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도의 서당 풍속도 -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서당의 체벌은 달초 또는 초달이라고 하는 최초의 매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통해 폭력적인 체벌이 학교 현장에 자리잡게 된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가 최근 한국에서 개봉돼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무시무시한 검객영화에 걸맞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촌스러운 타이틀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78년 한 신설 고등학교를 무대로 벌어지는 학원 폭력과 학생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필자가 다녔던 강남 8학군의 한 학교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1978년이면 이른바 ‘유신말기’다. 당시는 학교 안팎으로 폭력이 만연하던 시대였다. 현재 40대 이후의 연배들은 대부분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 무렵 남학생들은 한마디로 폭력에 단련된 선수(?)들이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이어지는 제도 교육은 학원폭력을 방조했다.
일부 교사들의 도에 지나친 매질과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학생들간의 힘겨루기로 늘 긴장감이 감돌곤 했다.
특히 제도교육 안에서 자행된 일부 교사들에 의한 폭력은 학생들의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에서 터득된 ‘원산폭격’ 요령과 중고등학교를 통해 더욱 민첩해진 ‘김밥말기’ 테크닉은 나날이 세지는 맷집과 함께 군대생활에서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 와중에 당시 세대들은 내면적으로 이문열 소설에서 그려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나’와 ‘필론의 돼지’의 ‘그’처럼 폭력에 굴종하던 무력한 기억들을 얼마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2004년 오클랜드를 보자. 지난 주부터 각급 학교들은 긴 방학을 마감하고 개학했다. 교사들은 학생들보다 며칠 일찍 출근해서 새 학기를 준비한다. 이때 어김없이 학생지도에 대한 학교측의 당부도 이어진다. 특히 신임 교사들에게는 학생 지도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첫째, 학생들에게 체벌이나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칭찬한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다독거리는 신체적 접촉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둘째, 수업중 학생을 교실밖으로 내쫓을 수 없다.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박탈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설령 소지해서는 안되는 물건을 갖고 있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학생들의 가방이나 호주머니를 뒤져서는 안되며 부모에게 연락해 합당한 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
도망가는 학생을 뛰어가서 붙잡아서는 더욱 안된다. 교사는 경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밖에 학생지도에 있어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상세하게 주지시킨다. 체벌과 관련해서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교사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뉴질랜드는 1989년 교육법 개정으로 학교에서 일체의 체벌을 금지하고 있어서다.
체벌은 고통을 줌으로써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위를 억제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교육심리학에서는 체벌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선택을 그 가치가 아니라 육체적 고통 여부에 따라 하도록 만든다고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체벌은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적극적인 행위를 유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벌을 가한 사람과의 인간 관계를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일부에서는 갈수록 무분별해지는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체벌을 부활시켜야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일부 교사들조차 체벌 금지의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종종 학생지도에 있어 무력감을 호소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음 세대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잘못된 악순환은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대에서 반드시 끊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고집스러움에 때로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체벌의 옳고 그름은 아직도 교육계의 꺼지지 않는 화두로 남아있다. 뉴질랜드 교육현장의 한복판에서 학생들과 하루하루 지친 씨름을 하며 무엇이 바람직한 교육환경인지 끊임없이 자문해보게 된다. ‘잔혹했던 1978년 말죽거리’를 회상하면서.