 친인척과 측근 관리에서 낙제를 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실력이다.
다시 말하지만 참여정부와 범진보.개혁 세력의 몰락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집권세력으로서의 무능’이다. 한마디로 ‘국가경영 실력(노하우)’ 부족이다. 이 중심에는 좋은 의도와 뜨거운 열정을 무참하게 배신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말초(말단)의 변화하고 진화하는 욕망.고통에 대한 둔감과 대한민국의 깊은 속살과 구조(모순.부조리, 작동 원리)에 대한 빈약한 통찰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좋은 의도와 뜨거운 열정을 실현할 지렛대(정당과 관료 조직 등)가 시원치 않다. 설상가상인 것이다. 그만큼 국가경영이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 같이 극심한 민심의 이반을 겪으면서 퇴장해 간 것이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탐욕, 독선, 무지 때문이 아니다. 상당 부분 구조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권력 구조, 재정 구조, 깡통 정당을 필연화 시키는 정당 구조, 지역독과점을 보장하는 선거제도와 지역주의, (관료가 암만 후지다고 해도 이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차라리 나을만큼) 정치세력과 지식사회의 빈약한 국가경영 노하우(컨텐츠, 리더십), 국민들 냄비 같은 성정과 야비한 언론, 높은 지식정보화 수준 등이 그것이다. 이는 공성(攻城)-야당 노릇과 정권 교체까지-은 비교적 쉽게 허용하지만, 수성(守城)이나 성 경영은 지극히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와 범진보.개혁 세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순과 부조리-대표적으로 양극화, 일자리 부족, 거대한 빈곤층, 노블레스들의 반칙.특권(지대추구) 성향, 천박한 문화, 격렬한 사회갈등, 교육, 주거, 복지 문제 등-의 빙산은 보았으되, 수면아래 있는 거대한 빙산의 밑동까지는 보지 못하였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의 무지와 무능의 뿌리를 좀 더 파고 들어가보면 정치적 노하우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정당 또는 정치조직의 후진성이 나타난다. 이는 주요 지역에 대한 정치적 독과점과 (컨텐츠에 관한 한) 깡통정당을 조장하는 선거제도와 지역주의와 관련이 깊다. 눈을 돌려 정치를 지원하고 향도하는 지식사회를 보아도, 대한민국에 대한 종합적 균형적 이해는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주류 언론이 서북청년단식 피해의식과 증오에 절어있다. 대학, 연구소 등은 먼저 좋은 자리를 잡은 기득권들 위주의 후진적 상벌 체계로 인해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해명)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게 되어 있다. 실물(바닥현실)과 유리된 채 좁은 우물에 들어앉아서 장님코끼리 만지기 식 헛소리를 끊임없이 해 대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아니 꽤 사회적 인정(?)도 받으면서 지도자연 하면서 살 수 있다. 담론의 진짜 소비자(정치와 관료)는 인정하지 않아도, 현실과 유리된 언론, 대학, 교회가 인정하면 그렇게 살 수 있다. 정치 역량의 핵심의 하나가 수많은 요소를 종합하여, 가치, 정책의 우선 순위와 기조를 잡는 것인데 현재의 지식사회의 풍토와 시스템은 이를 제대로 담보할 수가 없다. 모름지기 모든 노하우는 합리적 상벌체계에 의해 생산되고 축적되는데, 한국은 해외 학계가 필요로 하는 지식 생산 부문에는 돈이 많이 흘러가도, 한국 정치가 필요로 하는 컨텐츠-선거 기술이 아니라, 철학, 가치, 비전, 정책 등-생산 부문으로는 돈이 별로 오지 않는다.
한편 실물(바닥 현실)을 잘 아는 이익집단(대표적으로 대기업.공기업 노조와 전교조 등)은 모순과 부조리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게임규칙을 만들고 유지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진보 이익집단이 참여정부 시절 손쉽게 할 수 있는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요컨대 진보이익집단은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쫓아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숱한 모순과 부조리를 과도한 좌파 이념 혹은 과도한 우파이념-시장(신자유주의)과 성장 지상주의-에서 찾는 사조(오퍼상적 사고)도 지식사회와 이익집단의 눈을 흐리게 하였다.
우리 세대가 후대에 물려줄 최고 최대의 유산은?
미국은 국가경영 노하우를 생산하고, 축적하고, 실현하는 제반 시스템과 문화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케네디나 오바마로 대표되는 젊은 세력들이 나라를 끌어가도 크게 무리가 없지만, 한국은 이 시스템과 문화가 취약하여 나이와 개인적 경륜에 상관없이 국가경영은 번번히 실패 하기 십상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장기간에 걸쳐서 국가경영 노하우를 축적하고, 심화.발전시키고, 인재를 양성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다방면에서 정치적 수완을 펼칠 수 있는 정치조직(정당, 연구소, 사회단체 등)이다. 이 정치조직은 다양한 계층, 지역, 직능, 기능의 숨결과 지혜를 총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말초(모세혈관)나 바닥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의) 빙산의 수면 위와 아래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반대당이 법사위와 본회의장을 점거하여 개혁 입법을 무한정 저지해도, 법.제도를 고치지 않고도 소리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급소를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시스템은 무슨 건설공사 하듯이 돈과 사람 쪽수만 가지고 완공되지 않는다. 이는 과학적이고 시대정신을 반영한 이념과 이를 공유하는 세력과 지도자와 선진적 조직 문화(마인드 혹은 영성)와 적절한 정치적 계기와 상당한 숙성 시간(노력)이 구비되어야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캠프나 이명박 캠프가 보여주었듯이 오랫동안 축적되고 숙성된 국가경영 노하우 없이도, 또 잘 훈련된 거대한 인재 풀 없이도, 매력적 인물을 내세워 시류(특히 반사 이익)를 잘 타면 정권을 잡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국가경영은 오래 동안 축적되고 숙성된 노하우와 잘 훈련된 거대한 인재 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노무현, 이명박 정권의 좌절로부터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할 최고 최대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 진보, 개혁이 간판 상품인 우리 세대가 후대에 물려줄 최고 최대의 유산은 제대로 된 정치조직 특히 정당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 정당은 다양한 연구소, 매체, (이론과 실물을 잘 아는) 전문가, 운동체, 직능조직과 무엇보다도 상당한 숙성 시간(노력)이라는 토양, 뿌리, 줄기 위에 핀 꽃이다.
가장 아쉬운 것
조직이 만들어지려면 이념도 이념이지만, 이념 이전에 어떤 정신적 건강성내지 영적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래알 조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세대가 어릴 때 심취한 맑스레닌주의는 이를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즐겨 부른 노랫말에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어쩌고 하는 종교적 심성이 짙게 배여 있었지만, 실제 우리가 배운 철학, 가치, 이념, 전략, 전술은 대체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고립화, 무력화시키는 것들이었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착취 등에 대한)증오와 볼세비즘이 가르쳐 준 헤게모니에 대한 집착은 확실히 배웠으나, 과학이랍시고 배운 것은 너무나 엉성했다. 어린 나이에 헤게모니 투쟁 기술을 먼저 배우다 보니, 우리 세대가 수천 수만 갈래로 찢어져 서로 반목하고 폄하하면서 결국 1인 1당처럼 지내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20대에 주류 경제학이나 동서양 고전을 먼저 배우지 않고 마르크스 경제학과 정치학(?)을 먼저 배운 것이 아쉽다. 또한 우리 세대와 비슷한 철학, 가치, 전략, 전술을 몇 십 년 앞서 배웠을 것 같은 조선로동당이 북한을 물질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저리도 피폐하게 만든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운동이 아까운 사람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을 텐가?
나는 종종, (1970~80년대에 학생운동에 몸을 깊이 담그지 않아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은) 일정한 경지에 올라간 교수, 전문직, 전문경영인 등을 만나곤 한다. 이 분들 중에는 김대호가 꽤 괜찮은 재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대 10년을 운동에 올인하느라) 그 재주를 발휘할 자리에 아직도 갖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좀 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 봐도 내가 교수가 되었거나 의사가 되었거나 엔지니어가 되었다면 꽤 역량을 발휘했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 하지만 나는 20대에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눈꼽만큼도 미련도 후회도 없다. 나는 현재의 나에게 매우 만족하고, 또 이 길로 온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아직은 건강하게 살아있고, 자식들도 잘 자라고, 배는 좀 고파도 하는 일에 만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도록 변변한 경력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고, 눈 높이가 꽤 낮은 김대호 눈으로 봐도 차라리 과거에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훨씬 의미 있는 일을 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먼저 간 동년배 3명과 1990년에 자살한 친구 이상직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로 보인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보인다.
솔직히 1980년대 초 우리 운동권들의 ‘꼬심’에 넘어가지 않고, 일찌감치 고시를 보거나, 방송사를 가거나, 박사를 하거나, 유학을 갔다 온 녀석들이 훨씬 더 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개인과 가족의 건강, 행복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명망(인정) 측면에서도, 사회에 대한 (진보,개혁적) 영향력 측면에서도…… 이런 느낌은 나만 가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단적으로 나 보다 훨씬 운동 역량이 뛰어나서 지도적 위치에 오랫동안 있어온 50대 중반 선배도-물론 이 선배도 돈과 권력을 만지는 자리에는 한번도 가지 못했다. 여러 번 출마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후배들에 대한 그런 안타까움과 부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민노당을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나았을 수많은 후배들을 운동으로, 민노당으로 인도했다면서……. 이는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현 민주당, 민노당, 민주노총, 전교조, 한겨레신문, 시민단체 등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유산들이 한계를 노정하고, 빛을 잃으면서 더욱 실감이 난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운동이 아까운 사람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운동이 아까운 사람 망쳤다는 소리를 무수히 들어도 싸다.
1인 1당이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맛이 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더 자주 메일링하고, 더 자주 만나려고 한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녹슬어가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 관심, 후대에 대한 부채의식(역사의식), 중년의 건강, 사회적 자본을 얘기하고, 새로이 시작할 2모작 내지 3모작 인생 등을 얘기하려고 한다.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면서......
첫댓글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